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국가대표 연하남과 연애중
33 : 뜻밖에 색칠놀이
w.스노우베리
"아주 화면 속으로 들어가시겠어요~"
"..."
"와, 이제는 대답도 안해"
소파에 누워있는 정국이는 스마트폰 게임의 일일 리퀘스트를 깨시느라 아주 바쁜 상태이다. 아예 작정하고 그동안 밀린 리퀘스트들을 끝낼 작정인지 배터리 충전기까지 꼽았다. 그리고 난 대신 포크로 사과를 내리찍었다.
"아...아!흡! 아... 좀만 더 하면 됐는데"
"아...?"
"또 안 하세요? 대신 시작 버튼 눌러줘?"
"...언제부터 보고 있었어?"
"아까 전전전부터."
전에 꼭 악센트를 줬다. 처음에는 이어폰 두 쪽 다 끼고서는 잘도 대답하더니 아까는 내 부름에 응하지도 않길래 언제 저 화면에서 눈을 떼나 싶어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정국이는 살살 눈을 휘어 웃으며 포크에 찍혀있던 사과를 슬쩍 보고서는 한 입 베어 물어갔다.
"사과는 언제 깎은 거야"
"글쎄, 하도 오래 기다려서 기억도 안 나네"
"그래서 다 끝낸 거야?"
"으... 아니..."
정국이는 소파에서 내려와 옆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알바는 해야겠고, 이 한여름에 집에 나가서 일사병으로 죽고 싶지 않아 간단히 문서 정리하는 나름 꿀알바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끝이 나지 않는 문서들의 행렬에 혼이 빠져나갔다. 사과는 열심히 씹느라 튀어나온 정국이의 볼을 꾹 누르자 알 수 없는 말들에 진저리가 난 건지 눈을 꼭 감고서 고개를 저었다.
"이건 도울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눈 아파..."
노트북의 화면 때문에 눈에 피로가 쌓여 눈을 감기도 뜨기도 힘들었다. 얼굴을 정국이의 어깨에 파묻어버렸다. 그러자 정국이의 팔이 어깨를 감싸왔다.
"얼마나 더 남았어?"
"한 한 시간 분량 정도"
"어차피 할 거 좀 쉬다 해"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반드시 끝내야 해서 못 만날 거라고 말했더니 정국이는 시무룩한 목소리로 그냥 옆에 가만히 있겠다로 내 마음을 약하게 했고 정말로 옆에서 가만히 구경하다 내가 잠시 쉬기만 기다리는 똥강아지같은 모습에 마음이 아파져 일을 질질 끌 수 없었다. 머리를 질끈 묶어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리자 정국이는 말리지도 못하고 다시 소파 위로 슬금슬금 기어올라갔다.
.
.
.
"미친, 다음부터 절대 안해"
마지막 문장에 온점을 찍음으로써 드디어 끝이 났다. 기지개를 한 번 펴고 시간을 확인하니 한 시간은 무슨 한 시간은 훌쩍 넘겼다. 노트북에 쏠렸던 온 신경들이 자유로워지자 왜 뒤에 소파에서 정국이가 열심히 게임을 한다고 내는 화면을 두들기는 소리가 안 나나 싶어 몸을 돌렸다.
왜 이렇게 조용하나 했더니 정국이는 후드티 모자를 눌러쓴 채로 자고 있었다. 아직 해가 안 떨어졌으니 낮잠 자는구나. 집에 들어오자마자 귀신의 집 같다며 암막 커튼을 시원하게 걷어버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나른한 햇빛에, 덥지 않게 선선한 바람을 보내오는 선풍기 덕분에 잠이 든 게 분명하다. 이어폰을 빼줄까 하다 괜히 잠에서 깨울까 가만히 내버려 뒀다.
요즘 재미들인 일이 있다면, 그건 바로 동계 스포츠 선수들 관련 영상을 찾아보기다. 정국이는 그때 토크쇼 빼고 딱히 방송활동이 없길래 다들 그런 줄 알았더니, 웬걸 다른 선수들은 되게 예능도 많이 나가고 인터뷰도 굉장히 많이 했다는 걸 최근에 알게됐다. 오늘도 짧은 클립영상을 보는데 그 영상에서 나오는 선수가 금색 물건을 소지하면 경기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그런 속설이 있다고 유쾌하게 말하고 있었다.
"금색..."
뒤를 돌아 아직도 잠에 곤히 빠져있는 정국이를 봤다. 금색을 한 액세사리를 두르거나 옷, 신발을 본 적이 없는데. 그러다 괜히 집에 있는 금색깔의 매니큐어가 생각났다. 마침 자고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서랍에 저번에 부담스럽다고 내팽개친 매니큐어를 챙겨들어 실실 웃으며 정국이에게 다가갔다. 핸드폰을 쥐고 있는 오른손은 포기하고 왼손을 붙잡았다. 안녕, 희생양.
"아직도 손톱 물어뜯네"
매니큐어 통을 조심스레 열어 정국이를 한 번 확인하고 다시 정국이의 손을 고쳐잡았다. 남자 손톱은 여자보다 커서 그런가 바르기는 훨씬 수월했다. 새끼손가락만 바르고 보는데 웃겨 혼자서 끅끅거렸다. 그리고 입술을 앙 다물어 웃음을 삼키고 그 옆 손가락을 잡고 다시 한 번 작업을 시작했다. 물론, 정국이가 아직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한 뒤에.
"뭐야, 왜 이렇게 둔해"
이렇게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는데 잠도 안 깨고 뒤척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조금 더 가감해지기로 했다. 금색 대신 검은색 매니큐어를 들었다. 검은 네일이 너무 예뻐 보여서 샀는데 진짜 너무 안 어울려서 서랍 안에 짱 박아뒀는데 이렇게 다시 쓰게 될 줄이야.
"카, 색깔 조합 괜찮네"
"어, 어!"
아직 죽지 않은 실력에 정국이의 왼손을 잡아 요리조리 바라보며 감탄을 하는데 갑자기 손이 쏙 빠져나갔다.
"냄새..."
미간을 찌푸리더니 눈을 슬며시 떴다. 매니큐어 특유의 냄새가 정국이를 깨워버렸다. 정국이는 이어폰을 빼더니 눈을 느리게 감고 다시 뜨고서는 내 노트북을 가만히 바라봤다.
"다 했나 보네"
"손에 그거 뭐야?"
이게 검지 손가라도 발라볼까 하고 들었던 매니큐어를 놓지 못한 채 정국이랑 눈이 마주쳐버렸다. 다행히 아직 내 만행은 모르는 듯 싶었지만.
"뭐야, 이거"
소파를 짚고 일어나다 왼손 손톱에 칠해진 아주 강렬한 금색과 검은색의 조합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해 미간을 찡그리다 못해 그냥 얼굴을 찡그려버렸다. 조용히 손에 쥔 매니큐어를 내려놓았다. 힐끔 쳐다봤던 마주친 정국이의 시선에 티 나게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아, 오늘의 색칠놀이는 조기마감.
"...이쁘지... 않아..?"
"아니, 이거 누나가 한 거야?"
"아니, 이거 누나가 한 거야?"
저것은 잠에 덜 깨서 잠긴 목소리다. 그런 것이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정국이는 제 손톱이 많이 낮설었는지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러더니 어이가 없었는지 김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더니 눈을 비볐다.
"색깔이, 진짜, 이건 무슨"
"골드 앤 블랙, 간지나지"
"겁나 간지나네"
간지 두 번 났다가 바닥이랑 연애를 할 듯싶네. 정국이는 일단 잠 좀 깬다고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을 갔다. 그 사이에 아까 정국이에게 들켜버려 조용히 내려놨던 빨간색 매니큐어를 들었다. 아, 이것만 발랐으면 금상천화인데.
"누나, 그거 내려놔"
세수를 한 덕에 살짝 젖은 앞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위협적으로 경고했다. 그냥 만진건데. 정국이는 걸어와 맞은편에 털썩 앉더니 또 자신의 왼손을 뻗었다.
"아이고, 예쁘다!"
"그, 뭐지, 지우는 거 집에 있어?"
"그, 뭐지, 지우는 거 집에 있어?"
아세톤을 찾는 듯싶었다. 당연히 있긴 하지만 지금 당장 주고 싶지는 않았다.
"바른 거 검지까지만 발라보면 안돼?"
"여기서 ㄷ.."
"그리고 바로 지우자! 응?"
정국이의 왼손을 붙잡고 세상에서 제일 아련하게, 불쌍하게 눈꼬리, 입꼬리, 그냥 얼굴에 있는 모든 꼬리라는 꼬리는 축 내렸다. 정국이는 고민하는 듯 미간을 좁히더니 결국 내게 시원하게 오케이를 외쳤다. 그 대신 빨간색 매니큐어는 절대로 바르지 않겠다는 조건 하에.
"내가 이거... 너 금메달 많이 따라고 해주는 거야"
정국이는 조용히 내게 손을 내민 채 턱을 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난 엄지손가락을 옮겨탔다.
"그래서 금색이야?"
"으응, 어, 움직이지 마"
"연습해야겠네"
신경은 온통 엄지손가락에 쏠려있는 와중에 슬금슬금 올라가는 정국이의 입꼬리도 아슬아슬하게 눈에 담겼다. 엄지손가락까지 완성해 고개를 들자 정국이는 이도 저도 아닌 찝찝한 표정으로 변신한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어우, 너무 잘 한 거 같아. 자화자찬을 하며 다시 한 번 매니큐어통을 열어 정국이처럼 내 왼손에 바르기 시작했다. 정국이와 다르게 작은 손톱이라 금방 끝내고서 오른손에도 바르려 하자 역시나 오른손잡이의 비애... 왼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줘봐"
"왼손 아직 안 말랐어"
"손 말고 매니큐어. 그렇게 해서 언제 다 해"
정국이는 자세를 고쳐잡고서 내 오른손을 제 눈높이까지 들고 갔다. 그리고 신중하게 바르기 시작했다. 근데 가면 갈수록 집중하느라 정국이의 고개가 내려갔고 나 또한 그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고개를 낮췄다. 중간중간에 입에 침을 바르는 게 얼마나 꼼꼼히 바르고 있는지 말해줬다. 어차피 그 색 나랑 안 어울려서 지울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열심히 하니깐 또 못 지우겠네.
"와, 나 소질 있는 거 같아"
새끼손가락까지 끝낸 정국이가 고개를 들고서 내 오른손을 보더니 만족한 듯 감탄을 내뱉었다. 마음대로 자는 동안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라놓은 것에 복수를 했을까 싶어 불안한 마음으로 내 오른손을 보는데 예상과 다르게 삐죽삐죽 튀어나와 손톱 옆에 있는 살에 매니큐어를 칠하지도 않았고 심하게 덕지덕지 바르지도 않았다.
"뭐야, 처음 아니지?"
"내가 이런 걸 어디서 해"
"쓰으-"
"쓰는 무슨, 주변에 이런 거 하는 여자도 없어"
"여자 선수들도 꾸미고 싶은데 하시겠지-"
다시 한 번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물론 그런 일이 없다는 걸 잘 알지만
"훈련할 때만 마주치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
이렇게 말로 듣는 건 꽤나 기분 좋은 일이다.
"이제 아세톤 좀 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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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정국이 n
(오늘은 오픈'ㅅ')
"너 손톱에 그거 뭐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뭔데, 손톱에 뭘 칠한 거야"
"보여줘요?"
"금색하트"
"제수씨?"
"누나 말고 누구 있겠어요."
"진짜 제수씨 덕분에 별 모습을 다 본다."
"그러게요, 손에 색칠놀이까지 할 줄은... 몰랐네요."
"여러모로 대단해, 제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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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월요일 알림이 왔습니다^ㅁ^
어...있잖아여... 독자님들, 그날의 정국이 몇인지 기억이 안나요...(ू˃̣̣̣̣̣̣︿˂̣̣̣̣̣̣ ू)(반성)
뭐, 그래도 오랜만에 그날의 정국이 쓰니깐 기분이 좋다!!
(허나, 짤 고갈과 날림으로 모든 대화를 채우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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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은 당분간 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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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따라 오는 시간이 왜 이런가 싶으시죠?
사실, 저는 슬슬 잘 시간입니다. 'ᴗ'
아무튼! 독자님들, 따듯한 한 주의 시작 보내세요!
눈 조심, 추위 조심, 감기 조심!(약속!)
오늘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๑❛ڡ❛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