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동거
w.로스트
“어디 아파요?”
“......”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이른 아침, 부엌 테이블에 앉아 묵묵히 씨리얼을 씹던 여주를 향해 지민이 물었다. 덜그럭 거리던 수저 소리가 멈추고 여주는 냉장고를 열어 물이 반쯤 남은 생수통을 집어 든 지민을 잠시 올려다 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여주의 붉은 눈자위 보며 지민은 생수통 입구에 입을 갖다댄 채, 티가 나지 않도록 작게 웃었다.
“...아, 어젯밤에 잠을 좀 설쳐서요.”
여주는 그런 지민의 웃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피곤한 표정으로 씨리얼을 뒤적거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 여주를 보며 지민은 순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지민은 다 알고 있었거든. 여주가 속으로 자신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또 어젯밤 여주가 잠을 설친 이유에 대해서도. 대충 상상은 했지만 이렇게 상상 이상으로 재밌을 줄이야.
“미안해요.”
“....?”
“우리가 어제 좀 시끄러웠죠.”
지민은 갑작스런 자신의 사과에 조금은 당혹스런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이는 여주를 바라보며 혓바닥으로 슬쩍 입술을 훔쳤다. 진짜 사과라도 건네듯, 부끄럽고 난처하다는 듯이 뒷머리까지 긁적이며. 물론, 마지막 한 방까지 잊지 않고 날려주면서 말이다.
“저 때문에 잠 설친 거, 아니에요?”
과감한 지민의 도발이었다. 지민은 이번 기회에 여주를 맘껏 괴롭혀줄 요량이었다. 밤새 제 방에서 들려오는 그 민망한 소리들을 꿋꿋이 참아내며 잠에 들어보려 노력했을 여주의 모습이 너무도 뻔히 눈 앞에 그려져서. 지민은 어젯밤 여주가 아닌 다른 여자의 얼굴을 위에서 바라보면서도 머릿속엔 온통 옆 방에 있을 여주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래도 네가 계속 이 집에서 버티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와 같은 은근한 승부욕과 함께. 그런데,
“앞으로 주의할,”
“아뇨, 괜찮습니다.”
“...예?”
그런 여주의 반응이 지민의 예상과는 달리 흘러간 것이 문제였다. 여주가 어젯밤 잠을 설친 건 사실이었다. 단지, 지민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루트에서 잠을 설친 것이었을 뿐. 여주는 다음 주까지 마무리 지어야 할 영화 시나리오가 있었다. 느와르 물이었고 중간에 성인 남녀 간의 베드신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이걸 어째. 우리의 김여주, 스물 일곱 평생 제대로 된 사랑을 나눠본 적이 단 한번도 없는 순수 처녀 되시겠다. 다른 영화의 베드신을 봐도, 응큼한 내용의 소설을 뒤적여봐도, 남동생의 씀바귀 파일 안에 있는 동영상들을 이것저것 훑어봐도 영 리얼리티가 느껴지지 않아 감이 안잡히던 여주에게, 지민의 계획은 말그대로 여주에게 기회가 되어 다가온 것.
“엄연히 집 주인은 그 쪽이고, 전 그저 세입자일 뿐인데요.”
“......”
“전 신경쓰지 마시고 편하게 즐기세요, 편하게.”
물론 소리로만 대충 가늠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다른 미디어를 접했을 때보단 훨씬 여주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니 여태 지민이 자신에게 건네는 말들을 듣고있자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수밖에. 한 마디로, 자신의 심정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한 건 오히려 지민 쪽이 아니라 여주 쪽이었다. ‘제발 그만 두지 말아줘!’ 와 같은 속외침 또한 마음 한켠에 꼭꼭 숨겨가면서.
“그럼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
“아,”
설거지는 갔다와서 제가 할게요. 지민은 그 말을 끝으로 부엌 의자에 걸쳐둔 코트를 챙겨 현관으로 향하는 여주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주는 자신의 운동화 옆에 아무렇게나 쓰러져있는 빨간색 하이힐을 신발장 한켠에 조심히 넣어두는 매너까지 보이며ㅡ빨간색 하이힐을 보면서도 그저 고맙다고 생각한 여주였다.ㅡ 현관을 나섰고, 지민은 그런 여주를 자신의 두 눈으로 끝까지 쫓았다. 잠시 후, 지민의 방에서 나온 그 빨간색 하이힐의 주인공은 이미 여주가 나가고 혼자 부엌에 덩그러니 남겨진 지민의 뒤로 바짝 다가와 지민의 허리를 부드럽게 끌어안으며 작게 속삭였다.
“오빠, 굿모닝.”
“......”
“..오빠?”
“...진짜 골 때리는 여자네.”
*
안녕하세요 로스트 입니다.
처음이라 그런지 수위 조절이 어느정도까지 허용되는지를 잘 몰라 조금 고생했네요..8ㅅ8
아직 이 정도까진 괜찮겠죠?...(눈치
대충 정리하자면, 정말 일 밖에 모르는 시나리오 작가 여주 X 연애관이 조금 자유분방한 유명 작곡가 지민... 이랄까요
사실 별 생각없이 지르는 글이라 그냥 소소하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