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국가대표 연하남과 연애중
31 : 하계훈련을 대처하는 방법;한결같기를
w.스노우베리
"많이 아파?"
"요즘 감기가 유행이라더니 나도 예외는 아닌가 봐"
"이러고 혼자 집까지 갈 수 있어?"
강의가 시작하자마자 엎드려있던 친구가 결국은 얼굴이 벌게져 숨을 색색거렸다. 요즘 감기가 유행이구나. 몸이 튼튼한 것도 아닌데 생각보다 병치레가 없어서 잘 몰랐던 사실에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강의가 끝나고 집에 가야겠다는 친구의 말에 학기 초 때 자신은 2시간씩이나 통학을 해야 한다면서 자취를 하는 날 부러워했던 게 떠올랐다.
"남자친구가 바래다준다고 끝나고 온다더라"
"오늘 뒤에 교양 있다고 데이트 못 한다면서?"
"몰라,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다른 학과에 재학중인 남자친구를 둔 친구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아, 여자친구가 아파서 얄짤없기로 소문난 이교수님 교양을 째버리는 이 엄청난 패기. 친구는 그런 남자친구의 뒷일이 걱정이 되지 않나 보다. 나라면 못했을 텐데. 아파본 적이 아니, 막무가내로 내게 와달라는 부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상상이 가지도 않지만 그보다 애초에 정국이가 처한 상황을 너무나 잘 알기에 상상을 그려볼 펜조차 애당초에 손에 쥐지 못했다.
"괜찮아? 어서 집 가자"
히어로처럼 정말 딱 강의가 끝나자마자 친구의 남자친구는 강의실 밖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 대단한 얼굴 좀 구경 좀 하자 했는데 친구의 애인을 봤다가는 아픈 친구에게 못된 시기만 품게 될까 봐 그다음 수업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친구가 가버리고 동행인이 사라지며 핸드폰을 꺼내봤다. 오후 1시가 넘어가는 시간. 한참 정국이가 연습을 시작할 시간이다. 그것도 멀리서.
하계훈련을 기다리는 건 내겐 너무 가혹한 일이다. 나는 그렇게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12달 중 11달이나 볼 수 있다니!, 라고 생각을 전환시키지 못했다.
그래봤자 힘든 건 나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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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 오는데 떠오르는 거 없나? 친구?"
아까부터 우중충한 기분에 날씨라도 맑아서 다행이지 했는데 오늘은 우중충함의 끝을 찍으라는 의미인지 친히 비까지 내려주고 계신다. 어깨에 손을 거치며 답정녀 컨셉으로 내게 답을 요구하는 친구에게 술잔을 기울이는 모션을 보여주자 기다렸다듯이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집에 있어봤자 청승이나 떨게 분명해 못 이기는 척 가게 안으로 들어가 파전까지 시켰다. 비 오는 날, 파전에 먹걸리라니. 이 클리셰는 깨지는 적이 없네.
"난 술 별로"
"쓰읍, 흥을 깬다"
"막걸리는 별로야"
머리 아파. 젓가락을 들어 파전을 뒤적거리자 흥에 취한 친구는 날 흘겨보고서는 금세 잊고 어깨를 들썩거리더니 옆 친구 잔에 딱 넘지치 않을 정도로 막걸리를 부었다. 이런 즉흥적인 술자리에서마저 술을 따르는 사람도, 술을 피하는 사람도, 술을 즐겨마시는 사람도 변하는 게 없다.
"나 오늘부로 짝사랑 끝내려고"
"내가 말했잖아, 뭐 골키퍼 있어도 골 들어간다 이런 거 다 헛소리야"
안타깝게도 친구의 온고지순한 짝사랑은 아까 현 여자친구가 아프다는 말에 불같이 뛰어온 헌신적인 남자친구였다. 한 여자에 정착을 하지 못한다고 말이 돌던 남자애라서 희망을 품고 한 3주 정도 사귀다 말겠지 했는데 무슨 바람이 분 건지 그들의 연애는 6개월이 넘도록 순항중이었다. 변화는 예고된 것이 아니라 예기치 않게 누군가의 아픔을 건들기도 하고 당혹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물론 다양한 종류의 변화가 있지만 아직 채 무르익지 못한 사랑을 하는 우리에게는 이런 류의 변화가 가장 대표적이지 않을까 싶다.
"난 내가 그렇게 달려갈 수 있는데... 왜 난..."
오늘 달려온 남자애를 보고서는 완전히 마음을 접은듯싶었다. 원래 나처럼 술잔을 피하던 친구가 또 한 번 술잔을 드는 바람에 술자리에 변화가 불어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게 착 가라앉았다. 누군가는 갑작스러운 친구의 발언에 놀랐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몰래 지난 짝사랑의 아픔을 회상해 더듬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나처럼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누군가도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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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나 또한 그 진부한 정의의 범주 밖을 벗어나지 못한 채 익숙지 않은 분위기에 어느새 적응하고 있었다.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심장이 죄여오는 기분이 들었다. 이래서 정국이가 술 마시지 말라 했는데. 이 틈에도 정국이는 내 생각을 비집고 나오는구나. 아까부터 짝사랑을 접은 친구가 마음대로 전화 좀 해보고 싶고, 언제든지 만나보고 싶다고 구구절절 하소연을 하는데 무의식적으로 친구의 말에 공감을 해버린 탓에 자꾸만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듯해 가게 밖으로 나가자 비가 내려 쌀쌀해진 날씨 탓에 팔짱을 끼고 짧게 몸을 떨었다. 그러다 또 문득 든 생각. 혹시 전화를 걸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시도해 볼 생각조차도 못했었는데. 정국이랑 옛날에 이런 약속을 한 적이 있었다. 거의 연애 초반 때였으니 고등학생인 나는 여름방학 동안 학생의 본분에 충실할 테니 정국이는 선수로서 하계훈련에 충실하자는 그런 풋풋한 약속. 근데 해가 지나도 지켜져왔고 올해도 어김없었다. 학생의 신분을 벗어났음에도 난 그 약속을 왜 지켜야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왜냐면,
너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모두가 사랑하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나의 행복이 담겨있고,
모두가 사랑하는 국가대표로서는 너의 행복이 담겨있다.
내가 나의 행복을 탐하다가
너의 행복을 무너뜨릴까 봐
그게 항상 겁이 났던 거다.
그래서 난 그 두 모습 사이에 선을 더 선명하게 그었다.
그 선을 감히 넘어갈 생각도 못하도록.
하지만 그렇게 억지로 그어대던 선에도 한계가 있는지 오늘따라 자꾸 핸드폰이 거슬리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한숨이 나왔다. 그러다 신발 앞코로 애꿎은 우산통을 툭 쳤다. 어쩌면 낮에 아픈 친구에게 품을 뻔한 못된 시기는 그동안 혼자 쌓아오던 서운함이 변질된 게 아닐까 싶었다. 안다, 정국이는 내 서운함에 기여한 게 없다는 걸. 그래서 더더욱 선 뒤로 꽁꽁 숨겨놨는데, 오늘은 왜 자꾸 못난 마음이 튀어나오려 할까.
전화를 안 받을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괜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전화해볼까. 아, 솔직히 그냥 확 통화버튼 눌러버리고 싶다. 핸드폰을 들고 한참을 고민을 하다 결국은 배경화면에서 통화 중 화면을 바뀌지 못한 핸드폰을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었다. 부재중 전화 한 통이라도 떠 있으면 평소랑 다른 내 행동에 당황할 정국이가 눈에 선하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저 서운해할 내가 뻔해서.
"공부가 아니라 운동을 했어야 했어"
거센 빗소리에 다시 한번 내 못난 마음은 갇혀버리고 마음을 품은 빗방울들은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져 부서졌다.
"청승맞게 웬 비 구경이야"
정체 모를 곳으로 흘러간 비가 증발되어 다시 구름을 형성하는 것처럼
내일이 되면 나 또한 다시 돌아가겠지.
"무슨 일 있어?"
그리고 구름이 무거워지면 다시 비가 내리듯
오늘 같은 날이 또 오겠지?
만약 그렇다면
그때는 큰비가 내렸으면 좋겠어
지금처럼 소나기가 아닌
"아니, 아무 일도 없어"
이 못난 마음이
돌아가지 못하도록,
다 쓸어내려 가도록.
너무 빨리 와서 놀라지 않았을까 감히 예상 해봅니다. (저번 글에 폭주기관차라고 했습니다^ㅁ^) 정국이가 안 나와서 놀랐겠죠? (설마설마 안 나오겠어 했는데, 진짜 안 나오다니...했겠져...ㅎ...ㅎ?) 하계훈련을 간 정국이를 눈앞에 짜잔! 시키기에는 너무 현실 파괴라서 넣어뒀어여. 글 속 정국이의 여자친구 ≠ 벤츠녀, 천사...등등 저.스.트 평범한 여자인간 입니다. 그러니깐 행복하다가도 갑자기 서운해질 수 있고, 그게 사람 마음이잖아여(찡긋) - 암호닉은 받지 않습니다! - 아, 왠지 까만 배경에 흰 글씨니깐 (제 꿈) 굿나잇 인사하고 싶다. 오늘 좋은 꿈, 행복한 꿈, 예쁜 꿈 꾸세요. 다음 날에도 사랑만 가득하세요, 독자님들!오늘도 열어주세요(삉)
오늘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๑❛ڡ❛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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