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19살, 내 남편 전정국
W. 달감
15
전정국, 나이 15살.
16살의 폭풍성장을 겪기 전 아직 조그맣고 뽀송뽀송해 소년미가 넘치던 시절.
19살 혼인신고를 하기 전, 아직은 유부남이 아닌 약혼남이었던 시절.
"야 전정국 넌 좋겠다."
"왜"
"결혼할 사람이 예쁘잖아."
"김탄소가 예쁘다고?"
"에? 당연하지. 걔 은근 인기많아. 너랑 약혼해서 애들이 고백못하는거지."
탄소가 예쁘다니.
그것은 정국에게는 꾀나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걔를 15년 동안 매일같이 봐왔는데 전혀 못느끼겠는데?"
"15년동안 매일 봐왔으니깐 못느끼는거겠지"
정국은 친구1을 향해 믿지 못하겠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고,
그때 거짓말처럼 탄소가 문을 열고 당차게 교실로 뛰어들어왔다.
정국과 친구1은 괜히 흠칫 놀라서 탄소를 바라보았다.
"전정국! 이것봐! 나 친구한테 이 공포영화 DVD 빌렸어! 오늘 학교끝나고 우리집에서 보쟈!"
"요새 우리 공부안한다고 아버님한테 엄청 혼났잖아"
"아빠 출장갔오~ 오늘은 너 다른 약속잡으면 안된다?"
신나서 해맑게 웃으며 다시 뛰어가는 탄소를 정국과 친구1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예쁜데?"
"저게 뭐가 예뻐, 저러다 아버님한테 걸리면 엄청 혼나는데 진짜 대책없어"
입술을 삐죽거리는 15세 전정국.
하지만 그 때 전정국의 머릿속에서는 '김탄소가 정말로 예쁜가' 에 대한 작고도 큰 의문이 뭉게뭉게 자라나고 있었다.
---
"룰루랄라"
"왜 이렇게 신났냐"
"나 이 영화 엄~청 보고싶었단말이야"
정국과 탄소는 언제나 그랬듯 함께 하교하였고, 영화를 보기 위해 탄소의 집으로 향했다.
탄소 아버지의 서재. 이곳에는 제일 큰 스크린이 있어 둘은 종종 이곳에서 영화를 보곤 했다.
탄소가 신이 나서 들썩거리며 DVD를 넣고 있을 때, 가정부 아주머니가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회장님께서 돌아오셨어요!"
"에?! 아빠 출장갔잖아요?"
"무슨 일을 끝내고 가셔야한다고 급하게 돌아오셨어요!"
"김탄소!!! 전정국!! 너네 또 공부안하고 놀고있지!!!"
방 문밖으로 들리는 아빠의 소리에 화들짝 놀란 탄소와 정국.
정국은 무작정 탄소의 손을 잡고 서재의 작은 옷장 속으로 들어갔다.
둘은 옷장에 몸을 구겨넣은 채, 혹시 숨소리라도 들릴까 입을 틀어막고 귀를 귀울였다.
"아주머니, 정국이랑 탄소 어딨어요?! 이것들 또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놀고있죠?!"
"아... 그게... 아니요! 아가씨랑 도련님 아직 안들어오셨어요. 아까 정국도련님 댁에 가서 숙제한다고 연락이 와서요 하하하..."
"아, 그래요? 껄껄. 나는 또 나 없다고 신나게 놀고있을 줄 알았네. 차 좀 주세요. 나 여기서 일해야하니깐."
"네? 이 방에서 일하신다고요?"
"내가 내 서재에서 일한다는데 뭘 그렇게 놀랍니까?"
"아...아니요... 차 가져오겠습니다."
이런 일을 종종 겪었기에 능숙하게 대처해준 가정부 아주머니는 걱정스럽게 옷장을 쳐다보며 나갔고,
탄소의 아빠는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기시작했다.
그 시각.
옷장 안 탄소와 정국.
좁은 옷장안에서 둘의 몸은 거의 맞닿아있었다.
"전정국 나 무서워."
정국에게 안긴 자세가 되어버린 탄소는 작게 속삭이며 정국을 올려다보았고,
겁먹은 반짝거리는 탄소의 눈동자가 정국의 눈동자에 닿았다.
그 순간 정국은 깜짝 놀랐다.
예뻤다.
진심으로 깜짝 놀란 정국은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아무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런 정국을 알리가 없는 탄소는 자연스럽게 정국의 품에 머리를 기대었다.
"전정국 너도 많이 무서워? 심장엄청뛴다."
갑자기 일렁이는 감정에 그대로 굳어버린 정국이었고,
탄소는 그렇게 정국의 품에 기대어 정국의 심장소리를 듣고있었다.
아빠는 꾀나 오랜시간 일을 하는 듯 했고, 둘은 옷장에서 오랜시간 그렇게 있어야했다.
때문에 탄소는 긴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정국의 품에 기대어 잠들어버린지 오래였지만
그런 탄소를 품에 안은 정국의 시간은 멈추어버린지오래였다.
---
시간이 흘러 아빠가 일을 마치고 나간 뒤,
가정부아주머니가 탄소를 침대에 눕혔고, 정국은 홀로 탄소의 집을 빠져나왔다.
알 수 없는 감정에 머리를 정리하고 있을 때, 문 앞에 세워져있는 차 한대에 정국은 깜짝 놀랐다.
"예끼!! 전정국!!"
"장인어른...!"
"너네 집에서 숙제한다는 녀석이 왜 우리집에서 나와?!"
"그...그게..."
"으이구,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어떻게...?"
당황하는 정국에게 탄소의 아빠는 탄소가 두고간 영화 dvd 를 건넸고, 정국은 머리를 글쩍였다.
"옷장에 있는 걸 모른 척 해준거는, 옷장안에서 벌받으라고 그런거다"
"죄송합니다."
"됐다. 오늘은 옷장에서 벌 받은 걸로 할테니 넘어가마."
"감사합니다."
"타라, 공항가는 길에 집에 태워다주마."
무섭게 얼굴을 굳힐 때는 언제고, 어느새 기분좋게 웃으며 차 문을 여는 장인어른에 정국 또한 기분이 좋아져 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 있는 탄소의 사진을 발견한 정국은 아까의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져 장인어른에게 말을 건넸다.
"아버님"
"응?"
"탄소가 원래 예뻤나요?"
"뭐?"
"아니, 그냥 평소에는 잘 못느꼈는데 오늘만 좀 예쁘더라고요"
은근히 수줍어하며 말을 꺼내는 정국을 보며 장인어른은 웃음지었다.
"껄껄 너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어버렸던게 아니고?"
"네?"
"내가 해답을 주마
내일 탄소를 봤을 때 평소와 똑같이 보인다면 그건 정말 오늘만 유난히 예뻤던거다.
하지만 내일 탄소를 봤을 때 여전히 예뻐보인다면"
"..."
"그건 사랑이란다."
사랑이란 단어가 정국의 심장을 쿵 때렸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단어였다.
그동안 '사랑'이란 단어를 알고는 있었지만, 깨닫지는 못하고 있었나보다.
"원래 사랑은 갑작스럽게 오는 거란다."
정국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어서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처음느껴보는 이 '사랑' 이라는 감정을 어서 확인해보고 싶었다.
----
다음날 행사가 있어 전교생이 운동장으로 나왔다.
남자아이들 대부분이 여자아이들의 무리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그 무리안에 눈에 띄게 예쁜 여자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그 눈에 띄게 예쁜 여자아이가 정국을 보며 수줍게 웃었고, 친구1이 물었다.
"정국아 최보나 진짜 예쁘지? 쟤가 우리 학교에서 제일 예쁘다고 소문난 애야.
"예쁘네."
"그래?"
"근데..."
근데 그 옆에 김탄소가 더 예뻐.
이 말을 정국은 꾹 삼키었다.
운동장에 모든 남자아이들이 보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 정국의 시선은 탄소에게만 닿아있었다.
여전히 예뻤다.
'하지만 내일 탄소를 봤을 때 여전히 예뻐보인다면
그건 사랑이란다.'
장인어른의 말이 귓가의 다시 들려왔고
정국은 기분좋은 설렘을 느끼며 미소지었다.
"저기... 정국아..."
그렇게 정국이 탄소만 바라보고 있을 때, 어느새 보나가 정국의 앞에 서있었다.
그 때문에 운동장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정국과 보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거 받아줘!"
보나는 예쁜 얼굴을 붉히며 쪽지와 직접만든 선물을 건넸고 정국은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운동장의 학생들이 그 둘을 보고 장난스럽게 박수를 치거나 휘파람을 불었다.
보나는 기분이 좋아져 살짝 고개를 들어 정국을 바라보았지만 정국은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엉뚱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정국의 시선을 따라가보았고,
그곳엔 탄소가 있었다.
---
정국아, 나 너 정말 좋아해.
나랑 사귀자.
답은 내일 꼭 주면 좋겠어.
-보나-
모두 하교하고 교실에 둘만 남은 정국과 친구1
보나가 준 쪽지를 읽고 있는 정국에 친구1이 다가와 물었다.
"받아줄거야?"
"아니."
"왜? 그렇게 예쁜데 당연히 받아야지!"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받아. 여자친구 생기면 귀찮기만해.
난 지금 김탄소랑 맨날 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쁘다."
정국의 말에 친구1은 잠시 웃다가 살짝 정국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조금 놀랐어."
"뭐가?"
"너랑 탄소는 약혼한 사이니깐 둘한테 고백하거나 대시하면 안된다고 생각했거든."
"그러냐? 나랑 김탄소는 그런 얘기 해본적도 없고, 걍 아무생각없는데?"
"그럼 나 탄소한테 고백해도 돼?"
친구1에게 처음 듣는 진지한 말투에 정국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순간적으로 친구1과 탄소가 함께 있는 모습들이 정국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아니, 기분 나빴다.
안된다고, 싫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조차 이런 감정이 너무 갑작스러워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렇게 둘 사이의 정적이 흘러갈 때 정국과 하교하기 위해 달려온 탄소 때문에 둘의 대화는 그렇게 끝나버렸다.
----
"야 전정국. 나 아까 그 예쁜 애가 너한테 고백하는 거 봤어."
하굣 길.
탄소의 말에 정국은 괜히 흠칫하며 탄소를 바라보았다.
괜히 탄소가 오해할까봐 걱정되는 마음이 들었고, 정국은 거절할거라고 빨리 말하려고 했다.
"사겨봐."
"뭐?"
"사귀라고. 엄청 예쁘더라고. 그정도면 걔가 아깝다!!"
탄소의 말에 정국은 그대로 멈춰서서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렇지 않은건가?
나는 다른 남자랑 있는 탄소를 생각하니 기분이 그렇게 나빴는데 탄소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건가?
정국은 화가 치밀어올랐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참았다.
"뭐야? 왜 멈춰?"
"니가 그렇게 말안해도 사귀려고 했었어."
"그래 예쁘게 사귀셈. 대신 너 여자친구 생겼다고 나랑 노는 거 소홀하면 안된다?"
지금 자신이 어떤 감정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방실방실 웃으며 앞서 가는 탄소의 뒷모습을 보며 정국은 그때 깨달았다.
내 첫사랑은 짝사랑이구나.
그래서 마음이 너무 많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익숙함에 속아 잃어버리고 있던 '사랑'이라는 감정은 잠시 기분좋은 설렘을 선물했지만,
그 감정을 홀로 깨달아버렸다는 것은 15살, 순수했던 전정국에게는 꾀나 잔인한 일이었다.
전정국의 첫사랑 실패는 전정국을 삐뚤게 만들었다.
계속해서 그 첫사랑을 잊기 위해 여러 여자들을 만났다.
시간이 흘러가며 많은 여자들을 만났고 점점 첫사랑을 잊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남자에게 첫사랑은 가장 소중하고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집안 사정으로 빨리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매일 같은 침대에서 자게 되었을 때
영화를 보다가 실수로 가까히 얼굴을 마주했을 때
예쁜 눈동자로 사랑하고 싶다고 말할 때
탄소가 너무나 예뻐보일 때
수없이 많은 순간에 정국은 다시 떠오르려하는 첫사랑의 감정을 없애려고 노력해야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야,
탄소가 자고 있는 자신의 입을 맞추었을 때,
정국은 그제서야 온전히 행복하게 자신의 첫사랑을 꺼내어볼 수 있었다.
그 후 자신이 좋다고 말하며 어쩔줄 몰라하는 탄소를 보며
정국은 5년 전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귀엽고 여전히 예뻤다.
5년이라는 기다림 끝에 꿈을 꾸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하지만 그런 기쁨 속에서 복수를 담은 나쁜 심술이 함께 뭉게 뭉게 피어올랐다.
"한 달 뒤에 결정할게"
"뭐?! 뭔 개소리야?"
"내가 널 사랑하게 만들기로 하기로 했잖아.
한달동안만너 지켜보고 진짜 내가 너 사랑하게 되면 걔랑 안사귀고 너랑 사겨야지."
내가 5년동안 널 짝사랑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딱 한 달만 경험해봐.
그리고 한 달 후에는, 우리 이제 진짜 마음껏 평생동안 같이 사랑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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