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 푸르던
"선배. 진짜 누구에요?"
"오빠 언제 남자친구 사귄 거야? 오빠보다 예쁘게 생겼는데?"
"우리 선배 완전 이쁘거든요!"
그래. 어디까지 하나보자.
어느새 나는 관전을 한다는 마음으로 팔짱을 낀 채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곽아론 진짜 오랜만에 보네. 작년에 잠깐 한국에 왔을 때 이후로 처음이니 거의 1년만이었다.
이모한테도 연락 없었는데. 급하게 들어온 건가?
"맞다. 오빠. 아직 인사 안했어."
"안해도 되거든."
"동방예의지국이래잖아."
갑자기 곽아론이 다가와 내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아나. 괜찮다니까. 미간을 찌푸리며 볼을 닦아내는데 너와 눈이 마주쳤다.
와. 이런 표정은 처음이었다. 너는 정말 말 그대로 딱딱하게 굳은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아무래도 오해를 단단히 한 듯 싶었다.
반존대 연하남이 설레는 이유
11
w. 갈색머리 아가씨
"...사촌이요?"
"응. 완전 애기때부터 미국에서 살고있는 사촌."
"... 근데 왜 오빠라고 해요?"
"쟤가 나보다 생일 빠르다고 나한테 어른들이 오빠라고 불러야한다는 거야. 그거 짜증나서 그냥 쟤한테 나보고 오빠라고 부르라 했어."
"에?"
"어차피 그 때는 쟤도 한국말 잘못할 때라 그냥 오빠오빠 하더라. 뜻 알아도 입에 붙었는지 그냥 오빠오빠 하고."
"..."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네 입술은 들어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삐칠 일인가 하고 생각을 해보았지만 음... 삐칠 일이 맞았다.
생각해보자. 이 상황이 내 입장이었으면... 화날 만 하지. 삐칠 만 하지. 때문에 나는 네 옆에 붙어서 최대한 열심히 우쭈쭈 해주고 있었다.
우리 집에 들어와서.
곽아론은 처음 오는 자취방이 신기한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래봤자 그다지 넓지도 않은 곳이었기에 구경할 것도 없었지만.
이제는 아예 책장 앞에 앉아서 책 하나하나를 꺼내보고 있었다. 저런 인간한테 내가 어떻게 오빠라고 부르냐고요.
심지어 처음 봤을 때 곽아론은 나보다 키도 덩치도 작았었다.
어릴 때는 여자아이들이 발육이 더 좋아서 그렇다지.
어느날 갑자기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나보다 키도 덩치도 커져있어서 놀랐던 적도 있었다.
그 뒤로 곽아론은 혼자 쑥쑥 자라났지만. 에라이. 나쁜 놈.
"왜."
"잠깐은 삐쳐있는 채로 놔둬줘요."
"혼자있고 싶어?"
"그건 싫고."
"그럼 어떻게 할까?"
"그냥 여기 있어요. 사촌님이 불러도 가지 말고."
"쟤 나 부를 생각 없을걸?"
지금 책 보느라 정신이 없거든.
자취방이 아니라 본 집에 놀러올 때도 만날 책장 앞에 붙어있던 사람이었다.
한국어 연습하는 데는 책읽는 거 만큼 좋은 게 없다나.
네 앞에 마주보고 앉아 너를 바라보았다. 삐쳐서 그런 거긴 한데 입술이 댓발 나온 거는 좀 귀여운 거 같기도 하고...
그냥 삐친 거 풀어주지 말까? 생각보다 귀엽잖아.
안그래도 볼살만 살짝 올라있는 얼굴이 심술보 붙어서 퉁퉁 부어있는 게.
다음에 라면 먹고 자라고 할까. 다음날 사진 보내달라하고.
"왜 그렇게 봐요?"
"너 보니까."
"..?"
"찐빵 땡긴다."
"살쪘다는 거 돌려서 말하는 거에요?"
"네 입에서 살쪘다는 말이 나온다는 거 자체가 코미딘거 알지?"
"요즘 좀 찐 거 같기도 한데..."
"내가 해야 할 말이거든."
"선배는 좀! 쪄야 하거든요."
"오빠 어릴 때는 진짜 통통했는데."
"..."
"..."
내가 piggy라고 놀렸다가 엄청 맞았어.
왜 우리 선배가 piggy에요!
동글동글하고 분홍분홍해서 귀여웠거든.
그건 좀 인정... 아 그래도!
사진 있는데 볼래?
있어요?
지금 이 상황은 무슨 상황이지.
어느새 너는 곽아론의 옆에 딱 달라붙어있었고 곽아론은 핸드폰으로 무언가(아마 내 어릴 적 사진)를 너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저기. 남의 사진 함부로 보여주는 거는 초상권 침해 아닌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냥 턱을 괸 채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들어갈 기미가 전혀 없었던 네 입술은 쏙 들어가 이제는 곽아론에게 이것저것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좋단다. 지금 그 여친님은 혼자 이렇게 덩그러니 있는데.
그렇게 좋을까. 푸스스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누가 왔으니 간단한 주전부리라도 꺼내긴 해야지. 곽아론은 자고갈 거 같고 너도 바로 집으로 갈 거 같지는 않으니까.
다행히 전에 사둔 간단한 과일이 있었다. 이거라도 먹고 떨어져라 해야지.
생각했던 것보다 너는 곽아론이랑 빨리 친해졌다.
조금은 김이 샐 정도로. 나는 또... 드라마에서처럼 머리채 잡고 싸우고 그럴 줄 알았지.
역시 드라마는 드라만가보다. 현실하고는 달라.
-
"진짜 안데려다줘도 괜찮아?"
"그럼요. 선배 얼른 들어가요."
"곽아론이랑 같이 나가면 되는데."
"밤공기 차요. 들어가서 쉬어요."
"그 밤공기 너도 마시고 있거든."
벌써 10분째였다. 이럴 시간에 그냥 같이 나가서 후딱 데려다주고 집 오는 게 더 빠르겠네.
본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데려다줘야 한다 말을 하면서 정작 내가 데려다준다는 건 왜 안된다는 거지?
물론 여자인 내 밤길이 더 위험하다는 건 사실인데 지금은 곽아론도 있잖아.
"선배 피곤할까봐 그러죠."
"지금 이러게 실랑이 하는 게 더 피곤하거든."
"오빠! 갔다 오는 길에 편의점 들리자."
10분을 넘어서 15분째로 달려가던 이 실랑이는 곽아론의 말 한 마디로 막을 내렸다.
곽아론은 어디서 찾았는지 내 후드집업(일부러 크게 사서 곽아론에게도 맞는 사이즈였다.)을 입은 채로 배시시 웃고있었다.
그제야 너는 입을 꾹 다물었다. 누가봐도 밖으로 나갈 차림이었으니.
1 대 2의 결과는 2의 승리였다.
"선배 과제때문에 잠 거의 못잤다그래서..."
"그런 사람이 주말에 데이트해요! 라면서 불러?"
"그건 정말로 필요성이 있었다고요."
"지금도 있거든."
"확실히 한국이 치안이 좋아. 밤에 막 돌아다니고."
"그것도 아니야.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거지."
"그래?"
"확실히 여자분들한테는 더더욱 위험하죠. 상대적으로 남자보다 힘이 달리는 게 맞으니까."
집에 데려다주러 가는 길 내내 너는 밤길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 열심히 토로했다.
곽아론은 신기한지 고개를 끄덕여가며 네 말에 호응을 해주었다.
듣는 내내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그러면 너는. 너는 안위험할까봐?
그래. 알고는 있었다.
상대적으로 남자에 비해 여자가 더 위험하다는 걸. 그리고 너는 그래서 나를 걱정한다는 걸.
사실 이 전제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를 의지하지 못한다거나 너를 믿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냥 너에게 짐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이 걱정이 싫은 거였다.
너를 만나기 전에는 혼자 밤에 잘만 돌아다니던 나였다. 물론 부모님은 걱정을 하셨지.
하지만 이렇게 옆에서 대놓고 걱정하고 그랬던 사람은 없었단 말이야.
어쩌면 그냥 반감일수도 있었다.
나는 혼자 잘하는데 갑자기 네가 왜? 지금까지 잘해왔는데? 지금까지 나는 그럼 잘못했다는 거야?
나도 안다. 어이없고 유치한 말꼬리잡기라는 걸.
이상한 사람들이 행한 이상한 행동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애꿎은 너에게 푸고 있다는 걸.
참 이런걸 생각하면 나도 참 못난 사람인데 말이야.
고개를 돌려 곽아론과 열심히 한국의 치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너를 보았다.
아직 어려운 한자어는 이해하지 못하는 곽아론에게 너는 하나하나 뜻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이러니 나를 걱정하는 건 당연한 거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네 팔을 끌어와 나에게 팔짱을 끼게 했다. 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돌아보았다.
굳이 어떤 말을 하지 않고 꿋꿋하게 너랑 팔짱을 낀 채로 앞으로 나아갔다.
너 역시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다시 곽아론과의 토론을 이어나갔다.
키 때문에 조금 불편했다는 건 비밀이었다.
-
"오빠 좋은 사람 만났네."
"고마워."
"너 칭찬한 건 아니고."
"그래. 그러시겠지."
"난 오빠 혼자 늙어뒤질 줄 알았는데."
"워딩이 좀 세다?"
"그, 그 뭐지. 독신?"
"독신주의자?"
"응. 그거인줄 알았어."
나도 내가 독신주의자인줄 알았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기댈거라는 건 상상도 못했었다고.
어떻게 보면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한테 이렇게 마음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도 참 어려운데 말이지.
네가 너무 잘난 탓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도 몰랐지. 푸스스 웃으며 기지개를 켰다.
"편의점 간다했지?"
"이름아."
"어?"
곽아론은 내 이름을 잘 부르지 않았다.
부를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대부분 오빠, 또는 너 라고 불렀지.
왜 그러나 싶어 돌아보자 곽아론은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 뚫어져라 바라보는 건 다들 어디서 배워오는 걸까.
왠지 눈을 마주치면 안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저 이름 하나 불렀다는 이유로 사람의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보인다는 것이.
"다행이네."
"뭐가?"
"뭔지는 오빠가 더 잘알텐데?"
내 말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고 곽아론은 그대로 편의점 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멀뚱히 서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잘 알기는 개뿔이...
잘 알지. 그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었을 뿐.
이런 것도 강박증에 속하려나. 괜히 발로 땅을 툭툭 차며 편의점 쪽으로 걸어갔다.
곽아론이 뭘 사려는지는 알고 있었다. 맥주겠지 뭐.
"샀어?"
"응. 오빠 것도 샀어."
"한국 맥주 맛없다며?"
"그래서 수입으로 샀어."
얼른 가서 먹자.
곽아론은 신이 났는지 콧노래까지 부르며 앞장서서 나아갔다.
방금 전 내 이름을 불렀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이래서 여자들이 좋아하나. 머리를 긁적이며 곽아론의 뒤를 따라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밤공기는 더 차가웠다.
-
(안피곤해요?)
"괜찮아."
(근데 웬일이에요?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하고.)
"끊을까?"
(아니요. 좋아서.)
곽아론은 일찍 잠들었다.
장시간 비행을 마치자마자 이모한테 인사만 하고 바로 왔다니 피곤할만 했다.
아직 남아있는 맥주를 홀짝이며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을 줄 몰랐는데 바로 받았다.
조금 식어버린 맥주가 씁쓸했지만 귓가로 들려오는 네 목소리는 나른하니 좋았다.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아몬드 하나를 입에 쏙 집어넣었다.
"잘 들어갔지?"
(선배가 데려다줬으면서.)
"그냥 생각나서 한 말이야."
(선배.)
"응."
(내가 데려다준다고 하는 거 싫어요?)
"..."
(난 그냥 걱정되니까...)
"알아."
(...)
"그냥... 그냥 내가 괜히 예민한거야."
(선배.)
"응."
(힘든 거 있으면 말해요.)
"알았어."
(나도 힘든 거 있으면 말할게요.)
"뭐가 힘들어?"
(아니 그니까 교수님이 있잖아요...)
너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다다다다 내뱉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가며 네 말을 들어주었다.
어휴. 진짜. 이럴 때보면 진짜 바보같다니까. 이 와중에도 내가 또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이렇게 쏟아내는 거겠지.
물론 네가 안힘들었다는 건 아니지만.
남자친구가 눈치가 빠르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었다.
정말로. 복받은 일이었다. 어쩌면 나에게 조금은 과분할 정도로.
-
〈암호닉>
짱요 / 응 / 뿜뿜이 / 책상이 / 너우리 / 0713 / 모기 / 아몬드 / 황제님충성충성 / 책민현 / 샘봄 / 붐바스틱 / 아가베시럽 / 다녜리
수 지 / 과자 / 민현29 / 윙팤카 / 0846 / 슬 / 융융 / 댕댕민현 / 애정 / 숨 / 뿌얌 / 독자13님 암호닉 적어주세요
레인보우샤벳 / 사이다 / 쟈몽 / 하나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인데
우리 민현이 막 너무 사기캐는 아니에요...
너무 비현실적이라 그렇게 느껴지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얼굴부터 사기임)
적어도 여기에서는 평범한 절대 얼굴이 평범하지 않은 대학생 1이랍니다.
물론 여주도 마찬가지에요.
우리의 여동생은 알고보면 여주 생각할 줄 아는 그런 오빠랍니다.
정작 본인이 여주한테 오빠라 부르는 게 함정...
투표 결과가 대충 나온 거 같아요.
많은 분들이 소나기를 보고 감명을 받으셨나봅니다...
예쁜 부기 웃게 해줘야겠지요?
예또 민기는 다음 기회에 단편으로 오던 하겠습니다!
투표해주신 분들 다들 넘나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