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공허함이 존재해
캄캄하고 어두운 낯선 길
혼자라 느껴질 때
슬픔은 너로 인해 조금씩 위로가 되고
요동치는 내 맘속 세상은
나를 잔잔히 흐르게 해
너의 노래가 되어 잔잔한 음악이 되어
너의 아픈 눈물 모두 닦아줄 수가 있도록
너의 노래가 되어 줄게
편히 쉴 수 있는 쉼이 돼 줄게
너에게 한걸음 다가갈 수만 있다면
"상태가 어떤가요."
석진의 말에 의사는 이미 수술실로 들어간 정국의 어머니에 대한 얘기들을 했고
석진은 의사의 말을 듣고선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리고선 한가지 의사에게 부탁을 한다.
"혹시나 누군가 와서 이 환자가 있냐고 물은다면.. 없다고 해주시겠어요."
"네?"
"생명이 달렸어요. 절대로 여기에 입원해 있다고 하면 안 됩니다.
부탁드립니다."
석진이 허리까지 숙여 부탁을하자, 의사는 유명한 연예인이라 신기한지 한참을 뚫어져라 보다가도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 대답했다.
"이 선물들을 그럼.. 태형씨가 다 준 거야?"
"엉. 뭐 한국에서 뜬다고 하더라고? 미리 주고 갔어."
"에에! 그럼 사귀자! 이렇게까지 해주는 사람이 어딨어!"
"뭘 어디있냐? 세상에 널렸어."
"허얼.."
정국은 여름이의 옆에 팔짱을 낀채로 서서 바닥에 널브러진 꽃다발과 온갖 선물들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여름이 왜? 하고 정국을 올려다보자, 정국이 자신을 올려다보는 여름이 마냥 귀여운지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화영은 우엑- 하며 설거지를 하러 발걸음을 옮겼고, 여름이 생일인데 쉬라며 억지로 화영을 밀어 고무장갑을 낀다.
뭐가 그리 좋은지 엉덩이까지 씰룩이며 설거지를 하는 여름이 귀엽기만한지 정국이 웃자, 화영은 정국을 이상하게 올려다본다.
정국이 그 상태로 화영을 내려다보며 정색을 하고선 뭐- 하자 화영이 쩐다며 박수를 쳤다.
화영이 무언가 정국에게 말을 했고, 정국은 또 귀가 안들리는지 인상을 쓴채로 화영의 입술을 보았다.
대충 무언갈 보여준다는 것 같은데.. 대답을 하지 않아도 화영이 서랍장 안에서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가지고 정국에게 다가왔다.
"여름이한텐 비밀이야."
최대한 작게 정국에게 말하자, 정국은 입술 모양으로 알아듣고선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이 설거지를 하는동안 화영이 최대한 빠르게 여름이의 사진을 보여주었고
여름이는 6-7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
다른 사진들도 보여주자 그제서야 정국이 웃었고, 화영은 그런 정국의 모습에 괜히 뿌듯한지 에헴.. 하고 따라 웃었다.
"똑같네. 지금이랑."
"응. 얘는 달라진 거 하나도 없어. 이때는 김석진 그 자식 때ㅁ.."
"이때가."
"…미안."
"이때가 김석진이랑 만나고 있을 때야?"
건조한 대답이 아닌 처음으로 받아보는 질문에 화영은 신기한지 입술을 모아 오오- 하다가도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렇게 예쁜데."
"그래. 이렇게 예쁜데 이런 여름이를 말이야. 어우 그 새끼는!"
정국이 한참 사진을 내려다보자 화영은 이 사진 웃기다며 여름이의 엽사를 보여준다.
정국은 화영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두었고, 여름이 웃긴 표정을 짓고 찍은 사진을 보고 참나.. 하고 콧방귀를 낀다.
여름이 설거지를 다 하고선 뒤 돌아 둘이 머리를 가까이 대고선 같이 졸업사진을 보고있자
어어! 뭐야아! 하고 둘에게 다가와 상황을 보았다.
"걱정마. 네 엽사는 안보여줬어."
"뭘 안보여줘! 딱 그 페이지구만!"
"야아. 귀엽대!!"
"씨이.."
여름이 졸업앨범을 가져가 저 멀리로 던져두었고, 정국은 그런 여름이의 앞머리를 헝클어주었다.
여름이 흐음.. 하고 갑자기 고민을 하자, 화영이 왜? 하고 쇼파에 앉았고
여름이는 웃으며 둘에게 말했다.
"저녁에는 뭐 먹지!?"
"야. 너는 점심 먹은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저녁 타령이야??"
"……."
"야. 전정국.. 너는 이게 또 귀엽냐?"
정국이 자꾸만 웃자 화영은 대단하다며 박수를 또 쳐보였다.
대단한 콩깍지들입니다. 예? 하고 화영이 또 토하는 시늉을 하자, 여름이는 헤- 하고 웃으며 정국을 꼭 끌어안았다.
화영은 둘에게 얼른 집이나 가라며 손을 휘이 저었고, 여름이는 밤까지는 같이 있을 거라며 크게 소리친다.
그런 여름을 이길 수 없다는듯 헛웃음을 치며 고개를 젓는 화영은 창밖을 보았다.
하루 연락 안했다고 뭐가 이렇게 허전해
VIP실, 수만은 기계에 의지를 하며 누워있는 정국의 어머니의 옆에 석진이 서있다.
심정지가 한 번은 더 왔었다. 간신히 살리고선 기계들이 없이는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깨어난다고 해도 분명 식물인간이 될 거라는 얘기도 했다.
정국이에게 말을 해야하지만.. 또 어떻게 얘기를 해야할지 겁이 나서 석진은 마른세수를 했다.
어머니.. 저 어떻게 해야할까요. 아무리 말을 걸어도 누워있는 정국의 어머니는 간신히 호흡을 할뿐 아무말도 없다.
"너네 진짜 안가냐? 벌써 저녁이야."
"저녁은 먹고 갈게!"
"굳이 그러지마.. 부담스러."
"왜애. "
"니 애인은 이 집이 거의 자기네집 화장실 만할텐데.. 얼마나 답답하겠냐?"
여름이 그 말에 옆에 있는 정국을 올려다보았고, 정국이 따라 여름을 내려다보자
여름이는 웃으며 화영에게 말했다.
"안답답하대!"
"눈빛만 봐도 아냐?"
"응!"
"얼씨구."
화영은 둘이 알아서 놀으라며 컴퓨터를 켜 알바나, 직장을 구하기 바빴고
정국이 졸린지 고개를 뒤로 젖히고서 눈을 감고있자 여름이 정국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졸려?"
"조금."
"하긴.. 오늘 우리 아침에 일어났잖아! 맨날 늦잠 잤는데.. 그치."
"응."
"어머님 생신은 언제셔!?"
"아직 한참 남았어. 여름이거든."
"그러게! 한~참이네."
"한~참이야?"
"응. 한~참."
"수령이랑 같이 지내더니 연락도 잘 안받아. 영상통화 걸면 엄마 얼굴 말고, 수령이 얼굴만 보여준다니까."
"너보다 수령이가 더 좋은가보다!"
"그런가봐."
"헤."
"헤는 무슨."
정국은 주머니에서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에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보았다.
형에게서 오는 전화에 전화를 받을까 말까 고민만 하다 전화가 끊겼고, 곧 또 오는 전화에
여름이 받아보라며 웃어보이자 정국이 작게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어."
- 전화가 왜 이렇게 안 돼.
"뭔데."
- 열쇠.
"……."
- 새엄마가 열쇠를 가지고 있대.
"……"
- 잠깐 만나자.
"어. 알았어."
정국이 일어나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카드를 꺼내 여름이의 손에 쥐어주고선 말한다.
"나 잠깐 형 만나고 올게. 저녁은 이걸로 사줘. 네 돈 쓰지말고."
"…응? 아, 아니야! 괜찮ㅇ.."
"연락할게."
정국이 급히 나가자 화영은 오호! 하고 여름이에게 다가와 카드를 가져가 카드에 뽀뽀를 하고선 말했다.
"쟤가 분명 그랬다? 나 사주라고! 아, 저녁 뭐 먹지!"
윤기는 계속해서 올라오는 정국과 매니저의 열애설에 어떻게든 하나씩 지우고 있지만, 이미 다 퍼져버린 상황이라 더이상 방법은 없었다.
도대체 누가 알고 이렇게 퍼뜨리는 거야..
이미 파파라치 쪽에선 합의 봐서 우리 회사 애들이랑은 붙을 일이 없는데..
윤기는 이 상황이 복잡한지 머리를 헤집고선 얼마전에 몰래 찍은 정국과 여름이의 사진을 보았다.
둘은 처음에 톰과 제리처럼 그렇게 사이가 안좋더니..
지금은 서로가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예전처럼은 아니어도.. 많이 달라졌네."
예전처럼 밝은 모습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약한 정국이의 모습들이 여름이와 있을 땐
잘 보여서.. 그게 마음에 들었다.
우리에게 웃어준적은 없지만 유일하게 여름이에게는 웃어주는 정국의 모습이
조금은 서운하기도 하면서.. 여름이에게는 고맙다.
"차라리 사귄다고 입장발표 해버려..?"
그게 더 나으려나..? 하고 윤기는 고민을 하는듯 또 머리를 헤집었고
언제왔는지 남준이 문을 활짝 열고선 윤기에게 밥을 먹자며 소리쳤다.
노크 좀 하라며 또 소리치지만, 남준은 들은채 만채 윤기를 끌고 작업실에서 나온다.
정국은 자신의 방에 들어왔고, 정현은 침대에 앉아 정국을 올려다보았다.
정국이 무슨 얘기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말 그대로야. 여기 일하시는 가정부 아주머니께서 아빠 돌아가셨을 때.
아빠가 손에 열쇠 쥐고 계신 걸 봤대. 그리고.. 아버지가 그 일 있고나서 그 방에서 새엄마가 열쇠를 가지고 나왔대."
"……."
"일단은 새엄마한테 그 열쇠가 있나 확인을 해봐야 되는데. 무작정 열쇠 가지고있냐고 물어보면 그렇잖아."
"……."
"새엄마가 잠깐 나가있을때 방을 뒤져보자고.. 아니면 아주머니한테 시켜서.."
"그래."
"…너는 아무렇지도 않냐?"
"……"
"새엄마가 죽였을 수도 있다며. 왜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는데."
"그걸 어딘가에 숨겨둘 인간이 아니야."
"……."
"열쇠를 찾는다고 한들. 증거로도 부족해."
"……"
"현실이 그래."
"…너 원래 예전에는 안그랬잖아. 가족 일이라면 끔찍히.."
"현실이 이런 거랑. 내가 예전엔 안그런 거랑 무슨 상관인데."
"……."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마."
정국이 그만 가본다며 방문을 열었을까.. 문 앞에는 나영희가 서있었고, 정국은 그런 나영희를 지나쳐 걸었다.
나도 가족의 소중함을 잊어서 반응이 없는 게 아니야.
아무것도 못 하는 내가 한심해서. 그래서 뭔 반응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그런 거라고.
집에서 나오자마자 잘 들리지않는 귀 덕에 인상을 쓴채로 그렇게 한참을 서있는 정국은 한숨을 내쉬었다.
새엄마가 사라져야만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행복이란 게 뭘까하고 또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노여름과 같이 있으면 힘든 일들은 생각도 안 난다. 그게 행복이라는 걸까.
허무한 생각이 들다가도 노여름을 생각하면 얼른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웃음이 난다.
그리고..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기 시작한다.
집에 먼저 와서는 불을 아무것도 키지않고선 침대에 앉았다.
내가 가지 않는 게 더 둘에게 좋은 시간일 거라 생각이 들었다.
둘만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노여름이에게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락이 올 때까지 하지않는다며 노여름이 또 입술을 쭉 내밀고선 삐질 걸 생각하니
골치가 아프다가도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핸드폰을 켜서는 노여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형 만나고 집에 왔어.저녁 먹고서 말해. 데리러 갈게.]
[아니다. 오늘은 거기서 잘래?]
보낸지 1분도 되지 않았는데. 답장은 역시나 빨리 왔다.
- 괜찮아! 화영이는 다른 친구들 만나러 간대. 너랑 있고싶어ㅎㅎ!
- 벌써부터 보고싶당 ㅠㅠ 형이랑 만났어?
[그래. 그럼 나랑 같이 자자]
[나도 보고싶다]
이모티콘까지 보내며 애교를 부리는 여름에 정국이 웃으며 화면을 보고있었을까.
석진에게서 오는 전화에 정국은 예전과 다르게 전화를 바로 받았다.
"……."
- oo병원 7층에 있는 중환자실이야.
"…뭐?"
- 너희 어머니 입원하셨어.
"…뭔 개소리야."
- 회장님이.. 아니, 나영희가 사고를 낸 것 같아.
원하지 않던 일이 일어났다.
항상 내가 원하는 것들은 무너지고, 원하지 않는 것들은 한칸씩 쌓아 올라져 이미 성이 만들어지고만다.
신기하게. 정말 신기하게도 나는...
"…어."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서일까. 그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았다.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고있었을까 여름이에게서 오는 전화를 정국은 한손으로 받아냈다.
"응."
- 어디야!
"병원 가고있어."
- 병원?
"응."
- 웬 병ㅇ..
"같이."
-…….
"같이 가자. 여름아."
무덤덤하게 같이 병원에 가자는 말에 여름이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곧 알겠다 대답을 한다.
- 응. 당연하지..! 지금 나오면 돼?
차를 타면서도 아무말도 오고가지 않았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겨우 정국에게 물었다.
"병원엔 왜.. 가는 거야?"
"엄마가 입원했대."
"어?"
"김석진한테 연락왔어. 나영희가 그랬다고 하더라."
"…괜찮아?"
"아직은."
"……."
괜찮으셔야 되는데.. 하고 정국이를 올려다보면 정국이는 정면만 볼뿐.. 그 어느곳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제일 힘든 건 너일텐데. 내가 옆에서 난리치면 안되는 거겠지.
그게 맞는 거잖아. 나영희가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입원까지 한 걸까..
왜 정국이 어머니까지 건드린 것일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내 머리론 답이 나오지 않았다.
중환자실 문을 천천히 열고 들어섰을땐 김석진이 병실 의자에 앉아서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침대 위에는 많은 기계들 사이로 간신히 얼굴만 내밀고있는 엄마의 모습까지 보였다.
산소호흡기를 달고있는 모습을 보니 채수빈이 떠올랐다.
김석진은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던 입술을 움직인다.
"뺑소니래. 내일 당장 가해자 만날 수 있게 해준다고 하더라.
나영희가 시켜서 한 것 같아.. 차가 나영희 차가 아니었거든."
"…엄마 상태는."
"……."
"엄마 상태는 어떤데."
"산소호흡기 없이는 스스로 숨을 못 쉬어."
"……."
"CPR만 세 번을 했어. 겨우 숨이 붙어있는 상태야."
"……."
"미안하다."
"……."
"내가 그냥 가는 나영희를 말렸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하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
"……."
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금방 또 들릴 거라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안들리는 귀에 두눈을 질끈 감았다.
둘을 지나쳐 엄마의 앞으로 다가갔다. 기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의 손등에는 날카로운 바늘들이 많이 꽂혀져있었다.
이 이상한 감정을 뭐라고 설명을 해야할까. 엄마의 이런 모습에도 눈물이 나지않는 내 모습이 참 신기했다.
채수빈이 그런 일이 있었을 땐, 그렇게 세상이 무너진듯 표정을 짓고 울었는데.
지금은 이런 거에 무뎌져서일까. 왜 눈물이 나지않는 걸까.. 생각을 해보아도 답을 찾을 수 없다.
내 옆으로 다가와 내 손을 잡아주는 여름이의 표정을 보았다.
왜 네가 나보다 더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묻고 싶었다.
"왜. 울어."
내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너의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
너의 목소리가 희미하게라도 들리지않는다.
너의 목소리가 몇분째 들리지않는다.
너의 목소리가 몇십분째 들리지않는다.
"정국아?"
"미안한데. 오늘은 집에서 자."
너의 목소리가 몇시간째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