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날아서는
꽃 한 송이를 쥐고 흔드노라
정처없이 흔들리는 줄기가 꺾어져
결국에 흘러버리는 눈물 한 방울
또다시 밤이 찾아오면
그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곁을 스쳐지나는
야속한 그, 나비 한 마리
- 소리꾼, '흔들리다'
택운의 눈동자가 순간 정적에 휩싸인다. 태양은, 여전히 택운을 집요히 바라보고 있다.
아, 그런거였나. 역시 그랬었나. 멈추었던 호흡을 길게 내쉬었다.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수긍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당신은 나의 몸뚱아리를 원하고 있구나. 다른 이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게 말이다.
학연의 표정은, 한 치의 미동도 없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바닥에 끌리는 의복 끝 자락의 소리만이 잔잔히 울려 퍼질 뿐이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리도 나를 원할까.
이 쓸모 없는 몸이, 무엇이도 그리 좋아서?
흡사 멍한 표정이 되어버린 택운의 안색에 학연이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나, 귀엽다.
장난 한 마디에도 이렇게 반응을 하는 자라니, 짧게 스미던 미소가 점점 크게 번져간다.
하, 하하. 조용한 공간을 가득 채우는 학연의 목소리가 매우 이질적이었다.
" 뭘 그리 놀라느냐, 농이다. "
" ……. "
" 정말로, 재미있는 자로구나. "
그럼에도 택운의 굳은 표정은 풀릴 기색이 없다.
무언가에 깊게 잠긴 듯이, 그야말로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학연의 짙은 밤색 머리가 그의 손가락에 얼기설기 얽혀 흩어진다.
제 머리를 헝클어뜨린 학연이 택운을 향해 다시금 입술을 열었다.
" 노랫 소리가 매우 아름다웠다. 정말로. "
" ……. "
" 사내가 아니라고 믿어질 만큼. "
진중하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그 특유의 온기가 사방으로 뻗쳐 나간다.
살짝 열려 있던 택운의 붉은 입술이 이내 굳게 닫혔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눈동자도, 학연의 얼굴에 똑바로 고정된다.
' 태양의 용안을 봐서는 아니된다. ' 라는 무언의 칙령도 어긴채로. 정말이지 무언가에 혼이 나가버린 것 같은 폼새였다.
그래, 이 쓸모 없는 몸뚱아리를 원하는 자가 그리도 많았었지.
그 옛날부터, 나를 바라보는 이들마다 욕정에 번들거리는 시선. 추잡스러운 피라고 욕하면서도 숨길 수 없었던 그 눈동자들.
바보 천치가 아니라면 그 누구든 느낄 수 있었을 터.
택운의 흰 목 울대가 일렁였다. 그래, 그렇다면.
..........
잘만 이용한다면, 무언가를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 짝에도 쓸모 없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쓸모 있게 만들면 되지 아니할까.
조금은, 위험한 상상을 머릿 속에 띄워본다.
택운의 말을 기다리는 듯이, 학연은 그저 말없이 웃으며 택운을 바라보고 있다.
택운의 시선을 전혀 불쾌해하지 않는 태양의 용안을, 감히 제 자신이 바라보고 있다.
태양조차도 숨길 수는 없었다.
농이라고 치부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달랐어도, 분명 저에 대한 욕망이 느껴졌다.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래. 눈 앞의 이는, '태양' 이다.
어쩌면, 무엇이든 이루어 줄 지도 모르는, 방대한 권력의 남자.
택운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 소인을, 원하고 계십니까. "
" ……. "
" 가지고 싶다면, 드리겠습니다. "
" ……. "
" 그러니. "
당신이 이루어 주셔야 겠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이를, 그토록 가슴에 품었던 이를, 이제서야 입 밖으로 꺼내어 본다. 가슴이 저릿했다.
죽지 않았겠지. 죽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언젠가는, 나의 뒤를 따라온다고 약조했으니까.
어찌보면 이것은 말도 안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할 수만 있다면. 이 몸을 바쳐서라도.
해맑게 웃던 얼굴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듬직한 등, 옆구리에 차고 있던 기다란 장검, 그리고 나와 닮은 새카만 머리카락까지.
모조리 다,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데, 너는 대체 어디에 있는걸까.
학연과 택운의 시선이 질척하게 얽힌다.
" 제, 잃어버린 이복 형제를 찾아 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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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불맠이.. 다가온다..
상혁이랑 택운이 진짜 이복형제 아니죠!
택운이가 태양에게 말할 때 이렇게 이야기한 거예요 ㅎㅅ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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