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19살, 내 남편 전정국
W. 달감
17
옥상에 앉아 지민이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재잘거렸다.
내 입에서 나오는 꿈 같은 이야기들을 지민이는 미소지으며 들어주었다.
그동안 우울한 이야기만해서 미안했는데 이제부터는 행복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맑게 갠 구름 두둥실한 푸른 하늘이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 했다.
"안녕?"
사악한 미소를 짓고 다가오는 최보나에 나와 지민이는 미소를 굳혔다.
"어제는 미안하게 됐어."
"뭐가?"
"나랑 정국이랑 키스하는 거 보고 그렇게 뛰쳐나갔잖아."
"너가 먼저 전정국 의사도 안묻고 저질러버린거라고 전정국이 말해줬거든?"
"맞아. 근데 정국이도 결국 안밀쳐냈잖아? 많이 상처받은 것처럼 보이던데 미안해"
"상처안받았거든?!"
"그래? 그럼 내가 오늘 정국이한테 고백해도 상관없지?"
즐겁다는듯 더 사악하게 짓는 미소에 나는 기가 막혔다.
최보나는 지금 전정국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찰떡같이 믿고있는 것 같았다.
"저기 미안한데 나랑 전정국은 사귀..."
나는 말을 꺼내다가 뒷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가 이제 사귀는 건가?
뭐 원래 결혼한 사이긴 하지만 또 사귄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하지만 이제 서로 사랑하는 것도 확인했고...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뭐 이제 너한테 허락맡고 싶지도 않아. 그럼 이따 보자."
언제나 그렇듯 자기가 최고로 고상한 척 구는 게 참 어이없다.
나는 그렇게 뒤돌아 걸어가는 최보나를 노려보다가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전정국을 발견했다.
행여나 최보나가 먼저 발견하고 붙어먹을까봐 나는 전정국에게 빠르게 달려가 그를 빈교실로 끌고갔다.
"아- 갑자기 왜이래"
"아직도 말 못해줘?"
"뭐?"
"그날 새벽 최보나한테 왜갔는지"
"또 그얘기야?"
그 날 이야기를 꺼내는 나로 인해 전정국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이제 서로 옛날 이야기는 꺼내지 않기로 약속했으면서 참지못하고 그 날 이야기를 꺼내는 내가 잘못인걸 알고있다.
그래서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전정국의 양손을 꼭 붙잡아 깍지를 꼈다.
그러자 전정국의 미간이 조금은 원상태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이때다 싶어 난 계속 불쌍한 표정을 유지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미안해...
근데 별거아닌거 같은데 너가 계속 말안해주니깐 마음에 자꾸 걸리니깐 그렇지...
그리고 자꾸 최보나가 나한테 와서 깝쭉거리고 불안하게 하니깐...
솔직히 최보나가 엄청 예쁜 것도 사실이고... "
쪽
계속 작게 중얼거리는 내 입술에 살짝 부딪힌 뒤 사라지는 전정국의 입술에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깍지를 끼고 있던 전정국의 손에 더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나도 놓칠새라 더 꽉 손을 잡았다.
"나는 너꺼야."
"..."
"최보나가 어떻든 나는 너꺼라고."
"..."
"그러니깐 쓸데없이 혼자 불안해하지마. 알았어?"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전정국은 그런 나를 보고 미소지으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전정국의 품 속에서 전정국의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할 수 있는 이야기였으면 진작에 말했을 거야.
나만의 일이 아니라서 말할 수가 없어.
믿어줘서 고마워 마누라."
전정국은 더 크게 웃어보이고는 먼저 빈교실을 나갔다.
교복을 입은 뒷모습의 기럭지와 넓은 어깨를 보자 내 가슴이 더 크게 뛰었다.
저런 멋진 자식이 내 남편이라니 난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분명하다.
이제 내 남편 말대로 쓸데없이 불안해하지 말아야겠다.
전정국은 내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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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아 좋아해."
뭔 똥배짱이 있어서 저렇게 공개적으로 고백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간다.
분명 전정국이 자신의 고백을 받아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거겠지.
또한 일부러 내가 보는 데서 고백을 해서 날 기분 나쁘게 하려는 목적이 더 분명하다.
하필 내가 전정국네 반에 이동수업이 있을 때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걸 보면 말이다.
"나랑 사귀어줄래?"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여린 여자처럼 부끄럼을 타는 듯하면서도 당돌하게 눈을 맞추며 말하는 최보나 앞에 전정국이 떡하니 서있다.
내가 보이는 전정국의 모습은 뒷모습뿐이라서 어떤 표정일지 상상이 안간다.
'와 저런 여자애가 먼저 고백하는 데 누가 안받아주냐?'
'둘이 사귄다는 소문 돌았었는데 이제 진짜 사귀는 건가봐'
'전정국 최보나 진짜 선남선녀다.'
내 귀로 들려오는 소리들을 모른 채하려고 애쓰고 있는 데 눈이 마주친 최보나가 날 향해 승리의 미소를 보였다.
전정국이 불안해하지말라고 했는데 저 당당한 미소를 보면 이상하게 불안감이 커져만간다.
입술을 깨물며 좋지않은 기분들을 물리치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 전정국이 뒤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입술을 깨물고 있는 날 보더니 피식 웃는 녀석이 너무 괘씸했다.
"최보나, 너 알면서 자꾸 왜그래?"
"뭐?"
"나 김탄소 좋아하는 거 알잖아."
전정국의 말에 모든 교실이 술렁술렁 거렸다.
나는 내가 잘못들은 줄 알고 멍해있다가, 이내 교실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향해 있는 것을 깨닫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들 몰랐어? 나 김탄소 남자친군데?"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전정국의 말로 학우들의 눈은 한껏 동그래졌고,
이 어지러운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 때마침 학교 종이 울렸다.
전정국은 굳어버린 나를 한 대 툭 치고 교실을 나섰고,
얼굴이 회색빛이 되어버린 최보나또한 얼굴을 가리며 교실을 나섰다.
우리반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나에게 달겨들었고,
나는 모든 상황에 조금 익숙해져서야 살짝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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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신분상승한거야?"
"뭐가"
"아내에서 여자친구로!"
우리는 두 손을 꼭 잡고 하교했다.
우리 학교에 있는 전정국의 팬들이 조금 무섭긴 했지만 어차피 사귄다고 소문난거 이제 마음껏 티내야겠다.
"뭐가 그러냐? 원래 여자친구에서 아내로 가야하는 거 아니야?"
"몰라. 내가 생각해도 우리 관계 진짜 이상해! 정국아 그럼 나한테 '애기야'라고 불러줘봐"
"뭐? 죽고싶냐?"
"나 남자친구생기면 그렇게 불려보고 싶었단 말이야"
"애기는 젠장할, '거인아'라고 부른 쪽이 맞거든"
"아 진짜 전정국 무드없어 짜증나"
오랜만에 예쁜 달빛이 우리를 비추었고,
우리 둘은 티격태격하며 계속해서 달빛 아래에서 걷고 있었다.
그 때 전화음이 전정국의 주머니 속에서 울려퍼졌고 난 단 한순간에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전정국은 휴대전화에 뜬 이름을 보자마자 내 눈치를 봤고
나는 기분나쁜 느낌에 잡고 있던 전정국의 손을 더 꽉 잡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대충 대답을 한 전정국은 전화를 끊고도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 표정은 그것보다 더 심각했다.
전정국의 표정을 보고있으니 순식간에 나쁜 기억이 떠올랐다.
이 표정 본적있다.
나 불안해. 그 표정 짓지마 전정국.
"최보나야?"
"...어."
"또 가야된다고? 걔한테?"
"...어."
"가."
"... 미안해"
"얼른 가라고."
난 애써 눈물을 꾹꾹 삼키며 전정국을 바라보았고
전정국은 한참을 미간을 찌푸리고 날 내려다보다 이내 내 손을 놓고 그렇게 어디론가, 아니 최보나에게 가버렸다.
가라고 한다고 진짜 가는 바보새끼.
나는 그제야 제자리에 주저 앉아 눈물을 펑펑흘렸다.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엇이 전정국을 저렇게 다급하게 뛰어가게 하는 걸까. 최보나에게 무슨 힘이 있는 걸까.
나는 이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애써 머리를 굴려봤지만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때 울고있는 내 앞으로 검은 차 한대가 멈춰섰다.
나는 어리둥절하며 고개를 들었고, 검은 차의 창문이 내려가며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내게 달려와준건 오늘도 전정국이 아니라 김태형이었다
"탄소야 타"
"..."
"내가 전정국이랑 최보나가 어디로 가는지 알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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