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 - The Christmas)
크리스마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소중한 시간.
너와 보내는 몇번째 크리스마스인지 세기도 지쳐버렸다. 부산에서 자란 우리는 늘 눈이 내리는것을 좋아했고 나이를 먹어버린 지금도 창밖에 눈이 내리면 다 제쳐두고 눈을 맞으러 나가곤했다.
“전에 왔던 그방이네!”
작년에도 너와 함께 왔던 그 스키장 콘도, 그 방호수까지 특별히 예약했다. 스키장은 모자에 고글에 목도리까지 꽁꽁 싸매도 자연스러운곳이니 늘 너와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아, 다들 민현오빠를 궁금해할것 같은데 그날 이후로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인터넷으로는 해명기사를 냈다고 들었는데 믿을 수 없었다.
그 여자가 휴대폰을 주웠고 민현오빠의 유명세를 이용하고 싶어 그랬다고들 하던데, 그게 진짜라면 적어도 나한테 해명하려고, 거짓이라고 했어야지. 그 뒤로 아무런 연락도 만남도 없었으니 믿지않는게 당연했다.
그 아픔을 위로해준건 늘 옆에 있던 강다니엘이었다. 그래서 둘이 스키장으로 여행온거냐고? 그런 감정을 떠나 늘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라서. 그리고 사실 이건 비밀인데 감정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마음에 점점 확신이 들고 있었다.
“빨리 나가자.”
간단한 짐정리를 끝내놓고 가려했는데 옆에서 하도 졸라대는 다니엘 덕분에 짐만 고스란히 내려놓고 스키장으로 나왔다.
“스키하나랑 보드하나 주세요.”
“아니요! 보드 두개 주세요!”
“너 보드타게?”
“응! 맨날 스키만 타서 타보고 싶어.”
내 보드까지 받아든 다니엘은 어디선가 무릎보호대를 가지고왔다. 그리고 한쪽에 보드를 내려놓더니 쪼그려앉아 보호대를 내 무릎에 씌웠다.
“이거 왜해?”
“넘어지면 아파. 다치면 안되잖아.”
“엉덩이가 아픈거 아냐?”
“뒤로 넘어지면 내가 받아줄게.”
으유, 저놈의 능글멘트. 손발이 오그라드는 능글거리는 멘트에 아프지않게 머리를 툭 때렸다.
“너는 왜 안해?”
“오빠는 넘어지는걸 모르는 사람이야.”
일로와. 한대 더 맞자.
본격적으로 보드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스키를 오래 타왔고 스키를 잘 탄다고 자부했기 때문에 보드에도 조금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왠걸, 조금 서있기도 힘들더라.
“아, 안되겠어. 너 먼저 한번 타고와.”
“그런게 어딨어. 이제 손떼고 한번 더 해보자.”
스파르타 강선샌님의 특훈 덕분에 아까보단 많이 나아졌고 손을 떼도 조금 경사를 내려가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우리는 곧바로 위로 올라가기로 했다.
“줄이 생각보다 길다.”
“와, 신기해. 이렇게 줄 서고 있으니까 진짜 평범해진것 같지않아? 맨날 이랬으면 좋겠다.”
고글 너머 너의 눈빛은 진심으로 행복해보였다. 더더욱 텐션이 올라간 너는 가만히 서있지도 못하고 그자리에서 콩콩 뛰다가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리듬도 타다가 리프트 위에 올라탔다. 리프트를 타서도 너는 리프트 안전바를 들어버린다며 장난을 쳤다.
“진짜 초딩이 따로 없다니까.”
“우워어어어어-!”
그러다가 리프트의 연결부분을 지날때 리프트가 심하게 흔들리면 누구보다도 깜짝놀라하며 내 왼쪽팔에 바짝붙어 팔짱을 꼈다. 하여간 옛날부터 겁쟁이는 어디안간다니까.
리프트에서 내려 보드를 타고 내려가기전 바닥에 앉아 보드를 내 발에 맞추었다. 다니엘은 “저 쪼끄만 애가 니 보다 잘탈것 같은데?”하며 저기 옆에 홀로 스키를 탈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에게 홀리듯이 가버렸다. 연예인하면 일찍 애기 못낳는게 가장 슬프다고 할 정도로 너는 애기를 참 좋아했다.
“저기요, 혼자 오셨어요?”
“네?”
“저희랑 같이 타실래요? 저희 저녁에 소고기로 바비큐파티도 해요!”
“꼬물이 엄마!!!”
야, 그거 설마 나 부르는거야...?
“자기야, 뱃속에 있는 우리 꼬물이 놀라지않게 조심해.”
다니엘의 말에 남자들은 죄송합니다-하며 꾸벅 인사를 하고 급히 사라졌다. 그리고 내 입에서는 “야, 이 미친놈아!” 하는 거친 욕설이 나왔다. 그렇게 매일 나한테 두드려맞으면서도 늘 장난이었다. 그래도 내 나이가 이제 23인데 애기엄마는 아니잖아. 확 보드로 때려버릴까보다.
“아, 좋다. 이렇게 말해도 아무도 모르잖아.”
“아주 그냥 스키장에서 사시겠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평범한 일상에 감동받아하고 행복해한 모습이 짠했다. 늘 빛나고 사랑받는 연예인이지만 그렇기에 포기해야하는것들이 너무 많았다. 집앞 편의점에 나가는것 조차 힘들때가 많았으니까.
고글로 얼굴이 거의 다 가려졌지만 입가에 미소는 떠날 줄 몰랐다. 나를 가르쳐주느라 신나게 놀 시간을 허비했으니 빨리 타자며 재촉하는 강초딩을 따라 보드를 타고 내려갔다. 나는 먼저 천천히 내려가고 뒤에서 다니엘은 내가 넘어지지는 않는지 보면서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다.
그렇게 몇번을 오르락 내리락 했을까 이제는 제법 속도감있게 탈 수 있었고 다니엘도 마음껏 보드를 즐겼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이 산을 넘어갔고 어둠이 깔렸다. 평소보다 더 격한 움직임이 많아서인지 금새 배가 고팠고 테라스에서의 고기파티를 위해 보드를 반납하고 콘도로 향했다.
콘도로비로 들어오자마자 답답했던 고글과 모자를 벗었다. 물론 나만.
“아, 시원해. 너는 못벗겠네~”
히터가 빵빵한 이곳에서도 모자와 고글을 벗지못하는 다니엘이 불쌍해서 못벗는데요 에베베-하면서 오늘 하루종일 당한 놀림을 되갚자 “나 이거 벗는다. 사진 퍼지면 감당은 네가 해라?” 하며 자꾸 고글을 벗으려 협박해오는 다니엘이었다. 신상공개는 물론 어떤 수모를 감당해내야할지 아니까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다니엘에게 사과를 했다. 그제야 잠잠해졌다.
“나 봐봐.”
다니엘은 내 고개를 돌려 손으로 헝클어진 내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오랜만에 정면으로 네 얼굴을 보았다. 고글에 가려진 표정은 알수없음이 가득했다. 괜히 어색해져버린 그 때문에 괜히 엘리베이터를 타서 방안으로 들어갈 때 까지 우리는 한마디도 없었다.
“우리 저번이랑 똑같이 사진찍자.”
작년 크리스마스에도 테라스에서 스키장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처럼 포즈랑 구도도 똑같이 사진을 찍었다. 문득 그 사진을 보니 1년간 우리는 참 많이 달라져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서로 사랑했던 우리사이가 참 많은길을 돌고 돌았고 지금은 어떤 사이인지 표현조차 힘들었다. 정말 1년사이에 참 많이 변해있더라, 우리.
매번 정해진 시스템처럼 나는 요리재료를 다듬고, 너는 테이블 셋팅을 담당했다. 그러면 모든일이 척척 빠르게 진행되었다. 비록 추운날씨지만 테라스에서 난로를 틀어놓고 고기파티를 시작했다. 오히려 추우니까 더 맛있게 느껴졌다. 따뜻한 라면국물을 한입 먹으면 크아-하는 아저씨소리도 절로 나왔다.
“자, 강고기님이 고기 굽습니다. 집게.”
“여기 있습니다.”
“고기 올라갑니다. 치이이익-“
“선생님, 입에서 나오는 소리 아닙니까?”
“아닙니다. 기분탓입니다. 김 인턴? 메스!”
역시 내가 네 친구인데는 이유가 있었다. 금세 너의 상황극에 동화되어 메스대신 가위를 내밀었고 우리는 수술하는 의사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고기를 구웠다.
“자, 김 인턴. 콩나물 200줄! 물러서, 샷!”
“김 인턴, 이 비계를 컷해서 이렇게 비벼주면 이게 바로 기름칠이라네.”
고기하나 굽는데 뭐 이렇게 말이 많은지, 1절만 하라는 말도 있는데 5절,6절까지 혼자 다 하고있는 너다.
“고기는 많이 뒤집으면 육즙이 빠져나가서 맛이없데, 이렇게 비계를 잘라서 먼저 문질러주면 기름칠이 되서 겉이 많이 안탄데.”
병이다 병. 또 강다니엘앞에서 황민현을 그렸다. 고기마저도 교과서처럼 열심히 굽던 민현오빠의 모습이 너와 겹쳤다. 앞에 뭉게뭉게 피어오른 민현오빠의 모습을 고개를 휙휙 저으며 물러내고 시원한 소맥한잔을 들어 꿀꺽꿀꺽 삼켰다.
“야, 왜 혼자먹어. 짠-“
강다니엘이랑 김여주인데 술이 빠질 수 가 없었다. 스키장도,고기파티도 목적이아닌 술을 마시러 온 사람처럼 우리는 술병을 빈병들로 채워나갔다.
“여주야, 있잖아.”
“응.”
“.....아니야.”
“아,뭐야!”
“아냐, 아무것도.”
“준비되면 언제든 이야기해 바보야.”
내가 너를 한두번 보냐. 저건 이야기해야할건 있는데 차마 입밖으로 나오지가 않는다는 거다. 그럼 난 늘 그랬듯 네가 말하기전까지 기다려주는 수 밖에.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주면되는거였다.
배가 불러 젓가락을 내려놓고 둘다 술로만 목을 축였다. 술이 들어가서 일까, 밤하늘이 만들어주는 분위기가 좋아서일까 둘다 저 멀리 산을 바라보며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니엘아.”
“응.”
“행복해?”
“지금은, 너무.”
“그럼 됐어. 행복하자 우리!!”
이런 이야기를 잘 하지않는 내가 말을 꺼내자 네가 손발을 오므리며 온몸을 베베꼬았다. 자기는 더 많이 오글거리면서.
“아,맞다.너 처음 가출한 날 기억나?”
“가출아니라니까? 그냥 하루 자고올려고 한거지.”
“언제 인정할래? 그때야 나한테 잡혀서 들어간게 쪽팔려서 그랬다고 쳐도, 이제는 좀 인정해라!”
“야, 그러는 너는 바바리맨 처음본 날 기억나? 그때 막 울면서 나도 남자라고 가까이오지 말랬잖아.”
“맞아맞아. 그땐 진짜 무서웠는데 지금은 만나면 박수쳐줄것같아.”
“하여간, 말이나 못하면.”
“아, 너 처음 차인날 생각난다. 중2때! 진짜 찌질했는데.”
“야!!! 인정. 완전 찌질했지. 근데 알고보니까 걔가 바람난거라서 니가 그 여자애랑 싸웠잖아. 진짜 리얼 걸크러쉬.”
옛날 이야기를 한번 이야기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졌다. 그만큼 우리의 추억은 길었다.
“처음 헤어지고 나서 너희한테 절대 안울었다고 했는데, 사실 혼자있을 때 많이 울었다? 막 이별노래 들으면서 눈물 콧물 다 흘렸는데.”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또 추억에 잠긴듯 침묵이 흘렀다. 각자의 눈은 하늘의 별을 담아낸듯 반짝 반짝 빛났다.
“지금은 헤어지더라도 안울 수 있지?”
“나 강다니엘이야. 차일 일이 없을껄?”
“그래. 울지도 말고 힘들어하지도 말아야해. 꼭.”
조심스럽게 꺼낸 나의 말에 너는 장난스럽게 대답을 했다. 술에 취한건지 분위기에 취한건지 지금 내앞에 이렇게 앉아있는 네 모습이 너무 슬펐다. 이런 우리의 모습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나를 바라보는 네 모습이 너무 예뻐서 일까 눈물이 차올라 뿌옇게 내 시야를 가렸다.
“아, 연기때문에 눈물나! 치우자,이제.”
하루종일 운전하랴, 보드타랴 힘들었을텐데 거기에 술까지 먹으니 술이 확 취하는지 씻지도 않고 쇼파에 누워 자고있는 다니엘이었다.
안방에 있는 옷장에서 이불을 가져와 덮어주었다. 매번 잠이들면 자다가 맞아도 모를정도로 잘자고, 깊이 잠들었었다.
자고 있는 네 쇼파옆 바닥에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눈을 가리는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자면서도 입을 쩝쩝 거리는게 꿈에서도 또 먹고있나보다.
“또 잠안온다고 술먹지 말고.”
정적만 맴도는 방안에 조용히 나의 목소리만 흘렀다.
“이젠 무너지면 안돼, 옆에서 잡아줄 수 없으니까. 밥도 그만 시켜먹고 좀 해먹고.
넌 지금보다 멋진 스타가 되서, 나는 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는 사람이 되서, 그땐 꼭 웃으면서 다시보자 니엘아. “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일 너의 입술에 내 입술을 천천히 맞추었다. 따뜻한 네 마음의 온기가 전해졌다. 눈을 감자 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네 얼굴에 떨어지까 입술을 떼고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혹시나 네가 내 울음소리을 듣진않을까, 방으로 들어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그 베개의 푹신함이 네 품같기도하고, 베개에서 나는 섬유유연제향이 민현오빠 향 같기도해서 더욱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렇게라도 느낄 수 있다면 다행이기도 했다.
***
산이라서 더욱 더 맑은 하늘이 우리를 배웅했고 다시 뿌연 먼지로 가득할 서울로 돌아왔다. 차안에서는 잠시라도 그 분위기가 쳐지지않게 신나는 노래들로 가득채웠다.
“운전하느라 수고했어.”
내 말에 다니엘은 아,맞다. 하며 뒷자석에서 무언가를 부스럭부스럭 꺼내었다. 그건 우리가 흔히 생각한 꽃이나, 선물이 아닌 엄마가 싸주신 반찬들이었다. 아,이걸 이제야 받네. 그때 일부러 다음에 줄거라던 다음이 오늘이었나보다.
“있잖아, 여주야.”
“응.”
“......미안해.”
“나두.”
내 의외의 대답에 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그냥 미안하다구. 예전도,지금도,앞으로도.
“사실대로 말 못한게 있어. 내가 너무 나쁜놈이라서, 이기적인 놈이라서, 크리스마스만큼은 늘 너랑 보내고싶다는 마음이 너무 커서 일부러 숨겼어.”
“........”
“민현이형, 열애설 사실 아니야. 해명한 내용도 다 진짜고, 너희 집앞에 왔을때도 몸이 불덩이 같은데 너 기다렸어, 자기 열애설 난지도 모르고.”
“무슨소리야,그게.”
“형은 네가 행복하길 원해서, 자기때문에 여주 네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나보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했어. 그래서 나보고 거짓말까지 해달라더라, 자기를 나쁜놈으로 만들래.
내가 어떻게 그래, 널 힘들게 한사람은 나인데. 근데 난 여전히 나쁜놈이라서 오늘까지 숨겼어. 그리고 이제서야 너한테 이렇게 말해. 네가 하고싶은대로 선택하라고. 나도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여주야.”
누군가 머리를 세개 때린것만 같았다. 머리속이 댕-하고 울렸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너의 눈은 진심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너의 눈을 끝까지 바라보지못하고 곧바로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달렸다, 황민현에게.
그 바보같은 사람이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왜 나만 힘들다고 생각해서 혼자 뒤에서 상처받았을 민현오빠는 보지도못했을까, 왜 이제서야 이렇게 후회하고있을까. 앞도 보지않고 무작정 달리면서 민현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로 수신이 정지되었거나-‘
뛰느라 호흡이 가빠져서 그런걸까,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내가 느낀 고통보다 보내줘야 했던 민현오빠의 마음이 더 아플껄 알아서 눈물이 흘렀다. 손으로 가슴을 쿵쿵쳐봐도 소용없었다.
어디로 가야할까, 무작정 택시를 잡아탔다. 하지만 나는 민현오빠의 집이 어디인지도 몰랐다. 늘 나를 데려다준 오빠였으니까. 오빠는 내가 늘 어디있는지 말하지않아도 알았는데, 나는 오빠의 전화번호 이외에는 아는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받을 줄만 알았지 오빠에게 해준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결국 오빠의 노력이 아니면, 휴대폰을 통한 연락이 아니면 우리는 닿으려해도 닿을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사이였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이런 내가 미치도록 싫었다.
“플레디스 엔터테이먼트로 가주세요.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회사 앞에는 여러 가수들의 팬들이 많았다. 각각의 플랭카드를 들고 서있었다. 이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민현오빠를 먼저 만나야하니까. 곧바로 경비실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저기, 죄송한데요. 제가 황민현씨 친구인데 들여보내주시면 안될까요?”
“이러시면 안됩니다.”
쾅-
더 들어볼 필요도 없다는듯 문을 쾅 닫아버리셨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저 진짜 황민현씨랑 친구인데, 혹시 연락이라도 할 방법 없을까요?”
“학생! 자꾸 이러면 경찰부릅니다.”
마찬가지로 문이 쾅 하고 닫혔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들여보내주지않을테지. 얼마나 많은 팬들이 이럴텐데. 회사도 아니라면 이제 더이상 어떻게 민현오빠에게 닿아야할지 막막했다.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가 아는 민현오빠의 주변사람도 회사사람이니 마찬가지로 연락할 수 없었다.
“저기요, 민현오빠 팬이시면 여기서 이러실께 아니라 공항으로 가보세요!”
“네...?”
“뉴이스트 이제 몇달동안 해외투어 하잖아요. 한국에 안올껄요? 2시 비행이니까 지금 가면 출국모습이라도 볼 수 있을거에요!”
또 한번 쿵하고 내려앉았다. 해외투어라니, 한국에 없다니. 이렇게 오빠를 보낼 수 없었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잖아. 적어도 미안하다고, 또는 사랑한다고. 내 마음은 거짓인적 없다고, 오빠랑 함께 했던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고. 그때 그 마지막말은 다 거짓말이었다고 그렇게 말해줘야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눈물만 흘렀다. 그리고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니까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제발 늦지 않기를 바라면서.
공항은 사람들로 붐볐다. 입구부터 꽉 차게 가득한 팬들 덕분에 앞으로 한발 내딛기도 힘들었다. 저 멀리 보이는 전광판에는 2시 비행기는 출발 수속을 밟으라는 안내가 있었고 팬들이 이렇게 많이 있는걸 보면 늦진않은것 같았다.
꺄아아아악-
그리고 그토록 바랬던 민현오빠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내앞으로는 수많은 팬들이 있었고 다가가기란 쉽지않았다.
“황민현!!! 민현오빠!!!!!”
애타게 오빠를 불러봐도 나의 외침은 수많은 팬들의 함성 중 하나였다. 민현오빠를 포함한 뉴이스트 멤버들은 보디가드의 경호를 받으며 빠르게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더이상 그 모습이 보이지 않자 하나 둘 많은 팬들이 공항밖으로 사라졌다.
민현오빠의 옆에 있었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여자였고 그만큼 특별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빠가 봐주지 않는 나는 더이상 수많은 팬들 중 하나에 불과했고 그 이상,이하도 아니었다.
바닥에 떨어져있는 ‘황민현 사랑해’ 가 적힌 플랭카드는 나를 더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도, 나도 사랑하는데. 더이상 울 힘도 나지않았다. 민현오빠는 그렇게 떠나버렸다.
***
-다니엘 시점
여주는 민현이형을 만났을까,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연락 한 통쯤은 해주지. 아니다. 강다니엘 이 나쁜놈아, 행복하길 바란다면서 바라는게 왜이렇게 많아. 여주가 행복하면 그걸로 된거야, 그렇게 하자.
머리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내 의지대로 되지않는 이 마음은 결국 멀리서만 보자 하는 생각으로 매 시간마다 여주의 집앞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늘 집의 불은 꺼져있었다. 혹시 지성이형은 알까 싶어서 연락해봐도 형 역시 몇일째 연락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너를 보내고 3일만에, 결국 너의집 비밀번호를 눌러 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너는 없었다. 너만 없는게 아니라, 내가 올려두었던 어머니의 반찬도, 그리고 집안의 가구와 짐들도. 이 집안엔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비어있었다. 이게 무슨일인지 도저히 내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되지않았다.
“어, 자주 놀러오던 친구네? 403호 아가씨 짐 다 옮겼다던데?”
“그게 무슨소리에요?”
“몰랐어? 갑자기 이사간다고 일주일전에 보증금도 뺐어.”
말도 안되잖아. 나는 그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고 주인 아주머니는 내 반응이 이상한지 그대로 문을 닫고 나가셨다.
“김여주....”
텅텅 빈 방안에는 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니가 잠을 자던 침실도, 요리를 좋아해 자주 있던 부엌에도 너의 흔적이란 없었다. 집안에는 내가 처음 번 돈으로 너에게 선물한 쇼파만 덩그러니 놓여져있었다. 그 초라함이 마치 나와 같았다. 그리고 그 쇼파에는 너의 글씨로 쓰여진 마지막 말이 남아 있었다.
‘이젠 헤어져도 안운다고 약속했어. 무너지지말고 밥 잘챙겨먹고.’
너의 마지막 말이었다. 조그맣고 노란 포스트잇에 꾹꾹 눌러쓴 너의 편지에도 너의 마음이 묻어났다. 많이 힘들었던 거구나. 그만큼 힘들었던 거구나. 그래도 안간다며, 너 가버리면 진짜 나는 어떻게 해. 네가 가버린 이 방안에는 나 혼자였다. 그렇게 결국 나는 혼자 남았다.
네가 떠난지 몇달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도 네가 이사간 소식을 모르는듯 했고 알려드리지않았다. 너를 찾으려하지 않았다. 네가 원하는 일이여서 그랬을테니까. 언제까지고 기다리기만 할게, 네가 한 선택이니까 따를게.
여주 네가 떠나고 몇일 간 한거라고는 집안에 틀어박혀있는것 뿐이었다. 울지않았다. 집안에서 아무것도 한건 없었지만 울지않고 밥만 먹었다. 포스트잇에 적힌 마지막 너의 말을 보면서 너와의 약속을 지키려 애썼다. 나 이제 안울어. 그러니까 여주 너는 진짜 네가 하고싶은대로, 마음가는대로 하기를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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