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서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고 계시는 전정국님 덕분에 나는 그 날 이후로 '전정국 잠바'로 불렸다.
복도를 걸어다닐 때마다 여후배든 여자동급생이든 '그때 그 전정국 잠바' 라며 수근거렸고, 나는 상당히 짜증났다.
나는 전정국의 계획대로 완벽히 복수당한거다.
물론 집에 와서 열열히 화를 내봤지만 전정국에겐 미안하다는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오히려 '그냥 옷맡아달라한 건데, 그게 어때서?' 하는 뻔뻔한 말투만 들었을 뿐이다.
겨우 겨우 며칠동안 친구들에게 '소꿉친구' 라고 둘러대서야 수근거림이 조금 줄어들기시작했고,
그렇게 며칠동안 전정국을 포함한 여러사람들과 기싸움하느라 했던 고생길을 지나 드디어 꿈같은 금요일이 되었다.
금요일 밤. 내일 걱정없이 영화를 보며 잠에 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이건 전정국이 없었을 때를 의미한다.
"뭐야? 너가 왜 벌써 들어와?!"
"내가 우리집에 들어온 게 그렇게 이상하냐?"
야자가 끝나고 집에 막 들어와 콧노래를 부르며 옷을 갈아입었고,
베개, 이불, 인형, 과자, 콜라.
거실에 혼자 영화를 보기 위한 세팅을 완료한 뒤 행복하게 딱 눕자마자
현관문을 열고 전정국님이 등장하셨다.
"너 금요일마다 애들이랑 노느냐고 늦게 들어왔잖아!"
"나라고 맨날 놀라는 법 있냐?"
절망적인 표정을 짓는 나를 무시하고 전정국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 쟤는 방에 있겠지! 하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영화재생버튼을 누른 지 10분만에
잠옷으로 갈아입은 전정국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거실로 나왔다.
나는 내 옆에 태연하게 눕는 전정국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왜 여기 눕냐?"
"금요일마다 거실에서 자더니 영화보느냐고 그랬던 거였냐"
"니가 무슨 상관? 방해하지 말고 들어가지?"
"나도 영화 볼거야."
나는 나의 힐링타임을 방해한 전정국에 화가 났지만 실랑이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방해하지마라' 라고 경고하며 전정국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영화에 집중했다.
그렇게 나란히 누워 영화를 감상한 지 30분정도가 지났을 까
다행히 조용히 영화를 감상하는 전정국에 나는 어느새 전정국이 옆에 있는 것도 까먹은 채 영화에 집중했다.
그 말랑말랑한 장면과 소리가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이게 무슨 일인지 분명 액션영화였는데 갑자기 남녀가 뒤엉키며 옷을 벗기 시작했고 이상한 소리가 거실에 울려퍼졌다.
그 장면이 나오자마자 나는 경직되서 전정국이 옆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굳어버린 나는 슬쩍 천천히 눈동자를 돌려 전정국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미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전정국에 화들짝 놀라며 손에 들고 있던 과자를 떨어뜨렸다.
전정국은 미간을 좁혔다.
"너 설마 매주 이런 거 보려고 금요일에 늦게 들어오라고 한거냐?"
"아, 아니야! 이거 액션 영화야!!"
"쯧쯧, 니가 그렇지 뭐"
"아니라고!"
약간에 실랑이 뒤 다시 우리는 영화에 집중했지만,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이 영화는 분명 액션영화인데 이 이상한 장면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손에 이불을 꼭 쥐고 어찌해야할 지 몰라 경직된 채로 전정국 눈치만 보고있었다.
그때 갑자기 전정국이 내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꺄악!"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전정국 쪽으로 몸을 뒤집었고 얼떨결에 난 전정국 위에 올라누워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티비에서는 여전히 음란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우리 둘의 자세도 꾀나 음란하게 되어버렸다.
나는 경직된 채 가까운 전정국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전정국도 꾀나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우리 둘은 매일 같은 침대에서 잤지만, 그건 그저 서로 자기가 큰 방에서 자겠다고 싸우다가
작은 방에서는 죽어도 자지 않겠다는 자존심때문에 결국 같이 자게 된 것일 뿐이었고,
태어났을 때부터 워낙 남매처럼 붙어지내던 터라 작은 감정하나 있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리 부부라할지라도 우리는 감정 하나 없는 사이였고, 스킨쉽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사이였다.
부부니 미래에 아이를 가져야한다는 생각이 없던 건 아니지만, 그건 정말 먼 미래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분위기와 상황은 내 머릿 속을 정말 어지럽게 만들었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위치에서 두 눈동자가 마주봐질 때,
전정국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나는 전정국의 얼굴이 내 얼굴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곧 전정국의 입술이 닿을 거라고 생각한 난 어찌할 줄 몰라 그저 눈을 꽉 감아버렸다.
하지만 그 다음에 내 입술에 느껴진 건 전정국의 입술이 아니라 차갑고 딱딱한 플라스틱이었다.
"진짜 응큼해. 너."
전정국이 손에 있던 캔음료를 내 입술에 갖다 댄 것이었고, 민망해진 나는 곧바로 전정국 위에서 내려가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갔다.
"내가 미쳤다고 너한테 키스하냐? 그니깐 응큼하게 쓸데없는 걱정하지마."
전정국은 그 말을 남기고는 그대로 방에 들어갔다.
야속한 영화는 그제서야 정상적인 액션신으로 바뀌었다.
나는 빨개진 얼굴을 식히기위해 한참을 선풍기 앞에 앉아있었고,
내 꿈같은 금요일은 전정국이 완전히 망쳐버린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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