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외과 VS 소아과 :: 18
By. 아리아
소아과 의료진 대부분이 모여있다고 할 수 있는 의국에서 볼뽀뽀를 시전하고 사라진 권교수 덕에 제 엉덩이는 의국 의자에 딱 붙어 떨어질 수 없었다. 남의 연애사가 뭐가 그리 궁금한지 그 어느 때보다 눈을 반짝이는 간호사 선생님들에 난 정확히 한시간 삼십분 째 질문 공세를 받아내고 있었다.
"언제부터 만나셨어요?"
"얼마 안 됐어요."
"누가 먼저 고백했어요?
"권교수ㄱ.."
"권교수님이요? 대박, 상남자셨네."
"아하하..상남자요..네, 뭐..."
교생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를 듣는 여고생들처럼 귀를 쫑긋 세우는 선생님들을 보고 있자니 괜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처리해야 할 일거리가 쌓여가는 의국이였지만 다들 싱글벙글, 입꼬리가 내려올 줄 몰랐다. 질문 공세 또한 끊길 줄 몰랐고.
지잉- 지잉-
"잠시만요."
무슨 열애설 난 톱스타 취조하듯 몰려오던 질문을 잠시 멈출 수 있게 해 준 전화였다. 너무 정신이 없던 탓에 발신자가 누구인지 확인조차 하지 못한 채 수신 버튼을 눌러버렸다.
"여보세요."
"네, 여본데요."
"...네? 무슨,"
능글맞은 목소리에 그제야 휴대폰을 귓가에서 떼어 내 발신자를 확인했고 의국은 제 휴대폰 화면을 힐끗 본 간호사 선생님들의 꺄악 하는 비명 소리로 꽉 채워지고 말았다. 입가에 손가락을 갖다 대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숨소리만이 의국을 맴돌았다.
"아니, 간지 얼마나 됐다고 또 전화를 해요."
"나 간지 두 시간 넘었는데?"
"..아, 일 안 하세요? NS는 그렇게 할 일이 없어요?"
"나 가고 계속 떠들었던 PED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퉁명스레 나간 제 말을 단번에 받아치는 그였다. 뭐라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애꿎은 입술을 깨물었다. 꽤 세게 깨물은건지 혀 끝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피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 나 입술 다 텄었지. 엎친데 덮친 격으로 까슬까슬 하던 각질이 쭉 찢어져 빨간 피는 더욱 퐁퐁 새어나왔다.
"입술 깨물지 말고,"
"..우리 의국에 CCTV 달아놨어요?"
데스크에 있던 휴지를 대충 뜯어 입술 위를 마구 문대던 손길이 제 뒤에서 절 확 끌어 안아오는 손길에 멈춰버렸다. 익숙한 향기였다. 권순영, 그의 다정한 모습이 싫진 않았지만 공개 연애란 걸 해본 적이 없는 제겐 익숙하지 않은 것 투성이었다.
"좀 놔요."
"입술이나 괴롭히지 마요."
허리를 감은 손을 떼내려 하면 할 수록 더욱 세게 안아오는 그에 결국 몸을 돌려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제 예상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한 얼굴에 제 볼은 옅은 분홍빛을 띄었다.
"입술 안 뜯을테니까 이거 놔요. 사람들 다 보잖아요!"
"보면 좀 어때요. 어차피 다 아는데."
"아 이 사람이 진ㅉ,"
쪽,
순식간이었다. 제 입술에서 동글동글 자리를 잡고 있던 핏방울이 그의 입술로 옮겨간 건. 빨간 피를 묻힌 채 씩 웃어보이는 그에게 무슨 화를 내겠는가. 못 말린다는 듯 푸스스 웃어버리자 제 머리를 헝클이곤 다시 짧게 입맞추는 그였다.
"밥 먹으러 가요."
사이사이 깍지를 꼭 낀 손이 기분좋게 흔들렸다. 아, 사람들이 이 맛에 연애하나보다.
점심 시간 때를 딱 맞춰 도착한 병원 식당은 수많은 의료진들로 가득했다. 괜히 눈치가 보여 슬그머니 손을 빼내려 했지만 귀신같이 알아채곤 더욱 꽉 잡아오는 그에 한 손으로 식판을 들고 오느라 꽤나 애를 먹었다.
그나저나 밥을 먹으려면 손을 놔야 되는데.
"권교수님."
"권교수님?"
아, 설마.
"..오빠?"
"..."
그는 권교수님이란 호칭엔 대답은 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나름대로 노력한 호칭인 오빠 소리엔 눈만 마주칠 뿐,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음식을 앞에 두곤 저만 빤히 쳐다보는 것이, 너 머릿 속에 있는 그 호칭으로 불러.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아 결국 눈을 질끈 감곤 질러버렸다.
"...그, 자기야."
"응, 왜요?"
오글거림에 몸서리 치고 있는 저를 턱을 괸 채 사랑스럽단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였다. 저 사람은 사람 놀려먹는 게 취민가 싶을 정도로 입꼬리가 귀에 걸려있었다.
"여기 사람도 너무 많고, 밥도 먹어야 되고.."
"응."
"그니까 손 좀 놔줘요. 내가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뭘 그렇게 꽉 붙잡고 있어요."
그는 제 말에 잠시 고민하는 듯 하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놓아줄 생각은 전혀 없다는 듯 단호해보이는 그의 표정에 한숨을 내쉬며 자유로운 반대쪽 손으로 밥을 한 숟갈 퍼 입 속으로 욱여넣었다. 한 손으로 밥을 먹는 게 익숙해질 쯤 곁눈질로 그의 식판을 보자 전과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다. 입 안에 있던 음식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들어 그를 보자 여전히 다정한 눈길을 보내고있었다. 이젠 좀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그의 시선만 마주하면 여전히 제 볼은 선홍빛이 되어버렸다.
"밥 안 먹어요?"
"괜찮아요."
"지금 아니면 밥 먹을 시간 없잖아요. 밥 제때 안 챙겨먹으면 몸 상해요."
"지금 나 걱정 해주는 거에요?"
"..아니, 네, 뭐."
"아 진짜, 귀여워 죽겠다."
아닌 척 어깨를 으쓱이며 시선을 돌리자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제 볼을 살짝 꼬집는 그였다.
"맞다, 오늘 우리 과에 외래 교수 한 명 온다는데 누군지 알아요? 유학파라던데."
"글쎄요. 난 NS라 모르겠는데."
"아, 그렇네-"
바보같이 헤-하며 웃어보였다. 어설픈 미소에도 같이 웃어보이는 그에 괜시리 기분이 좋아져 제육볶음을 집어 그의 입 앞으로 옮겨놓았다. 뭐냐는 듯 바라보기도 잠시 고개를 숙이며 웃다 앙,하고 받아먹는 그였다. 난 그런 그를 바라보다 오물거리는 그의 입술 주변에 묻은 빨간 양념을 제 엄지손가락으로 닦아내었다. 사소한 행동의 변화들이 제 심장 부근을 살살 간지럽혔다.
"아 맞아, 기억나요?"
"뭐가요?"
"내가 여기서 김교수 얼굴 잡고 피 닦아줬던 거요."
"아, 그거."
뒤늦게 자각한 일이지만 그 날은 그에게 처음 떨림이란 감정을 느꼈을 때였다. 에이 아니겠지, 하며 그 감정을 애써 덮었을 뿐이지. 갑작스레 회자 된 이야기에 괜히 치부를 들켜버린 것 같아 손 부채질을 시전했다. 이어 제가 뚫릴 듯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화제를 돌렸다.
"솔직히 그 때 권교수님 진짜 예의 없었던 거 알아요? 어느 외간 남자가 허락도 없이 다 큰 여자 볼을 막 잡고 입술까지 닦아주고 그럽니까- "
투덜투덜 이야기하는 제게 돌아온 건 초콜릿 같이 달달한 눈빛이었다. 턱을 괸 채로 비스듬히 저를 내려다 보는 그 시선이 싫진 않았지만 그보다 더 큰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ㅁ, 뭘 봐요."
"..."
"..."
시끌벅적한 식당이 그와 나를 제외하곤 모두 느리게 흘러갔다. 적막만이 우리를 감쌌고 알 수 없는 분위기에 제 목에선 고여있던 침이 목울대를 타고 넘어갔다.
"생각해보니까 그 때 부터였나봐요. 김교수 좋아한게."
"..."
"얼굴에 피 잔뜩 묻힌 이게 왜 갑자기 예뻐 보였지."
그가 아이처럼 웃으며 제 볼을 쭉 잡아 당겼다. 그의 손길은 따라 늘어난 볼살이 제 마음과 같았다. 줄어들 기세는 없이 점점 늘어나기만 하는 사랑이.
***
"끝나면 전화해요. 퇴근 같이 해."
"네네, 얼른 들어가세요. 수술 없으세요?"
제 머리를 잔뜩 헝클여 놓곤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우며 뒤돌아 가는 그였다. 몇 발자국 갔을까 금새 나 가기 싫어요- 하는 발걸음이 삐죽하곤 튀어나왔다. 입술을 쭉 내밀고 있을 그의 표정이 절로 연상 돼 제 얼굴엔 어느새 미소가 잔뜩 번져있었다. 이젠 그만 밀어내,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 덕분이었는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발걸음은 그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뭡니까."
뒤에서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곤 고개를 빼 그와 눈을 마주했다.
"일 열심히 하고 와요-"
고개를 끄덕이며 제 머리를 쓰다듬던 그가 곁눈질로 양옆을 살피더니 아주 짧은 입맞춤을 선사했다. 계절은 분명 영하권으로 온도가 떨어지는 한겨울인데 우리의 주위는 따스한 기운이 맴도는 것이, 아무래도 그는 봄과 같은 사람인가보다. 그치, 자기야?
그 와의 아쉬운 작별인사를 뒤로 하곤 노트북을 부팅시켰다. 파란 화면이 뜨자, 몇달 째 결론을 짓지 못하고 있는 논문 파일을 열어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다. 그러나 손가락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결론의 중심문장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번주까진 마무리 지어야 되는데.
뭐가 떠오르긴 커녕 점점 지끈거리기만 하는 머리에 신경이 점점 날카로워져 있을 참이었다.
달칵-
평소 같았으면 들지도 않았을 누가 전임교수실을 노크도 없이 막 들어와, 하는 생각이 비집고 나와 인상을 쓴 채로 시선을 문 쪽으로 옮겼다.
"누가 노크도 없이 막 들어,"
"오랜만이다?"
"..뭐야, 너?"
익숙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기억하긴 싫은 그런 익숙한 얼굴. 긴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모습이 제 기억 속의 여자와 겹처보였다.
"얘기 못 들었어? 나 외래 교수로 내일부터 출근하는데."
"아, 그게 너였어?"
"응, 일단은 세 달 정도만. 잘 해 보자."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져있는 손이 제 앞으로 불쑥 다가왔다. 내 시선은 그 손 한번, 그리고 그 손의 주인 한번. 그렇게 두번을 옮겨갔다. 그리고 제 입꼬리는 한 쪽만이 호선을 그렸다.
"미안. 난 너랑 잘 해 볼 마음 없어. 세 달이라며. 그냥 조용히 있다 가."
조소를 흘리며 차가운 말을 내뱉는 저를 바라보다 제 앞에 내밀었던 손을 둥글게 말아 작게 주먹을 쥐는 여자였다.
"그리고,"
"..."
"교수실 들어올 땐 노크하는 게 예의야. 모르는 것 같길래."
제 눈에 선히 보일 정도로 부들부들 떠는 몸을 툭 쳐주곤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자는 자신에게 무관심하다 못해 개무시를 하고있는 저를 보며 혼자 뭐라 중얼거리더니 문을 쾅 닿고 나갔다.
"문짝 부서지겠네."
깜빡거리는 마우스 커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예상 외의 인물 등장에 지끈거리던 머리는 더욱 아려왔고 결국 논문의 결론을 완성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아버렸다. 아, 보고싶다. 눈을 감으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그의 얼굴이었다. 가운 주머니 속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 익숙해진 번호를 누른 후 통화버튼을 눌렀다. 연결음이 몇 번 가지 않고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지끈거림이 조금씩 날아가는 듯 했다.
"NS 권순영입니다."
"권교수님."
"네."
"순영아."
"씁, 내가 김교수보다 나이 많은 거 다 압니다."
"헤- 오빠."
"응, 왜.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 있다. 있는데 그냥 지금은 그의 목소리면 충분할 것 같다.
"아니요.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요."
"뭐야, 그건."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그의 표정이 그려졌다.
"보고싶어요."
"환자 한 명만 진료보고 갈게요. 퇴근 같이 해야지."
"네."
뚝 끊겨버린 전화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이젠 내 감정에 솔직해져도 되겠지. 괜찮을거야. 그래도 돼. 아무도 네게 뭐라고 할 사람은 없어. 잠깐 보았던 여자의 얼굴이 자꾸만 제 머리 속을 맴돌았다. 무의식 중에 입술을 뜯었는지 겨우 굳었던 피가 다시금 솟았다.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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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를 치세요...늦게왔는데 이런 똥글을 투척하고 가다니하하하핳 죄송해요 여러분 사실 저 생기부 다 쓴거 방금 날려먹어서 제정신이 아니랍니다...
이번편은 정말 감동도 재미도 설렘도 없는 그런 똥글이지만 연계성을 위해서 있어야 할 글이었어요..용서해주실거죠?! 우리에겐 권교수님이라는 힐링이 있으니까 한번만 이해해주세요..핳
원래 사랑은 쉬운게 아니랍니당꺄아 저런 친구들도 나와줘야 더 애틋해지고 그런거에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 맞다 그리고 저 내일 생일입니당헤헿 그럼 안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