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나와.”
“아 왜요~”
“나와서 칠판에 있는 문제 풀어봐.”
3분단 맨 마지막 줄에 앉아있던 김동찬이 자리에서 일어난 건지 의자 끄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성큼 걸음을 내딛는 녀석은 짧게 탄식하며 내 옆을 지나갔다. 저 문제 꽤 복잡한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샤프를 돌렸다. 문득 시선을 둔 선생님은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김동찬을 보고 계셨다. 저렇게 못 미더운 표정을 하실 거면 애초부터 불러내지를 마시지. 작게 고개를 저었다. 김동찬은 날이 잔뜩 선 선생님의 눈빛도 개의치 않다는 듯 칠판에 숫자 몇 개를 끄적이더니 얼마 안 가 쥐고 있던 분필을 내려놓으며 손을 탈탈 털었다.
“모르겠는데요.”
“자랑이다 아주. 너 고삼이야 인마. 제발 공부 좀 해라 공부 좀.”
들어가. 들고 있던 책을 둘둘 말아 김동찬의 머리를 아프지 않게 내리친 선생님께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번에 과외가 준 문제집에 있던 문제랑 비슷한 유형이었다. 김동찬이 저걸 어떻게 푸냐며 콧방귀를 뀌는 짝꿍의 말을 못 들은 척 하며 연습장에 문제를 받아 적었다. 다들 칠판에 적힌 문제를 푸는 건지 조용한 교실에 잠시간 샤프 움직이는 소리만 울렸는데, 그 틈새로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렸다.
“민형아, 민형이가 풀어볼래?”
사각사각 공간을 메우던 소리가 일순 멈췄다. 고개를 들자 선생님께서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계시더라. 그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사방에서 내게 시선을 던진다. 쥐고 있던 샤프를 꾹 내려놓으며 고개를 작게 숙인 채 걸어나갔다. 아, 이런 상황 진짜 싫다.
2013년 가을. 이민형, 중학교 3학년.
“이민형!! 이민형이민형이민형!!!!”
교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같은 반 이형준의 목소리에 끼고 있던 이어폰 한 쪽을 빼며 고개를 돌렸다.
“우리 설마 국어 숙제 있냐?”
잠시 숨을 고르더니 곧 책상을 쾅 내리치며 묻는 녀석에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이형준은 으악, 따위의 소리를 내며 제 머리를 헝클인다. 딱 봐도 숙제 있는지도 몰랐구만. 분명 보여달라고 하기 위해 내게로 뛰어온 걸 거다. 이런 적이 한 두 번도 아니고. 거의 일상이 돼버린 패턴에 작게 혀를 찬 나는 책상 밑에 넣어 뒀던 국어 교과서를 꺼내기 위해 손을 휘적였다.
“오늘만 보여주라 제발. 나 이번에도 걸리면 봉사야.”
“알았어. 보여줄 테니까 진정 좀 해.”
“아, 역시 이민형. 지인짜 고맙다. 1분 안에 베끼고 줄게!”
그럼 그렇지. 나는 바람 빠진 웃음을 내보냈다. 우리 반 애들은 나 없으면 어떻게 살까 싶었다. 이형준은 내가 건넨 국어 교과서를 들고 헐레벌떡 제 자리로 뛰어갔다. 쉬는 시간이 5분쯤 남았으니 아슬아슬하게 베끼고 돌려줄 것 같다. 1분 안에 끝낼 양은 절대 아니거든. 뺐던 이어폰을 다시 끼고 볼륨을 높였다. 요즘 자주 듣는 에드 시런의 노래가 이어졌다. 턱을 괴며 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10분 남짓한 쉬는 시간이라도 축구를 하겠다는 열정이 가득한 애들이 곧 수업 시간이라며 공을 챙겨 운동장을 나오는게 보였다. 저 중에 몇 명도 교실에 오면 분명 외칠 거다. 뭐야, 우리 숙제 있어? 라고.
“다 자기 자리 앉아!”
그런데 뜻밖에도 축구를 끝낸 애들이 돌아오기도 전에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담임 선생님이었다. 열심히 숙제를 베끼고 있던 이형준이 행동을 멈추는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느릿하게 이어폰을 빼며 담임 선생님을 바라봤다. 곧 수업 시간인데도 들어오신 걸 보면 큰 일이 일어난 것 같다. 열이 잔뜩 오르신 모습이 까딱하면 오늘 단체로 혼나겠구나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선생님은 비어있는 몇몇 자리를 가리키시며 얘들은 누군데 아직도 교실에 없냐 소리치셨고, 아무것도 모른 채 축구공을 들고 교실로 돌아온 빈 자리의 주인들은 놀란 표정으로 쭈뼛쭈뼛 걸음을 옮겼다.
“죄송합니다.”
“빨리 앉아.”
“..”
“너네.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는 간 큰 놈들이 있더라?”
순간 교실이 술렁였다. 담배가 걸렸구나. 나는 작게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 반에 담배 피는 애들 많은데.. 교실을 둘러보자 책상 밑에서 손을 꼼지락 거리는 애들이 보였다. 그 중엔 이형준도 있었다. 슬쩍 눈치를 보던 녀석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헤집었다. 선생님은 소란스러운 교실을 잠재우기 위한 듯 들고 계시던 교과서로 칠판을 치셨다. 조용! 냉랭한 목소리까지 나오자, 교실엔 적막이 흘렀다.
“자, 지금부터 몰래 숨길 생각 하지 말고 가방 안에 있는 거 다 꺼낸다.”
나는 쥐고 있던 엠피쓰리를 아예 책상 안에 넣어놓고 의자에 걸어둔 가방을 책상 위로 올렸다. 조용하던 교실엔 가방 면을 스치는 소리가 자잘하게 울렸다. 반에 있는 모든 애들이 느릿느릿 제 가방에 있는 걸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나 역시 가방 안 소지품을 꺼내기 위해 지퍼를 잡는데, 그 순간 선생님께서 민형아, 하고 내 이름을 부르셨다.
“네?”
“민형이는 됐어. 민형이는 선생님이 믿어.”
그 말을 끝으로 교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네? 어.. 선생님.., 당황한 나는 작게 입술 새를 벌린 채 말을 얼버무렸고, 수십 개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쥐고 있던 지퍼를 더욱 꾹 쥐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만 굴리다, 그래도.. 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지퍼를 열려고 하자 또 나를 말리신다. 괜찮다니까. 민형이는 교무실 가서 선생님 다이어리 좀 가져와 주라. 선생님 자리 알지? 물론 가방을 열어도 걸릴 건 없었지만, 혼자 빠져나가려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
“..”
“뭐해 민형아. 얼른.”
하지만 내가 일어날 때 까지 눈치를 주시는 선생님 때문에 끝내 나는 고개를 끄덕여야 했고, 무거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교실을 나갔다. 교실 문을 닫자마자 크게 숨을 내쉬었다. 등 뒤로는 빨리 소지품을 꺼내라는 호통이 또 한번 귓전을 때렸다. 눈을 질끔 감았다. 다른 애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얼굴을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인 나는 일단 빨리 다이어리를 갖고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빨리 돌아가야 선생님 고함이라도 같이 들을 수 있으니까.
“어, 민형이가 교무실에 왜 왔어? 지금 3학년 다 가방 검사 할 텐데.”
“아.. 선생님이 저는 다이어리 가져다 달라고 하셔서..”
교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반겨준 사람은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우리 반에서 수업을 하고 계셔야 하는 국어 선생님이었다. 책상 위 작은 화분에 물을 주던 선생님은 다이어리를 가지러 왔다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곧 내게로 시선을 두셨다. 아~ 민형이는 그래, 검사할 필요도 없겠구나. 입꼬리를 올리며 하시는 말씀에 담임 선생님 책상 쪽으로 향하던 걸음이 일순 멈췄다.
“민형이 너처럼 공부만 열심히 하는 착한 애가 어떻게 담배를 손에 대겠니? 허구한 날 놀러 다니는 애들이나 못된 거 손에 쥐는 거지.”
“..네?”
“계속 공부 열심히 하라구. 알아서 잘하니까 선생님들이 다 너 좋아하는 거야.”
내가 가방 검사를 면한게 당연하다는 듯 말씀하신다. 담임 선생님의 믿는다는 말에 저 모든 말들이 내포됐던 걸까. 순간 목구멍에 열이 올랐다.
“..얼른 가야해서..안녕히 계세요.”
책상 끄트머리에 놓여진 다이어리를 낚아채듯 가져온 후 꾸벅 인사를 했다. 빨리 교무실을 나가야 했다. 안 그러면 역겨운 말들이 계속 쏟아질지도 모른다. 나는 열심히 공부 하라는 국어 선생님의 말씀에 순종적인 답도 내놓지 않고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
뜨겁게 목구멍을 옥죄던 무언가가 터졌나왔다. 나는 문득 교실로 걸어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차별 없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선생님들이 차별을 한다. 말씀처럼 나는 열심히 공부한 것밖에 없는데, 내 노력을 이용해 다른 애들을 낮춰버린다. 마음이 쿵, 추락했다. 내가 제일 나쁜 애가 된 것 같았다.
달렸다. 번듯한 다이어리를 꽉 쥔 채로 복도를 달려 단숨에 교실까지 향했다. 그렇게 겹친 숨을 고르며 조심히 뒷문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낡은 나무 판자가 끼익 소리를 내며 틈을 보였다. 하지만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오히려 성난 말소리만 크게 들릴 뿐.
“화장실에서 담배 핀 새끼 누구냐? 개빡쳐 진짜.”
“근데 솔직히 아까 담임이 이민형 내보낼때 진짜 어이없지 않았냐?”
“그니까 시발 담임 이민형만 좋아해.”
“이민형이 공부 잘하니까 그러지 뭐.”
“걔가 공부만 잘하냐? 집도 잘 사니까 그런 거지. 졸라 재수 없어.”
“누가 아냐. 이민형 그 새끼가 뒤에서 호박씨 깔지. 그런 애들이 뒤에서 은근 더 해. 담배 피고 술 마시고.”
“야, 내가 진짜 서러워서 성적 올린다. 이민형한테 노트 보여달라 그래야지 시발.”
“코올~ 그 새끼 호구라 분명 다 퍼준다. 숙제도 맨날 보여주잖아.”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던 입술이 나도 모르게 닫혔다. 묵직한 무언가로 머리를 맞은 듯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어갔다. 담임 선생님은 어디 가셨는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나를 욕하는 소리만 계속 문틈을 새어 나왔다. 국어 선생님이 했던 말들이 반 아이들의 입에서도 오간다. 담임 선생님이 나만 봐주신 이유는 내가 성적이 좋고, 집이 잘살아서라고. 모두 그게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코 끝에 열이 오르는 걸 꾹 참고 아무것도 못 들은 척 교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당황한 듯 모두 나를 쳐다본다.
“..어어, 왔냐 이민형?”
“선생..님은?”
“담임? 옆 반. 아 망했어!!”
“야 민형아. 국어 숙제 있다며. 나중에 나 좀 보여주라.”
“지금 그게 문제냐 미친놈아?”
“난 안 걸렸어~”
다이어리를 쥔 손이 떨렸다. 나를 죽일 듯이 욕하던 목소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평소와 비슷한 말투로 나를 대한다. 그 모습에 헛웃음을 뱉을 뻔했다. 뻔뻔하게 숙제를 보여달라며 웃어 보이는 얼굴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감추며 교실 앞쪽으로 걸어가 교탁 위에 다이어리를 올려놓을 뿐이었다.
근데 이거 하나는 말하고 싶었다.
내가 그동안 아무 조건 없이 숙제를 내준 이유는 내가 호구라서가 아니라,
그냥 너희가 친구라서.
그래서 그랬다고.
옆 반에서 돌아오신 선생님께서는 내가 가져온 다이어리에 총 여섯 명의 이름을 적으셨다. 모두 가방 안에서 담배가 나온 애들의 이름이었다. 종례 시간에는 또 한 번 걸리면 반성문으로 안 끝날 줄 알라며 으름장을 놓으셨고, 이름이 적힌 녀석들은 하교는 커녕 곧장 교무실로 끌려갔다. 나는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 천천히 가방을 챙겼다. 아까는 열지도 못했던 가방 앞주머니를 열어 책상 안에 대충 넣어둔 엠피쓰리를 담았다. 또, 주말 동안 복습을 계획했던 수학 교과서를 챙기려 책상 안으로 손을 뻗으려다 곧 동작을 멈췄다. 이번 주에 복습하지 않으면 스케줄이 꼬이는 걸 뻔히 알면서도 수학 교과서를 책상 안에 그대로 둔 채 가방과 함께 교실을 나섰다.
과속방지턱을 넘은 버스가 크게 덜컹거렸다. 나는 그 움직임에 따라 같이 몸을 들썩이며 창밖을 바라봤다. 작게 열린 창문 틈새로 가을 바람이 싸늘하게 불었다. 바람이 오간 시야 끝엔 익숙한 학원가가 늘어서 있었다. 수학, 국어, 영어, 논술.. 가방을 꾹 끌어안고 있던 오른쪽 손을 창가에 올려 턱을 괴었다. 다 내가 죽어라 하던 것들인데, 그게 그렇게 허무할 수 없었다.
“..”
버스 안엔 사람이 많이 없었다. 주변이 조용하자 아까 몰래 들었던 반 아이들의 대화가 다시금 귓가에 맴돌았다.
걔가 공부만 잘하냐? 집도 잘 사니까 그런 거지. 졸라 재수 없어.
누가 아냐. 이민형 그 새끼가 뒤에서 호박씨 깔지. 그런 애들이 뒤에서 은근 더 해. 담배 피고 술 마시고.
솔직히, 나가란다고 진짜 나가냐며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래서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괜찮다고 해줄 줄 알았다. 입장 바꿔서 생각하면 충분히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친구니까, 서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렇게 신명 나게 욕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그동안 보여준 숙제와 설명해준 문제들이 아까울 정도로 속이 상했다. 해달라는 거 다해줬더니 호구 소리나 듣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번 정류소는 해찬 사거리입니다.
그런 내 행동을 중재시키듯 벨소리와 함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나는 열을 내던 걸 잠시 멈춘 후 시야를 돌렸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역에서 승차하려는지 길게 늘어선 대기줄이 눈에 들어왔다. 앞쪽에선 교통카드 알림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고, 나는 계속 창 밖을 바라봤다. 그러던 중 문득 정류소 옆에 주차를 하는 어딘가 익숙한 승용차 한 대가 시야에 잡혔다. 곧 조수석에서 한 젊은 여자가 내렸고, 뒤를 이어 운전석에서는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렸다.
그러니까 내 말은, 젊은 여자와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아빠..?”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몸을 무겁게 짓누르던 공기의 흐름이 멈춘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창밖의 두 사람은 다정하게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정신을 차리며 출발하려는 버스를 멈춰 세운 후 허겁지겁 내렸다. 정류소에 발을 딛자마자 옆에 세워진 승용차부터 확인했다. 아닐 거야, 착각한 걸 거야. 애써 부정하며 차가 세워진 쪽으로 몇 걸음 걸어간 날 무너뜨린 건 차 앞머리에 붙어있던 번호판이었다.
아빠 차가 맞았다.
“여보세요?”
-응 민형아~ 왜 이렇게 늦어~
“..”
-민형아?
“아.. 엄마.”
-응?
“죄송해요. 저 밖에서 밥 먹고 가려구요..”
옅게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까딱하면 핸드폰을 떨어뜨릴 것 같아 세게 쥐었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자 목울대에 열이 올랐다. 입 안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엄마.”
-응, 아들.
“..아빠는요?”
-아빠? 오늘 좀 늦으신다고 하셨어. 왜?
내가 지금 어디를 향해 걸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아빠와 등을 지고 걸을 뿐이었다. 초저녁이 되자 쌀쌀해진 바람이 머리를 헤집는다. 나는 느릿하게 걸음을 내딛으며 엄마의 말에 바람 빠진 웃음을 내보냈다. 엄마한테 늦으신다고 하셨구나. 항상 그러셨던 것처럼.
“아니요, 그냥요. 일찍 들어갈게요.”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또 밝게 대답해주셨다. 속이 쓰렸다.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교복 주머니에 넣으며 고개를 들었다. 어둠이 얕게 내려앉은 하늘에 반쪽짜리 달이 희미하게 떠 있다. 그 희미한 달을 보며 걸었다. 이따금씩 교차로 걷던 사람과 부딪히면, 죄송하다고 사과한 후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계속 쫓아오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실없는 웃음을 흘리기도 했다.
어느샌가 조용해진 주위에 걸음을 멈췄다. 지금 서 있는 이곳은 자동차 클락션 소리도, 사람들의 말소리도, 상가의 음악 소리도 없이 고요했다. 숨을 내쉬었다. 그 숨은 곧 무겁게 가라앉아 잔잔하던 공기를 흩트렸다. 나는 비틀어진 목소리를 작게 내뱉었다. 작게, 달님. 불렀다.
“..제가 믿었던 사람들이 오늘 저를 버렸어요.”
오늘이 날이라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 눈 안에 줄곧 담던 달을 삼켰다. 아빠가 바람을 피운다고 엄마한테 말을 해야 하나 고민 했지만 곧 생각을 접었다. 공부고 뭐고 다 관두려던 생각도 접었다. 모두가 사라진 내 세상에 엄마라도 있어야 했다. 평생을 나와 아빠만 보고 산 엄마이기 때문에 나까지 못된 아들이 되면 엄마는 무너질지도 모른다. 주먹을 꾹 말아쥐며 고개를 떨궜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그곳엔 작고 허름한 슈퍼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낡은 철문을 옆으로 밀어 슈퍼 안으로 들어갔다. 슈퍼 안에서 티비를 보고 계시던 주인 할머니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셨다. 어서 와요. 그에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이곤 할머니가 계신 계산대로 곧장 걸어갔다.
“담배.. 주세요. 제일 독한 담배요.”
눈을 질끔 감고 말했다. 공부를 놓지 못한다면 애들이 말한 호박씨라도 까고 싶었다. 내가 마냥 깨끗하지 않게. 학생이 어디서 담배냐며 혼을 내시면 그대로 혼날 작정이었다. 하지만 주인 할머니는 아무런 트집 없이 내 손에 담배를 쥐어주셨다. 2500원. 라이터는 그냥 하나 가져가. 할머니의 말씀에 감고있던 눈을 뜨고 바지 주머니에서 허둥지둥 돈을 꺼내야 했다. 담배를 샀다. 심지어 교복을 입고 오늘 낮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했을 행동이었다. 언젠가 반 애들이 말하던 뚫리는 가게 중 하나가 여긴가 싶었다. 나는 계산대 옆에 진열되있던 라이터 하나와 담배곽을 손에 쥐고 슈퍼를 나왔다. 순간 바람이 휑 하고 불었다.
슈퍼에서 조금 더 걸어가다 담배의 비닐포장을 뜯었다. 담배곽을 열자 알싸한 담배향이 코를 찌른다. 여러개가 나열된 담배 중 하나를 꺼내 손에 쥐었다. 서툴게 불을 붙히자 담배 끝부분이 하얀 연기를 내며 타 들어간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두 손가락 사이에 어설프게 담배를 끼우고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이걸 피우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져? 심장이 크게 요동쳐 숨이 가빠졌다. 시야를 내려 입으로 향하는 담배를 바라봤다. 그 길고 하얀 막대가 끝끝내 입술 새를 비집고 들어와 가쁜 숨과 함께 들이마셨을 때, 매운 연기가 목에 걸렸다. 목 안이 따가웠다. 나는 켁켁거리며 담배를 곧바로 떼어냈다.
“..흐으..”
담배 연기가 고인 목울대가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여전히 담배를 끼우고있는 손가락이 작게 떨렸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픈 목을 감싸쥐었다. 그리고 계속 울었다. 엉엉 울었다. 꾹꾹 참은만큼 소리내 울었다. 교실에서 참고, 버스에서 참고, 달을 보며 참았던 모든 순간을 토해냈다. 힘이 빠진 손가락 새로 담배가 떨어졌다.
얼마나 더러운 세상에 살고있었는지 이제야 알아버렸다.
2016년 여름. 이민형, 고등학교 3학년.
툭. 쉼 없이 샤프를 끄적이던 문제집 위로 붉은 피가 떨어졌다. 미간을 좁히며 손가락으로 코를 닦아내자 역시 피가 묻어난다. 고개를 천천히 뒤로 젖혔다. 나는 샤프를 쥔 채로 열심히 문제를 풀고있는 짝꿍을 조용히 불렀다.
“혹시 휴지 있어?”
“헐 너 코피 나?”
잠깐만. 가방에 있을 거야. 코 주변에 피가 묻어있는 건지 내 얼굴에 눈을 크게 뜨며 가방을 뒤지던 짝꿍은 곧 내게 휴지 몇 장을 내밀었다. 나는 고맙다고 짧게 답한 후 건네받은 휴지로 코를 감쌌다. 휴지가 축축히 젖어가는 게 느껴졌다. 요새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하다보니 자주 코피가 나는 것 같다. 저번에 과외 할 때도….
“아..”
그때 고개 숙이라고 했었는데, 과외가. 문득 떠오른 기억에 쥐고있던 샤프를 내려놓았다. 나는 젖히고 있던 고개를 느릿하게 내렸다. 고개를 위로 했을 때 시야를 가득 채우던 형광등 불빛이 사라지자 눈 앞이 더욱 어두워진 느낌이었다. 어쩐지 선생님이 생각났다. 아니 사실, 문제집 위로 코피가 떨어졌을 때부터 그랬다. 그날 내 얼굴을 감싸쥐던 손길과 날 바라보던 눈빛은 짜증날 정도로 잊혀지지 않는다.
과외 도중 코피를 쏟은 건 꽤나 민망했었다. 휴지로 손수 코를 지혈해준 선생님은 굉장히, 울상이었고. 나는 홀린 듯 그 얼굴을 바라봤었다. 피를 닦아주느라 정신이 없어서 몰랐을 거다. 내 볼을 감싸쥐던 손이 따뜻했다. 속상하게 왜 코피를 흘리냐며 말하는 목소리가 낯설었다. 처음으로 내게 성을 내듯 말한 것이었다. 그에 내가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얼마안가 코피가 멈 춘 후에는 그런 한마디를 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했으니까 우리 오분만 쉬자. 모두가 내게 계속 달리길 원했는데, 열심히 했으니 쉬자고 했다. 일순 눈언저리가 시렸다. 지금 떠올려도 그렇다. 감정선의 끝을 건드린듯 뭔지 모를 감정이 목 끝까지 차올라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자 선생님도 아무 말 없이 내게 시선을 뒀었다. 마주한 눈동자가 작게 요동치는게 보였다. 혼을 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걱정만 하는 사람. 처음 느낀대로 참 멍청하고 순진한 사람.
“왜 혼 안내요?”
“응..?”
“아까 봤잖아요. 나 담배 들고 있는거.”
“..”
“...”
“너..”
“..”
“굳이 내가 혼내지 않아도 충분히 힘든 것 같아서..”
그런데도 나를 꿰뚫는 사람. 수학 과외. 김여주.
“코에 그건 뭐냐? 너 코피 났어?”
“아 맞다.”
한참을 지혈해도 멈추지 않던 코피 탓에 결국 휴지를 작게 접어 코에 반쯤 걸쳐뒀었는데, 빼는 걸 깜빡했다. 교실 앞에서 만난 옆 반 이동혁은 뒤늦게 휴지를 빼는 내 모습을 보며 쯧, 하고 혀를 찼다. 그러게, 공부 좀 쉬엄쉬엄 하라니까. 만날 때마다 하는 핀잔도 잊지 않고 해준다. 나는 평소처럼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렸다.
야자가 끝난 후 늦은 밤에 하는 하교지만 거리에 나열된 상가 불빛에 길이 훤했다. 집 방향이 같은 이동혁과 그 환한 길을 걸어갔다. 이동혁은 저보다 느린 내 걸음에 맞춰 걸었다. 학교를 나오면서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입을 움직이던 이동혁이 세모눈을 하고 나를 바라본다. 야, 듣고있어? 형님이 말씀 하잖아! 내가 아무 반응이 없어 삐친 건지 입술을 툭 내민다.
“이동혁.”
“왜.”
“나 담배 들켰다.”
뭐?! 누구한테!!!! 언제 토라졌냐는 듯 눈을 크게 뜨며 걸음을 멈춘다.
“과외한테.”
“미친. 과외쌤이 뭐라시던데? 설마.. 너네 이모한테 말씀 드렸어?”
“아니.”
“그럼?!”
“..비밀로 해주신대.”
덩달아 가던 길을 멈추고 이동혁의 질문에 짧은 답을 해준 후 다시 걸었다. 옆에서는 계속 대박을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던 중 녀석은 어쩌다 들켰냐고 물었지만, 그에 대한 답은 하지 않았다. 또 그 날이 떠오르면 곤란했다. 여러모로.
“야.. 그 쌤 천사 아니냐? 나 연락처 좀 알려달라니까?”
“그 소리 그만 좀 해라.”
“아 왜! 나도 천사쌤한테 과외 받을래! 알려줘!”
“조용히 해. 그리고 천사가 아니라 이상한 거거든.”
내가 생각해도 못됐다 싶을 정도로 냉랭하게 굴었는데 단 한 번도 내 행실에 화를 낸 적이 없었다. 확김에 그만 두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더 열심히 수업을 준비했다. 밤 늦게 문제 설명을 요구하면 5분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조금만 기다려봐 민형아 금방 알려줄게, 하고.
담배를 피우던 중 눈이 마주쳤을 때,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보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그때 탄식했었다. 엄마 귀로 들어가는 건 시간 문제거니 싶었다. 내가 혼나는 건 상관 없었지만 엄마가 알게 되는 건 얘기가 달라졌다. 아빠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엄마한테 조금의 실망도 안겨주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담배를 들킨다면 그것도 끝이었으니까. 하지만 선생님은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는 듯이 나를 혼내지도, 추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같이 가자며 내 뒤를 쫓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업을 진행했다. 이상했다.
이상하게 자꾸 생각이 났다.
이상하게 연락처를 넘겨주기 싫었고,
이상하게 빨리 토요일이 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샤프를 돌렸다. 몇 십분째 잡고 있는데도 풀지 못한 문제를 계속 주시했다. 아주 제대로 꼬아놨네. 입으로 위 쪽을 향해 바람을 불자, 앞머리가 한 번 들렸다 내려앉았다. 그래도 열이 삼켜지지 않아 신경질 적으로 샤프를 내려놓은 후 책상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 쪽에 넣어놓은 담배를 꺼내기 위해서였다. 엄마는 일찍 주무신다며 방에 들어가셨고, 아빠는 야근인지 여잔지 모르겠지만 늦게 오신다고 했으니 한 개비만 들고 나가 필 생각이었다. 처음 피웠을 때 그렇게 매워한 담배는 이제 스트레스를 받을 때 항상 잡는 물건이 됐다. 그런데 책상을 열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아까 과외 때 받은 사탕이었다. 익숙하게 담배 쪽으로 뻗던 손을 멈추고, 포장지로 단단히 포장된 사탕통을 꺼냈다.
“..이런 건 진짜 왜 사온 거야.”
사탕 안 좋아한다니까 기어코. 고개를 절레 저으며 과외가 직접 했다고 엄청 생색을 냈던 포장을 뜯었다. 모습을 드러낸 사탕통 위에는 작은 카드가 올려져있었다. 설마 손편지까지 쓴 거야? 나는 미간을 좁히며 카드부터 열어봤다. 글씨가 조그만게 주인 꼭 닮았네.
[ 민형아, 스트레스 많이 받지? 나도 2년 전에 고3이었어서 너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아. 이 사탕,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먹어. 달달한게 최고야! 한달동안 부족한 대학생 따라오느라 수고 많았어. 앞으로도 나 잘 부탁해.. 내가 잘 할게…ㅠㅠ 이민형 화이팅! ]
힘들 때 먹으라고 준 거 맞나. 카드 밑으로 시선을 옮기니 막대사탕들이 알록달록하게 사탕통을 메우고 있었다. 딱 보니 담배 대신 입에 물라고 준 거구만. 말은 툴툴 거렸지만 어쩐지 입꼬리는 자꾸 올라가려 했다. 나는 애써 참으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러던 중 썻다가 지운 건지 카드 맨 밑부분에 연필 자국이 미세하게 남아있는 게 시야에 잡혔다. 눈의 폭을 좁히며 카드를 가까이 했다.
민형아, 이제 한달 지났는데 조오오금만 살갑게 대해줄 수 없겠..지..? 그래. 가만히 있을게.
“..아니 무슨 카드를 말하듯이 써.”
결국 나는 픽, 하고 웃어버렸다. 평소 말투가 어딘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실제로 저 말을 한다면 분명 눈썹과 눈꼬리를 밑으로 내릴 거다. 나랑은 시선을 드문드문 마주할 거고. 손은 테이블 밑에서 꼼지락거리겠지. 예상만 했는데도 눈 앞에 그 모습이 아른 거리는 기분에 나는 사탕통에서 막대사탕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머리를 흔들었다. 생각나지 마라. 생각나지 마라. 생각나지 마라.
막대사탕을 우득우득 씹으며 끝끝내 문제를 풀어냈다. 답지에 적힌 답을 확인한 후에야 나는 기지개를 피며 샤프를 놓을 수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려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그러던 중 책상 끝에 놔뒀던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손을 뻗어 가져온 후 화면을 켰다. 이동혁한테서 메세지 몇 개가 와있길래 대충 대답해준 후 의미없는 터치를 이어갔다. 그러다 실수로 선생님과의 채팅창을 눌러버렸다.
“아.”
어려운 문제 풀어내느라 손가락이 미쳤네. 화면을 가득 채운 메세지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대화창을 위로 올리니 문제를 물어보고 설명해주는 대화밖에 오가지 않은 걸 알 수 있었다. 왜 살갑게 대해달라는 말을 썼다가 지웠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내가 읽고 답장을 하지 않은 메세지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쩝 입맛을 다시며 턱을 긁적였다. 그렇게 몇 번 위아래로 대화창을 훑어보니 문득 메세지를 보내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씹지 않고 끝까지 답장해주겠다 마음을 먹었다. 뭐 하는지 조금 궁금하기도 하고..
때문에 나는 방금 전 풀어낸 문제를 모르는 척 질문했다.
역시 5분도 안되서 답장이 왔고, 나는 가만히 풀이 과정을 기다렸다. 대학생이면 과제도 많을텐데 어떻게 매번 빨리 확인 할 수 있지. 그런 생각을 할 때 쯤, 민형아 이 문제는 먼저…, 로 시작하는 꽤 긴 풀이 과정이 화면에 올라왔다.
“금방 풀었네.. 잘하긴 잘해.”
난 몇 십분을 잡고 늘어졌던 문젠데 10분도 안되서 풀어내는 걸 보니 명문대생인 걸 또 한번 체감했다. 그 명문대생이 말했던 것처럼 열심히 했으니 조금만 쉬자는 생각으로 계속 핸드폰 화면만 쳐다봤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다음 설명이 안 오는 거다. 괜히 채팅방을 한 번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그런데도 메세지는 오지 않았다. 혹시 연결된 신호가 좋지 않은 건가 싶어 데이터를 켜봤지만 채팅방 상황은 같았다. 메세지가 안 온다. 아니, 끊겼다.
“뭐야..”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당황한 건 내 쪽이었다. 끝까지 답장 해주려고 했는데. 사탕도 맛있다고 말하려 했는데. 핸드폰을 책상 위에 세운 후 턱을 괸 채 계속 쳐다봤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설명을 마친 후 나한테 ‘또 늦게까지 공부할 거야?ㅜㅜ’ 나 ‘민형아 열심히 해~’ 등의 메세지가 와야 하는데 왜 설명도 끝내지 않고 사라진 걸까. 괜히 걱정이 들었다. 불현듯 별에별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괴한? 납치? 아니면 막 갑자기 쓰러진 건가? 재수없는 일들이 머릿속을 채워가자 나는 다시 핸드폰을 쥐었다.
안 읽어. 1도 안 없어져.
“아, 나 영어도 해야되는데.”
설마 안 좋은 일이겠나 싶어 핸드폰을 끌까 했지만, 생각이 바로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못했다. 대신 입력창에 ‘무슨 일 있어요?’ 이 세 마디를 썼다 지웠다 반복하며 불안한 마음을 접기 위해 애 쓸 뿐이었다. 끝내는 보내지 못하고 화면을 껐다. 그래도 영어책은 펴지 못했다. 핸드폰을 책상에 쿵 쿵 쿵 내리다 문득 고개를 돌려 시계를 확인했다. 밤 열한시가 넘어 있었다.
눈썹언저리를 만지작 거리다 영어 지문을 꺼냈다. 중요한 거라 오늘 꼭 끝내야되서 꺼내긴 꺼냈는데, 도무지 읽혀지지가 않았다. 슬쩍 시선을 옮긴 핸드폰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샤프를 빙빙 돌리고 읽었던 지문을 읽고 또 읽는데도 연락은 없었다. 그렇게 대략 30분 쯤 지났을까, 핸드폰 화면이 환해지며 새로운 메세지가 왔다는 걸 알렸다. 샤프를 내려놓고 바로 메세지를 확인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수학과외, 김여주의 답장이었다.
메세지를 확인 한 후 이를 바득 갈았다. 괴한도 납치도 기절도 아닌 외출이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마음 놓고 영어 지문 읽는 건데. 벌써 끝냈겠다. 깊게 한숨을 내쉬며 한 자 한 자 타자를 쳤다.
[ 괜찮아요 ]
괜찮기는. 원래 같으면 당장 짜르는 건데, 딱 한 번 참아주기로 했다. 선생님도 내 담배 눈 감아 주셨으니까. 정말 무슨 일 난 것 보다 백배 낫기도 하고.
아, 이제 진짜 영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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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화 댓글에 암호닉을 신청하신 분이 몇 분 계시더라구요ㅜㅜ 지금은 암호닉 안 받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