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이성이 되버린 김여주는 매순간 날 크게 덮쳐왔다. 제 눈빛, 손짓, 행동, 말, 모든 것으로 날 무력하게 만들었다. 상대는 아무 뜻 없이 던지는 것들인데 혼자 녹아내려 비틀거렸다. 정말이지 파도가 아닐 수 없었다. 눈이 마주치면 속이 울렁이고, 팔목을 잡아 이끄는 손길에 호흡이 멈춘다. 한번은 날 잡은 김여주의 손을 뿌리쳤는데, 그런 날 놀란듯 바라보며 왜 그러냐 묻는 녀석에게 잠시간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잔뜩 달아오른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얼버무릴 뿐이었다. 정말 한심했다.
그 커다란 감정을 숨기는 건 정말 어려웠다. 애초부터 서툰 짝사랑이라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매일을 붙어다니는 나와 김여주를 장난스런 눈초리로 바라보던 누군가는 몇번이고 내게 물었다. 너 김여주랑 진짜 친구야? 그럴 때면 나는 발끝부터 저려오는 아지랑이를 꾹 누르며 애써 답했다. 당연한 걸 묻고 그래. 어색하게 끌어올린 입꼬리가 혹 티가 날까 고개를 숙였다. 일찍이 내 감정을 알아차린 정수정과 김동영은 그런 나를 보며 웃음을 꾹 참곤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얄미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내 감정을 김여주에게 전할 생각은 없었다. 용기도 없고, 희망도 없었다. 지극히 친구인 내가 저를 좋아하는 걸 알게되면 분명 나를 피해다닐 거다. 아무리 속이 울렁여도, 호흡이 멈춰도, 대답을 하지 못해도 그건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을 내 옆에 둬야했다.
그렇게 나와 김여주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마음은 조금 더 익었고,
김여주는 더더욱. 예뻤다.
2012년 봄. 정재현, 고등학교 1학년.
“야 김여주.”
“뭐야, 왜.”
“세계사 교과서 좀.”
“와 정재현 교과서도 안들고 다니냐?”
김여주네 반에 갔다. 사실 교과서는 있는데, 보고싶어서 갔다. 왜 왔어? 라고 물었을 때 그냥 이라고 답하는게 괜히 이상한 것 같아서 찌질하게 핑계라도 하나 만들어가야 마음이 편했다. 김여주는 그 찌질한 핑계거리를 웃으며 받아줬다. 아랫배를 툭 치는 손길에 발끝이 또 찌릿 아팠다. 드륵 의자 끄는 소리가 교실 소음을 비집고 작게 울렸다. 김여주는 깨끗히 쓰라며 사물함에서 꺼낸 세계사 교과서를 내게 건넸다. 김여주. 크게 적힌 이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가 줄게.”
나는 또 마음놓고 널 볼 수 있는 핑계를 만들고,
“초코우유 하나 사와.”
“그놈의 초코우유.”
“싫어? 싫으면 교과서 내놓던지.”
“야 줬다 뺏는게 어딨냐~?”
너가 원하면 초코우유는 백개도 사줄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미친놈 같았지만 그랬다. 웃음이 나왔다.
“여기 밑줄 그어, 중요하다. 영국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업이 너무 지루했다. 앞자리에 앉은 김동영은 졸도한지 오래였다.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짚어주신 부분은 이미 하이라이터로 반듯하게 줄이 그어져있었다. 덕분에 귀찮게 펜을 꺼내지 않아도 됐다. 근데 김여주도 어지간히 재미가 없었던 건지 교과서가 낙서로 가득했다. 나보고 깨끗히 쓰라더니, 너무 모순적이었다. 오늘 수업은 공부하기 글렀다고 판단한 나는 교과서 구경이나 할 생각으로 턱을 괬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말을 주로 적는 건지 배고파, 졸려, 20분 남았다 같은 말들이 휘갈겨 적힌게 많았다. 행여나 들킬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꾹 누르며 교과서를 한장 한장 넘겼다. 넘길 때마다 김여주 향이 옅게 풍겼다. 남은 잠도 확 깨게 만드는 향. 괜히 열이 올라 턱을 괴던 손으로 볼을 감싸쥐며 고개를 돌렸다. 5분이 남은 걸 확인한 후 다시 교과서로 시선을 옮기는데, 아까는 못 봤던 낙서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 작게, 휘갈기긴 커녕 정성들여 꾹꾹 눌러 쓴 것 같은 낙서.
문태일♡
태일오빠 보고싶다ㅜㅜ
“뭐야..”
볼을 쥐던 손을 내리며 미간을 좁혔다. 낮게 깔린 목소리에 짝꿍이 뭐라고? 하며 날 쳐다보는게 느껴졌지만 대답 할 정신이 없었다. 문태일. 유명한 사람이다. 노래 잘 부르고 잘생긴 선배로 학교 내에서 유명했다. 근데 그 이름 옆에 하트는 뭐고, 보고싶다는 건 뭔지. 그걸 생각하기 바빴다. 뒷목이 서늘하다. 머릿 속은 복잡하다 못해 하얘졌고, 때마침 수업이 끝나는 걸 알리는 종이 명쾌하게 머리 위로 울렸다. 시발. 문태일 하트 뭐냐고. 다음 시간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앞 문으로 향하시는 선생님이 교실을 채 나가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손에는 교과서를 꾹 말아쥐고, 그렇게 김여주네 반으로 향했다.
“김여주.”
정수정과 얘기를 나누며 책상 정리를 하는 김여주가 보였다. 성큼성큼 걸어가 정리 중인 책상 위로 교과서를 내려놨다. 뭐냐는 듯 김여주가 나를 올려다봤다. 정수정 또한 그랬다. 나는 일부러 즐거운 척 말을 꺼냈다.
“이거 뭐냐?”
놀림거리를 발견한 사람처럼 굳은 입꼬리를 애써 올렸다. 정갈하게 적힌 이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김여주가 그런 내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뭐가.. 하고 작게 움직이던 입술이 일순 멈춘다. 그 모습에 하마터면 입꼬리를 다시 내릴 뻔 했다.
“윗 학년 밴드부 아니야? 노래 부르는 형.”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 사실 이것도 태연한 척이었다.
“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몰라도 돼.”
김여주는 당황하며 교과서를 덮으려 했다. 정수정은 가만히 앉아 나를 한번, 김여주를 한번 쳐다볼 뿐 별다른 개입은 하지 않았다. 나는 수면 위로 올라온 제 마음을 자꾸 덮으려는 김여주를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아무것도 아닌게 아닌데? 그 형 이름 왜 적어놨냐니까? 사실 모든 걸 예상했으면서, 나는 부정하듯 계속 질문했다. 그렇게 끝까지 덮어주길 원했다. 그거 내가 적은 거 아니야 라고 하면 믿어줄 수 있고, 그냥 한번 적어봤어 라고 하면 아 그렇구나 넘어갈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냥 끝까지,
“..”
“…”
“너 문태일 형 좋아하냐?”
끝까지.
“아 정재현 진짜.”
“..”
“너 진짜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안돼. 알았지?”
아니라고 해주면 안되냐고..
“아하하, 김여주 너는 그러니까 왜 교과서에다 오빠 이름을 써놨어~!”
정수정이 이제서야 내 눈치를 본다. 어색하게 웃으며 김여주의 어깨를 두어번 치는게 꼭 방금 전 내 모습같다.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열이 오른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른 탓이었다. 아, 괜히 좋아하냐고 물어봤다. 뒤늦게 후회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김여주는 빨갛게 달아오른 양 볼을 감싸쥐며 세모눈으로 나를 노려봤고, 나는.. 나는 또 웃었다. 숨을 크게 한번 내쉬고. 등신같이.
“와 김여주 서운하다. 어떻게 그동안 이걸 비밀로 할 수 있어?”
“아 진짜 조용히 해라?”
“야 이건 솔직히 김동영한테는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그치 정수정?”
“미친놈아!!!!!!!”
언제부터 좋아한 걸까. 얼마나 좋아하는 걸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냥, 김여주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거. 한번도 누굴 좋아해본 적 없는 애가 학교에서 제일 많은 선배를 좋아한다는 거. 표정관리가 아까보다 쉽지 않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만 몇 마디 내뱉은 후 등을 돌렸다. 웃고있던 얼굴에 힘을 풀었다. 등 뒤로 김여주가 소리를 빽 질렀지만 돌아보지 못했다. 불같은 성격에 금방이라도 쫓아와 나를 돌려세울까 무서워 도망가는 척 걸음을 빨리했다. 다시 마주하는 김여주한텐 웃어주질 못할 것 같았기 때문에 그랬다.
그렇게 교실을 나가는데, 양 볼을 붉히던 김여주가 얼마나 아른거렸는지 모른다. 그 낯선 모습이 자꾸 맴돌았다.
나더러 말하지 말라고 그렇게 소리치던 김여주는 며칠 뒤 저가 먼저 김동영에게 문태일을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정수정도 알고 정재현도 아는데 너만 모르면 속상할까봐 가 그 이유였다. 그러니까 다시말해, 김여주의 짝사랑이 그렇게 공식화 됐다는 거다. 그 후로 김여주는 숨김없이 제 마음을 드러냈다. 네 명이 다같이 있는 자리에서도 열심히 문태일을 찬양했다 이거다. 항상 ‘우리 태일오빠’ 로 시작하는 찬양론에 한번은 문태일이 왜 너네 오빠냐 물었다가 그대로 직구를 맞은 적이 있다.
“뭘 물어. 내가 좋아하니까 우리 오빠지.”
그 말을 듣고 절로 욕짓거리가 튀어나올 뻔한 걸 꾹 참았다. 다음 생엔 문태일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 말이다 저게. 덕분에 내가 김여주를 정말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속이 얼마나 쓰렸는지 모른다. 들이킨 냉수만 몇 잔인 줄 알아? 입술을 몇 번이나 깨문 줄 아냐고. 정수정이랑 김동영도 이건 모른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른다.
문태일 형은 인기가 많았다. 진짜 말 그대로 많았다. 우리 반만 해도 문태일이 아이돌인 것 마냥 방방 뛰는 여자애들이 한 둘이 아니였다. 나는 그 사실로 마음을 달랬다. 김여주도 연예인 좋아하듯 좋아하는 것일거라 생각했다. 좋아하는 마음이 오래 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어차피 좋아한다고 이뤄질 사람이 아니였다. 문태일처럼 어마어마하게 인기 많은 사람이 김여주를 어떻게 알겠어. 김여주가 미쳐서 밴드부 공연 중에 무대 위로 올라가 오빠 좋아해요! 를 외치지 않는 이상 얼굴도 모를 거다. 아냐 근데 모르기엔 김여주가 너무 예쁘잖아. 아 미친, 뭐라는 거야. 한동안 그 답 없는 생각의 연속이었다.
“재현아, 너가 우산 갖고 여주 좀 데리고 와라.”
“알았어. 다녀올게요.”
그런데 정말 이상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 우산이 없다는 김여주를 데리러 학원 앞까지 갔을 때 눈에 들어온 건 내게 걸어오려는 김여주와, 그런 김여주의 어깨를 잡은 문태일. 평생 모르는 사이로 남을 거라 굳게 믿었던 두 사람이 정답게 대화하는 모습. 우산을 때리듯 내리는 빗소리가 온 세상을 집어삼킬 것 처럼 크게 울렸다. 우산 손잡이를 꾹 쥐었다. 무슨 대화를 하는지 김여주가 나를 한 번 가리킨다. 그러자 문태일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더니 곧 저가 들고있던 우산을 김여주에게 내민다. 진짜, 뭐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김여주는 용케도 문태일이 건넨 우산을 거절한 후 내게 뛰어왔다. 문태일은 가만히 선 채 김여주에게 계속 시선을 뒀고, 나는 그 모습이 보기 싫어 고개를 돌리고 발을 옮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김여주는 우산을 쥐고 걷는 내 발에 맞춰 걸음을 내딛었다. 나는 그런 녀석이 비에 맞지 않도록 우산을 좀 더 높게 들었다. 묻고 싶은게 많았다. 나 정말 마음 놓고 있었는데. 네 짝사랑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김여주.”
“엉?”
“..너 혼자 좋아하던 거 아니였어? 저 형이랑 언제부터 그렇게 친했냐?”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우산 손잡이를 꾹 잡고있던 손이 옅게 떨렸더랬다. 김여주는 모른다며 어물쩡 말을 넘겼다. 썩 내키지 않는 대답이었다. 때문에 내일 학교에 가면 정수정을 붙잡고 모두 알아내겠다 다짐했다. 어차피 김여주한테 직접 듣는 말은 아플게 뻔했다.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학원이 멀어지고, 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그쯤, 난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김여주.”
“왜.”
“..”
“아 왜~”
“넌 태일이 형이 왜 좋아?”
도대체 그 형 매력이 뭐길래 너가 그렇게 좋아하는 거야? 줄곧 앞만 보던 시선을 돌려 김여주를 내려다봤다. 그러자 눈이 마주쳤다. 잠시 내 눈을 빤히 보던 김여주는 얼마 안 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인다. 아 너는 뭐 그런 걸 물어보냐! 아프지 않게 주먹 쥔 손으로 팔을 한번 때리더니 곧 다시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본다. 투정과는 다르게 입꼬리가 위를 향해 곡선을 그리고 있다.
“아. 그냥 안 들을래.”
“뭐야. 왜! 얘기해줄게!”
“아아 너 완전 오글거리는 말 할 것 같아. 안 들어 안들어.”
나는 그런 김여주를 회피했다. 김여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사실은 막상 그 이유를 들으면 나는 정말 끝일 것 같아서. 오직 문태일만 해당되는 이유만 줄줄 늘어놓을 것 같아서. 그게 정재현 넌 죽어도 아니야 라고 들릴 것 같아서. 난 너한테 계속 친구여야 하는데, 그럼 또 속이 아플 것 같아서. 친구 연애사를 듣는데 속이 아픈 건 친구가 아니라서. 친구도 아닌 우리를 생각하면 덜컥 겁이 나서. 그래서 나는 또 거짓말로 감정을 숨이고,
“야 빨리 가자. 배고프다.”
한 걸음 떨어지고,
“너 좋아하는 고기 먹으러 가는거야.”
좋은 친구가 되려 노력한다.
“야 정재현.”
“어?”
“할 말 있어.”
정수정은 무슨 일인지 내가 찾아가기도 전에 먼저 나를 찾아왔다. 무슨 말? 하고 묻는 김동영에게 넌 꺼져, 라고 말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김여주 얘긴가보다. 치사하다며 징징거리는 김동영을 뒤로하고 정수정을 따라 교실을 나갔다. 진지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조용한 곳으로 가는 듯 했다. 입술이 바싹 마르는 느낌에 혀로 한번 축이며 걸어갔다.
“뭐야 정수정. 할 말이 뭔데 여기까지 와.”
낡은 빈 교실 안으로 들어가는 정수정 뒤로 먼지 쌓인 그곳에 발을 내딛었다. 나는 정수정이 무슨 말을 꺼낼지 알면서도 괜히 모르는 척 신발코만 바닥에 쿡 찍었다. 괜히 바람 빠진 웃음을 한번 내보냈고, 괜히 주위를 둘러봤다. 정수정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팔짱을 끼며 그런 날 매섭게 쳐다봤다. 정재현.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날이 서있다. 나는 그제서야 정수정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너 어제 다 봤지.”
웃는 것도 멈췄고,
“뭘.”
발도 가만히 놔뒀다.
“여주랑 태일오빠.”
축축해지는 손을 꽉 말아쥐며 그렇게 눈을 맞췄다. 어. 내가 짧게 대답했다.
“그 형이 먼저 김여주한테 말 걸더라.”
“아니, 내가 진짜 말 안하려고 했는데..”
“그럼 하지마.”
“미친놈. 눈뜨고 코베이고 싶어?”
진심인데. 잠시간 맞추던 시선을 떨어뜨렸다. 나 지금 연기하는 것도 충분히 어색하잖아. 내가 그렇게 말을 잇자, 한숨소리가 또 한번 교실을 울렸다.
“그래도 알아야 돼.”
“정수정.”
“김여주, 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태일오빠 좋아해.”
“..”
“그리고 태일오빠도, 여주 좋아해.”
정수정은 망설임이 없었다. 숨구멍을 턱 조여온다. 어쩌면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던 말인데도 그랬다. 김여주에게 우산을 건네던 문태일이 떠올랐다. 한동안 목이 잠겨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리가 얼얼했다. 눈가가 조금 시리기도 했다. 내가 미련하게 친구로 남을 동안 형은 천천히 김여주한테 이성으로 다가간 거다. 비가 무섭게 쏟아지는 날 제 우산을 넘길 정도로 좋아하는 거다. 어쩌면 김여주가 좋아하는만큼, 혹은 그 보다 더 큰 마음을 품고 있는 거다.
“이제 어쩔거야. 이런데도 가만히 있을래?”
누군가 그랬는데, 이렇게 쌍방으로 좋아하는 건 당연한게 아니라 기적이라더라. 김여주가 좋아하는 사람이 김여주를 좋아하는 것. 그 기적에 내가 무슨 짓을 할 수 있을까.
“정수정.”
“왜, 뭐 등신아. 뭐”
“나 그냥 김여주 친구 하게 해줘라.”
“..야. 언제까지 숨길 건데. 너만 힘들잖아. 아니야?”
“나 힘들다고 김여주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
“너도 알잖아. 나 김여주랑 바닥 기어다닐때부터 친구였어. 근데 걔랑 그렇게 붙어다니면서 한번도 남자였던 적 없어. 아무리 내가 걔를 좋아한다고 해도 나 못해 고백같은 거. 너 말대로 김여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그 형 좋아하더라. 이름만 나와도 입이 귀에 걸리더라. 근데 그거 다 알면서 어떻게 선을 넘냐.”
“..”
“야, 난 그거 진짜 못해. 넘을거면 진작에 넘었겠지. 김여주가 내 눈치 보고 나한테 미안해하고 나 피하는게 더 힘들어.”
“너 그럼 김여주가 그 오빠랑 사귀는 거 보고만 있을거야? 짝사랑을 그렇게 오래 해놓고?”
“내가 짝사랑을 오래 하면 뭐하냐고.”
“..”
“김여주한테 나는 그냥 친군데.”
그저 제일 오래된 친구.
“문태일 그 형 아니더라도 똑같았을거야.”
“..”
“친구로 옆에 있는 것도 좋아 나는.”
기적도 없는 겁쟁이가. 감히 네 행복을 어떻게 건드려.
문태일 형은 멋있었다.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게 특히 그랬다. 대각선 앞 줄에 앉아있는 김여주가 실실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는게 보였다. 아, 솔직히 내 짝사랑 너무 거지같아. 이 짝사랑을 시작한 내가 제일 등신같고. 계절이 바뀌고 축제날까지 오는 동안 김여주와 문태일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이제는 말도 놓고 학교에서도 같이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못 본 척 걸음을 돌려 반대로 걸어갔지만,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쨌거나 짝사랑을 오래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런 나를 비웃듯 문태일은 곧 김여주를 데리고 강당 위로 올라갔다. 서프라이즈로 진행된 게임 때문이었다. 김여주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는 손과, 그 손길에 일어나는 김여주. 예쁘게 멀어지는 한 쌍의 모습을 나는 묵묵히 눈에 담을 뿐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김동영이 그런 나를 제 팔꿈치로 툭 쳤다. 미동 없이 물었다. 왜.
“괜찮냐..?”
조심히 물어보는 목소리에 걱정이 한가득이다. 분명 나를 위하는 말인데, 오히려 저 끝까지 나를 추락시켰다. 이렇게 비참할 수가 없었다. 코끝이 아렸다. 그런데도 아니 라고는 대답 못했다. 친구로 남겠다는 건 내 선택이었고, 난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했다.
“동영아.”
“..”
“김여주 왜 저렇게 예쁘냐.”
나는 그렇게 대답을 대신했다. 김동영이 한숨을 쉬는 소리가 작게 맴돌았다. 강단 안은 요란스러웠고, 김여주는 부끄러운지 연신 얼굴을 가렸다. 나는 화장실을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나 강당을 나갔다. 마이크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걸 뒤로하고 한참을 밖에서 서성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 김여주는 평소보다 조금 더 붉게 입술을 물들이고 나왔다.
“나 태일 오빠랑 사귀기로 했어.”
그 입술로 그런 말을 했다. 등교길에 빽빽하게 자란 단풍나무가 순간 바람에 흔들렸다. 김여주의 긴 머리카락이 같이 흩날렸다. 그 사이로 환하게 웃는다. 성공했네 김여주. 그런 김여주를 따라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웃기게도, 연기가 늘었다.
“오빠, 얘는 내 친구. 정재현. 내가 얘기 많이 해줬지?”
“아아, 안녕 재현아.”
“안녕하세요 형.”
김여주는 얼마 안 가 나를 문태일에게 정식으로 소개 해줬다. 나에 대해 무슨 말을 그렇게 많이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문태일은 김여주의 소개에 먼저 살갑게 말을 걸었다. 어색하게 흘리는 웃음에 덩달아 경직된 웃음을 지으며 꾸벅 인사했다. 재현이 너 얘기 많이 들었어. 여주랑 오랜 친구라며? 아, 네. 원한 건 아닌데 태어나보니까.. 죽을래 정재현? 복도 한 가운데서 짧은 대화가 오갔다.
이 어색한 자리를 만든 김여주는 갑작스런 담임선생님의 호출에 나와 문태일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교무실로 뛰어갔다. 아아, 숨이 막힐 정도로 공기가 무겁다. 김여주도 없는 마당에 더는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한번 더 꾸벅 고개를 숙인 후 지나가려는데, 그런 날 문태일이 불러세웠다.
“재현아.”
네? 놀란 내가 고개를 돌렸다.
“그동안 여주 챙겨줘서 고마워.”
민망한지 턱을 긁적이며 말하는 문태일이 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당황한 내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 챙기긴요 형. 그냥 애가 워낙 덤벙대니까..하하. 그런 내 모습에 문태일은 또 어색하게 웃으며 잠시 시선을 내리더니 곧 말을 잇는다.
“여주가 너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
“..네?”
“여주 옆에 좋은 친구 있어서 다행이야. 여주 계속 잘 부탁해.”
문태일이 쾅, 못을 박았다. 순진하게 웃으면서 낙인시켰다. 나는 그저 김여주의 좋은 친구, 정재현이라고. 나도 잘 알고있는 걸 굳이. 그때 약간 실 없이 웃음이 터진 것 같다.
“형두요.”
“..”
“김여주 잘 부탁드려요.”
눈을 똑바로 떴다. 입꼬리를 올렸다. 맞물린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김여주의 좋은 친구로써 하는 경고였다.
역대급으로 맛 없는 급식에 좀처럼 크게 밥을 뜨지 못했다. 같이 점심을 먹던 김동영도 마찬가진지 맹맹한 미역국만 주구장창 떠먹는다. 대충 먹고 매점이나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젓가락질을 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이 맛없는 급식을 그새 다 먹은 건지 정수정과 출구쪽으로 걸어가는 김여주가 보였다. 분명 맛 없다고 제대로 먹지도 않았을 건데. 매점 갔을 때 김여주 줄 빵도 하나 사야겠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쯤 누군가 김여주를 잡았다. 태일이 형이었다.
“안 먹냐?”
“어, 먹어.”
“오늘 진짜 심하긴 해. 맛이 더럽게 없어.”
젓가락을 움직이던 걸 잠시간 멈춘 내게 김동영이 말했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환하게 웃으며 무언가를 주고 받는 두 사람의 모습에선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곧 문태일의 볼에 입을 맞추고 도망가는 김여주에 결국 들고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야 말았다. 아, 괜히 고개 들었다. 괜히 봤다. 입맛이 뚝 떨어져 더이상 깨작거리고 싶지도 않았다.
“나 그만 먹을래.”
“왜? 아직 많이 남았구만.”
“..체 할 것 같아.”
“으이그. 맛 없는 거 억지로 먹어서 그래. 매점이나 가자.”
그만 먹겠다며 남은 반찬을 국그릇에 담는 나를 큰 눈으로 보던 김동영은 쯧쯧 혀를 차며 같이 반찬을 모았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쥔 손이 옅게 떨렸다. 아무렇지 않아야 하는데, 아직도 힘이 든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의자를 뒤로 끌었다. 근데 마침 식판을 들고 걸어오던 친구가 호탕하게 웃으며 내 앞에서 발을 멈추는 거다.
“야 너네 봤냐???? 김여주가 그 형한테 뽀뽀하는거??”
식판만 없었음 박수까지 칠 기세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 친구를 쳐다보기만 했다. 반면에 김동영은 많이 놀란 건지 쿨럭 거리며 물었다. 누가 뭘 해? 아까보다 두배는 커진 눈으로 말이다.
“…”
“못 봤어? 김여주가 뽀뽀했다고~! 와 진짜 나 놀랬다니까.”
그 두배로 커진 눈은 곧 나를 향했다. 시야 끝에 걸리는 그 눈빛이 꼭 그래서 그만 먹겠다고 한 거였냐?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목 언저리를 만지작거리다 앞에 서있던 친구의 팔을 아프지 않게 때렸다. 바람 빠진 웃음은 덤이었다. 웃는 연기는 이제 수준급이었다.
“밥 먹느라 못 봤다. 매점이나 가자.”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김동영의 시선이 끈질기게 나를 쫓았지만 모른 척 발을 옮겼다. 그렇게 걸어가는데, 자꾸만 문태일의 볼에 입을 맞추던 김여주가 생각나 식판을 쥔 손에 힘을 꾹 실었다. 아, 이것만큼은 너무 유치해서 인정하기 싫었는데. 난 진짜 문태일이 밉다.
2013년 봄. 정재현, 고등학교 2학년.
장마였다. 집에 가려니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제법 굵은 빗줄기를 보며 일기예보를 챙겨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는데, 김동영이 먼저 간다며 급히 교실을 나갔다. 왜 저렇게 급하게 뛰어가. 뒷머리가 찰랑찰랑 흔들리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나도 발을 옮겼다.
“야 우산 남는 거 있는 사람~!”
우산을 들고오지 않은 애들은 짜증섞인 말을 뱉으며 애처롭게 창 밖을 쳐다봤다. 어떤 애들은 가방을 대충 머리 위에 얹고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 중엔 김동영도 있었다. 미친놈. 급하게 나가서 당연히 우산 가져온 줄 알았는데, 감기 들려고 아주 작정을 했네. 도대체 뭐 때문에 우산도 없는 놈이 저렇게 빗 속을 뛰어가는지 잠시 미간을 좁히다 문득 발을 멈췄다. 덜렁거리는 데엔 최고인 김여주가 우산을 챙겼을리 없었다. 같이 가야하나 걸음을 돌리려다 곧 생각을 접었다. 내가 뭐, 남자친구도 아니고. 태일이 형이 챙겨주겠지 뭐.
내키지 않는 걸음을 내딛었다. 자꾸만 돌아가려는 고개에 꾹 힘을 줘 참았다. 돌아보지마. 생각하지마. 엉망징창이 된 머릿속을 정리시켜주듯 건물 밖을 나서자 빗소리만 귓전을 때렸다. 우산 위로 투둑 소리를 내며 한꺼번에 쏟아지는 빗줄기가 무거웠다. 우산 밖으로 슬쩍 내민 손이 순식간에 젖어들었다. 아, 환장하겠네. 이렇게 혼자 가버리면, 김여주가 몇년 전 그날처럼 비에 홀딱 젖어 지독한 감기에 들까봐 그게 걱정이었다. 내가 아니여도 챙겨줄 사람이 있는데, 나는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혹시 전화가 올까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손에 쥐었다. 일단 이렇게라도 하고 가야 미련없이 발을 옮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죽을 뻔 했네 진짜.”
그런데 그때, 누군가 내 교복 끝자락을 꾹 쥐었다. 익숙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빗소리만 울리던 곳에 가쁜 숨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김여주였다.
“..뭐냐..?”
“아 우산 없는데 때마침 너가 딱! 보이는 거야. 같이 좀 쓰고가자.”
“너 우산 없어?”
“있으면 이러겠냐? 나 원래 그런 거 잘 안들고 다니는 거 알잖아.”
“우산, 안 챙겨줬어?”
“어? 무슨 소리야?”
머리카락과 교복 부분부분이 살짝 젖은 채로 나를 올려다본다. 우산 손잡이를 꾹 쥐었다. 김여주가 참, 예쁘게 미소를 짓는거다. 같이 좀 쓰자며 내 교복을 더 쥐어오는 손길에 침을 꿀꺽 삼켰다. 우산을 같이 쓰고 다닌 적은 많지만 김여주가 남자친구가 생긴 후로는 처음이었다. 잘 부탁한다고 했는데. 대신 우산을 챙겨줬을거라 생각했는데. 문태일은 그러질 않았다.
“우산 좀 들고다녀. 장마철이야 지금.”
“아 알았어.”
“너 나 못 만났으면 어쩔 뻔 했어? 비 다 맞고 집에 갈 생각이었어?”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칠칠맞게 우산을 놓고다니는 김여주한테도 화가 났고, 어디서 뭘 하는지 여자친구가 우산이 없는 것도 모르는 문태일한테도 화가 났고, 그것도 모르고 먼저 갈 뻔했던 나한테도 화가 났다. 내 말에 눈을 크게 뜬 김여주는 잠시 눈을 굴리더니 곧 평소처럼 주먹으로 팔을 한 번 치며 눈을 흘겼다. 아 운 좋게 만났잖아~ 그럼 된 거지. 태평한 소리에 고개를 돌려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목울대가 울렁인다. 그럼 된 거라니. 뭐가 됐는데. 나는 집에 갈 동안 온 몸에 아지랑이가 오를 거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의미없는 웃음을 터뜨릴 게 뻔하단 말이야.
“너 진짜 멍청한 거 아냐?”
“죽을래?”
“그리고 너, 진짜 못됐어.”
“..너 지금 우산 때문에 이러냐?”
“나쁜 계집애.”
“야!!!”
나는 친구만 하려고 죽어라 노력하는데, 너는 또 내 안에 들어왔잖아. 먼저 나를 잡고, 웃고, 다가오잖아. 그럴 때마다 내 속이 얼마나 저린지 모르잖아. 넌 진짜, 아무것도 모르잖아.
“와 진짜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내일부터는 우산 들고다닌다.”
나는 그런 널 밀어내야 되는데. 교복을 쥔 손을 뿌리쳐야되는데. 날 보는 눈을 가리고, 웃지 말라고 해야되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되잖아.
결국엔 또 너를, 내 옆에 뒀잖아.
이틀 뒤, 김여주는 복도에서 나를 마주치자 쫙 핀 손을 앞으로 내밀며 외쳤다.
“정재현 스톱! 오지마!”
미간을 좁힌 내가 한발짝 내딛자, 가까이 오지 말라며 한발짝 멀어진다. 어제까지 잘만 같이 다녀놓고 갑자기 왜 저래. 김여주 옆에 서 있던 정수정을 쳐다보자 어깨를 으쓱이더니 곧 입을 열었다. 문 태 일 이 너 랑 다 니 는 거 질 투 난 다 고 했 대. 소리 없이 움직이는 입술을 주시했다. 어이없게도 그 긴 문장을 단번에 알아들었고, 나는 콧웃음을 쳤다.
“우리 당분간 같이 다니지 말자.”
“뭐?”
“나 앞으로 우산도 잘 챙기고, 체육복도 잘 챙기고, 집 열쇠도 잘 챙길게.”
“야, 김여주.”
“그러니까 우리 당분간은 덜 친하게 지내자 정재현.”
“..”
“사랑한다 친구야!”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 김여주를 잡기도 전에 시야가 텅 비어버렸다. 김여주는 쌩 하고 달려 모습을 감췄다. 정수정이 그 뒤를 따랐고, 나는 입술만 벙긋거리다 허공에 내민 손을 힘 없이 내렸다. 아, 나 딱 붙어서 우산 쓰고 간 거 벌 받는 건가. 작게 벌리고 있던 입을 다물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질투라니. 그럼 애초에, 애초에 김여주를 잘 챙기던가.
속이 탔다. 김여주가 나를 피한다. 내가 고백도 하지 않았는데, 친구도 하지 말자며 나를 피한다. 한시간이라고 예상했지만 하루가 흘렀고, 내일이면 괜찮겠지 했는데 근 일주일간 나만 보면 도망치는 김여주의 뒷모습을 보며 뜨거워진 숨을 내쉬었다. 결국 일주일하고도 며칠이 지나서야 원래대로 돌아온 멍청이 덕분에 알았다.
나는 진짜, 김여주 없으면 못 살겠다.
2015년 봄. 정재현, 대학교 1학년.
“야 그만 마셔. 너 벌써 취했다니까?”
“아 아니라고오~! 줘! 술! 주라 줘!”
“아 이 답 없는 기집애 진짜. 그냥 자 너.”
자. 이거 베고 자. 눈 감아. 입고 온 가디건을 벗어 몇 번 접은 후 그대로 김여주의 머리를 눌러 그 위로 엎드리게 만들었다. 양 볼은 붉게 해가지고 술! 술! 외치는 목소리가 사라지자 나와 정수정, 그리고 김동영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앓는 소리를 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디에 머리만 기대면 저렇게 잘 잘거면서 술은 무슨. 가디건을 베기 무섭게 새근새근 잠에 든 김여주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괜히 앞에 놓인 맥주를 한모금 들이켰다.
“야, 앞으로 김여주한테 쏘맥 금지다. 알았냐?”
“아니 술은 저렇게 약하면서 마시는 건 또 엄청 좋아해요.”
“야 애 깬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아마 누가 쟤 귀에 대고 꽹과리를 쳐도 안 깰 거다.”
턱을 괸 채 안주거리로 나온 과자를 집어먹으며 미간을 좁히던 정수정이 물었다. 태일오빠 불렀어? 그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태일이 형한테는 김여주가 눈이 풀린 걸 보자마자 연락을 넣었다. 형, 여주 좀 데리러 와주실 수 있으세요? 우리 집 코 앞이 김여주네 집인데도 불구하고 문태일을 불렀다. 문자를 보내기 무섭게 형에게서 답장이 왔다.
[주소 좀 찍어줘. 지금 갈게.]
그 짧은 문장을 화면에 띄워 정수정에 흔들어 보였다. 먼저 물어봐놓고, 관심 없다는 듯 손을 휘적인다.
“근데 솔직히 나는 태일이 형이랑 김여주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
“왜? 난 둘이 죽고 못살아서 오래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원래 시작이 너무 뜨거우면 금방 식는다잖아.”
“연애는 해보고 하는 말이야 동영아?”
“죽을래 정수정?”
앞에선 또 언성이 높아진다. 정수정 말대로 김여주가 절대 깨지 않을 거란 걸 잘 알지만 괜히 신경이 쓰여 머리카락으로 귀를 가려줬다. 저것들은 하루라도 안 싸우면 입에 가시가 돋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인 나는 반쯤 남은 맥주를 끝까지 마셨다. 나도 정수정과 생각이 똑같았다. 오래 갈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김여주는 꽤 오래 문태일과 연애중이었다. 중간에 헤어진 적도 없고, 싸운 적도 별로 없다. 싸움이라고 해봐야 김동영이랑 정수정이 으르렁 거리는 것만도 못한 싸움이었다. 나는 그 꽤 오랜 기간동안에도 김여주에게 좋은 친구였다. 욕심내지 않았다. 선을 넘으려고 하지 않았다. 조금만 남자였다간 김여주가 또 도망갈 것 같아 그러고 싶어도 그러질 못했다.
“어, 오빠 여기요!”
“안녕하세요 형.”
빈 맥주잔을 만지작거리며 김여주에게로 시선을 두려 할 때 즘, 그런 날 막기라도 하듯 문이 열렸다. 딸랑, 종소리가 났다. 문자를 보낸지 20분만에 도착한 문태일이었다. 제일 먼저 발견한 정수정이 손을 높게 올려 형을 불렀다. 그 뒤로 김동영이 인사를 했고, 나 역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여주 왜 이렇게 많이….”
“죄송해요 형. 말렸는데 듣지를 않아서..”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형은 오자마자 김여주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그러면서 아, 얘들아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넸고, 사람 좋은 웃음도 빼먹지 않았다. 어깨를 몇 번 흔들어도 일어나지 못하는 김여주에 형이 당황한 듯 혀로 입술을 축였다. 김여주가 일어나지 못하니 데리고 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업어가는 것. 형은 제 목을 만지작거리다 곧 자세를 낮춰 김여주를 업었다.
“너네는 안 가?”
“형 먼저 김여주 데려다주세요. 저희는 더 있다가 가려구요.”
“아, 그래. 고마워 얘들아. 나중에 보자.”
나는 테이블 위에 남겨진 가디건을 도로 가져왔다. 김여주가 베고 잔 부분이 온기가 남아 따뜻했다. 형은 고맙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이곤 바로 식당을 나갔다. 김여주는 업힌 채 나가는데도 세상 모르고 자기만 했다. 정수정과 김동영, 그리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태일에게 인사한 후 다시 앉아 계속 술을 마셨다. 나중에 보자던 형은 며칠 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김여주를 업고 나가던게, 문태일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김여주가 헤어졌다.
[통 먹지를 않아. 재현이 너가 가서 챙겨줘. 너가 말하면 들을 수도 있을거야.]
“네 이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달래볼게요. 여주도 지금 많이 힘들어서 그럴거에요.”
심지어 차였댄다.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말 없이 응시하다 미리 사다둔 죽을 포장 채 들고 현관으로 향했다. 신발이야 주름이 지든말든 상관 없었다. 대충 구겨신고 걸음을 빨리했다. 5분도 안되서 도착한 김여주네 집 현관문을 두어번 두들겼다. 김여주! 하고 이름도 불렀다. 하지만 예상한대로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비밀번호를 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사정으로 이모가 아침 일찍 지방으로 내려가셔서 그런지 집이 더 휑한 것 같았다. 그렇게 몇 초간 거실에 서 있었을까, 방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
“…”
눈이 부을대로 부은 김여주가 힘 없이 걸어나왔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돌린다. 며칠을 울었나보다. 하물며 방금 전까지도 말이다. 나는 그런 김여주에게로 가까이 걸어갔다. 안그래도 마른 애가 살이 더 빠진 것 같았다. 볼이 핼쑥했다.
“가, 정재현.”
“김여주.”
“가라고.”
“너 이거 다 먹기 전까지 안 갈거야.”
“안 먹어. 안 먹을 거니까 그냥 가.”
김여주는 죽을 들고 서 있는 내게 가라고만 했다. 초췌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건지 다시 방에 들어가려는 걸 잡았다. 손목이 한 줌에 들어온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러다 얘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나쁜 생각이 물씬 들었다. 한 입이라도 먹어. 내 목소리가 낮게 바닥에 가라앉았다. 하지만 김여주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매정하게 잡힌 손목을 빼내려고만 했다. 먹어 여주야. 응? 그런 김여주를 끈질기게 붙들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문태일과 헤어졌다는 이유로 며칠째 정신 없이 사는 김여주의 모습에 속이 상했다.
“너 이러다 진짜 쓰러져. 벌써 며칠째냐고, 어?”
“..”
“제발 좀 먹어!!!”
그에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바로 후회했다. 눈을 질끔 감은 내가 이마를 감쌌다. 아, 김여주 내가.. 옅게 떨리는 목소리로 김여주를 불렀는데, 눈물이 가득 찬 두 눈이 나를 향했다. 그 모습에 숨이 턱 막혀 말을 끝내지 못했다. 죽이 담긴 봉지를 들고있던 손에 힘이 빠져 들고있던 걸 놓쳤다.
“싫다고. 싫다고 했잖아.”
“..”
“먹으면 다 토할 것 같아. 입에 넣지도 못하겠다고.”
울음섞인 목소리가 거실을 메운다.
“이런 건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단 말이야.”
“여주야.”
“오빠가 나를, 나를….”
“미안. 내가 미안해.”
큼지막한 눈에서 고여있던 눈물이 무겁게 떨어진다. 가쁘게 숨을 내쉬며 울음을 터뜨리는 김여주를 보자 목울대에 열이 올랐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울리려고 온게 아닌데, 멍청하게 김여주를 울리고 말았다. 입술을 터질듯 깨물며 조심히 손을 뻗었다.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엄지로 문지르며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걱정되서 그랬어. 미안해. 미안해 여주야.
내가 화를 내지 말 걸. 참을 걸. 먹기 싫다는 널 한번 더 생각해볼 걸. 너가 지금 얼마나 아플지 조금 더 고민해볼 걸. 팔을 더 뻗어 김여주를 안았다. 엉엉 우는 소리가 품에 묻혀 작아졌다. 축축히 젖어가는 티셔츠는 아무렴 상관 없었다. 그저 네 등을 다독여 줄 뿐이었다. 속이 조금이라도 후련해질 때까지 울어도 괜찮다. 설령 내 옷이 다 젖는다고 해도 너니까 괜찮다. 김여주 너가 무너지면, 나도 무너지니까. 무너지려는 너를 잡는 것 뿐이다. 그러니까 마음놓고 울어도 괜찮다.
2016년 봄. 정재현, 대학교 2학년.
맥주를 사기 위해 집 근처 편의점을 향했다. 사실 집에 넘치는게 맥준데, 걱정되서 갔다. 편의점 밤 타임에 교대하는 김여주가 말이다. 그러니까 알바는 왜 하필 밤에 끝나는 걸 구해가지고 괜히 사람 왔다갔다하게 만드냐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어느새 도착한 편의점 현관문을 열었다. 딸랑 울리는 종소리에 카운터에 서있던 김여주가 고개를 벌떡 들며 어서오세요! 또랑또랑 외친다. 그래 어서왔다^^
“아 뭐야.”
“어쭈, 손님한테 말 하는 거 봐라?”
“손님은 무슨. 안 꺼져?”
“아 나 맥주 사러 왔거든.”
녀석은 문을 열고 들어온게 나인 걸 확인하자마자 표정을 구긴다. 아, 나는 저게 뭐가 예쁘다고 데리러 왔을까. 가볍게 한숨을 내쉰 나는 맥주 두 병을 대충 집은 후 카운터에 올렸다. 계산 좀 해주시죠 알바생님~ 일부러 약올리듯 말을 하자, 세모눈을 뜬 김여주가 나를 한번 흘겨보더니 바코드를 찍는다. 삑, 울리는 소리가 명쾌하다.
“이천 팔백원입니다 손님.”
이를 바득 갈며 내 쪽으로 내미는 김여주의 손 위로 주머니에 쑤셔넣었던 천원 짜리 세 장을 올려놨다. 그 돈을 받아들고 바로 이백원을 거슬러주려 손을 움직이는 김여주를 바라보다 짧게 입을 열었다. 야 김여주, 하고 부르자 동전을 집다 말고 내게 시선을 둔다.
“너 편의점 알바 그만 하면 안되냐? 다른 거 해.”
“왜.”
“위험하잖아.”
“…안 그래도 과선배한테 부탁했어. 과외 하나만 꽂아달라구.”
뚱해있던 표정이 풀린다. 일부러 데리러 온 걸 눈치 챈 건가. 툭 튀어나왔던 입술도 어느새 들어가있다. 저도 다른 걸 생각하고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시간을 확인했다. 얼추 교대시간이었다. 그리고 시계에서 눈을 떼기 무섭게 김여주 다음 타임인 남자가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여주는 남자와 몇 마디 주고 받은 후 집에 갈 준비를 했다. 나는 양 손에 맥주를 든 채 묵묵히 녀석을 기다렸다. 김여주 기다리는 건 꽤 자신있는 분야였다.
“나 그냥 과외 엎을까?”
그래. 편의점 아르바이트보단 백배 천배 나은데, 그렇다고 남고딩 과외도 썩 좋은 건 아니였다. 고3 남학생과 과외를 하게 됐다며 말하던 김여주를 보며 얼마나 표정을 구겼는지 모른다. 근데 이게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과외 학생이 그렇게 싸가지가 없단다. 이를 바득 갈며 금방이라도 테이블을 부술 것 같은 김여주의 모습에 나는 눈을 끔뻑였다. 말을 들어보니 멘탈이 나갈만 했다. 버럭 맞장구를 쳐주니 도리어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성을 냈다. 누구 마음대로 김여주를 무시해. 어떤 놈인지 얼굴이나 보고싶었다.
김여주는 정말 많이 속상했던 건지 술을 넘기고 넘기고 또 넘겼다. 캬~! 하고 소주잔을 흔들던 녀석은 곧 평상시와 다를 것 없이 얼마안가 양 볼을 붉게 물든 채 나를 쳐다봤다. 다섯 번 더 넘기면 딱 헤롱거릴 것 같네. 나는 혀를 한번 차보인 후 술잔을 들어올리려는 김여주의 손목을 잡았다.
“야 넌 술 이제 그만 마셔.”
“왜!! 나 오늘 마시고 죽을거야!!”
“웃기고 있네. 너 술 취하면..”
저지하는 나에게 반항이라도 하는 듯 소리를 빽 지르며 손목을 비틀어 빼려는 김여주에게서 아예 술잔을 뺏어버렸다. 김여주는 살짝 풀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니, 노려본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 같다. 입술은 삐쭉 내밀고 툴툴거리는 모습에 잠시 말을 머뭇거렸다.
너 술 취하면, 문태일 얘기해.
“답 없어.”
난 그거 싫어.
“얘 울었어?”
“안 보이냐, 눈물 자국.”
“..태일이 형 얘기 했지.”
“어.”
씻고 나오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 김여주가 많이 취했으니 데리러 오라는 정수정의 문자였다. 보자마자 옷만 갈아입고 바로 뛰어갔다. 술집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건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있는 김여주, 그런 김여주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고 있는 정수정이었다. 내가 그 쪽으로 걸어가자, 인기척을 느낀 정수정이 고개를 들었다. 왔어?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김여주를 확인했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을 조심히 걷어내자 진득히 나있는 눈물길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문태일 만난 거 얘기하면서 또 한바탕 울었구만. 머리가 지끈거리는 탓에 이마를 짚었다.
“넌 혼자 갈 수 있어? 김동영 부르지?”
“됐어, 집이 코 앞인데 김동영을 왜 불러. 김여주나 잘 챙겨.”
“..알았어, 먼저 갈게. 도착하면 문자 남겨.”
지체 없이 김여주를 업었다. 정수정은 김여주의 팔을 내 어깨에 둘러주며 잘 챙기라고 당부했다. 그게 대답하듯 김여주를 업은 팔에 힘을 더 꽉 줬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김여주는 미동도 없이 업혀 이따금씩 앓는 소리만 작게 낼 뿐이었다. 새근새근 숨을 고르는 소리가 귓전에 닿았다. 술 때문에 열이 오른 건지 몸이 뜨겁다. 하아. 깊게 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기는데, 등 뒤로 정수정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야 정재현!”
뒤를 돌았다. 내가 뭐냐는 듯 보고만 있자, 성큼성큼 걸어온다. 표정이 꽤 비장했다. 내 앞까지 걸어올 때까지 입술을 앙 다물었던 정수정이 천천히 말문을 연다.
“..김여주, 안 좋아한대 이제.”
“…”
“자기 입으로 말했어. 이제 아니라고.”
“..”
“잘 생각해봐. 나 간다.”
목적어가 없는데도 누굴 내포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정수정은 나만큼 크게 숨을 한 번 내쉰 후 무방비한 내 아랫배를 주먹으로 쿡 한번 때리더니 먼저 간다며 등을 돌렸다. 정말 딱 자기 할 말만 하고 그렇게 걸어갔다. 그에 반해 나는 한동안 걸음을 뗄 수 없었다. 더이상 문태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김여주가 새삼 낯설었다. 오늘도 너는 그 사람 때문에 울었는데, 이제 안 좋아한다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바로 앞에 김여주가 눈을 감고 있다. 목울대가 울렁였다.
“김여주.”
“..”
“여주야.”
나지막이 그 소중한 이름을 불러보았다. 내 부름에 김여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만히 고른 숨만 내쉴 뿐이다. 아무렴 좋았다.
여주야.
여주야.
여주야.
여주야―.
애초에 우리가 친구가 아니였다면 나도 가능성이 있었을까. 처음부터 좋은 친구 말고 같은 반 남자애, 옆 반 남자애였으면 너한테 친구 말고 남자로 다가갈 수 있었을까. 오히려 우리가 서로에 대해 모르는게 더 많았다면 새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다 뜻밖의 설렘이 오가고, 나만 널 좋아하는게 아니라 너도 날 좋아하는.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여주야.”
허공에 뱉은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눈가가 시큰거려 눈을 감았다. 평생 친구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괜히 마음을 고백했다가 영영 잃을까봐, 나는 그게 무서워서 숨기기 급급했다. 근데 난 평생을 숨길 수 있을 만큼 작은 마음에 널 품은게 아니었다. 네 이름만 불러도 이렇게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더 큰게 덮치면 어떻게 감당할지 막막했다. 당장 지금도 그 하얀 이마에 입 맞추고 싶은데.
“..”
“나 지금이라도 너한테.. 기적을 바라도 돼?”
김여주가 작게 뒤척였다.
암호닉 |
맠둥이는망고 / 모찌 / 우재 / 오렌지 / 우재야 / 백도 / 예민보스 / 뽀로링 / 윤오빠 / 갈즙 / 빵재 / 복숭아모찌 / 정제육 / 맠내 / 숭아 / 채점마크 / 달탤 / 마크민형 / 김작곡 / 찌뽕 / 뚝딱이 / 도화 / 맠둥 / 꿀돼지 / 피터 / 션 / 자소서 / 뽀뽀 / 우리 재현이 / 문꼬리 / 8ㅁ8 / 바람개비 / 아치 / 초승달 / 담이 / 나유타 / 꽃길 / 뀨꺄 / 정재빵 / 갓재현 / ㅇㅈ / 설레임 / 윤오윤오 / 크림치즈빵 / 달빵 / 마끄리 / 마크라떼 / 맠리 / 크롱 / 머리끈 / 안돼 / 재현오빠 / 내달님 / 마시멜로 / 쏭쏭 / 뿡뿡이 / 당근가게 / 도랑 / 꼬미 / ㅇㅇㅈ / JHJH / 127 / 더꾸 / 고사미 / 이민형포마드 |
암호닉 빠지신 분 계시면 댓글에 적어주세요!
모두 너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