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하게 자고 일어나서 제대로 집밥 한 상 차려 동생과 같이 먹은 후,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남준과 새벽에 나눈 통화와는 달리 밝은 모습이었죠.
탄소: 나 왔어!
남준: 누나!
탄소: 어우 야; 갑자기 그렇게 튀어나오면 놀라잖아
남준: 아, 너무 반가워서 (머쓱)
탄소: 김석진은? 걘 왜 안 나와
남준: 방에 있을,
탄소: 김석진 넌 나 안 보고 싶었어? (벌컥)
석진: 노크 좀 하지?
탄소: ...어? 어어... (의기소침)
평소와는 다른 석진의 반응에 기죽은 탄소의 뒷모습을 본 남준. 뭐라 말하려다 괜한 참견으로 비춰질까 말을 아낍니다.
지민: 형, 누나 어디 갔어요?
석진: 연습실에 갔겠지
지민: 갔겠지는 또 뭐야, 형도 잘 몰라요?
석진: 걔 일거수일투족을 내가 다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모를 수도 있지
윤기: 예전엔 다 알아야 될 것처럼 굴더니?
석진: ...그건 예전이지
지민: 그래요 그럼 연습실에 누나 있는지 가봐야겠다
휴대폰을 숙소에 두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된 탄소와 석진 사이에 흐르는 살짝 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고 컴백의 첫 무대를 빌보드에서 화려하게 시작한 방탄소년단!
탄소: 사랑이 사랑만으로 완벽하길 내 모든 약점들은 다 숨겨지길
석진: 김탄소석
탄소: 어?
진: 너 자꾸 음 하나씩 틀리는 것 같은데
탄소: 아, 어... 조심할게
석진: 무대 위에선 괜찮은데 연습할 땐 왜 그래?
탄소: 실전파라서 그런가?
석진: ...농담하지 말고
석진이 보이는 딱딱한 태도에 동요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탄소는. 내가 예민해져서 그런 거겠지. 원래 연습할 때도 항상 다들 진지했는데.
탄소: 으, 진짜 피곤하다 오늘 따라 몸이 왜 이렇게 무겁지
호석: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자던데 그래서 그런 거 아녜요?
탄소: 아 약간 부족한 부분 있는 거 같아가지고
석진: 컨디션 조절 제대로 해 그러다 아프지 말고
탄소: ...말투 너무 딱딱하다, 좀만 더 다정하게 말해주면 안돼? 걱정해주는 김에
석진: 원래 이렇게 말했는데 새삼?
탄소: ......
호석: ...아, 나 누나 주려고 간식 챙겨 놓은 거 있는데 먹을래요?
탄소: 아냐 됐어, 괜찮아
석진에게서 거리감이 들 때마다 다른 멤버들에게 가깝게 지냈습니다. 무대 방송을 위해 방송국 대기실에 있을 때면 다른 출연진들과 어울렸죠.
태형: 누나 또 어디 갔대?
정국: 옆에 대기실 갔을 걸여
태형: 헐 진짜? 드디어 누나도 친구가 생긴 거야?
정국: (무엇)
석진: 걘 왜 자기 대기실 냅두고 남의 대기실 가서 난리야...
윤기: 친구들 좀 사귄다는 데 뭐 어때요
석진: 말썽 피우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남준: 에이 그래도 누나가 스물 일곱인데~
탄소: 탄소가 돌~아왔,
석진: 보는 눈 많은데 좀 조심해 친한 가수여도 대기실 막 들어가지 말고
탄소: ......
석진: 김탄소석
탄소: 같은 여돌인데 왜 그것도 안돼?
진: 방금 말한 건 뭘로 들었어, 예전엔 알아서 조심하던 애가
탄소: 아니 내가 남돌 대기실 들어간 것도 아니고 새로 사귄 친구랑 인사,
석진: 네 팀이 방탄소년단이야
탄소: 그게 뭐 어쨌는데...?
석진: 여기선 김탄소 아니고 방탄소년단 KIN이라는 자각을 하라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되도록 석진의 말에 따르려고 했어요. 하지만 대기실에 수시로 들어오는 빽녀며 뭐며, 탄소에겐 빽남도 있었죠. 종종 멤버들이 대기실에 없을 때를 틈타 탄소만 혼자 있을 때 찾아온 무례한 손님들은 상당히 불쾌한 언행을 일삼았습니다. 멤버들이 있을 때에도 빽녀가 난리라서 크게 다른 상황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로 인해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날이 갈수록 쌓여가고, 석진의 태도에 탄소도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 같이 사진 찍자
탄소: 저기요 언제 봤다고 저한테 반말,
??: 뭐해 포즈 안 취하고?
탄소: (헛웃음)
??: 아 빨리! 너 빼고 다 찍었어
탄소: 내가 왜 너랑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 ...뭐야?
탄소: 자기가 무슨 민폐인 줄도 모르고 고개 뻣뻣하게 세우는 사람한테 내가 왜?
??: 얼굴 좀 반반하게 생겼으면 얌전히 하자는 대로 할 것이지 뭐 이렇게 말이 많아? 너 미쳤어?
탄소: 너 진짜 기분 더럽게 말한다, 지금 누가 누구더러 할 말을 해
하루는 너무 짜증이 났습니다. 전날 대기실 빽녀 중 아무개가 정국의 몸을 만져대며 아닌 척 굴던 것도 환멸이 났는데 오늘은 자신의 차례라는 것처럼 이어폰을 끼고 있던 탄소를 툭 치며 다가온 여자가 독한 향수 냄새를 풍겼거든요. 머리가 깨질 것 같았습니다. 왜 이렇게 하나 같이... 정신에 해롭기만 한 건지.
탄소: 내가 이 바닥에 있으면서 너 같은 애들 진짜 지겹게 많이 봤어, 예의와 개념은 밥 말아먹은 인성이 어디 가나 싶을 만큼 죄다 똑같잖아 조금만 수틀린다 싶으면 바로 소리 빽 지르면서 니 기분 잡쳤다가 내 앞날 망하게 될 거라고 짓걸이면서 협박, 아냐?
??: 이게 진짜 미쳤나,
호석: 누나, 지금 뭐하는...!
탄소: ......
대기실로 들어온 호석이 광경을 목격하고 가까스로 탄소의 팔을 잡아당겨 뺨 맞는 일은 피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게 없던 일로 되는 건 아니죠.
탄소: 너야말로 오늘 일 후회하게 될 거야
??: 싸가지 없는 년
탄소: 어, 계속 그렇게 입 털어봐, 나중에 누가 누구더러 무릎 꿇고 살려 달라고 비는지 두고 보자고
애도합니다, 탄소에게 제대로 찍힌 빽녀. 참고로 예전에 지한이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정리한 빽녀들은 정말 제대로 망신 당했다는 후문이 있어요. 나름 빽 있다고 살아왔을텐데, 글쎄요. 탄소가 부모님과 친근한 사이가 아니라서 그렇지 친가와 외가 모두 힘 좀 쓴다고 들었단 말이죠. 사촌오빠 둘만 해도 변호사, 검사인데.
호석: ...괜찮아요?
탄소: 안 괜찮아
호석: 무대는,
탄소: 올라갈 수 있어
호석: ......
빽남도 있다고 했는데 이건 또 무슨 상황이었느냐!
??: 맞선은 죽어도 안 본다고 하길래 이렇게 찾아올 수 밖에 없었네요
탄소: ...진짜 가지가지한다...
??: 이렇게 다른 사람 귀한 손님한테 대접이나 하면서 무대 오를 바엔 그냥 관두는 게 낫지 않나요?
탄소: 뚫린 입이라고 막말하지 마세요
??: 솔직히 그렇잖아요 탄소씨 정도면 오히려,
탄소: 뭔데 내 몸에 손대세요
??: 반응이 너무 살벌하네요
탄소: 닥치세요 토 나올 것 같으니까
??: 농담이 지나친 것 같아요
탄소: 농담?
??: 기생 같은 생활은 이제 그만 하고,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그대로 바닥에 던진 탄소. 액정이 박살났죠. 남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쳐다보면 머리를 쓸어넘기며 딱 한 마디를 덧붙여 다신 얼씬도 못하게 막았습니다. 하지만 타이밍이 구렸죠.
탄소: 니 얼굴 아스팔트 바닥에 갈아서 저 액정처럼 박살 내기 전에 나가
??: ...나중에 다시 얘기하는 걸로 하죠
탄소: 진짜 별 거지 같아서...
태형: (빼꼼) 누나...?
탄소: ...어, 왜
태형: 아까 대기실 안에서 큰 소리 나던, 히익, 휴대폰이 왜 그래요!
탄소: 아냐, 그냥 좀 벌레 한 마리가 들어왔길래 그거 잡느라 그랬어
석진: 김탄소 넌 사람한테 벌레가 뭐야 아무리 싫어도 그렇지
탄소: ......아, 어 그래 내가 말이 좀 심했다 미안
석진: 너만 싫은 거 아니야, 다 싫어도 참는 거지
탄소: 미안하다고
석진: 김탄소석
탄소: 왜 자꾸 불러
진: ...됐다, 말해서 무슨 소용이야
탄소: ......
윤기: 그, 누나 아까 전에 그 사람하고 아는 사이,
탄소: 내가 왜 그 인간하고 아는 사이야, 끔찍한 소리 하지 마
석진: ...말 좀 조심하라고 방금 말했어
탄소: 그게 너한테 들렸어? 그럼 사과할게 미안, 됐지
그 다음 날 석진은 엠씨를 보았고, 같이 진행한 고정 엠씨의 마지막 출연이라는 것에 대해 방송이 끝나고 대기실 근처를 지나가며 그 동안 수고가 많았다는 한 마디를 짧게 남겼습니다. 전혀 문제 될 부분은 없었지만 다섯 살 연하의 상대방이 석진의 이름을 부르며 라이브 방송이 끝나지 않은 채 대기실을 나가, 문제를 삼는 사람들이 있었죠. 서치소년단의 멤버인 탄소가 이걸 모를 수는 없는 법이었습니다.
보통이라면 아무런 문제 없이 넘길 일인데 서러웠어요. 탄소는 석진에게 가까운 친구여도 대기실에 놀러가는건 조심하라는 충고를 받았고 어디서나 방탄소년단의 OOO이라는 걸 잊지 말라며 당부 받은 때였으니까요. 석진이 욕을 먹는 것도 속상하긴 속상한데,
탄소: 저희 방탄소년단에서 야 김석진, 하고 부를 수 있는 건 제가 유일합니다 저 이거 완전 자부심 있어요
정국: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다는 나이부심!
호석: 아, 근데 팀에서 말고도 그냥 이 세상에 형한테 야 김석진, 하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누나가 유일할 것 같아요 보통은 석진아, 진형, 김석진 이러지 야 김석진, 이렇게 부르는 경우는 잘 못 봤거든요
탄소: 나름의 애칭이에요 약간 제이케이 같은 거
석진: 정 없다고 구박했는데 애칭이라니까 감안해야겠네요, 뭐 별 수 없다
탄소: 그러니까 아무한테나 야 김석진을 허락하지 마세요 저만 부를 거에요
윤기: 너무 괜한 고집 아닙니까 이거?
석진: 본인이 하고 싶다는 데 그렇게 해야죠 킨이 나한테 어필을, 이렇게 하는데~
예전에 방송에서 나눈 이 대화를 누군가 올렸고, 그로 인해 탄소를 들먹이며 석진을 향해 손가락질 한다니까 울고 싶었습니다. 석진에게 서운한 것도 많고, 자신에겐 박하면서 남들에겐 너그러웠구나 싶어 서럽고, 분하고. 난 안되는데 자긴 되나 싶어서 억울하고. 같은 여돌도 안된다고 막은 게 누구인데 완전 내로남불. 그러다 정규 3집 활동의 막방이 다가왔네요.
새벽까지 연습실에 남아 연습하던 탄소를 데리러 온 석진에게 가기 싫다며 거부하면서 결국 일이 벌어졌습니다. 둘의 감정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황에서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죠.
석진: 너무 늦었는데 그만하고 돌아가자
탄소: 갈 거면 너 먼저 가 난 됐으니까
석진: 잠 안 잘 거야?
탄소: 어차피 못 자, 자려고 뒤척이는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연습하는 게 낫고
석진: 몸 상하면 어쩌려고 그래
탄소: 괜찮으니까 가
석진: ...나 정말 간다?
탄소: 잘 가
석진: ......
탄소: 왜? 안 가고
석진: 아니 너 요새 진짜 왜 그래?
탄소: ...지금 내가 이상하다는 거야?
석진: 그럼 아냐? 니 스스로 생각을 좀 해봐 당장 컴백하기 전부터 어제 오늘 어땠는지
탄소: 가만히 연습하겠다는 사람한테 왜 시비야? 어제 오늘? ...그러는 넌 뭘 그렇게 잘했는데? 니가 나한테 할 말은 아니지 않아? 니 행동이나 똑바로 하고 말해
석진: 김탄소!
탄소: 진짜 짜증ㄴ,
내게 넌 한때는 나의 Dear, 하지만 이젠 쓰기만 한 Beer.
타이밍 참 묘하게도 탄소가 새로 벨소리로 설정한 아웃트로 티어가 재생되었습니다. 전화가 왔다는 의미인데요.
탄소: ......
석진: ...전화 받고 나서 다시 얘기해
탄소: 이 상황에 저딴 전화 한 통이 중요해?
석진: 여기서 더 말해봤자 소용 없을 테니까 진정하고 나서 뭘 더 하든 말든 생각하자고
탄소: ...또 너만 이성적인 척이지 나는 감정 조절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고
석진: 그 얘기가 아니잖아
탄소: 아니긴 뭐가 아냐!
석진: 적당히 좀 해! 애도 아니면서 사람 지치게 왜 이래 자꾸!
탄소: 너만 힘들어? 넌 뭐 아닌 줄 아냐고! 나도 너 때문에 진짜 돌아버릴 것 같아
석진: 말 가려서 해
탄소: 내가 왜!
석진: ...그만하자
탄소: 그만하긴 뭘 그만해
석진: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돼? 그냥 끝내자고!
탄소: ......
석진: 계속 이럴 거면 뭐하러 만나는데, 왜 만나는데! 서로 화만 낼 거면 여기서 끝내자 그냥 그게 최선인 것 같아 정말 지쳐서 더는 못해먹겠어
같은 곳을 향해 걸었었는데 이곳이 우리의 마지막이 돼.
전화를 건 사람이 참 누군진 몰라도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히네요.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걸 보면...
탄소: ...그래, 헤어지자
석진: ......
탄소: 이딴 말싸움하면서 끝날 관계인거 알았으면 시작도 하지 말걸
석진: 웃기는 소리 하지마
탄소: 입 다물어 네 목소리 듣고 싶지 않으니까
석진: 야
가차없이 서로를 부수네.
탄소: 어디 한 번 끝까지 니 잘난 맛에 살아봐, 팀에 피해주지 말자던 그 말 얼마나 지킬지 두고 보자고
석진: 야!
이게 진짜 너고 이게 진짜 나야. 이젠 끝을 봤고 원망도 안 남아.
달던 꿈은 깼고 나는 눈을 감아. 이게 진짜 너고 이게 진짜 나야.
탄소: ......
연습실을 박차고 나온 탄소의 얼굴은 어둑어둑한 새벽이라 잘 보이지 않아야 했지만 지나치게 선명했습니다. 새벽 택시를 타고 회사에서 작업 중인 남준을 찾아갔죠.
남준: 누구,
탄소: 나 이제 어떡해?
남준: 누나 울어요?! 아 잠, 잠깐만 일단 안으로 들어와요
네 입에서 말을 하는 순간, 우리의 초점이 불규칙해지는 순간
모든 게 위험한 순간에 두 글자가 준 우리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