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19살, 내 남편 전정국
W. 달감
14
"아가씨 여기서 뭐하세요?"
굳게 마음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파트 정문 앞에 서있는 차에서 누군가 날 불렀고, 난 발걸음을 멈췄다.
때때로 나와 전정국을 도와주시는 우리 회사 김비서님이셨다.
"김비서님? 여기서 뭐하세요?"
"무슨 일이긴요? 아가씨 모시러왔죠. 문자못보셨어요?"
"문자요?"
"오늘 탄탄기업 새프로젝트 런칭기념파티 가셔야해서 아침부터 준비해야한다고 연락드렸잖아요."
난 뒤늦게 휴대폰을 확인해 도착해있던 문자를 확인하였다.
"전정국...은요?"
"도련님은 아침 일찍 샵으로 먼저 가셨어요. 아가씨도 어서 타세요."
오랜만에 집에 가서 푹 쉬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시끄러운 파티에 가야한다니,
거기다 전정국과 제대로 된 화해를 하기도 전에 얼굴을 마주해야한다니 걱정이 앞섰다.
나는 한숨을 쉬며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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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동안 메이크업을 받고, 머리를 하고, 일정을 설명듣는 동안 전정국은 한 치도 보이지 않았다.
원래 집 안에 공식 일정이 있는 날에는 모든 스케줄을 함께 해냈었는데 오늘은 요리조리 날 잘도 피해다니는 듯 했다.
항상 힘들고 재미없는 스케줄이었는데 전정국이 없으니 오늘따라 더 힘들게 느꼈다.
그렇게 길고 긴 시간이 지나 어느새 해가 지고 공식일정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남색의 화려한드레스를 입고 온 몸에 여러 보석들을 걸친 거울 속 내 모습은 정말 예뻤다.
전정국을 만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다시 한번 머리, 화장, 악세사리들을 점검했다.
이렇게 화려하게 꾸몄는데도 전정국이 날 보고 예쁘다고 생각하지않을 것 같아서 걱정되었다.
전정국 딱 한 사람한테 잘보이기가 이렇게 힘든 일인가보다.
"아가씨, 차로 이동하실게요."
전정국이 있을 차로 이동해야한다는 말에 내 심장이 두근거리기시작했다.
샵에서 나와 차로 이동하는 길이 나에겐 그 어느 길보다 길게 느껴졌다.
어서 전정국을 보고싶어서 빨리 이 길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여러 걱정들이 앞서서 이 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각또각, 내 구두의 소리만 내 귀에 울려퍼졌고 어느새 이 길이 끝나 전정국이 타고 있는 차 앞에 도착해있었다.
망설일 틈도 없이 아무것도 모르는 경호원이 차 문을 열었고 나는 숨을 들이쉰 뒤 차에 올랐다.
전정국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내 심장이 더 빠르게 뛰기시작했다.
전정국은 내 드레스와 같은 네이비색의 정장을 차려입은 채 앉아있었다.
교복도, 정장도 모든 완벽하게 소화하는 전정국은 평소에도 그렇게 멋있으면서 오늘은 특히나 멋있었다.
그토록 그리워했는데 지금 이렇게 내 옆에 있다니 살짝 꿈만 같았다.
나는 홀린 듯 전정국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전정국은 날 하나도 바라봐주지않는다.
난 전정국이 평생 이렇게 날 외면할까봐 걱정이 차올라 나도 모르게 전정국의 이름을 불렀다.
"전정국."
"조용히해."
"..."
"나 너랑 얘기하기 싫어."
전정국의 한 마디에 내 모든 순간이 무너지는 듯 했고,
왈칵 차오르는 눈물에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기사님이 그런 우리의 눈치를 보다가 차를 출발시켰고 그렇게 차는 무거운 공기만 싣고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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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모님"
"어머~ 아가씨는 결혼하더니 더 예뻐지셨다~"
"감사합니다. 회장님은 잘 지내시죠?"
의미없는 가식만 가득한 대화와 인사만이 오고가는 연회장.
계속해서 몇 십명의 고위층의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이 곳을 어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우리 공주!♡"
"아빠!"
시무룩한 마음에 홀로 서서 테이블에 놓인 쿠키 몇조각을 집어먹고 있는데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반갑게 고개를 돌렸다.
"탄소야 이제야 보는구나."
"너무해. 딸이 왔는 데 이제야 찾아오다니."
"미안하다. 우리 회사 행사라 너무 바빠서 말이지. 전사위는?"
전정국을 찾는 아빠의 말에 나는 살짝 흠칫했다.
항상 이런 데오면 나보다 바쁜 건 전정국이지만
중간중간 찾아와 장난도 걸어주며 집에 가고 싶다고 칭얼대는 나를 잘 달래주었는데.
오늘따라 혼자있는 시간이 너무 긴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다른 분들하고 인사하느냐고 바쁘겠죠."
"그렇겠구나 이따 따로 인사해야지.
아참, 너한테 꼭 인사시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
아빠가 누군가에게 손짓했고, 검은 정장을 멋지게 빼입은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또 의미없고 재미없는 인맥쌓기구나, 하며 눈을 잠시 깔았다가 들어올린 나는 그 남자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안녕하세요 김탄소씨."
"김의원님 아들 분인데 이번에 김의원님이 미국으로 가셔서 대신 왔다고하구나.
너 또래고, 김의원님이 우리 기업에 많은 도움을 주셨으니 둘이 꼭 친해졌으면 해."
아빠가 말을 끝내자마자 아빠는 바쁘다며 자리를 떠났고,
나와 김태형은 그렇게 둘만 남았다.
"부잣집 아들이었어요? 아, 그럼 나랑 전정국 결혼한 것도 알고 있었겠네? 왜 말안했어요?"
"난 전정국이 당연히 말했을 줄 알았지.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고 순수하게 날 대하는 너가 너무 귀엽더라고"
"전정국은 알고 있었단 말이에요?
아- 그래서 전정국이 오빠랑 친해지지말랬구나.
김의원님이면 그 조폭조직이랑 연관해서 논란이 많으신 분이니깐."
"나랑 친해지지 말라그랬다고? 너무하네- 우리아빠가 그런거지 내가 그런건 아니야"
김태형이 입꼬리를 올리며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켰고 나는 그런 김태형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정장을 입어서 그런지, 정체를 알아서인지 사람이 조금 달라보였다.
무엇보다 검은색의 정장이 너무나도 잘어울렸다.
"생각해보니 그럼 오빠는 나 유부녀인거 알고 자기 집에서 재운거에요?"
"사실 나도 남편도 있는 애가 그렇게 따라올지는 몰랐지."
"허, 됐어요. 아무일 없었으니 상관없죠"
"근데 나는 너 남편있는 거 몰랐으면 아무일 낼 뻔 했어."
"..."
"너 좋아하는 건 거짓말 아니었으니깐."
분명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평소와는 다른 살짝 낮은 목소리에 나는 웃지 않고 김태형을 바라봤다.
그런 나를 김태형은 뭐가 그리 재밌는 지 계속 입꼬리를 올리고는 손에 들린 와인을 살살 흔들었다.
"전정국이랑 싸우고 우리 집에서 잔 거 맞지? 화해는 했어?"
"..."
"이렇게 혼자 서있는 거 보니 화해는 안한 것 같네. 근데 그거 알아?"
"뭐요?"
"여기 최보나도 왔어."
최보나라는 단어에 내 얼굴은 한순간에 확 굳어져버렸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내 폰에 문자가 도착하는 알림소리가 울렸고, 나는 불길한 느낌에 문자를 확인했다.
[탄소야, 최보나랑 전정국이랑 사귄다는 소문도는 데 너 괜찮아? -박지민]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내 눈에선 눈물 한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역시 오늘까지 나한테 차가웠던 이유는 최보나에게 마음을 뺐겨서였구나.
그렇게나 부정하고 부정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최보나랑 전정국이랑 사귄다는' 이라는 글자가 눈 앞에서 계속 아른거렸고, 그때 내 두 눈에 어디론가 향하는 전정국이 들어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저 좀 가볼게요' 라고 대충 말하고는 급히 전정국을 따라나섰다.
김태형은 여전히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복잡한 연회장 속 많은 사람들 속에서 전정국의 뒷모습을 쫓아 빠르게 구두를 움직였다.
왠지는 모르게 그냥 너무 다급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전정국을 붙잡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 전정국이 내 옆에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전정국은 연회장을 빠져나가 긴 복도로 향했고
내 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전정국의 모습은 어떤 방 안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는 모습이었다.
나는 전정국이 들어선 방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설마 하는 생각만 머릿 속에 맴돌았다.
아까 내가 둘러본 연회장 안에서 최보나는 보이지 않았다.
연회장이 얼마나 넓은지 알기에 내 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데도
이 방 안에 최보나와 전정국이 함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음과 몸이 같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나도 모르게 떨리는 손으로 방 문을 열였다.
점점 벌어지는 문 틈 사이로 남색정장을 입은 남자와 핑크색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두 남녀가 입을 맞추고있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두남녀가 최보나와 전정국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꾀나 오랜 시간이 걸렸기에 나는 방문을 잡고 거기서 그렇게 멍하니 서있었다.
전정국 얼굴에 올려진 최보나의 손이, 맞닿은 둘의 입술이 내 마지막 희망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최보나와 전정국은 감고 있던 눈을 급히 떴고 그 둘의 눈에 들어온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였을 거다.
나는 결국 무너지는 내 심장을 견디지 못하고 울면서 그 곳을 뛰쳐나왔다.
"김탄소! 김탄소!"
전정국이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쫓아왔지만 나는 계속 빠른 걸음으로 도망칠뿐이었다.
연회장을 빠져나오자마자 하늘에서 내리고 있는 비가 나를 흠뻑 적셨지만, 나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 도망쳤다.
"김탄소!!"
"이거 놔!!"
연회장 뒤에 있는 큰 정원에 다달았을 때 나는 전정국에게 팔목을 붙잡혔고 강하게 전정국을 밀쳤다.
흐르는 눈물이 너무나도 많아서 고개를 들 수 조차 없었다.
다시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려는 데 야속한 높은 구두가 정원의 땅에 박혀버려 그대로 철퍼덕 넘어졌다.
비에도 흠뻑 젖고, 이렇게 넘어져버리고, 남편한테 바람이나 맞고.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창피해서 나는 그대로 일어서지 못하고 계속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전정국은 자신의 정장을 벗어 나에게 덮어주었다.
그리곤 한 쪽 무릎을 꿇어서 구두를 땅에서 빼내곤 내 어깨를 감싸 나를 일으켜주었다.
빗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고 섰다.
화가 나고, 슬프고, 자존심 상하고 여러감정들이 뒤섞인 게 그저 눈물로 표현되는 듯 했다.
전정국이 정말 밉고 최고로 싫은데, 그 와중에도 전정국이 비를 맞으면 쉽게 감기에 걸리곤 했던 게 먼저 떠올랐다.
지금 젤 불쌍한 건 난데 그 와중에 전정국 걱정이나 하고 있는 내가 나조자도 어이가 없었다.
사랑이라는 거 정말 사람이 할 짓이 못되구나. 다시는 사랑같은 거 하고 싶지 않다.
"전정국. 나 이제 너 사랑하는 거 그만할래."
넘치는 울음에 토하듯 말을 했다.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더 눈물이 흘렀다.
"한 달도 못기다리겠어.
너무 힘들어. 이제 다 그만할거야.
내 첫사랑 진짜 최악이야."
내 말이 끝나자마자 전정국은 내 어깨를 잡아 나를 자신의 쪽으로 당겼고, 내 입술이 전정국의 입술에 닿았다.
밀쳐내려고 힘을 주고 몸을 움직여봤지만 전정국의 힘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힘이 들어간 전정국의 손과 입술에서 전정국이 화가 났다는 게 선명하게 느껴져서 결국 나는 밀쳐내는 걸 포기하고 그대로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우리의 첫 키스가, 빗속에서의 가장 의미없는 차가운 키스가 그렇게 계속되었다.
몇 초가 더 지나고 나서야 전정국이 입술을 떼고 한껏 찡그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화난 얼굴은 처음이었고 전정국의 차가운 표정은 날 겁먹게 할 정도였다.
화내야하는 입장은 나인것 같은 데 전정국이 이렇게 화가 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너가 먼저 배신했어."
"..."
"너 김태형 집에서 잤잖아."
나는 아차 싶어 놀란 눈으로 전정국을 바라보았다.
전정국이 오늘 그렇게 차가웠던 태도가 이 이유라는 것을 깨닫자 머릿 속이 시컴해졌다.
"어...어떻게 알았어?"
"너 집나가고 걱정되서 사람붙여서 너 어디서 자는지 다 전달받았어.
너 두번째 밤에 결국 김태형 집에 들어갔고, 다음날까지 안나왔어. 내가 어떻게 해석했을 것같아?"
"아무 일도 없었어!"
"너도 나랑 최보나랑 그 새벽에 아무일 없었단 거 안믿었잖아. 근데 나보곤 그걸 믿으라고?"
"..."
"자꾸 너랑 김태형이랑 같이 있는 거 생각나서 화가 나서 오늘 너를 마주할 수가 없었어.
방금 연회장에서도 너랑 김태형이랑 같이 있는 거 봤고
최보나가 먼저 키스했을 때도 너랑 김태형이랑 있는 모습이 떠올라서 화가 나서 밀치지 못했어.
최보나랑 키스한거 잘못인거 알고 있어.
근데 이게 내 진심이고 믿든 말든 이제 니 맘대로해."
비가 너무 많이 쏟아지고 있어서 전정국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건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전정국의 빨간 눈망울과 떨리는 목소리가 내 마음을 너무 아프게했다.
"사랑해."
"..."
"이제 내가 한달 못기다려. 그냥 다 말할래. 나 너 사랑해."
전정국의 말이 내 귀에 들어오자마자 난 전정국에게 한발자국 다가가 전정국의 얼굴을 감쌌다.
아까랑은 다르게 아주 따듯하고도 뜨거운 키스가 오고갔다.
전정국의 팔이 내 허리를 감샀고 나는 전정국에게 한껏 몸을 기대었다.
차가운 비 속에서 전정국의 부드럽고 따듯한 입술의 온기만이 느껴졌다.
*
♡나의 소중한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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