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깁니다. 참여하실분은 댓글먼저 다시고 감상하세요.)
안녕하세요. ^^
이 댓망은 익스포츠에 예전에 게시했던 댓망입니다.
사극말투가 너무 어려워서, 조금하고 도망가버렸었는데.. 죄송합니다.
똥손입니다. 이해바랍니다.
제한 5명/BGM필수/느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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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느냐.
네가 내곁에 처음 다가온 날을.
온정신이 아뜩하리만치 아련한 벚꽃향과
궐내여인들의 분내가 궁 사방에 봄바람불듯 스며들던 무렵,
찻주전자에 꽃잎을 수놓으시며 다도를 가르쳐주고계셨던 어마마마가 찻잔을 내려놓으시더니 엷게 미소지으셨다.
" 대군, 오늘 민가의 여식이 입궐할겝니다.
예정에 없던일이라 황망할테지만, 심심을 단정히하시고 맞으십시요. "
..민가의 여식-..?
겨우 열둘,여색을탐할 시기도 아닐뿐더러
무엇보다 형인 세자의 세자빈또한 아직 간택하지않은마당에
평민의 여식이 궁의여인으로 입궐한다니.
관례에 없던 일이었으며 있어서도 안되는일이었다.
" ..여인이라니요, 그것도 민가의 여식이 입궐하는데엔 분명 무슨뜻이 있을진대
여쭈어보아도 되겠습니까. "
" 이 어미도 자세한 정황은 모릅니다.
다만, 이 일이 주상께서 주도한일임은 알지요.
전하께서 뜻하신일이니, 각별히 마음을 다하십시요. "
"..마음이라-..사람의 감정이 어디 뜻대로 되는것이겠습니까.
다만 아바마마의뜻이라니 받들어야지요. "
겨우 열살을 넘긴 나에게, 그것도 세자가아닌 대군에불과한,
궁에서는 그저 왕이되지못할 둘째아들이라는 신분에갖힌 몸이었거늘
나를위해 궁에여인을 들인다는것은 당시로서 이해하기 어려운부분이었다.
그렇게 착잡한마음을다지며 괜시리 심란한기분에 애꿎은 벚꽃잎만 발로 헤집어 공중속을 흩날리는데,
머리위로 웬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익숙한 자태와 포근한기운이감도는 음성이 귀를 간질였다. 한상궁-..?
" ..마마, 의젓한모습을 보여야지요.
여기 제 뒤에있는아이가 오늘 입궐한 계집으로, 대군마마의 벗이 되어줄겝니다. "
너는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순간이 또렷이 기억나는구나.
배시시웃으며 수줍은듯 한상궁의 치마폭에 몸을숨기던 모습도,
네머리끝에 곱게 매듭지어진 석류빛댕기도, 짙은 남색저고리,
걸음걸음을 사뿐사뿐옮길때마다 옅은바람을살랑이던 고운 옥색 한복자락도.
너는 봄의 한풍경에 녹아들어가듯, 그렇게 고왔다.
궁에 아이들은 적은편이아니었다.
영의정 김문수의 여식 셋이 모두 궁생활을한지 햇수로 3년이 되었고,
이조판서 임용주의 아들 둘과 딸 셋중 하나또한
궁에서 먹고자지만않을뿐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와 벗이되어주곤하였다.
그 사이에 네가 들어온것이다.
평민의, 아니 정확히는 몰락한 양반의 여식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로.
그 많은아이들이 나와 함께 노다니고 어울렸음에도 나는 유달리 네가좋았다.
어린마음에도 네 손을 잡고싶었고, 때로는 둘만 정원을 거닐며 소근거리고싶은생각이 들곤했다.
그 아이들에게서는 풍기지않는,
오롯이 너만이 간직한듯한 천박하지않은 소박함이,
화려하지않은 수수함에서 배어나오는
어떤 아득한향내같은것에 어렸음에도 무작정 네가 좋았다.
너는 기억하는지 모르겠구나.
종종 고운옥빛을품은 한복자락이 발에 밟히어 고꾸라지는 너를보며 안쓰러운마음에
얼마나 천천히 달렸는지를.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배시시 웃는 모습에 또 얼마나 설렜는지를.
내나이 열둘, 행복한추억들이 방울방울 열릴시기였거늘
이 외에 어렸을적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내가 열넷이 되던 해,유독 추웠던 어느 겨울날,
궁에서 핏바람이 친 연유로 모든것이 바뀌었다.
비극에 가까운쪽으로.
세자로 책봉되었던 형님께서, 독살당한것이다.
잠이 오지않아 가끔 찾아가던 춘궁,
달빛이쏟아지듯 내리던 그곳에서
낭랑항음성으로 소학을 읊어주시던 형의모습이
한밤사이 한낱주검으로 변해있는 사실에 나는 그저 망연자실했다.
아무것도 할수없었다.
아니, 할수있었으나 허락되지않은것이리라.
이복동생이자 둘째아들이었던 나에게
대군이라는 칭호대신 세자라는말이 붙는것은 순식간이었다.
벌이들끓는듯 소란스러웠던 궁은 이내 잠잠해졌다.
모두가 형의 죽음을, 그 냉랭했던 주검을 까맣게 잊은듯 묻어버린마냥
모든것은 이상하리만치 정상적으로 행해졌다.
홀로 형님의죽음을 잊지못해
잠오지않는밤 춘궁을 드나들며 하염없이 달과 마주하던 내가 오히려 바보같을지경이었다.
" ..어머니의 짓입니까. "
내 물음에 어머니는 항상 그러하시듯 진달래빛 웃음을 엷게띠시며 입을 여셨다.
아니, 여느때와 달리 진달래가아닌 독을품은 철쭉빛을 띠신 입술로, 대답하셨다.
" 무슨 말씀이신지요, 대군.
아니..이젠 세자 저하시지요. "
" ..어찌 그리도 연기를 잘하십니까.
제 하나뿐이던 이복형님을 독살하신이가 어머니신지 묻는것임을 진정 모르십니까? "
" 제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시면 아니되지요.
다만, 조언해드릴것은있습니다.
이 궁에서는, 원하는것을 손에 얻기 위한다면
대담하게 행동해야한다는 말씀을 이 어미는 아뢰고싶군요. "
" ...참으로 잘하는 짓이십니다.
친아들에게 원치도않는 곤룡포를 그리도 입히고싶으셨나봅니다. "
" 대군, 아니 세자저하께서 잘되는일이라면 무엇인들 못하겠나이까. "
빙글빙글미소지으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이렇도록 소름끼쳐보이던것은 처음이었다.
고우신줄만 알았던 그 안면이 그토록 사악해보이던것은,
내가 어머니라는 혈육을 알고지낸이후 처음겪는 생소한모습이었다.
형님께선 어머님이 친모가 아님에도 극진히 대하셨던것을 모르셨습니까, 하는 물음에
어머니는 그저 차분하셨다.
그러니 그리 멍청히 죽임을당한게지요, 라고, 어머님께서는 그리 대답하셨다.
슬픔, 잃은 아들에대한 그리움, 숙연함따위는 한웅큼도 서리지않은 낯빛으로.
핏바람은 그저 조용히 지나가지못한다.
그 이후로 또하나의 바람이 한바탕 궁을 흔들었다.
변화는 나만이 겪는것이 아니었기에,
군부인으로 불리우던 너의칭호도 승휘로 바뀌었고, 다른 여인들의 칭호또한 소훈,양제 등으로 바뀌었다.
칭호가 바뀐것은 많은것을 대변한다.
내가 머무는 곳도, 네가 머무는곳도 바뀌었으며
여인들이 내 거처인 춘궁으로 드나드는 횟수또한 잦아졌다.
형님의 갑작스런죽음, 그리고 그 죽음의 배후엔 다름아닌 어머님이 계셨다는것에대한 충격..
여인을 탐하는마음이솟던 시기가 아니었음에도
하룻밤이 멀다하고 찾아드는 그네들의 행실이 여간 못마땅한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어느날은, 소훈이던 김문수의 맏딸이 찾아와 제 옷고름에 내손을 가져다대며
가식적인 아양을떠는 그 입이 얼마나 짜증스러웠는지 모른다.
*승휘:
조선시대때 세자궁의 종4품벼슬, 왕세자의 후궁.
" 저하, 어찌 이리도 소녀를 피하시는지요.
제스스로 옷고름을 풀어야 동침을 허락해 주시렵니까? "
" ..내가 분명 나가라했을텐데. "
" 밤이 깊어 나가기가 꺼려지오니 내치시지 마옵소서.
소녀혼자 보내기엔 이 긴긴밤이 너무나도 외롭사옵니다. "
" 나가라했다. 어찌 이리도 질기게 구는것이냐.
옷고름을 여미거라. "
" 저하, 아뢰시는음성또한 어찌이리도 낭랑하십니까,
과연 소녀의 낭군되실몸이- "
쾅-
아양을 떨어대는것을 가만히 지켜보자니짜증이 치밀어올라
종알대는것을 두고 방을박차고 나왔다.
화가나는구나.
좀처럼 수그러들지않을듯한 불길같은것이, 온 마음을 휩쓴다.
내가 기다리던것은, 기다리는것은 너였거늘 어찌 침소에 얼굴한번 내비치지 않는것이냐.
왜이렇게 애를태우느냔말이다.
"..저,저하. 밤이 깊었거늘 어인일로- "
풀썩-
바늘과 색색의 고운실들을 손에 그러쥔채 수를 놓고있는 너에게 다가가
무작정 무릎을 베고 누웠다.
너는 이리도 편한데, 어째서-..
한복자락이 넘실대는것이 눈에 밟히었다.
그리고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너의 얼굴또한 보이는구나.
" 방금, 소훈마마께서 춘궁으로 드시는것을 소녀가 보았거늘 어찌 여기계십니까. "
" ..여인들이 싫다. 겉으로보기에는 화사함이 봄꽃과같이 아름답지만,
행실을보아하니 독한난향을품은 독사와다름없더구나. "
" 저하,저또한 궁의여인이거늘 어찌 그리 함부로말하십니까.
누가들을까 두렵습니다. "
" ..들으면또어떻더냐, 아니 들으라고 하는말이다.
분명 여색을탐하지않는다 그리일렀거늘
침소까지찾아와 성급히 제 옷고름에 내손을 가져다대는 여인들이 징그럽기짝이없구나.
게다가 연모하는여인은
밤낮기다려도 긴긴밤중찾아오는일 없이
방에서 태평하게 수나놓고있으니 어찌 사내마음이 애타지않겠느냐-.. "
" ..세자께서 여인을 싫어하신다는 소문이 궁안에 파다해
저또한 근심거리가 되기싫어 찾지않은것 뿐입니다.
어찌 소녀의 마음을 이리 몰라주시는지요. "
" 싫은여인이아닌 연모하는여인을 품에안는것만큼 사내마음을 뛰게하는것이 어디있더냐.
괘념치말고 언제든찾아오거라. 내 너라면 직접옷고름을풀어줄 의향이 있으니. "
" ..송구하오나, 오늘은 아니됩니다. 이만 돌아가소서. "
천천히 몸을일으켜 네눈을보았다.
살풋한 미소를 품은 얼굴이, 보름달이 뜬것마냥 화사하기가 그지없더구나.
오늘도 이렇게 너를 놓아주어야하니, 아쉬우나 어쩌겠느냐.
조급한마음은 곧 독이라는것을 내가 모르지않는데.
"..알겠다. 이만 들어가보마.
밤이깊어 떠오르는얼굴찾아 야속한마음에 들렀거늘
네웃음을보니 온마음이 풀어지는구나.
다음엔 그냥 넘어가지않을것이니 그리 알거라."
분명히 올때의 발걸음엔 무거움과 노기만 투덕투덕쌓였었거늘
갈때의 발걸음엔 아쉬움이 발목을 잡는구나.
한 사람을 연모하는일이, 이리도 어렵더냐.
*
국화꽃이 아스라이 정원을 수놓은 모습에 네가떠오르더구나.
'소녀는 국화를 좋아합니다.
자신의 미색을 뽐내지않고 고고히 향을내는 모습이 참으로 고우니
어찌 사랑하지않고 배기겠습니까.'
그당시엔 너의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꽃에 얼굴을가까이대어 향내를 맡아보니 과연 그렇더구나.
달빛을받아 더욱 제 모습을드러낸 국화의모습은 은은한 백색을띠고 있었다.
너와 비슷하구나. 너의 모습이 자꾸 겹치는구나.
어른거리는 모습에 고개를 도리질쳐도 오히려 짙어지기만하니 내가 홀린것만같다.
" ..소휘, 그대가 좋아하는 국화를 몇송이 가지고 왔ㅅ- "
툭-
텅 빈 방.
마치 나갈것을 준비해두었다는듯, 비워져있는것이 당연하기라도한 마냥
이틀전까지만해도 네 온기가 가득했던 방엔, 그 무엇도 존재하지않았다.
너의 온기도, 특유의 향도, 이부자리 위 놓여있던 옥색 머리장식도.
너의 흔적이라곤 도저히 찾을수없는 생소한 광경에 나는 그저 우두커니 서있었다.
어디 있는것이냐.
이 너른 궁안에 네가 있기는 한 것이냐.
온갖 질나쁜 생각이 머릿속을 뒤흔든다.
어디에도 네가 없을것 같다는, 한없이 불길하고 꺼림칙한 생각에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듯한 기분이 온정신을 흩뜨린다.
*
쾅-
" 저,저하, 이러시면-..이곳은 궁궐의 나인들이 거처하는곳인데
이리 문을 다 여시면 아니되옵- "
" 어디있는지 고해라. "
" 무슨말씀이신지 소인은 잘.. "
" 소휘말이다. 사람을 풀어 온 궁을 뒤지도록해라, 지금당장. "
" 하,하오나 밤이 깊었으니 오늘은 무..무리 일듯 싶사온데- "
" 말이 말같지 않은모양이구나.
당장 내앞에 그 아이를 데려오라는 명이 그리 우습더냐? "
간신히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심호흡을 수차례했다.
그래, 여긴..여기엔 없는모양이구나.
그러면, 혹시 정원 근처에 있는것인가.
달밝은밤 연못근처에서 물결이 잔잔히 비늘마냥 반짝거리는것을 하염없이 바라보는것을 좋아하였는데-.
" ..세자, 이 무슨 망측한 짓입니까..! "
그때였다, 잔뜩 노기어린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린것은.
안면이 잔뜩상기된채 간신히 화를참아내시는모습이었다.
여기 있으실 분이 아닌데, 어찌-..
" ..그 아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
" 누굴 말씀하시는건지 잘 모르겠으나,
밤이 깊었으니 그만 침소로 드시지요. "
" ..비키십시오, 오늘 소휘를 찾기전에는 춘궁에 발을 들이지 않을것이니. "
" ...세자-, 어미말을 들으시지요. "
" 비키시라 했습니다. 어머님마저 제말이 그리 우스우십니까? "
" 세자는 장차 이나라의 왕이될 몸이거늘-,
어찌 천한계집에게 이리도 마음을 쏟으십니까..! "
" 그러게나말입니다.
그런 천한계집없이 밤잠못이루는 저또한 천한놈이니 어울리게 두십시오. "
하하-..어머니의 헛웃음이 울렸다.
짜증과 노기, 어떤 분노와 찬 냉기같은것이 잔뜩 서린 웃음이었다.
잘 갈린칼에서 새어나오는 날카로운 빛마냥 사나운.
" ..세자, 얌전히 저를 따라오시면 그 아이의 행방을 아뢰겠습니다.
허나, 이리 소란을 피우시면 그 아이의 행방은 묘연해질것이고,
얼굴또한 다시 마주할일 없을겝니다. 따라오시지요. "
사뿐사뿐-..가을하늘빛 치맛자락이 바닥을 쓸었다.
저말은-,네가 사라진 배후에 어머니가 있다는것이냐. 정신이 아뜩하구나.
도대체, 너를 못본 이틀간, 무슨일이 너에게 벌어졌던 것이냐.
너를 주시하지못한 그 이틀간, 내가 모르는사이 무슨일이 그렇게 꾸며졌단 말이냐..
" ..들으셔도, 듣지 않으셔도 지금 정황으로보아 달라질것은 없을겁니다.
저하, 그래도 이 어미가 아뢰길 바라십니까? "
" 그건 어머니께서 단정지으실일이 아닙니다.
약조한대로 하십시오. "
어머니의 미간이 뒤틀리는게 보였다.
말하기 꺼려지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리라.
" ..소휘, 그아이는- "
온몸이 잔뜩 긴장하고있었다.
다음 뱉을말이 좋지않은것임을 어느정도는 예상되었다.
좋은 소식이었다면, 이리 숨길일도, 뜸들여 고할일또한 아니라는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가만히 눈을감아 어떤말이 들리더라도 진정하기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 ..지금, 어느 양반가에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 그 집의 자제와 혼인할 것이니 그리 아십시오. "
..예?
양반가?
혼인?
이 모든말이 다 무슨-
" ..무슨 말씀이십니까..? "
" 아뢴 바 그대로입니다. 더 고할것은 없사오니, 이제 되었습니까? "
" 하하.. 이무슨-..혼인이라니요, 그아이가 다른사내와 내일 혼례를 치른다,
진정 이리 고하시는겁니까? "
" 옳은 해석이십니다. 이미 약조가 된일이니,
애써 바꾸려하지 않으시는것이 좋을겝니다. "
애써 참아온 굵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약한 모습을 보이지않으려, 이리도 애썼는데 이성의끈이 툭하고 끊어지는순간
모든게 우르르 무너져버렸다.
차마 눈을 마주하지못하고 바닥만 뚫어져라쳐다보는데,
무릎위얹힌 두주먹이 작게 떨려왔다.
분노, 슬픔, 배신감이 뒤섞인 감정이 한순간에 휘몰아치는기분에 온정신이 아득해져온다.
" ..어머니는..어찌 제게 이러십니까-..
제가 그 아이를, 이리도 연모했다는걸
가장 잘 아는이가 어머님이라고 그리 믿었는데-...! "
" 세자, 나또한 세자와 그 아이를 이으려 했단것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허나-, 그리 하지못했다는것도, 이해하십시오. "
" 제가 진정 그말을 믿을거라 여기십니까?
제 하나뿐인 형님을 독살하시더니, 어찌 이젠 제 반쪽마저 앗아가시려는겁니까,왜-..! "
" ..그 아이의 배후에는 영의정 김문수가 있습니다.
소휘의 아비되는자는 몰락양반이 맞으나,
궁으로 입궐하기 얼마 전, 김문수 그 자가 그아이를 사갔고,
주상께 는 평민의 여식이라 아뢰어 궁에 입궐하게 한 겁니다.
주상께서는 그저 평민의 여식또한 저하께서 보는것이 옳다 판단하시어 윤허하신게지요. "
" ..그럼, 결국은 외척세력이 쥘 권력때문에-.. "
" ..김문수는 현재 궁안의 권력을 그러쥔존재이나,
저하께로 왕권이 옮겨진 이후로도 그 권력을 건재하게하기위해
그 아이를 저하 옆에 세운것이지요.
외척으로써 휘두를수있는 권력이란, 어마어마한 것이기에. "
" ..소휘, 그아이가 제게 내비친 모든 마음이 모두 거짓된것이란 겁니까. "
" 이 어미가 그 아이보다는 오래 궁생활을 해온 여인으로써 아뢸말이 있다면,
궁 의 여인으로서의 삶을 원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행동이 모두 진실된지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궁에 갇힌 답답한 생활과, 여느 양반가의 자제와 혼인해 단란히 사는것.
어느삶을 소원하는지는 아실테지요.
그아이또한, 자신에게 돌아올 권력과 재산을 비롯한 대가가 따르지 않았다면
저하를 그리 대하지 않았을것입니다.. "
" ...결국은, 소휘또한 다른 여인들과 다름없이
모든언행이, 행실이 모두 가식이었다 고하시는것아닙니까. "
" 그건 저하께서 판단하실 일이지요.
어떻게 판단하시던, 그 아이를 다시 입궐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세자는 이 나라의 왕이 될 몸입니다.
건재히 왕권을 그러쥐기를 원하신다면
외척을 비롯한 모든 세력이 저하앞에 고개를 숙이도록해야합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영의정의 여식이니 그리하기는 어려울겁니다.
세자빈간택이 얼마 안남은 이 시점에 싹을 잘라버린것 뿐입니다.
그러니, 한낱 단꿈에 취하셨다 여기시고 이만 깨시지요. "
" 한낱 단꿈이라-..참으로 가볍게도 말하십니다.
뭐라 드릴말씀이 없어 먼저 들어가보겠으니, 어마마마께서도 이만 침소에 드십시오. "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춘궁으로 돌아와 앉았는데,
방은 열기로 가득하나 이내마음은 허하기 그지없구나.
너마저 그랬던것이냐.
얼마나 우습더냐.
내가 네 무릎을베고누워, 내 침소로 찾아드는 가식적인 여인들에대해 논할때,
얼마나 우스웠더냐.
내가 술을 입에 댈때마다, 항상 옆에서 아뢰곤했지.
정신이 혼미해지는것은 마시면 아니된다고.
이런 걱정들도, 사소한 마음씀씀이도, 모두 다 꾸며진 일이었다는것이냐...
나는 잘 모르겠다. 진실된것이라 믿었던것이 이리 한순간에 우르르무너지니 어찌할바를 모르겠구나..
" ..게 아무도 없느냐-.. "
" ..무슨 일이신지요, 저하. "
" 궐앞에 말 한필을 준비토록해라. "
" ..아니됩니다, 이리 밤이 깊었거늘 어딜 행차하시려는겁니까. "
" 그럼 어찌해야되는지 고해보거라. "
" ..예? 무슨말씀이신지.. "
" ...정신이 혼탁해지면 잊을까싶어 입에도대지않던 술을진탕마셔도,
어지러운머릿속에 그아이 얼굴만 더욱또렷해지니,
미워해야 마땅한여인이 이리도 그리우니, 내가 지금 어찌해야할지 고해보란말이다-.. "
" ..... "
" ..마지막이다. 내 이리 부탁하마.
두번다시 이런 부탁하지 않으리라 약조할터이니. "
" ...몸 성히 다녀오시는것도 약조하십시오.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잠시 기다리소서,
사람을시켜 말을 준비시켜놓겠습니다. "
호위무사가 사람을부르러가고, 난 그저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참으로 바보같구나. 미련하기 짝이없어.
널 찾아간후 더이상 뭘 어쩌겠다고 내가 이리 구는것인지 멍청하기 짝이없다.
이미 모든 정황을 알게된 터, 널 본다한들 무엇이 달라진다고.
" 저하, 반드시 새벽까지는 돌아오셔야합니다. 발이 빠른말이오니, 가는길이 오래걸리진 않을겁니다.
부디 몸성히 다녀오십시오-.. "
" ..고맙구나. 네 걱정이 헛되지않도록 내 꼭 약조한것은 지키마.
이만 들어가보거라. "
말을타고 한밤중을가르며 달리니 숨통이 트이는구나.
궁안에서 머리를 어지럽혔던 생각들에잡혀
아무것도하지못했던 내가 바보스럽게 느껴질정도로, 새벽공기는 달고 맑구나.
*
" 길을 좀 묻겠소. 유대감댁이 어디인지 아시오? "
" 아, 그 댁이라면 저- 골목끝에 가면 있을겝니다.
그, 괜한 간섭일지 모르나 혹시 누굴 찾아가시는 겐지요? "
" ...유대감댁 자제분이 혼인하는 규수의 오라비되는자라
누이 얼굴이나 보러 온 것이오. 왜 물으시오? "
" 어쩐지 내일 혼례와 관련된분이시리라 생각되었는데..
저는 그집 몸종되는 신분입니다.
누이분께서는 별당에 계십니다, 혼례전날밤은 홀로 보내고 싶으시다하여
본당이아닌 별당에 가계시지요. "
" 고맙소, 지금 찾아가리다. "
내가 결국 여기까지 당도했구나.
내 얼굴을 보고 넌 어떤 반응을 보일까싶다. 특유의 동그란눈을 하고는 놀라겠지.
똑바로 걷고싶으나 아직 취기가 감도는몸이 비틀거리는모습이, 우습기짝이없구나.
이리 엉망이 된 모습을 보며, 넌 뭐라 이를까-..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네가 내가 보여준 그 모든것들이, 배시시웃던 웃음이, 걱정을함박담은 그 눈망울이, 모두 거짓이라니..하하.
네가 한 행실모두가 거짓인것이냐, 아니면 내가 알고있는정황이 거짓인것이냐-..
아니라고 말해다오.
모든건 진심이었다고,
다만 내가지금 하염없는 악몽속을 헤메고있을 뿐이라고.
< 그 여인의 못다한 이야기> |
아직도 제게 궁이란 곳은 아득히 멀게 느껴질 뿐입니다. 일개 몰락양반의 여식이 신성한 궁에 들어왔다는 사람들의 알듯모를듯한 무시가 깔려있는 눈빛들을 마주하는것도 익숙해질때가 됐는데. 아직도 저는, 세자저하와는 달리 모든게 미숙한가봅니다. 그런 제가 여간 못마땅하신듯 인사를드려도 눈길한번 떨구어주시지 않으시던 당신의 어머님이신 중전마마께서,
어인일로 저를 부르신걸까요. 세자저하, 저는 두렵기만 합니다.
아득하고 고요하게 밤을가르는 두견새소리가 어쩐지 불길하게 들리는것은, 소녀의 착각이라고 믿고만싶습니다.
" ..어인일로 소녀를 부르셨는- "
" 네가, 궁을 나가주어야겠구나. "
치마폭을 그러쥔 손이 파르르떨렸습니다. 언젠가는 이말을 주상께, 또는 중전마마께 들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이리도 갑작스럽게 들으니 미처 생각할틈도없이 정신이 아득해져옵니다.
" ..어찌 그래야하는지, 여쭈어보아도되겠습니까..? "
중전마마께서 저를 바라보시더니 엷게 미소지으십니다. 마치, 이런 질문을 할것이라 알고계셨던듯 한없이 태연한 미소를 머금으신채, 입을 여십니다.
" 얼마안있어 세자빈을 간택할 예정이다. 네가있으면 안될자리이니, 미리 내치려 하는것이다. "
" ..세자빈이 될 자격을 앗아가시려는 것인지요. "
" 제법 영민한줄알았거늘, 당연한것을 묻는구나. 세자는 너와 어울리지않음을 모르는것이냐, 아니면 오냐오냐 받아줬더니 이젠 주제를모르고 세자빈자리까지 노리는것이냐? "
" ..제 어디가 그리 부적합하시다 느끼시는지요. "
" 하하-..부적합이라? ..잘 듣도록해라. 세자는 장차 이 나라를 책임질몸이고, 왕권을 더욱 굳건히하기위해서는 세력을 뒷받침해줄 외척이 필요하다.
허나 너는 그저 몰락한양반의 여식이아니더냐. 너의 신분,태생 그 자체가 세자에게 걸림돌임을 정녕 모르겠더냐? "
한없이 싸늘한 마마님의 말에 몸이 잔뜩 움츠려듭니가. 맞는말씀인데, 그저 옳은말을 하시는것인데 어찌 이리 오한이드는걸까요,저하.. 저하의 말이 자꾸만 귓전을 맴돕니다.
어머님이신 중전께서는 후궁의몸으로 중전이 되셨다이르셨지요. 온갖 궁에서의 풍파를 이겨내신분이라, 그리 말해주셨지요. 당신 어머님께서는 이리도 강인하신분인데, 어찌 저는 이런 말조차도 이겨내지못하는것일까요, 저하.
" 그러면..어찌 제나이 열둘때 궁으로 부르신겁니까, 걸림돌이라면 애초에 궁으로 부르시지 않아야하는것 아닌지요 "
" ..별것을 다 묻는구나. 지금 영의정자리에있는 김문수, 그자때문이다. "
"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사온데.. "
" 영의정 김문수의 딸 셋이 네가 궁에 입궐하기전 먼저 들어왔음을 너도 알고있을것이다. 그는, 왕권교체이후에도 자신의 세력을 건재히 유지하기위해 그의딸을 앞세워 외척이되려했다.
난 어미로써 막아야했기에, 주상전하께아뢰어 후일 제거해도 별탈없을 여인중 너를 고른것 뿐이다. 되었느냐? "
그랬던것이군요. 모든의문이 다 풀렸음에도, 시원한기분보다는 오히려 아릿한느낌이 온몸을 에워쌉니다.
그저 소녀가 바보인게지요. 저같은 계집이 궁에들어가 저하의 어여쁨을받으면서도 이런 의심하나 들지않은제가 멍청한게지요..
삼일 후, 유대감댁자제와 혼례를 치르게 될터이니 준비토록하거라. 주상전하께서 네게 베푸는 마지막 배려이시니. "
" 혼례라니요-, 어찌 이리 사람을 마음대로 내치시는것도모자라 원치도않는 시집을 보내시려합니까-..! "
" 원치도않는? 네가 모르나본데, 이채로 궁밖을나가서 네가 온전한 생활을 꾸릴듯성싶으냐? 궁안에서야 소휘의자리에앉은 몸이었지만 궁밖에서는 그저 혼기를 훌쩍넘은 평민일뿐이다. 주상께서 너의 처지를 안타깝게여기시어 특별히 윤허한일임을 모르느냐? "
" ...싫습니다. 그리하기는 싫습니다. 이리 간곡히 청하오니, 궁에서..이 궁에서 거처하게해주십시오..! 절대 왕실에 누가 되지않겠사오니,부디- "
" 하하-..궁에서 지내겠다? 네가 정녕 세자의 앞길을 막으려는것이렷다? 그래, 궁에서 지내면 뭐 어찌해볼생각이냐? 세자빈 간택날, 네가아닌 다른여인과마주한 세자를보며 눈물이라도 흘릴심산인게냐? "
후두둑하고 눈물방울이 떨어집니다. ..저하, 저는 견딜수없을것 같습니다. 제가아닌 다른여인과 일생을 약조하는모습을, 가만히 바라볼수있을정도로 독하지 않나봅니다.
참 우스운일이지요.
쉽게 마음을 내비치면안된다여기어 그 긴긴시간동안 저하가계신 춘궁, 그 침소에 발을 들이지도않던제가, 이젠 저하와의 이별을 앞두고 이리 울고있으니말입니다.
참으로 우스운일입니다. 어찌 이리도 바보같고 미련한것일까요.
" ..네가 세자를 깊이 연모함은 나도알고있느니. 그렇기때문에, 어미인 나와 동일하지는않더라도 세자의 행복을기원하는마음은 같을것이라여겨지는구나. 이해하거라. "
" ...저하께는 무어라 아뢰실 생각이신지요. "
" 이미 정해둔 바가 있으니, 심려치말거라. "
중전마마의 마지막말을듣고, 절을드리고는 그 자리를 나왔습니다. 발을 누가묶은듯 한없이 무겁기만한 발걸음이, 주체할수없을정도로 흐르는 눈물에 몸이 기우뚱거립니다..
저하께서 행복하시되 외로우셨으면합니다. 잊으시되 아릿하셨으면합니다.
어릴적 유년시절을함께한 한낱 어린소녀가아닌, 저하깊숙이 스며든 어떤 일부분처럼,
제가 문득떠오르는날 가랑비에 옷젖듯 그리 조용하고 아득하게 저를 기억해주셨으면합니다,
그리 해주시겠지요..? 오늘밤, 저는 영원히 발설못할 비밀을품은채 저하곁을 떠나려합니다. 미리 아뢰지못한것을 윤허해주십시오..
부디 옥체 강녕하소서.
別後雲山隔渺茫 산과 구름 아득히 막혀 있어도
夢中歡笑在君傍 꿈속에는 님의 품에 안겨 놀았네
覺來半枕虛無影 側向殘燈冷落光 등잔불만 쓸쓸히 가물거리네.
何日能逢千里面 此時定斷九回腸 구곡간장 녹는달까 애끊는달까
窓前更有梧桐雨
添得相思淚幾行 |
쾅-
" .. 여기 있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