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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소년소녀_01
 


 


 


 


 


 


 


 

나는 서른여덟의 직장인이다. 곧 마흔, 그러니까 내가 맞이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 숫자를, 나는 열몇달만 있으면 맞이하게 되는 이 시점부터 나는 나의 꽃다운 청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썩 감동적인 이야기도, 자극적인 이야기도 아니지만 나의 인생 중에 가장 찬란했던 그 시기를 한번 들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우리는 20년 전으로 돌아가보려고 한다. 


 


 


 


 


 


 


 


 

1997년. 나는 부산에 사는 평범한 열 여덟 소녀였다. 대부분의 내 또래들도 그렇듯, 제일 좋아하는건 젝스키스 오빠들. 제일 싫어하는건 친언니.  


 


 


 


 

우리동네엔 나와 동갑인 애들이 딱 3명 더 있는데, 둘은 엄마 뱃속부터 친구였던 사이고, 하나는 우리가 7살때 쯤이였나, 그때 이사를 왔다. 아버지가 서울에서 무슨 사업을 하다가 망했다고 그러는 것 같은데, 우리 마을에 들어와 전자제품 대리점을 세워서 그 뒤로는 우리 마을서 가장 잘 사는 축에 속하게 되었다. 하여튼 우리 넷은 하루도 쉴 날 없이 마을을 휘젓고 다녔다.  


 


 


 


 

양화점네 막내 순영이, 그리고 그 앞집에 사는 지훈이, 그리고 그 옆집에사는 원우, 그리고 그 윗집에 사는 나까지.  


 


 


 


 


 

마을에서 우리는 '사고뭉치 네마리'로 불리고는 했고 우리는 나름 그 별칭을 맘에 들어했다.  


 


 


 


 


 

순영이는 위로 형만 둘인데, 하나는 서울에 유명한 대학을 다니고 또 하나는 금성전자인지 뭔지 하는 (하여튼 대기업)에 입사해서 도통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확실히 남자만 넷인 집안에서 애교없이 살아남긴 힘들었나보다. 우리 넷 중에 가장 애교가 많다.  


 


 


 


 


 

원우는 아래로 5살 차이나는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바짝 마른 몸에 날카로운 눈매까지 아주 전원우랑 똑 닮아서 가끔 어두운 곳에서 보면 원우가 가발을 쓴걸로 착각할 때도 간혹 있었다. (실제로 한번은 원우인줄 알고 얼굴에 책을 던진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예은이랑 좀 서먹해지기는 했다만) 사실 말이 썩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랑 있을 때 제일 활발하다고 한다 . (이게 활발한거면 어디 나가서는 그냥 꿈쩍않고 자고있는게 아니냐며 원우를 제외한 우리 셋 사이에선 심각하게 걱정한 적이 있다.) 뭐 하여튼 우리 넷 중에 가장 고지식한 애가 원우라 그를 제외한 셋이 사고를 치고 사라지면 항상 마지막에 남아 뒷수습을 하는 역할을 하고는 했다.  


 


 


 


 

마지막으로 이지훈. 얘가 7살때 쯤 우리 골목으로 이사온 녀석인데, 외동이다. 뭐 피아노를 그렇게 잘 친다나. 아버지 사업이 망한 이후엔 집에있던 피아노를 팔아버려서 우리한테 제 실력을 보여준 적은 없는데, 어릴 적부터 뭐 여기저기 대회를 휩쓸고 다녀서 신동으로 불린단다. 친구 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다시 내 소개로 돌아오자면 나는 전업주부인 어머니와 변호사인 아버지 사이에서 난 1남 2녀 중 셋째다. 위로 큰언니와 작은 오빠를 뒀는데, 어째 막내라고 부둥부둥 크기는 커녕, 인물 좋고 똑똑한 오빠와 그냥 똑똑한 언니 아래에서 인물하나만 물려받은 (물론 내가 주장 중이다) 나는 그저그런 애다. 물론, 뭔들 나는 기죽지 않을테지만.  


 


 


 


 

하여간 내가 오늘 이야기하려는 이 사건의 발단은 내가 막 중학교에 입학하고부터라고 해야할 것 같다.  


 


 


 


 


 

1996년 12월 24일,화요일 


 


 


 


 

넷 중 가장 먼저 2차 성징이 다가온 나는 눈치없는 세 남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고생길을 겪어야만 했다. 중학교 입학식날 터진 첫 생리는 상당히 우울한 경우였다. 빨갛게 물든 녹색 교복치마에 여중은 어떻냐는 권순영의 호기심 가득한 물음을 뒤로하고 울며 집까지 뛰어갔더랬다. 눈치없는 권순영은 그런 나의 뒤에다 대고  


 


 


 


 

"야!! 니 엉덩이에 피나는데!?"  


 


 


 


 

하고 소리쳤고 그 바람에 나는 더더욱 잊을 수 없는 첫 생리를 맞이했더랬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일어난 2차 성징 중에서도 굉장히 급속도로 맞이한 신체적 변화와 정신적 성숙은 나를 세 남자들로부터 조금 멀어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간혹 평소와 같이 장난을 치던 와중 권순영이 내 가슴쪽을 툭 쳤는데 너무 수치스럽고 민망해서 울며 방에 뛰쳐들어갔다던가, 말숙이 할머니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0년째 순영이네 뒷집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다) 집에 평소처럼 초인종을 누르고 골목에 숨는 장난을 칠 때면 슬쩍 그 장난에서 빠진다던가 하는. 뭐 하여튼 그런 과도기적 사태를 겪으면서 내게 생긴 또 다른 변화는 바로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였는데, 또래답지 않게 점잖은 편인 원우를 내심 좋아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까지는 사실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과거의 나를 참 칭찬할 만 한 것이 무어냐면 결코 원우를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았다는 것.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덕분에 얼마 가지 않아 우리 사이는 다시 가까워졌지만 왜 인지 모를 조금의 거리감이 남아있게 되었다. 얼마 있지 않아 세 남자 모두 나와 같은 과도기를 겪게 되었는데, 이지훈을 제외한 두 친구는 나보다 키가 두어뼘은 더 커버렸고, 그들 또한 나와 같은 변화에 나름의 고충이 있었겠지만 참 애석하게도 나를 남자라고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우리의 사이는 여전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어젯밤에 내게 고백해온 이지훈이라는거다.  아 물론 직접적인 고백은 아니였다. 이지훈 성격이 그럴만한 애는 아니지. 그럼. 문제가 여기까지였으면 뭐 어떻게든 수습은 했을거다. 그런데 문제 중에서도 더 큰 문제는 우리 네 사람이 모여있는 그 곳에서 이지훈이 나에 대한 호감을 부정하지 않았다는거지.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어젯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이브전날 밤에 우리 넷 중 그래도 가장 잘 사는 집인 이지훈네 거실에 모여앉아 영화를 보려던 참이였다. 제 형이 생일 선물로 미션임파서블이라는 따끈따끈한 신작 비디오를 보내줬다며 자신만만하게 우리를 불러모았던 권순영이 집에서 비디오를 잘못 챙겨왔는지, 아버지의 빨간 비디오를 플레이어에 고대로 집어넣는 바람에 우리 네사람은 그 자리에 딱딱하게 굳어 귀까지 뻘개질 수밖에 없었다.  


 


 


 


 

그 시기는 그런걸 접하기 쉬운 시대는 아닌터라, 열 일곱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닳은 인간 탄생의 비화는 정말이지 신선한 충격이였다. (그날 어른들끼리 술자리를 가진다며 네 사람의 부모님이 모두 함께 시내에 나간것은 정말 정말 정말 다행이였다) 거실에 울려퍼지는 민망한 소리에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 숙여 플레이어 전원 버튼만 꾹꾹 눌러대던 이지훈, 두 손으로 눈을 가리는 척 하면서 손가락 틈으로 눈울 똥그랗게 뜨고 화면을 주시하던 권순영, 그리고 끼고있던 안경을 벗어 마른 세수를 하더니 자리를 뜨던 전원우까지. 정말, 이도저도 못할 상황이였다. 결국 티비 전원을 끄는데 성공한 이지훈이 크흠거리며 냉장고를 향하자 그제서야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에 나는 쇼파 위의 쿠션을 킥킥거리며 민망한 웃음을 보이는 권순영에게 던졌더랬다.  


 


 


 


 


 

하나 둘 자리를 떴던 아이들이 돌아와 자리에 앉자 다들 눈알만 굴리는 분위기가 시원찮았는지  분위기를 띄울 작정으로 바닥을 팡팡 치며  


 


 


 


 


 

"아, 거 다들 뭐, 기억에서 지우도록 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보자 마!"  


 


 


 


 


 

하며 씨익 웃는 권순영이다. 그러더니 나를 보며  


 


 


 


 


 

"자 우리 중에 유일하게 여고에 재학중인 김칠봉양? 모레가 크리스마스고한데, 외로운 우리 남정네들에게 소개시켜줄 만한 친구는 없는지요?"  


 


 


 


 


 

하고 눈썹을 위아래로 씰룩거리는 모습에  


 


 


 


 


 

"니는 내 친구가 아까워서 소개 못시켜주겠고요, 지훈이랑 원우는 야이네가 아까워서 소개 못 시켜주겠네요"  


 


 


 


 

하고 받아치자 금세 입이 삐쭉 나오는 권순영이다.  


 


 


 


 


 

"정 소개받고싶으면 어디 멀쩡한 남자 하나 데리고 와보든가~"  


 


 


 


 


 


 

그러자 노발대발하며  


 


 


 


 


 

"마! 여기 멀쩡한 남자 셋이나 있구만! 이 중에서 골라라! 아, 물론 난 빼고"  


 


 


 


 

하며 어떻노 지훈아? 솔직히 김칠봉 정도는 니가 감당할 수 있지 않나? 하고 이지훈을 향해 물으니 금세 얼굴이 벌게져선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모습이다.  


 


 


 


 


 

그에 살짝 당황한 권순영이  


 


 


 


 

"니 설마 김칠봉 좋아하나??"  


 


 


 


 


 

하고 묻자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이지훈에 어색해져버린 나는 이도저도 못하고 전원우의 눈치만 살폈다. 기대도 안했지만 정말 표정이 미동조차 없는 전원우에 살짝 상처받은 것도 잠깐, 정말로 분위기가 어색해져버린 탓에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아! 권순영 니때매 크리스마스 이브 전야를 다 망쳤다이가!! 이브날 분위기가 이게 뭐고!! 난 갈란다!"  


 


 


 


 


 

하며 신발을 구겨신고 집으로 달려올라가버렸다. 그리곤 침대에 홀로 이불을 덮어쓰고 엎드려서 말로 차마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정리하려 노력했다. 내가 좋아하는건 원운데, 생각치도 못했던 이지훈이 나를 좋아한다고 해 버리니, 자꾸 원우가 아닌 이지훈 얼굴이 머릿 속에 떠다니고, 귀까지 발그레해져 고개를 못 들던 그 모습이 눈 앞에 아른아른 거려서 차마 이불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새고 나서는 초췌한 얼굴로 방학식에 참석할 수 밖에는 없었다.  


 


 


 


 

"야, 우리 방학식인데 어디 시내 안가나?" 


 


 


 


 

방학식을 마치자마자 뒤에서 들려오는 은영이의 목소리에 내 머리를 만지작거리다가 


 


 


 


 


 

"맞다맞다. 남포동이라도 가야 안하겠나" 


 


 


 


 

하고 내 눈치를 보는 유정이다. 


 


 


 


 

"뭐라는데, 지금 남포동가면 끼 죽는다" 


 


 


 


 

예상대로 단호한 나의 대답에 입술을 삐쭉 내밀며 내 팔을 당겨대는 유정에 결국 


 


 


 


 

"알았다. 그카면 롯데리아까지만 가자" 


 


 


 


 

그만 허락해버린 나다. 


 


 


 


 


 

예상대로 인파로 꽉 찬 남포동거리는 발 한걸음 딛기도 힘들었다. 부산의 학교들이 한꺼번에 방학식을 해버린 데다가 크리스마스 이브날이라, 사람이 없을 수가 없었다. 결국 롯데리아에 힘겹게 도착해 자리에 앉아 햄버거를 시켜먹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감자튀김을 육포씹듯 씹고있자니 


 


 


 


 


 

"근데, 칠봉아. 우리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여자끼리 칙칙하게 보내야겠나? 니 친구들이라도 불러봐라" 


 


 


 


 

"그래, 맞다. 니 동네에 사는 아들 있다아니가? 와, 글마들 셋에 우리 딱 셋이네. 내는 그 쬐깐한 아가 맘에 들드라" 


 


 


 


 

"쬐깐은 무슨, 아니다 니보다 크다! 아...그카고 걔네 지네들끼리 놀러 안가겠나. 가들 불러도 안올걸?" 


 


 


 


 

하고 답하는 나에도 뭐가 그리 아쉬운지 자꾸만 내 팔을 잡아 늘어지는 친구들에 결국 카운터 옆 공중전화로 우리 중 유일하게 휴대전화를 가진 이지훈에게 연락한다. 몇번 울리는 신호음. 그리고 


 


 


 


 

[여보세요] 


 


 


 

"...아, 어 지훈아 낸데, 느그들 다 같이 있나?" 


 


 


 

갑작스러운 내 전화에 살짝 당황 한 듯 한동안 아무 말도 들리지 않더니, 이내 


 


 


 

[...어, 우리 지금 남포동인데] 


 


 


 

하는 이지훈이다. 


 


 


 

"아, 글라. 그럼 니네 롯데리아 올래? 내 지금 친구들이랑 있는데"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권순영의 목소리다 


 


 


 


 

[미친, 야 김칠봉 역시! 우리 우정을 져버리지 않네!!] 


 


 


 


 

한껏 고조 된 목소리에 피식, 하고 웃자 


 


 


 


 

[야! 빨리 간다해라! 빨리 가자!] 


 


 


 


 

하는 목소리에 이어 


 


 


 


 

[...빨리 갈게] 


 


 


 


 

하고 끊기는 전화다. 


 


 


 


 

자리에 돌아와 앉자 권순영만큼 들뜬 유정이와 은영이가 눈을 반짝거리며 온다나? 하고 묻는다. 그에 고개를 끄덕이자 


 


 


 


 

"야이씨, 빨리! 립스틱 끄내라!! 언니꺼 안가지고나왔나?" 


 


 


 

"있다 있다. 내 엄마꺼 다 들고 나왔다! 근데 우야노, 내 립스틱 없고 립글로즌지 뭔지 하는거 밖에 없다..." 


 


 


 


 

하며 서둘러 얼굴에 분칠을 하는 친구들이다. 그에 에휴- 하고 고개를 젓고는 콜라를 쭉쭉 빨아먹는다. 


 


 


 


 

얼마 있지 않아 정말 뛰어오기라도 한건지 다 들린 앞머리를 하고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셋이다. 이 엄동설한에 귀는 얼마나 시뻘건지, 가게 안을 휙휙 둘러보더니 날 발견하고는 씨익 웃어보이는 권순영에 


 


 


 


 

"야, 왔다 왔다" 


 


 


 


 

하고 친구들을 일으켜세운다. 


 


 


 


 


 

"엄마나, 오셨어요?" 


 


 


 

"아 예, 진짜 듣던대로 미인이십니다" 


 


 


 


 

하고 되도 않는 인삿말을 건내는 은영이와 권순영에 괜히 내가 다 민망했다. 그렇게 통성명을 한 뒤 자리에 앉은 우리에 권순영이 먼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 그라면, 우리 커플부터 정해야 안되나? 자자, 다들 자기 물건 여기다가 넣어라" 


 


 


 


 

하며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모양새에 나도 눈을 가리고 기다렸다. 


 


 


 


 

"됐다. 마 은영씨부터 꺼내보시죠" 

 


 


 

"내는, 이게 뭐꼬? 아, 시계다" 


 


 


 

하며 검은 시계를 비닐가방에서 꺼내올리는 은영에 저거, 권순영껀데. 하고 권순영을 올려다보니 인중을 늘려가며 좋아하는 모양새다. 


 


 


 


 

"아, 역시 우리는 운명인갑네요! 그기 제껍니다!" 


 


 


 

하는 순영에 이미 전부터 지훈이를 점찍어둔터라 표정이 그리 밝지 않은 은영이다. 그에 이어 비닐에 손을 넣은 유정이가 꺼내든건 빨간색 삐삐. 이지훈꺼네. 영 당황스러운 표정의 이지훈에 내심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이내 


 


 


 


 

"그럼 김칠봉 짝꿍은 원우네! 함 화이팅 해 봐라!" 


 


 


 


 

하며 원우의 등을 툭툭 치는 순영에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 그라믄, 우리 자리를 함 옮겨볼까요?" 


 


 


 


 

하며 은영이에게 윙크하며 신호를 보내는 권순영이다. 그에 고개를 젓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자리를 뜨는 은영이와 권순영. 


 


 


 


 

"우리도 함 나가볼게! 저녁에 보제이!" 


 


 


 


 

하며 이지훈의 팔을 꼭 잡고 자리를 나서는 유정이에 둘만 남은 자리는 분위기가 영 어색했다. 17년을 같이 지냈는데도. 


 


 


 


 

"니도 어디 나갈래?" 


 


 


 


 

하고 낮게 물어오는 원우에 대답은 못하고 입은 꼭 다문 채로 고개만 살짝 끄덕거렸다. 


 


 


 


 

밖으로 나오자 어김없이 몰아치는 인파에 원우를 놓칠 뻔 했다. 그러다 한순간 원우를 시야 속에서 놓쳐버린 그 순간, 누군가 잡아오는 팔목이다. 


 


 


 


 

"조심해" 


 


 


 


 

하며 제쪽으로 나를 끌어당기는건 어김없이 원우였다. 꿈이냐 생시냐 진짜 계탔다 김칠봉. 어째 둘만 남은건 거의 처음이라 이렇게 어색할 줄은 몰랐다. 내 팔목을 꼭 잡으며 사람이 없는 쪽으로 걷던 원우가 이내  


 


 


 


 

"영화 볼까?" 


 


 


 


 

하며 영화관쪽으로 걷는다. 교복 위에 코트, 그 위에 목도리에 장갑까지 걸친 나와 다르게 교복 위에 남색 가디건 하나만을 걸친 원우가 신경쓰였다. 여전히 팔목을 꼭 붙잡고 있는 손을 내려다보니 빨갛게 얼어버린 손이다. 그에 잠시 망설이다가 그 손을 내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자 코를 찡긋거리며 픽 웃는 원우였다. 감사- 하고는 다시 걷는 원우에 아, 얘는 그냥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는구나. 하면서 살짝 마음이 아렸지만 뭐 어떠랴, 이렇게 둘만 데이트하는 기분을 언제 또 내보겠어. 영화관에 도착 해 나를 의자에 앉혀두고 매표소를 향하는 원우에 그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앉아있었다. 엄지로 키도 재보고, 고개를 옆으로 꺾어 보기도 하고. 그때 출입구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다. 


 


 


 

"어? 뭔데? 니네도 영화보러 왔나?" 


 


 


 

금새 친해진 듯한 모습으로 나를 향해오는 권순영과 은영이에 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참...도움 안되는 친구들 같으니. 


 


 


 


 


 

마! 원우! 하며 매표소로 달려가는 권순영에 내 옆자리에 앉은 은영이다. 


 


 


 


 

"잘 돼가나?" 


 


 


 

하며 물어오는 은영이에 느그때매 망했다 가스나야, 하고 밉지않게 퍽 밀치니 머쓱하게 웃으며 여 있는줄 몰랐지, 하는 은영이다. 그렇긴하지. 


 


 


 

"느그는 좀 친해졌나보네?" 


 


 


 

하고 묻자 어, 성격 좋은데? 하며 내 어깨를 툭툭 쳐오는 은영이다. 그리고 이내 표 네장을 흔들어보이며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권순영과 원우다. 


 


 


 


 

결국 넷이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게되어버렸다. 남은 영화가 공포영화뿐이라, 귀신이 나오는 장면마다 옆에서 소리를 질러대는 권순영에 이건 뭐 원우 팔에 앵겨 약한 척 할 수도 없고. 결국 영화끝 즈음에 소리를 질러대는 권순영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아주세게. 감정을 실어서. 


 


 


 


 

영화가 끝나고는 이상하게 옆구리가 너무 아프다며 통증을 호소하는 권순영에 기분탓이라며 그를 잡아당기는 은영이에 입모양으로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또다시 둘만 남은 영화관. 겨울이라 해가 짧은 탓에 해는 금새 졌고, 곧 거리에 캐롤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집에 갈까?" 


 


 


 


 

하고 묻는 원우에 그래, 하며 다시 거리로 나왔다. 오전보다 늘어난 인파에 원우의 책가방 끈을 꼭 잡고 걸었다. 그리고 거리 중간의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에 다달은 그 순간, 


 


 


 

톡- 


 


 


 

하며 코 위에 앉는 눈 한송이다. 


 


 


 


 

"어, 눈온다" 


 


 


 


 

하는 나에 자리에 멈춰 서 하늘을 바라보는 원우의 모습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지 못할 만큼 내게는 아름다웠다. 


 


 


 


 

주황색, 빨간색, 초록색. 형형 색색의 빛깔들로 뒤덮힌 거리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중간에 멈춰 선 우리는 같은 날 같은 시 같은 추억을 공유했고, 1996년 12월 24일 화요일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내게는 잊을 수 없는 하루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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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헉 응답하라 느낌나요...ㅠㅠ제가 너무 좋아하는 분위기ㅠㅠㅠㅠㅠ신알신하고갈게요ㅠㅠㅠㅠ
6년 전
독자2
우와 분위기가 진짜 좋아요 ㅠㅠㅠㅠ 부산사는 독자 설렜습니다..... 저도 신알신 하고 갑니당??
6년 전
독자3
와 대ㅡㄱ....와...진짜 와...분위기 유ㅏㄴ전 제 취향이네요...신알신 누르고 가요ㅠㅠ 아 진짜 너무 좋아요
6년 전
독자4
헐 너무 설레여ㅠㅠㅠㅠㅠㅠㅠㅠ
6년 전
독자5
와 한참 응답하라 시리즈 보고 싶은 날씬데 이런 분위기 사랑합니다ㅠㅠㅠㅜ신알신 누르거 가요?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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