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블락비/짇짘] 키스가 무서운 우지호 中-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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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일도 점심시간에 여기서 봐. 녀석은 그렇게 말하곤 옥상 밖으로 걸어 나갔다. 녀석이 문 밖으로 사라지고 나서도 허공을 향해 한숨만 내뱉던 나는 밥 먹자고 재촉하는 박경의 카톡 덕분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계단을 내려왔다. 계단을 내려오는 와중에도 수많은 걱정이 머릿속을 휙휙 떠다녀 계단이 꺼져라 한숨을 쉬어댔다. 나를 이상하게 보는 건 아닐까? 아니, 그것보단 그런 부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승낙한 녀석은 이상한 놈이 아닐까? 겉보기엔 아무 문제 없어보였는데……. 그것도 아닌 게 아닐까. 아오- 복잡해. 나는 뒤통수를 벅벅 긁어대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사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잡혀주지 않는다면? 그녀가 다시 돌아 와주지 않는다면? 나 참, 미치게 하네-!
그런 걱정거리는 잠시나마 경이와의 즐거운 런치타임으로 인해 잊을 수 있었다. 이 나이 때의 남자 고등학생이라면 점심시간은 급식이라는 1차적인 코스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의 급식메뉴였던 비빔밥을 깔끔하게 먹어치우곤, 곧장 별관 옆에 위치한 매점으로 향했다. 그러자 같이 밥을 먹던 김유권은 ‘너희는 그렇게 먹고 또 들어가냐?’ 라며 혀를 찼다. 왜, 이게 뭐가 어때서. 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김유권- 너 나처럼 잘 먹어야 키 큰다니까? 라고 조금은 밉살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김유권은 말했다. ‘그건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쟤는?’ 유권이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는 좋다고 매점으로 달려가는 박경이 있었다. 어- 음... 그건 나도 잘 몰라! 난 어깨를 한번 으쓱,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주곤 유권의 팔을 붙잡아 끌고 박경을 뒤쫓아 갔다.
매점에 도착하자 먼저 들어가 있던 박경은 벌써 매점아저씨한테 이것저것 주문을 하고 있었다. 저것 봐, 주문하나는 똑 부러지게 잘한다니까. 괜히 흐뭇한 표정으로 경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김유권이 뒤에서 초를 친다. ‘야, 돼지 된다! 돼지.’ 유권을 째려봐주려고 고개를 돌리는 찰나, 경이 그새 두 손 가득 간식거리를 들고 다가와서 테이블위에 내려놓는다. 와, 근데 이건 내가 봐도 좀 많다 싶다. 오늘따라 박경은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은 듯이 많이 먹는다.
“야, 이거 좀 많지 않냐?” “뭐가 많아- 다 먹을 수 있어 다 먹을 수 있다니까.” “돼지 된다?” “김유권은 시끄럽고요, 난 180을 향해 달려가야 하니까 안 먹을 거면 말아라~”
한창 키가 크는 시기라나 뭐라나. 180cm를 중얼대며 경은 열심히 입에 주전부리들을 쑤셔 넣었다. 옆에 조용히 앉아있던 김유권도 이윽고 의자를 끌고 다가와서 주섬주섬 과자봉지를 까기 시작했다. ‘야! 너도 먹을 거면서!’ 김유권을 보며 말했더니, 유권인 어깨를 으쓱이곤 ‘난 안 먹는다고 한적 없었다?’ 라며 웃었다.
. . .
녀석이 부탁을 승낙한 게 마치 그녀를 붙잡을 확신이라도 되는 냥 나는 걱정 없이 하루를 보냈다. 박경과, 김유권과 평소처럼 웃고 장난치며 쉬는 시간을 보냈다. 야자가 끝나면 버스정류장에서 그녀가 버스를 타고 집에 갈 때까지 기다려주던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지만, 마음속 한구석에선 곧 다시 그런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있는지 조금은 허전하긴 해도 의외로 크게 슬프지 않았다. 실연의 아픔으로 얼룩져 있을 것만 같았던 내 하루는, 권지용의 키스강습이라는 한줄기 빛을 만나 다시 회복세를 타는 듯 했다. 나는 큰 걱정 없이 침대에 누워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
후아후아- 나는 지금 강의를 들으려 여기 온 거야. 절대로 나쁜 짓을 하려는 게 아니라. 머릿속으로 계속 되뇌어보아도 긴장에 뻣뻣이 굳은 몸은 영 나아지질 않는다. 어젯밤에 잠들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걱정 없이 편하게 잘 잤는데, 막상 점심시간이 되어 녀석이 만나자던 옥상 문 앞에 서있으려니 괜히 또 긴장이 된다. 에이, 우지호 쫄 필요 없어! 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다 이내 용기를 내어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어제의 그 시간으로 돌아가 그 순간이 반복 재생되는 것처럼 밝은 햇살이 지호의 온 몸으로 부서졌다. 어두운 철문 뒤에서 한참을 서있다 갑자기 햇빛을 받은 탓에 빛이 익숙하지 않았던 지호는 있는 힘껏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어제 겪어본 상황에 어느 정도 예상을 한 덕분인지 조금은 더 수월하게 시야를 확보해 권지용을 찾을 수 있었다. 녀석도 반복 재생되는 필름 속 등장인물처럼 어제 있던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다. 여전히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가끔씩은 박자를 맞추는 듯 고개를 까딱이기도, 가로젓기도 하는 모습이 녀석의 뒤로 비치는 파란 가을하늘과 참 잘 어울린다고, 지호는 생각했다.
가까이 다가선 지호가 지용의 얼굴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자 지용은 찡긋거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어, 왔어?’ 지용은 말했다. 지호는 처음 만난 그때와 다르지 않게 어버버 거리며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런 어색한 말투에도 지용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키스, 키스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던 지용은 씨익- 웃으며 지호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을 갑작스레 응시하는 지용에 조금 놀란 지호는 물었다. ‘왜, 왜?’ 혹시나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싶어 지호는 오른손을 들어 괜한 턱 주변을 매만져보지만, 아무것도 묻어나올 리 없다. 애초에 지용은 뭔가가 묻었기 때문에 지호를 쳐다본 것이 아니었으니. 그저 지용의 시선은 지호의 오동통한 붉은 입술에 꽂혀있을 뿐이었다.
“키스라는게 뭐라고 생각해?” “음.....”
지호는 한참을 생각했다. 보통사람이라면 첫 사랑과 함께하는 두근거리는 스킨십의 첫 추억이라던지, 달콤하고 부드러운 솜사탕 같은 느낌이라던지. 좀 더 로맨틱한 무언가를 떠올리기 마련일 텐데, 지호에게 첫 키스란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은 불쾌한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권지용이 원할만한 대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사랑을 비로소 완전하게 만드는, 짜릿하고 황홀한 마법 같은 것.”
권지용은 대답했다. 평소의 지호였더라면 ‘이 자식, 가사 쓰네.’ 하고 웃으며 넘겨버렸을, 여자들이 좋아하는 유치찬란한 로맨스 소설에나 나올법한 대사였지만, 당장에야 이 키스라는 마법 같은 녀석에 홀린 지호에겐 지용의 말이 무척이나 달콤하고 멋지게만 들렸다. 그렇구나― 지호는 속으로 감탄사를 뱉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그 뒤로도 지용은 몇 마디를 더 덧붙였다. 지용이 내뱉는 말들을 온전히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지호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아, 사랑을 완전하게 한다는 그 키스가 없어서 그녀가 떠나간 거구나.’ 다시 한 번 그녀를 붙잡을 마음을 다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자, 그럼 실습을 해야지.” “.......응?”
실습을 해야 한다며 자리에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는 지용의 모습에 지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실, 실습?’ 지용은 당연하단 듯이 오히려 지호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키스는 실전인데, 이론만 알고 가서 어쩌자는 거야? 그렇게 말하니 딱히 반박할만한 말도 없었다. 지호는 그저 바닥만 쳐다보며 눈알을 도로록- 굴려댔다. 그러자 지용이 말한다. ‘우지호.’
갑작스레 불려진 자신의 이름에 고개를 들고 다시 동그란 눈으로 지용을 바라봤다. 제 이름은 또 어떻게 알았나 싶어 입을 떼려는데 지용은 지호의 가슴팍을 가리킨다. 아, 명찰……. 왠지 모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금은 몸에서 힘을 풀었는데, 또다시 말한다. ‘뭐해, 이리 안 오고?’ 지용과 지호의 거리는 약 1미터. 아무래도 이렇게 떨어져선 키스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며 지용은 지호에게 가까이오라 손짓했다. 지호는 지용의 말이 마치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라도 되는 냥, 리모컨에 컨트롤 되는 로봇처럼 서서히 지용에게로 다가갔다.
약 50센티가 안 되는 거리를 두고 선 두 사람. 자신의 사정권 안에 지호가 들어오자, 지용은 손을 뻗어 지호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방심하고 있던 지호는 지용의 순간적인 힘에 의해 저항하지 못하고 딸려갔다. 이제 두 사람의 거리는 채 20센티도 안되게 좁혀졌다. 갑작스레 좁혀진 거리에 지호는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다 이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엄마야- 엄마, 아빠, 아들은 게이가 아녜요. 이게 다 아들이 싱글인 채 뒷방 늙은이로 생을 마감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라고요. 지호는 눈을 감고 속으로 되뇌었다. 이건 그녀의 입술이다. 내가 좋아하는 생머리에 작고 하얗던, 눈웃음이 귀엽던……. 지호는 연신 속으로 그렇게 주문을 걸고 있는데 정작 입술에 느껴져야 할 감촉이 느껴지질 않는다. 뭔가 조금 이상하다싶어 한쪽 눈을 살짝 떠 상황을 확인하려는 그 순간, 느닷없이 지용의 입술이 지호에게로 부딪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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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ㅎㅎㅎ....똥글 배달왔습니다
시간날때마다 틈틈히 노트북을 켜서 쓰고있긴 한데....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ㅠ
이번에도 하편까지 도달하기엔 분량이 짧지만, 기다리시는 분들이 있을것 같아서 中-2로 먼저 써놓고 가려고 합니다
다음편이 아마 下편이 될것같아요. 제가 다음주에 시험이 있어서 조금 늦어질지도 모르겠네요....ㅠㅠ죄송해요
그래도 여러분들 생각해서 되도록 빨리 써서 올릴수 있도록 할게요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