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외과 VS 소아과 :: 15
By. 아리아
욱신거리는 허리를 부여잡으며 가운을 걸치곤 의국으로 향했다. 발을 내딪을 때 마다 아려오는 허리 통증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걸 애써 풀어내며 북적거리는 의국에 도착을 했다.
몇달 치 오프를 몰아서 쓰고, 그 시간 내내 권교수와 달달한 시간을 보내서인지 이상하게도 조금 낯설어진 의국의 모습에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어, 김교수님 오셨어요?"
"아,네. 늦어서 죄송해요."
"너무 피곤해보이셔서 뭐라고 말씀도 못 드리겠어요. 오래 쉬셨는데 왜 그렇게 피곤해보이시지-"
수쌤은 그저 흘러 지나가는 말로 내뱉었을 말이었을텐데, 제 머릿속은 지난 밤 새하얀 침대 위의 우리로 가득찼다. 괜시리 열이 오르는 듯한 느낌과, 민망함에 어색한 웃음과 함께 손사래까지 치며 '아니요! 저 너무 잘 쉬다 왔어요!아픈 데도 하나도 없어요!'하는 연기톤의 멘트를 내뱉고말았다. 이래서 죄 짓고는 못 산다는 말이 생겨났나보다. 어색한 제 연기에도 불구하고 그럼 다행이라며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수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찰나였다.
"아, 김교수님은 잘 쉬다 오셨나 봅니다?"
도대체 언제 온건지 차트에 시선을 빼앗겨 제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병원 여자 직원들이 껌뻑 죽는 능글능글한 말투로 받아치는 그였다.
언제부터 제 옆에 있었는지를 알기 위해 의국 안의 간호사쌤들께 눈빛을 보냈지만 대부분, 아니 모두가 저와 권교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생각이 떠올랐다.
병원 사람들은 저와 권교수가 톰과 제리급 앙숙 사이로 알고 있다는 걸. 또한 우리의 연애 사실은 비밀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사실에 아차 싶어 더욱 인상을 찌푸리며 이를 꽉 깨물었다.
"네. 누구 덕분에 푹 쉬다 왔네요. 아주 피로가 싹- 풀렸습니다."
"근데 아까부터 허리는 왜 계속 잡고 있습니까. 푹 쉬고 오셨다는 분이."
의국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말의 주체자로 왔다갔다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분홍빛으로 발전한 사이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분홍을 가장한 회색빛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는 그 시선이 꽤나 귀여워 그의 말을 한 1초 정도 후에 인식이 된 것이 문제였다.
또 다시 지난 밤의 모습이 절로 그려지고 말았다. 제 얼굴은 말할 것도 없이 붉어졌고.
"좀 욱신거려서 그러니까 신경 끄시죠. 그리고, 도대체 NS가 PED는 왜 자꾸 들락날락 거리세요? 그쪽 일이나 열심히 하시지."
*NS : 신경외과, PED : 소아과
"볼 사람이 있어서요."
"그럼 그 사람한테 용건만 보고 가세요. 이거 엄연한 업무방해인 건 아시죠?"
누가봐도 얄밉게 따박따박 따지는 제 모습에도 불구하고 실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주체를 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눈빛을 보냈다. 저 사람이 들키려고 작정을 했나.
대답이 없는 그에 의국은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긴장할 일인가. 하는 생각에 고개를 돌리던 순간 제 팔목을 잡아 비상계단 쪽으로 향하는 그에 의국은 동그래진 눈들로 가득했다.
"ㅁ, 뭐하세요."
"뭐하긴요, 용건 보려고 왔는데."
"네?"
너무나도 당연스레 말하며 아이처럼 웃는 그에 순간 열이 확 올라 랩을 하듯 마구 말을 뱉어냈다.
"아니, 우리 비밀로 연애하고 있는 거 몰라,"
쪽.
"들키면 어떡하ㄹ,"
쪽.
"들키면 저 권교수 팬들한테 소리소문도 없이 매장 당할,"
쪽.
"아 진짜!"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할 때 마다 배시시 웃으며 짧게 입을 맞춰 제 말을 끊어내는 그였다. 세번쯤 그러니 결국 제 인내심이 견뎌내지 못하곤 터져버렸다. 그의 어깨를 살짝 밀치며 짜증을 냈지만, 그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제 양 볼을 잡아올려 깊게 입 맞춰 오는 그 덕분에 말이다.
괜한 짜증에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건장한 성인 남자의 힘을 어찌 받아내겠는가. 내가 졌다, 싶은 마음에 피식 웃으며 그의 목에 팔을 둘러 입맞춤에 응했다.
"허리 많이 아파요?"
"엄청요. 어쩔거야. 응급이라도 터지면 진짜.."
상상도 하기 싫다는 듯 그를 살짝 노려보며 진저리를 쳤다. 다정한 눈빛으로 저를 마주하며 머리를 귀 뒤로 꽂아 넘겨주는 그에 장난스레 가슴팍을 쳤다. 윽,소리를 내며 아픈 척을 하는 그를 바라보며 웃으니 어, 웃었다. 하며 예쁜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였다.
"미안해요. 나중에 진료 끝나면 안마라도 해줄게."
"됐네요- 또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
농담으로 한 얘기인데 꽤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였다. 그런 그를 못말린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 배 쪽을 작은 주먹으로 살짝 치곤 비상계단을 빠져나갔다. 닫힌 철문 뒤로 그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
그와의 연애가 너무 달콤해서 푹 빠져 있었던건지, 밀린 업무가 수두룩하게 쌓여있었다. 논문 작성, 학술지 인터뷰, 빽빽한 예약 환자, 고난도 수술 등 듣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는 업무에 한숨을 내쉬며 청진기를 목에 걸쳤다.
컴퓨터를 부팅시키자 보이는 파란 화면이 채 꺼지기도 전에 울리는 콜이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다.
'교수님! 신아름 환자 어레스트요!'
어쩜 불길한 예감은 그렇게 잘 들어맞는지. 갓난아기일 때부터 병원에 살다시피한 아이의 어레스트 소식이었다. 어레스트가 처음이라 많이 당황한 듯한 인턴에게 지시를 내리며 급히 병동으로 향했다. 제 발 사이즈보다 조금 큰 병원용 신발이 걸려 발목이 접질러진 것도 눈치채지 못 할 정도로 뛰었다.
"바이탈 불안정합니다!"
"CPR 들어갈게요."
*CPR : 심폐소생술
호흡이며, 혈압이며 미친듯이 날뛰고있는 그래프가 병동 내 모든 사람들의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그 조그만 아이에게 마지막 숨을 불어넣는 도중 바이탈을 확인하려 시선을 돌린 찰나, 주변의 상황이 제 시야에 들어왔다.
주사액을 가지러 이리저리 바삐 뛰는 간호사 선생님들, 초조한 눈빛으로 요동치는 그래프를 바라보고 있는 인턴과 레지던트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꼭 모아 기도하는 환자의 부모. 그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지나갔다.
삐-
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소리가 병실에 울려퍼지고 말았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 저를 감싸와 비틀거리며 베드 위를 내려왔다.
"..신아름 환자, 2016년 12월 10일 오전 11시 20분 사망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몇번을 내려도 익숙해지지않는 사망선고였다. 신은 부모의 기도를 끝내 받아주지 않았고 난 그저 그걸 전하는 일 밖에 하지 못했다. 시원하게 울지도 못하는 부모를 뒤로 터덜터덜 걸어나왔다. 병실 앞 작은 의자에 털석 주저 앉아버렸다. 슬픔인지 죄책감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저를 집어삼키자 어린아이처럼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그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권교수 한 사람이었다.
그를 생각보다 많이 좋아하나보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상황에서조차 그가 떠오르는 제가 한심해보이기도 해 바람빠진 소리를 내며 벽에 등을 기댔다.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제가 우울한 감정에 잠깐 빠지려하니 또 울리는 콜이었다. 어디 의사가 감정 하나 못 추스려서 그러고 있냐고 소리치는 듯 했다. 계속해서 울리는 콜에 대충 정신을 차리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 김ㅇㅇ 교수입ㄴ,"
"교수님, TA환자 9명인데 유아 7명에, 성인 2명입니다. 유치원 통학차가 사고 난 것 같아요. 빨리 좀 와주세요!"
*TA:교통사고
하필 유치원 통학차라니. 상황도 뭐 같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응급실로 발을 옮겼다.
엘리베이터 마저 저를 도와주지않아 몇백개는 되는 계단으로 뛰어가 도착한 응급실의 상황은 아수라장 중 아수라장이었다.
응급실 내 가득한 피비린내, 베드 근처마다 이리저리 튄 피, 고통으로 인한 울음소리,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의료진들. 잠시 넋을 놓은 채 그 상황을 지켜보다 고개를 내저으며 정신을 차리곤 제일 심각해보이는 환자의 베드로 향했다.
"무슨 환자,악!"
베드 옆으로 다가서자마자 환자로 보이는 사람의 머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나와 제 얼굴에 다 튀어버렸다. 대충 가운소매로 시야를 가린 피를 닦아내고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자 제 머릿속은 백짓장으로 변해갔다. 의사 경력 내 이런 상황은 처음일 뿐더러 눈 안으로 들어간건지 뿌연 시야에 뇌가 제 기능을 해내지못했다. 새하얘진 제 머릿속에 아무런 오더도 내리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비켜요."
"..."
"김교수님, 제가 할테니까 비키세요."
"..."
"김교수 정신차리고 다른 환자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린애들 누워있는 거 안 보여?!"
언제 나타난건지 제 앞에서 호통을 치는 권교수에 겨우 나갔던 정신줄을 붙잡았다. 분명 방금 전까지 보고 싶었던 그가 나타났는데도 행복하지않았다. 의도치 않았겠지만 저를 밀치곤 베드를 수술실로 옮기는 그에 어린아이가 누워있는 베드로 자리를 옮겼다.
그 중엔 비교적 간단한 골절도, 그저 뼈에 살짝 금이 간 아이들도 있었지만 심각한 아이들도 있었다. 무슨 정신으로 그 아이들을 수술대 위에 올려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는 두명 성공, 한명 사망이었다. 도대체 오늘 저 삐소리를 몇번을 듣는건지 또 다시 제 숙명인 사망선고를 내리러 수술실 빠져나왔다.
마스크를 벗어내리며 그저 고개를 푹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제 행동에 눈치를 채신 건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뚝뚝 흘리시는 보호자 분들을 뒤로 한 채 수술모까지 벗어 쓰레기통으로 집어 던져버렸다.
"김교수님, 저랑 얘기 좀 합시다."
"..여기서 하세요."
일에 있어선 칼 같은 그라 보나마나 질타를 뱉을게 뻔했지만 그걸 받아낼 힘조차 없었다. 여기서 하라는 제 말은 가볍게 무시되었고 난 그저 그가 이끄는 대로 힘없이 끌려갔다.
늦은 밤이라 사람은 커녕 개미 한마리도 보이지 않은 병원 앞 정원이었다.
"거기서 그렇게 넋을 놓고 있으면 어떡합니까."
"그 환자 과거병력도 있어서 한번만 더 어레스트 왔으면 바로 익스파이어였습니다! 알아요?"
*익스파이어 : 사망
당연한 말이고 제 잘못인 것도 맞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어린아이 같은 투정이 자꾸만 비집고 올라와 어느새 제 감정을 다 뒤덮어버렸다.
"알아요. 아는데!"
"..."
"나 응급실 콜 받기 직전에 환자 사망선고 내리고 왔어요. 뭣도 모르던 인턴 때부터 보던 환자를!"
"환자 부모가 내 앞에서 그렇게 울면서 부탁하는 거 보고 내려왔다구요."
"그리고 전 NS도 아니라 그런 상황도 처음이였고,"
글썽거리던 눈물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곤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방금도 테이블 데스 하고 와서 그 절,망 또 느겼는데, 굳이 지금 찾아와서 이래야겠어요? 네?"
"진짜, 사망선고 내리자마자 생각,난게 권교순데, 내가 병신이지."
"..."
"볼 일 다 보셨으면 가볼게요."
울며 소리치니 뚝뚝 끊기는 목소리였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며 뒤를 돌아 밝은 빛을 내뿜고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저를 덮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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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이틀 남은 예비고삼인데 글 쓰고 있습니다 껄껄...헿 얘네 싸운다싸운다 급전개에 망삘이 폴폴 나지만 이게 제 한계인가봐요..쥬륵...
이번편은 계속 연애에만 집중해왔던 전 편들과 달리 의사센세들의 수고와 고생, 상처들을 다루고 싶었어요! 여주랑 순영이 각자 일에선 칼 같고 자존심 센 것도 나타내보고 싶었고...그리구 원래 커플은 싸우고 그러다 더 정들고 결혼하고 네 그러는겁니다예에 나도 싸울 남자친구 있으면 좋겠다...그럼 저는 이만 공부하러가겠습니당!!안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