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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종2품 숙의의 직분을 받아 전하의 후궁이 된 한家의 …"
추운 겨울 아침, 모든 궁녀들을 교태전 앞에 모아두고 입을 열었다. 결국 한씨의 성을 가진 그녀는 후궁의 첩지를 받아 종2품 숙의가 되었고, 어영이는 이 또한 내명부의 일이라며 내게 직접 말해야 함을 일렀다. 그렇게, 입을 열어 내 입으로 고했다. 그녀가 후궁의 첩지를 받게 되었음을.
"……이만 물러들 가세요."
아침 일찍부터 모은 궁녀들을 몇 문장을 내뱉은 후 흩어지라 명했다. 이제 가 보아도 좋다고. 그녀들은 내 말에 일사분란하게 흩어졌고, 그녀 또한 내게 살짝 고개를 숙인 후 인사를 하고는 돌아섰다.
교태전 안으로 들어오자, 나보다 먼저 어영이가 입을 열었다.
"저런 싸가지 없는, 아니 중전마마께서 오늘 입으시지도 않은 붉은 색 저고리를 입은 것은, 심보가 못돼도 너무 못된 것 아닙니까?"
"…괜찮아."
그녀는 붉은 색 저고리를 입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주 건방졌다. 궐 내에서 국왕과, 그의 비 말고는 잘 사용하지 않는 붉은 색 비단으로 된 옷을 입고 오다니. 이곳에 몇개월간 머물러 잘 알지도 못하는 법도를 배운 내 눈에 거슬리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곧 접혔다.
그래, 저 여인도 이제는 왕의 비이구나.
*
"들라 하시겠습니다."
"그래."
가만히 앉아서 앞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든다고 한다. 주어가 누군지도 듣지 못 한 채, 들라고 했다. 지금 이 상황에는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침묵을 깨 줄 이가 왔으니. 그리고 그는
"할 얘기가 있으니 잠시 나가 줘 어영아."
이동혁이었다.
어영이는 이동혁의 그 말을 들은 뒤 내게 한 번 인사를 하고 문을 연 뒤 나갔다. 이제, 이 넓은 교태전에는 나와 이동혁. 이 둘 뿐이다.
"정신 나간 새끼 아니야"
내 앞에 앉아서, 다짜고짜 욕부터 하는 이동혁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그가 한 번도 험한 말 내뱉는 건 본 적이 없는데. 그는 표정을 굳힌 채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후궁?"
언제 벌써 거기까지 얘기가 퍼진 것인지. 그는 화를 가라앉히지 못한 채 헛웃음을 터뜨리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너 속상할 거 아니까 지금 화 못 내겠는데,"
"……"
"내가 너 후궁 소개시키라고 궁에 보낸 줄 알아?"
"…괜찮아. 환국 때문이니까."
와중에 나 때문에 속상함을 풀지 못하고 억누르고 있는 그가 고마웠다. 그래, 그는 내가 비로 있는 국왕이 후궁을 맞았다는 사실에 화가 나 달려온것이 아니라, 내가 걱정돼서. 그래서 달려온 것이다. 입에서는 날이 선 말이 그를 향해 가고 있지만, 눈은 나를 향해 있었다. 이순간에도 너는, 나를 위하고 있었다.
"가끔 내가 국왕이 아닌 게, 아니."
"……"
"자주 원망스럽다."
애달팠다. 국왕을 향한 내 마음을 알아서, 그렇게 알아버리고도 국왕이 후궁을 맞으니 상처받았을 내가, 내 감정이 걱정돼서 온 이동혁에게 미안해서. 다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온전히 내가 걱정돼서 온 그가 고마워서. 그래서 북받쳐오는 울음을 가슴 속으로 억누르기 바빴다.
속상함과 미안함에 울렁이는 감정을 감추느라 바빴다.
*
"좀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다."
"당연히 괜찮거든?"
한동안 침묵을 유지해오던 우리 둘이, 드디어 그 막을 깨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능청스레 괜찮다며 대답하는 나를 보며 웃던 너의 얼굴이, 슬픈 웃음이라는 단어를 연상시켰다. 자연스레 내 손을 매만지며 손이 다 텄다며 울상을 하는 너를 보니 또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아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이래서 네가 좋았다. 이 넓은 교태전도 꽉 차게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네가. 너와 있으면 온전히 너밖에 보이지 않아 좋았다.
"아버지께서 계속 혼인을 독촉하고 계셔."
"…아."
"나랑 도망 갈까."
그의 말에 웃으며 어디로? 하고 물으니, 그는 아버지와 국왕을 피해 어딘가로. 하며 웃어보였다.
"가 봐야 돼."
창 밖의 노을을 본 그가 내게 한 말이었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해가 쨍쨍하던 밖은 어느새 붉은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감기 조심해 이동혁."
"너나 아프지 마."
아프지 말라는 나의 말에 되받아치듯 다시 한 번 웃어보였다. 그 웃음에 따라 웃게 되자, 그는 내 웃음을 담아내려 눈 코 입 하나하나 보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서서는 내게 한 번 더 인사를 건넨 후 사라졌다.
"갈게."
한겨울에 본 네 모습은,
봄보다 따듯했어라.
*
정신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어제 이동혁이 왔다 간 후로, 차라리 일찍 잠에 들자 했던 나는 국왕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결국 눕고 오랜 시간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점은, 늦게까지 강녕전에 불이 켜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정사를 보느라 바빴을거라. 그렇게 생각하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나를 불러준 그에게, 붉은 색 치마를 입은 채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감사히도 나를 찾아와 준 그에게 뛰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 앞에 서서, 한 번 심호흡을 한 후 문을 열었다.
"나오셨어요."
이렇게 햇살보다 밝은 얼굴로 날 반겨 주면, 나는
"네."
똑같이 웃어보이며 계단을 내려간다. 늘 그랬듯 그는 내가 내려가는 계단 옆에 서서 내 손을 잡은 후 힘들지도 않은 계단 내려가기를 도와준다.
"어제는 나랏일 때문에 …"
"아… 괜찮아요!"
내 추측이 맞아떨어짐을 그는 입증시켜 주었고, 나는 그런 그의 말에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걸을까요? 하는 그의 말에 또 한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옆에 서서 걸었다. 하얀 입김이 공중을 통해 바람 사이로 섞여 하늘로 날아갔다.
"겨울이라 눈이 녹을 생각을 생각을 안ㅎ…"
"전하!"
그 때였다. 국왕과 단둘이 흰 눈을 밟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숙의 직위를 받은 그녀는 오늘도 붉은 색 저고리를 입은 채 저 멀리 강녕전 쪽에서 웃으며 우리에게,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국왕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고, 나는 국왕의 옆에서 당황한 채 가만히 얼어서 서 있었다.
"…숙의."
"전하를 뵈러 강녕전에 찾아갔었는데 안 계셔서요 !"
당돌하다. 나는 그에게 찾아가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녀는 숙의 직위를 받고 하루만에 그를 찾아가다니. 그녀는 국왕의 옆에 서 나와 그를 사이에 두고 걸었고, 여섯 개의 발자국은 나란히 앞으로 나아갔다.
"전하, 전하께서는…"
"중전, 안 추우십니까."
그녀가 국왕에게 말을 걸려 하자, 못 들은 것인지 일부러 끊은 것인지 그 말을 잘라낸 후 내게 말을 건넨 국왕을 쳐다보니, 세상 다정한 눈빛으로 봐주고 있어서 새삼 놀랐다. 늘 그런 그였지만, 오늘따라 그의 눈빛이 더 따스해 보였다.
"네! 괜찮아요!"
그의 질문에 평소보다 한층 더 밝게 대답을 하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이는 그였다. 그러자 옆에서
"전하, 조금 추운 것 같습니다아…"
숙의는 애교가 가득 섞인 그 목소리로 국왕을 향해 말을 건네고 있었다. 웃긴 상황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듯 무슨 한 남자를 두고 벌이는 여자 둘의 경쟁같은 거? 묘한 심리전이었다. 붉은 용포를 입은 국왕을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붉은 저고리를 입은 여성과 붉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 함께 걷고 있는 그림 자체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애교섞인 말투에 그는
"그럼 들어가세요."
"…네?"
그녀에게 단호한 말투로 들어가라 말했고, 그녀의 시선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가 고개를 돌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알 수 있었다. 그의 표정이 일관되어 굳어 있음을. 다시 되묻는 그녀에게 그는 다시 한 번 똑같이 말해주며 그녀의 시선이 더 크게 일렁이도록 했다.
"추우시면 들어가세요. 전 중전과 할 얘기가 많이 남았으니."
"… 아니 ㄱ…"
"본래 저와 중전의 시간이 아니었습니까."
"……"
"추우시다면서요."
결국 그의 말에 표정을 한껏 찌뿌린 그녀는 잠시 얼어있다 고개를 숙였다. 아니 잠시만
쟤 왜 나 노려봐? 이 시발. 고개를 숙인 후 바로 갈 줄 알았던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나를 살짝 흘기고서는 새침하게 뒤돌아 가 버린다.
"허,"
다행히도 그 모습을 목격한 그는 어이없다는 듯 짧은 숨을 내뱉었고 그녀가 완전히 떠나가자 내 손을 잡고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의 따스한 손에 잡힌 내 손에 당황스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그의 옆에 서 졸졸 따라가면, 뒤에서 눈치를 보며 따라오던 신하들이 좀 멀어진 것을 확인한 그가 빨리 걷던 걸음을 우뚝 멈추고는 내 귀에 속삭인다.
"진짜로."
"……?"
"싫습니다."
"……"
"싫어요."
귀엽다, 증말.
*
그와 산책을 마친 후 교태전 앞까지 날 친히 데려다 준 그에게 손을 흔들며 안녕히가세요! 하고는 교태전 안으로 들어왔다. 밖과는 대조되는 따스한 온기가 나를 반겼다.
늘 내가 하던 그대로 상 앞에 잠시 앉아 있으려 했는데
"악!!!!!"
상의 두 번째 서랍에, 거의 다 죽어가는
작은 아기새가 있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한 사람.
! 작가의 말 ! |
안녕하세요 ! 작가 니퍼입니다 ! ㅋㅋㅋㅋㅋ한여름에 겨울을 배경으로 글을 쓰려니 조금 힘이 드네요! 기다려 주신 분들 감사드려요 ㅠㅠ 늘 꼬박꼬박 오려고 하지만 요즘 매우 바쁜 니퍼 흑흑. 항상 애몽과 함꼐 달려와 주시고 늘 기다려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곧 Q&A 를 받을 예정인데, 많은 질문 해 주실 거지요? (기대) ㅋㅋㅋㅋㅋㅋㅋ ♥ 늘 부족한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