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이야기
_확신하고
(with. 윤지성)
'누군가 손을 내밀려고 할 때 마음을 알아채는 것이 중요해.
내민 손을 잡아주지 않는 건 죄악이고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찾아오는 인생의 큰 변화와 마주서야 해.'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中
서두르지 말자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본디 급한 성격은 아니었음에도 성급하면 놓치고 가는 것이 있으니 천천히 가며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가자고 그렇게 다짐 했었죠.
꽤나 잘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소중한 사람 앞에서는 다시 어릴 적 그대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속은 급한데 마음을 전달하는 일이니만큼 짚고 넘어가야 할 것도 많아서, 어느 곳으로도 직진하지 못하고 여러 갈래의 갈림길 가운데 서있는 것만 같네요.
한 번도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면 그냥 거치는 것 없이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을 꺼내 보였을 겁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겠지요.
하지만, 이미 다른 사랑을 경험함으로써 이별의 아픔까지 다 알게 된 지금의 상태로는 꽤나 힘든 일입니다.
추운 겨울날이면 늘 혼자 앞서 걸어가는 뒷모습만 바라봤는데.
"거기 발 밑에 얼음 얼었어요, 조심해."
겨울 길을 걷는 걸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에 같이 걷자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힘든 것도 감수해야 할까요?
"오, 방금 반말 한 것 같은데."
"내가요? 잘 모르겠다."
제법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음에도 재촉하거나 조금도 앞서 걷지 않고 한 발, 한 발 같이 걸어주는 사람을 싫어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눈 오는 날이 오히려 안 추운 거 알아요?"
"그런가? 난 똑같이 추운 것 같은데."
"지성 씨, 걷는 거 좋아해요?"
"음,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아요."
"추운 건요?"
"그것도 그닥?"
이렇게 또 그와의 사이에 거리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정말 꼭 들어맞는 사람인 것 같네요.
어색하게 웃다 그의 붉어진 손을 보곤 팔을 끌어당겨 길가의 작은 카페로 들어갑니다.
조금 제멋대로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와의 사이에 거리감이 생기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갑자기 들어가자고 해서 놀랐네."
"많이 추웠죠."
"그럼요, 겨울인데."
"근데 왜 걷자고 했어요?"
"응?"
"추운 것도 싫어하고, 걷는 것도 안 좋아한다면서요."
"아, 추운 것도 싫어하고, 걷는 것도 안 좋아하는데"
늘 눈 끝에 입 끝에 미소가 걸린 사람입니다.
봄을 몰고 올 것 같은 미소를 늘 유지하는 사람이지요, 그래서 더 속을 알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늘 봄처럼 보이는 사람이 사실 겨울에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괴리감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를 진심으로 대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아서요.
"그게 이름씨랑 같이 하는 거면 추억을 쌓는 거니까 좋겠다고 생각 했어요."
어쩌면 오래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처음 버스정류장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준 그가, 나를.
내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수도 있고, 혹시 갑작스럽게 다가오면 내가 놀라지 않을까 싶어 한 발 물러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닐까요?
정말 그런 거라면, 이제는 먼저 손을 내밀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나랑 추억을 쌓던 사람은 늘 나한테 뒷모습만 보이면서 앞서 가버렸는데."
"늘 옆에서 걸을 거지만 만약에 이름씨보다 앞서 걸어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거꾸로 돌아서 걷죠 뭐, 이름씨 얼굴 보고 좋겠다."
"그럼 나는 혹시 넘어질 때를 대비해서 손 잡아 줄 준비 하면 되겠네요?"
"지금 나랑 손잡는 사이 하자고 하는 것 같은데."
"손만 잡겠어요?"
마주 잡은 손은 따뜻해서 둘 중에 그 누구도 놓고 싶지 않을테니까, 앞서 걸어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앞서 걸어도 내게는 봄을 몰고 올 미소가 가득 담긴 얼굴을 보여줄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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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이 좀 생기셨나요?
글이 너무 짧은 것 같아서 걱정중입니다... 흠...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아, 그리고 빙판 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