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날씨 참 구질구질하고 좋네
윤기: 누나 비 오는 거 싫다면서요 그래서 레인도 안 듣는 사람이 무슨 일이래
탄소: 나도 구질구질한 구여친이니까 동병상련인 처지에 싫다 어떻다 말할 자격이 있겠어? 쟤도 남친이랑 헤어지고 속상하겠지... 얼마나 지독하게 연애를 했으면 허구헌 날 쳐울고 난리람 ...아니 나도 안 우는데 쟨 왜 울어!? 애초에 연애했던 건 맞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남자친구 기다리느라 애타서 우는 거야 뭐야?!
윤기: ...?
탄소: 빗방울이 내 뺨을 치면 저것의 몸뚱아리 위에 드라이기의 뜨거운 바람맛을 보여주겠어 (비장) 진짜 사람 짜증나게 말이야 어? 울거면 좀 속 시원하게 할 것이지 찔끔찔끔, 아앆 열받아!
호석: 남준아 슬슬 시작한다
탄소: 비도 오고 그래서허
남준: 아이고 누님 뭐한다고 아직까지 깨어계신답니까~ 어서 들어가 주무십셔
윤기와 탄소가 있는 거실을 지나쳐 방문을 열고 찾아온 호석의 말을 듣고 튀어나온 남준은 소파에서 옆에 앉은 윤기의 한심한 눈초리를 받으며 난동질을 부리는 탄소에게 양 손뼉을 쨕짝 치며 어린 아이의 관심을 유도하듯 시선 끌기를 시도합니다.
탄소: 사랑은 므어가 사랑!
태형: 이츠 어 페이크러~업
탄소: ??? 니가 왜 거기서 나와???
태형: 저 원래부터 바닥에 누워있었는데요 누나
탄소: 아 그래... 방금 전의 일은 잊어주면 좋겠어... 나 가서 잘래... 여러분 잘자
하지만 탄소를 움직이는 건 태형이죠. 윤기의 허벅지 위에 놓인 리모컨을 가져다 마이크처럼 쥐고 성난 고양이처럼 오만상을 쓰자 바닥에 쿠션을 끌어안고 누워있던 태형이 뒷가사를 받아쳐줍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탄소를 올려다보는 태형의 표정이 평화롭네요. 반면 누나는 어린 동생에게 보인 모습이 부끄러웠는지 빠른 퇴장을 선언합니다. 앞에 서 있던 남준을 지나쳐 긴박함이 느껴지는 발걸음으로 사라진 탄소는 얼마 안 있어 비명을 지르며 방을 뛰쳐나오게 되는데요.
탄소: 앆!!!!!
남준: 뭐야 왜 그래요!? 뭐 벌레라도 나왔어요?
정국: 정구기가 나왔는데요 (마상)
탄소: 저저저 미친놈 저거 왜 남의 방 침대에는 누워가지고 진짜 식겁했네 허우 진짜, ...나 오늘 거실에서 자야겠다 니들 다 들어가서 자라
지민: 누나를 어떻게 밖에서 재워요
탄소: 앆!!!!!
지민: (움찔)
탄소: 아 박지민이구나, 난 또 전정국이 새로 나타난 줄;
윤기: 어쩌다 누나랑 정국이 관계가 이렇게 되었을까
호석: 그러게 누나가 어서 연애를 시작해야 하는데에~! 누나 저번에도 전화 오지 않았어요? 혹시 지금 시간 괜찮으시면 통화 좀 가능하냐고
호석은 닫힌 방문 너머로도 들릴 수 있을 만큼 호들갑을 떨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칩니다. 석진에게 들리라는 듯이요. 뒤를 돌아보며 호석을 째리는 탄소의 눈매가 유독 사납게 보이네요. 살짝 기죽은 호석은 윤기의 뒤로 슬금 숨었습니다.
윤기: 그런 일이 있었어?
호석: 형 진짜 누나한테 관심 드럽게 없구나
남준: 아 거봐요 형, 누나는 내가 챙길게요
윤기: 야 앞으로 차차 알아가면 된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하냐 남준아
탄소: 쟤네 왜 저래?
태형: 우리 진짜 다 이상해...
탄소: 나만큼 정상적인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 이상한 사람들 사이에선 정상인 사람이 비정상으로 보이는 거 모르니?
지민: 누나 내 침대에서 잘래요?
정국: 뭔 소리에요 형, 사람이 할 말과 안 할 말이 있는데 어떻게 그걸 분간하지 못하고 누나한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가 있어요?
지민: ...니가 더 심하단 생각은 안 하냐
탄소: 정국이랑 지민이 싸우니?
태형: 나도 태형이라고 해줘요 왜 나만 쏙 빼놓는데
탄소: 그래 태형아 하루만 신세 좀 져도 될까?
윤기: 안돼요
탄소: 물어본 건 쟨데 왜 니가 대답하는 건지 물어봐도 되겠니?
윤기: 절대 안돼요 남녀칠세부동석 외치던 사람이 뭘 잘못 먹었나 왜 이러지?
남준: 형이 안하던 짓을 한다고 들이대니까 그런 거잖아요
윤기: 아니 너보단 내가 더 낫잖아 나 집에서 딸 노릇하던 사람이야
남준: 전 여동생 있어요
탄소: 누나 있는 정호석이랑 잘게;;
호석: ? 나 무슨 죄야
탄소: 신과 함께 죄와 벌 완전 슬프더라
호석: 저기요 누나
지민: 아 왜 나랑은 안되고! 어, 아 호석이 형 나랑 같은 방 쓰지?
정국: !!!!!! 누나 안돼욖!!!!!!!
탄소: 와 진짜 대환장부르스다 니네 다음 앨범 컨셉포토 촬영 장소로 부르즈할리파 생각하니?
태형: 들어가서 자요 누나
탄소: 재워줄 거야?
석진: 김탄소
탄소: ......
석진: ...여기,
탄소: 나 약간 악몽 꿀 것 같은데 동생들보단 친구랑 같이 자면서 호들갑 떠는 게 덜 민망하겠지? 나 그럼 쟤랑 잘게 여러분 안녕~ 와 친구랑 파자마파티~ 재밌겠다~
지민: ......
어안이 벙벙한 멤버들 사이를 지나 석진에게 가는 탄소. 천연덕스럽게 행동했지만 석진이 열어둔 방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옆을 지나가야만 하는 짧은 순간에 굳은 표정은 숨기지 못했네요. 그걸 볼 수 있었던 사람은 석진이 유일했고요.
탄소: 안 들여보내줄 거야?
석진: 아냐, 졸릴 텐데 얼른 들어와
탄소: 꼭 끌어안고 자도 돼? 전에 그랬던 것처럼
석진: ...그러자
방문이 닫히고 호석이 제일 먼저 경악합니다. 사람이 헤어졌을 때 영영 안 보고 지낼 수 있는 사이가 아니면 대체 어떤 관계가 되는지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둘의 저런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남들도 다 이러진 않을 걸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놀랐는 걸요. 다만 둘은 앞으로도 기약 없는 긴 시간을 한 집에서 같이 먹고 자며 개인적인 일이 아닌 이상 모든 일정을 함께 하는, 남들과는 다소 유별난 상황에 있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죠.
정국: 형 빨리 가서 누나 꺼내와여!
태형: 내가 왜애...
정국: 그치만, 그치만...!!
지민의 상처 받은 표정을 본 윤기가 남준과 투닥거리던 것을 멈춥니다. 석진과 탄소의 애매한 지금이 서둘러 정의되지 않는다면 지민에게도 고문과 다를 바가 없죠. 그렇잖아도 호석이 석진을 자극한답시고 시답잖은 것까지 죄다 말하는 통에 속이 뒤집어져 말이 아닐 텐데요.
윤기: 내가,
남준: 아~ 뭐 누나는 형이랑 잔다고 하니까 우리도 이제 들어가서 잡시다
윤기: 남준아
남준: 잠깐 나랑 얘기 좀 해요 형
그래서 같은 방에 들어간 전남친과 구여친의 상황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하네요.
탄소: 뭐하고 있었어?
석진: ...그냥 자려고 준비하고 있었지
탄소: 애들 다 들어가면 그때 다시 나갈게
석진: 너한테 하려던 말 안 들었잖아
탄소: 여기로 와, 그 말 하려다가 내가 중간에 잘라서 못한 거 아냐? 그냥 있었어도 말하지 못했겠지만
석진: 알면 조금만 더 있다가 가
탄소: 너나 나나 애들한테 참 민폐야 서로 보고 싶다고 난리치면서 다시 만날 것 같진 않으니까, 지금도 보면 이런 대화나 하면서
석진: 가지마
탄소: ...알았어
어디 안 가고 여기 있을게. 니가 아무리 미워도 결국 너 아니면 안되는 걸 모두 다 알더라. 내가 너한테 받은 만큼의 상처를 되돌려주기도 전에 무너질 거 모르는 사람이 없더라. 아직도 네가 미운 건 사실인데, 아직도 날 못 알아보는 지한이가 자꾸 네 얘기를 해. 자기가 정말 누구보다 아끼는 누나가 처음으로 좋아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언젠가 내가 지한이한테 연애하는 사실 들켰던 날부터 그냥 전부 다 말해. 그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널 미워해야 하는데 그게 안돼.
탄소: 가지 말라면 가지 말아야지, 근데 그럼 나 어디서 자라고?
둘은 다시 연애할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지민은 탄소에 대한 마음을 언제쯤 온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지, 지한은 탄소의 결정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다른 멤버들의 미묘한 변화는 어떻게 나타날 지도요.
탄소: 지한씨는 그럼 누나가 연애하는 거 알게 되었을 때 걱정 많이 했겠네요
지한: 사실 개인적으로는 누나가 평생 나만 보고 살았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도 약간 있었기 때문에 걱정보다는... 그냥 반갑지 않은 게 더 컸던 것 같아요
탄소: ...그랬구나
지한: 난 연애할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닌데 그냥 보고 자란 사람이 누나 밖에 없기도 하고, 그러다보니까 누나 닮은 사람이 아니면 좋아할 이유가 없겠구나 싶어서 그냥 그런대로 지냈거든요 어느 순간에는 아무리 누나를 닮은 사람이어도 누나가 아닌 이상 피도 섞이지 않은 남을 완전하게 믿을 수는 없겠지란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이성에 대한 관심을 아예 끊은 것 같아요 내가 이러니까 누나도 그렇길 바랐나봐요
탄소: 누나는 모르고 있죠?
지한: 누나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건 처음이에요 이렇게 못난 마음을 어떻게 알려주겠어요 누나가 나한테 말하지 않는 만큼 나도 누나한테 숨기는 게 많은 걸요
탄소: 서로 감추는 게 없는 남매라더니 다 거짓말이네요
지한: 어, 그건 또 아니에요
탄소: 그럼?
지한: 누나가 그 형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는 거 나 밖에 없을 걸요?
탄소: ......
지한: 누나가 활동하느라 한창 바쁠 시기에 전화하면 꼭 하는 말이 있어요 세상에서 건드리지 말아야 할 여자는 배고픈 여자랑 화난 여자인데 그 형은 배고픈 자기를 화나게 만든대요 나름 관리한다고 먹는 걸 조절하는데 틈만 나면 일부러 앞에서 맛있는 걸 먹으면서 자랑질이라고, 진짜 사람 약올리는 재미로 사는 것 같다 뭐한다 하면서도 밉다는 소리는 끝끝내 안 해요 그냥, 그러다가 결국엔 너무 귀엽대요 정말 미워할 수가 없다고 옆에서 같이 먹어줄 수 밖에 없다고
탄소: ...훈훈한 얘기네요
지한: 누나가 먹는 거에 진짜 예민한데 그 정도면 진짜 좋아한다의 수준을 넘어선 참사랑인거에요!
탄소: ?
지한: 배부른 상태에서도 앞에서 알짱대면서 뭐 먹고 있으면 뺏어가는 게 우리 누나인데 그건 정말 들을 때마다 소름이 쫙 끼쳐요
탄소: 식탐이 많은... 누나였나봐요?
지한: 상상을 초월해요, 같이 고기 먹으러 가서 나중에 계산할 때 받은 영수증 누가 보면 단체 회식하고 왔냐고 물어본다니까요
탄소: ...ㅎ...
그래봐야 시트콤 일상은 바뀌지 않겠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