신경외과 VS 소아과 :: 14
By.아리아
치료를 명분으로 찾아간 병문안은 결국 목적을 잃었다. 꼭 끌어안고 잔 것 외엔 아무 일도 없었는데 둘 다 더욱 심해진 감기에 괜히 볼이 붉어졌다. 저와 권교수의 연애사실을 아는 석민이나 지훈이 본다면 최소 일주일은 놀릴 모습이 떠올라 눈을 더욱 질끈 감아버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제게 꽂힌 듯한 깊은 시선이 저를 마주했다. 뭔가 눈을 뜨지 말아야 할 것 같았다.
"자는 것도 예뻐보이면, 나 진짜 콩깍지 씌인 거 맞죠."
그의 다정한 말 한마디가 제 심장 어딘가를 콕콕 찔러왔다. 혹여나 두근대는 소리가 들릴까 잠투정인 척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러나, 그 이불을 다시 목 부분까지 끌어내리곤 흘러내린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는 그에 제 붉어진 얼굴은 그대로 그를 맞이했다.
눈, 코, 입. 차례대로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에 심장은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계속 보고 계실거예요?"
"응. 그러니까 조금만 더 눈 감고 있어요."
예상 외로 단호한 그의 말에 입술을 삐죽이며 눈을 슬며시 떴다. 살짝 부은 듯 통통해진 그의 눈두덩이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병원에서 날카롭고 냉정한 그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아기같은 모습만이 저를 반겼다.
"권교수님 눈 부었는데,"
"보지마요."
통통한 눈가로 손을 가져가려다 다시 제 눈을 감기는 그에 갈 곳을 잃어버린 손이었다. 휑한 느낌이 손을 감싸기도 잠시, 손가락 사이사이로 깍지를 껴오는 따스한 손에 입꼬리가 슬며시 호선을 그렸다.
"교수님 출근 안해요?"
"이 몸으로 누굴 치료합니까."
"김교수는요?"
"저 오늘 오픈데, "
오프라는 단어가 제 입 밖으로 뱉어지자마자 확 끌어안으며 한손으로 이불을 뒤집어쓰는 그였다. 하얀 이불 속 다정한 눈빛으로 서로를 담아내는 눈빛에 푸스스 웃음이 맴돌았다.
"그럼 조금만 더 자고."
"..."
"데이트하러 가요.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산책도 하고."
"다른 커플들처럼."
듣기 좋은 그의 목소리와 따스한 품을 자장가 삼아 스르르 잠에 빠졌다.
***
꿈만 같던 잠에서 깨어나 자연스레 나갈 채비를 하던 중 그의 카라가 삐죽 올라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맨날 입는 셔츠면서 저래 빈틈을 보이는 것이 귀여워 미소를 머금은 채 그에게 다가갔다.
"교수님, 잠시만."
"응?"
"셔츠 깃이 이게 뭐예요. 애기도 아니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카라를 정리해주었다. 다 됐다- 하며 손을 탁탁 털자 그 손을 잡아 당겨 얼굴을 가까이 하는 그에 숨을 훅 들이마셨다.
"나가지 말까요?"
"ㅁ, 무슨. 얼른 나가요. 영화 시간 늦겠다."
진한 눈빛이 제게 닿자 제 얼굴은 톡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 같은 붉은빛으로 물들어갔다. 자꾸만 그에게 말려 드는 기분이었다. 크게 웃는 그를 뒤로한 채 문을 열고 나오자 저를 맞는 시원한 바람으로 겨우 열을 식혀냈다.
"뭐 볼래요?"
꽤 많은 영화 포스터들 앞에 서 손톱을 깨물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고민할 때면 나오는 습관인지라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제 손을 잡아 내리며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는 그에 아차싶었다.
"손톱."
"ㄱ, 권교수님. 저 이거 보고 싶어요!"
물론 장난일테지만 권교수의 굳은 표정은 제게 꽤나 큰 중압감을 주어 급히 아무 포스터나 가리켰다. 푸스스 웃으며 잡은 손에 힘을 주는 그에 제 얼굴에도 웃음꽃이 만연했다.
작은 팝콘과 콜라를 들고 어두운 상영관으로 들어가니 괜한 설렘이 저를 안아왔다. 얼마만의 영화인지.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전날 밤의 여고생처럼 들뜬 마음에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옆에서 느껴지는 다정한 눈빛도 한 몫했고.
영화는 그저 흔한 첫사랑 이야기였다. 내용은 클리셰범벅이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다 해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우는 타입은 아닌 저라 가벼운 마음으로 상영관을 빠져나왔다.
근데, 아까부터 권교수가 말이 없다. 설마..
"울었어요?"
"..."
대답이 없는 그에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자 불그스름해진 눈가와 함께 아침의 그처럼 살짝 부은 눈이 저를 맞이했다. 듬직했다가 귀여웠다가, 진짜 이 남자 어쩌지.
"나 봐봐요. 응?"
고개를 푹 숙인 채 터질 것 같은 귀가 아기같아 그의 앞에 서 양 볼을 잡아 올렸다. 샤프하다고 생각했는데 손으로 잡으니 만두같이 오동통 올라온 볼살에 씹덕사 한번, 우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게 부끄러운지 짜증나는지 불만가득한 표정에 씹덕사 두번, 툭 튀어나온 입술에 씹덕사 세번. 앞서 말했지만 병원에서의 그 냉철함은 다 어디로 갔는지 귀여움으로 무장한 그에 결국 웃음이 터져버렸다.
"왜 웃어요."
"그러는 권교수님은 왜 울었어요. 뭐, 지나간 첫사랑이라도 생각나셨나? 남자들 첫사랑 절대 못 잊는다더니 진짜였나보네-"
장난스레 던진 제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 그저 민망한건지 미친듯이 흔들리는 동공에 살짝 밉기도 했지만, 귀여우니까 봐준다.
양 손으로 잡은 그의 볼을 쭉 잡아당기곤 짧게 입맞춘 후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진짜 첫사랑 생각나서 그런건가. 그런거면..아씨, 좀 짜증난다. 내가 원래 이렇게 질투가 많았나.
***
헤어지기 싫은 마음은 둘 다 같았는지 몇분째 제 집 주변을 빙빙 돌고 있는 우리였다. 차 안에서 흘러 나오는 잔잔한 음악과 운전대를 잡고 있지 않은 손이 제 손을 감싸고 있는 이 예쁜 장면에서 헤어나오고 싶지 않았다.
한 30분 쯤 같은 길을 돌았나.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앉고 둥근 달이 저를 맞았다. 이젠 정말 가야할 시간임을 알아채곤 차 문을 열려는 순간 달칵-하고 잠기는 문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저 내일 출근해야되는데."
"..."
그저 빤히 바라보기만 하는 그의 눈빛이 싫지 않아 마주한 채 미소를 지어보였다.
"교수님?"
"우리 오늘 다른 커플들 하는 거 다 했는데."
"그렇죠. 밥 먹고 영화보고 드라이브하고. 이제 다 했으니까 집 가야죠. 권교수님도 출근하셔야되잖아요."
"아직 하나 안 했습니다."
"..뭔데요?"
이상하게 흐르는 긴장감에 꿀꺽- 하고 침을 삼켰다.
"그 권교수님, 교수님 하는 호칭. 바꿀 때 된 것 같은데요."
권교수말고 다른 호칭라니, 상상치도 못 했던 레파토리였다. 여기서 권교수가 원하는 건 뭐, 여보, 자기와 같은 흔한 연인들이 서로를 지칭하는 단어임이 분명했다. 원체 제 성격이 애교가 많은 타입도 아닐 뿐더러 오글거리는 걸 보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사람인데. 여보, 자기라니. 안해. 아니 못해.
"전 아직 이게 익숙하기도 하고, 아시잖아요. 제 성격에 그런 말 잘 못하는,"
분명 안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건만, 사람에게 꼬리가 있다면 축쳐져있을것만 같은 그의 표정에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오빠, 나 갈게요! 내일 봐요! 사랑해!"
두 눈을 질끈 감고 소리치자마자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가 공동현관의 비밀번호를 급하게 눌렀다. 방방 뛰는 가슴에 자꾸만 틀린 비밀번호를 쳐 삐삐 거리는 장치에 심호흡을 하곤 조심스레 하나, 하나 눌러갔다.
"일, 일, 공, 이, 어. 깜짝아, 권교수님.."
두자리를 남겨놓은 비밀번호는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달려온건지 달뜬 숨을 내쉬며 제 팔목을 잡아 돌려 자신에게로 가까이 당겨오는 그 덕분에 말이다.
"..."
"진짜,"
"네?"
"사람 잠 못 자게 만들어놓고 무작정 도망가는게 어딨습니까."
"아니, 제가 뭘 잠을 못 자게 까지 만들었다고.."
"아까 그 말 한 번만 다시 해주면 진짜 보내줄게요."
제 머리를 쓸어넘겨 귀 부분에 꽂아주는 다정한 손짓과 진지한 그의 눈빛에 알 수 없는 용기가 피어올랐다. 아까 전의 부끄러움은 어디로 가고 여우로 둔갑한 제가 있는지, 알아챌 빈틈도 없이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곤 그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오빠, 사랑ㅎ, "
뭐, 그 뒤는 굳이 말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제 입술을 덮쳐온 그에 제 목소리는 먹혀 들어갔고 결국 다음 날, 우리는 나란히 지각을 해 아침 회진을 돌지 못 했다는 이야기가 간간히 들려온다. 아씨. 허리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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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런 똥글을...그나저나 저희 이번 컴백 대박나려나봐요 자꾸만 일이 터지네 우리 독자님들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제 글보고 조금이라도 힘내셨으면 좋겠어요!
어우 근데 다시 봐도 별로야...어떡하지..제 필력의 한계인가봐요..저날 밤 이야기는 나중에 메일링 할 때 헤헿 그럼 안뇽!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