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우현 x 김성규 뱀파이어 x 인간 빛이 거의 새어 들어오지 않는 이곳은 뱀파이어 정부 대표 이성종의 저택. 거실 한가운데에 와인빛 벨벳으로 덮인 쇼파, 그 위에 다리를 꼬고 편한 자세로 앉은 성종이 있다. 빛날 듯 말 듯한 은발의 키가 제법 큰 남자가 성종의 시중을 드는 것마냥 그 옆을 꿋꿋히 지키고 있었다. 살짝 내리 깔린 속눈썹이 그의 위치를 말해주는 듯했다. “남우현의 근황은.”
“평범한 대학생과 한 집에 사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신경 억제제 의존도가 낮다는 실험 결과 데이터를 연구소로부터 받아왔습니다.”
“그 자료 좀 보고싶은데.”
은발의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등 뒤로 감춰둔 파일 하나를 성종의 앞으로 정중히 내밀었다. 성종은 받은 파일을 제 무릎 위에 올려놓고 그것을 한 장 한 장 감상적으로 넘겨냈다. 제법 빠른 속도로 자료들을 훑어 내려가던 성종의 눈이 돌연 날카롭게 뜨였다.
“…그 망나니처럼 전쟁터를 누비던 남우현이 약도 안먹고 인간과 어울린다라….”
“저도 지켜보는 내내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약을 안 먹는다는 것. 어찌보면 간단히 넘길 수 있는 사실처럼 다가올 지 모르나 뱀파이어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인간에게 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 저 자신을 약으로 통제하는 것은 뱀파이어에게 있어서 아주 당연한 생활이다. 하지만 남우현은 약에 의존하지 않고도 저 스스로를 통제한다. 그것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남우현한테 변화가 왔다는 건 확실한데….”
“…….”
“아니면 그 연구소가 보고도 없이 남우현에게 손을 썼을 수도 있지. …내가 우스워서라도.”
더 이상 인간의 피를 원하지 않는 뱀파이어로 만들어놨을 줄 누가 알아? 화를 눌러 담으려는 듯 성종의 눈꺼풀이 약간의 힘을 싣고 감겼다. 덩달아 감쳐 물렸던 입술이 고집스럽게 열린다.
“인피니트 부대에 속해 있던 놈들… 조금 더 가까이에서 지켜보도록 해.”
“네.”
“특히 남우현의 본능이 죽었는 지 살았는 지는 꼭 확인해야 돼. 전성기의 남우현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최고의 병력으로 쓸 수 있을테니까.”
“…….”
“그리고, 남우현이랑 같이 산다던 인간 말인데….”
제 무릎 위에 올려둔 파일을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성종이 쇼파에서 일어나 은발의 사내와 거리를 조금 씩 좁혔다.
“우리 계획을 위해서라면 죽여도 상관없겠어.”
“…새겨 듣겠습니다.”
성종의 손이 저보다 조금 더 큰 사내의 얼굴에 닿는다. 한참동안 사내의 눈과 마주하던 성종은 살풋 웃어보이며 그의 허리춤을 감싸 안았다. 사내의 어깨에 가볍게 기댄 성종이 무언가를 상기하는 듯이 중얼거렸다.
“세훈아….”
“…네.”
“니가 있어서 다행이야….”
“…….”
“조금만 참아.”
“…….”
“이 개같은 세상 끝내는 날, …… 목줄 꼭 풀어줄게….”
Vampire City 오후 중 가장 한가롭고 평화로운 시간에는 뭐니뭐니해도 엄마가 보내준 딸기를 먹으며 뒹굴거리는 게 최고인데, 내 집에 남우현이 들어온 이후론 그런 거 꿈도 못꾼다. 좀 쉬겠답시고 누우면 덤비고 누우면 달려들고 누우면 깔고 앉…. 성규의 평화로운 시간은 남우현으로 인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 황금같은 시간에 쉬기는 커녕 공부도 못한다는게 말이나 되나? 지금도 남우현은 딸기를 먹는 성규의 맞은 편에 앉아 헤헤실실 좋다고 웃으며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 그런 우현을 애써 무시하며 기계적으로 딸기를 입 안에 우겨넣던 성규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너도 이거 먹어볼래?”
라며 딸기 하나를 집어들어 우현에게 내밀어 보였다. 우현은 성규의 손에 들린 딸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게 뭐야? 맛있어?”
딸기라는 걸 잘 알면서도 성규와의 대화를 이어가고자 우현은 굳이 그것의 이름을 뻔뻔하게 묻는다. 그 질문에 성규가 머뭇거리며 뒷목을 긁었다. 우현을 예전처럼 대하기엔 아직도 지난 밤의 여운이 컸던 탓이었다. 제가 들고 있는 새빨간 딸기를 흘기던 성규가 딴에는 무심한 어투로 대답했다.
“딸기인데…, 너 이게 뭔지 몰라?”
“전부터 그게 뭔지 묻고 싶었어, 딸기 이거 핏덩어리야? 피로 만든거야? 내가 먹어도 돼?”
“피, 피… 핏덩어리는 아니고… 과일이야 과일, 더 묻지 말고 먹기나 해.”
우현의 입 안에 반강제적으로 들어간 딸기의 시식평을 들으려는 듯 성규의 시선이 우현의 입에 머물렀다. 맛있지? 맛있을 걸? 아직 확실한 답변을 들은 것도 아니면서 반응을 거의 확실시하는 듯한 성규의 말투에 우현은 터져 나오려던 웃음을 딸기와 함께 집어 삼켰다. 김성규는 볼 수록 귀여운 구석이 있다. 늘 제 연기에 깜빡 속아 넘어가는 모습도 그렇고, 제가 제일 세다는 듯이 떵떵 거리다가도 쩔쩔 매는 모습도 귀엽다. 우현이 해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맛있네!”
“그치? 맛있지? 맛있을 거라니까.”
김성규는 딸기에 대한 자부심이라도 갖고 있던 건지 제가 다 뿌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말이야. 칼로 그은 듯 날카롭게 떨어진 우현의 목소리에 성규의 입술이 긴장을 안은 채 꾸욱 다물렸다. 왜 그러냐고 묻는 대신 우현의 얼굴을 쳐다본다. 우현이 선하게 웃으며 성규에게 제 얼굴을 천천히 들이밀었다.
“성규보다 맛없다.”
“뭐, 뭐? 뭐??”
“내가 먹었던 성규는 진짜….”
달았는데. 우현의 말 한 마디에 성규가 질색하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 망할 얼굴 좀 치워줄래?! 짜증 섞인 성규의 목소리에도 아랑곳않고 우현은 제 고집대로만 굴었다. 성규가 얼굴을 뒤로 내빼느라 의자가 뒤로 넘어갈 듯이 위태롭게 기울어지자 우현이 한 팔로 성규의 등을 받쳐 당겼다. 균형을 잃어 앞으로 쏠리려는 성규의 입에 그대로 입을 맞춘 우현이 푸스스 웃으며 떨어져 나갔다. 성규는 제 얼굴이 화륵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고 양 뺨을 움켰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성규가 입을 삐죽이자 우현은 그 모습도 귀엽다며 성규의 손을 잡아 제자리에 끌어앉혔다. 딸기는 마저 먹어야지 성규야. 못이기는 척 자리에 다시 엉덩이를 붙인 성규가 심통한 표정으로 딸기 하나를 입에 쏙 넣었다. 오물거리며 맛을 감상하던 성규가 구겨놓았던 인상을 풀자 입 밖으로 흘러 넘친 과즙이 입술 밑으로 한 줄기 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아, 흘렸어. 팔자 눈썹을 한껏 찌푸리고 제 소매로 입가를 닦으려는 성규의 팔을 잡아 챈 우현이 망설임 없이 성규의 입가로 혀를 가져갔다. 짧은 시간 이었지만 제 턱을 진득하게 핥아 올리곤 입맛을 다시는 우현에 성규의 미간이 조금 다른 의미로 좁혀졌다. 미친놈아 뭐 하는 짓이야! 울그락 불그락해진 성규의 얼굴도 귀엽다며 연신 우쭈쭈 거리던 우현이 목소릴 가다듬고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 역시 평소에는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성규야.”
“…뭐, 왜 인마…!”
“내가 지금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
“……?”
“…….”
“…….”
무게 잡지 마 미친놈아…, 생각대로라면 진작에 뱉었어야 했던 말이 어쩐지 성규의 입 안에서 맴돌기만 했다. 우현의 사뭇 진지한 얼굴이 성규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성규가 못이기는 척 제 성격을 죽이고 물었다.
“무, 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래….”
“야한 생각.”
우현이 던져놓은 망설임 없는 대답에 성규의 말문이 턱, 하고 막혀버린다. 미친, 야한 생각이래, 미친, 미친, 그 딴 개소리 할 거면 나가! 당장이라도 던질 생각으로 야심차게 쥔 딸기가 냉큼 성규의 입 속으로 들어간다. 헐, 이게 아닌데. 당사자가 생각해도 황당한 제 행동이었던 지라 우현은 마냥 재밌다고 배를 잡고 웃어 재꼈다.
자존심이 상했다는 얼굴로 탁한 숨을 내뱉은 성규가 이내 체념했다는 듯이 입 안에 머금은 딸기를 마저 삼켜냈다. 딸기로 인해 붉은 생기를 띠는 성규의 입술은 우현에게 있어 충분한 자극제가 될 만도 했다.
우현이 날카로운 제 송곳니를 드러내며 성규에게 다가갔다. 숨이 닿을 만큼 좁혀진 거리는 성규가 당황할 세도 없을 만큼 빠르게 만들어졌다. 너무 놀란 나머지 딸기를 집은 손에 힘이 풀린다. 성규는 떨어진 딸기가 테이블 밑을 구르는 모양을 눈으로 쫓지도 못하고 무시무시한 우현의 입이 떨어지는 것만 바라봐야 했다.
“나 못 참겠어 성규야.”
참지마요 우현아. (의심미) 성종이 성격이 좀 파격적이죠? 일전에도 예고 해드렸지만, exo의 오세훈님도 나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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