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19살, 내 남편 전정국
W. 달감
07
"어디아파?"
"머리가 좀 아프네..."
그날 밤 이후 벌써 5일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그동안 난 전정국에게 평소대로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하며 잘 지내왔다.
하지만 속은 전혀 그러하지 못했다.
예전과 다르게 전정국만 보면 요동치는 심장을 숨기느라 내내 마음을 졸였다.
심지어 이제 같은 침대에서 잘 수 조차 없어서 전정국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방 밖으로 나와 자기도 했다.
내가 전정국을 남자로 본다고 생각하면 두근거리다가 전정국은 날 여자로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또 한없이 침울해졌다.
거기다 이 뽀뽀는 내 인생 첫 뽀뽀였다.
내 첫뽀뽀가 남이 자고 있을 때 일방적으로 한 거라니 큰 자괴감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5일동안 마음도 생각도 너무 복잡해서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런지 며칠전부터 감기기운이 들었다고 느끼긴 했는데 오늘따라 더 빙글빙글 어지럽다.
"열나는 것 같아. 어서 조퇴하고 병원가봐. 같이가줘?"
"괜찮아 혼자갈 수 있어."
지민이의 말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로 향했다.
머리를 감싸고 겨우겨우 한발짝씩 나아가는 데 흐릿한 시야로 익숙한 사람이 들어왔다.
전정국, 내 남편이었다.
아파서 먼저 집에 가겠다고 말할까 했지만, 옆에 서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오자 나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손까지 잡고 있는 걸 보면 저번에 말한 여자친구가 분명했다.
저 아이는 알고 있을까.
전정국에게 사랑은 위험한 것일 뿐이란 걸.
전정국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다는 걸.
모든 여자들은 그저 지나가는 즐거움을 위한 존재라는 걸.
전정국의 마음에는 '사랑'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걸.
다시 여러생각들이 지나가자 머리가 아파왔다.
결국 나는 전정국을 피해 교무실로 향했다.
-
병원에 갈 힘조차 없어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거실 소파에 푹 쓰러졌다.
약을 먹으려고 일어서려는 데 저번에 감기약을 다 먹었던 게 생각이 났다.
난 힘없는 손가락으로 겨우 핸드폰을 꺼내 전정국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얼마가지 않아 전정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전정국 오늘..."
[나 오늘 야자안하니깐 집에 혼자가]
"왜?"
[여자친구랑 데이트 있어]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곤 혼자 눈을 감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전정국은 이미 내 남편이니깐 다른 사람이 아닌 전정국을 사랑하게 됐으니 다행이고 좋아해야 할 일 아닌가.
그런데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오히려 자꾸만 슬프기만했다.
사랑이 이렇게 슬픈 거 였다면 차라리 알지못하는 게 더 나을 뻔 했다.
드디어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았는 데, 내 첫사랑은 야속하게도 짝사랑인가보다. 그래서 이렇게 슬픈거겠지.
머리가 아파오는 데 이상하게 전정국이 너무 보고 싶었다.
"전정국..."
나는 그렇게 전정국을 부르며 잠에 들었다.
-
눈을 뜨다가 두통에 다시 눈을 꼭 감았다.
"일어나서 죽먹어."
부엌에서 들려오는 전정국의 목소리에 이게 환청인가 싶었다.
"죽을 먹어야 약을 먹지."
하지만 다시 들려오는 전정국의 목소리에 잠이 확 달아났다.
몸을 살짝 일으켜 주위를 보자 거실에서 막 잠들었던 것과 다르게 안방의 침대에 옮겨져있었다.
무엇보다 부엌에서 스며들어오는 불빛과 죽 냄새는 전정국이 집에 왔음을 확신하게 했다.
"아무리 아프더라도 무식하게 거실에서 잠드냐? 추워서 감기 더 걸리면 어쩌려고. 옮기느라 무거워서 혼났네"
전정국은 죽과 수저를 올린 쟁반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불을 키고 내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작은 의자를 두고 앉았다.
"데이트 있다며"
"너 때문에 일주일 전부터 계획했던 100일기념 데이트도 깨고 집으로 왔다."
"왜 왔는데?"
"데이트하러 학교 나가다가 박지민 만났어. 걔가 너 아픈 거 알려줘서 집으로 왔지."
"너 여자친구는 어떡하고?"
"내가 갑자기 집간다고 하니깐 울면서 지금 가면 헤어진다고 하더라. 그래서 걍 왔지. 어차피 곧 질릴 애였어. 상관없어."
"왜 그랬어?"
"역시 여자친구보단 아내가 우선이지."
역시 매정하고 사랑없는 남자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다 몰라도 나는 잘 알 것만 같다.
전정국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 따듯하다는 것을.
몸은 너무 아픈데 마음은 점점 따듯해져갔다.
지금 이 순간 전정국이 옆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전정국이 내가 몸을 일으켜 앉는 걸 도운 뒤 나를 보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 너가 직접 말 안할거야?"
"뭐가?"
"며칠동안 은근히 나 피하고, 어색하게 대하고."
"..."
"그리고 너 항상 무슨 일 있거나, 생각많을 때마다 이렇게 아팠잖아."
무슨 일냐고 묻는 전정국에 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 시선 또한 피했다.
전정국은 턱을 괴고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전정국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는 없었다.
내가 전정국을 남자로서 보게 되었다고 했을 때 전정국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기때문이다.
오히려 전정국이 싫어하면 어떡할지 겁이 더 앞섰다.
전정국은 나를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다 끝내 내 입에서 아무말도 나오지 않자 먼저 입을 열었다.
"이렇게 힘들어 할거면서 그런 짓은 왜한거야?"
"그런 짓?"
"너 나 잘 때 몰래 뽀뽀했잖아."
전정국의 말에 나는 온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아니 차라리 지금 당장 온 몸이 굳어서 돌맹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난 경직된 채로 놀라서 전정국을 바라보았다.
이 미친자식은 다 알고있었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말하지 않았다.
정말 폭발할만큼 놀란 내 몸과 마음과 다르게 전정국은 아주 많이 태연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지금 얼굴 엄청 빨개. 그리고 표정도 엄청 웃겨."
"어, 언제부터 깨있었어?"
"너 들어와서 내 얼굴 한참동안 쳐다보고 있을 때부터 전부."
"왜 왜 왜 말안했어?!"
"피해자는 난데 내가 먼저 말 꺼내야되냐? 니가 당연히 먼저 말할 줄 알았지.
일주일동안 그렇게 바보같이 어색해하면서 자기혼자 힘들어할 줄 누가 알았겠어."
쥐구멍이 있다면 당장 기어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 빨개진 얼굴을 태연하게 바라보는 전정국에 너무 부끄러워서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까지 덮었다.
이제 어찌해야할 지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안그래도 열때문에 뜨거운데 정말 내 자신이 폭발하지는 않을까 걱정 될 지경이었다.
그러나 전정국은 다시 내 이불을 걷어내리고 내 얼굴을 마주봤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너 나 좋아해?"
"..."
"나 사랑해?"
나름 진지한 얼굴과 말투였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알 수없는 감정에 울컥했다.
마치 며칠동안 그렇게 고생했던 일들이 모두 벅차서 차오르는 것 같았다.
"흐윽.. 그런 것 흐윽 같아"
갑자기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내 모습에 전정국은 당황하는 듯 싶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너 지금 진짜 웃겨."
"웃지마!! 흐윽 내가 너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뭐가 힘들어? 그냥 좋아한다고 말하지"
"흐윽, 너는 나 안사랑하니깐"
울상인 나의 말에 전정국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널 안사랑한다고 생각해?"
"우리는 19년동안 남매처럼 설레임없이 지냈는데,
19년동안 같이 있었는데도 나는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이제야 알았는데,
너같이 냉정한 애가 날 사랑할리가 없잖아!"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전정국의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전정국을 바라보았다.
당장 거절할 줄만 알았는데 예상 외에 답이었다.
"그럼... 너도 나 사랑해?"
전정국은 내 말에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글쎄?"
"..."
"어디 한 번, 내가 널 사랑하게 만들어봐."
나는 나를 야골리는 듯한 말투에
여전히 찾을 수 없는 답에
정말 그 상태로 폭발해서 전정국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너 일루와!! 사람가지고 노냐?!"
"악 아파! 진정해! 너도 지금 아프잖아!!"
"진정하게 생겼냐 이 나쁜 놈아!!!"
그렇게 전정국으로 인해 풀리지 않은 매듭이 딱 하나 정도는 풀린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전정국의 마음은 단 하나도 알 수 없다.
나는 오늘 깨달았다.
전정국을 사랑하게 된 이상, 내가 겪어야 될 아픔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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