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날이였어.
오빠 학교 성적처리도 다 끝나고 한가해졌음.
"애기야, 나 내년에 3학년 담임할수도 있을 것 같아."
"3학년?"
"응. 지금 3학년 담당하신 선생님들이 계속 3학년만 하신 분들이라 한번 물갈이를 해야한다나...
자연히 한번도 안해본 선생님들이 일순위로 할 것 같다 그러더라."
"아.... 그럼 많이 바빠져?"
"응, 3학년은 토요일 주자도 있고. 입시에, 상담에 학생들 손댈 부분이 많으니까..."
"그렇구나...."
"공연 자주 못 볼 수도 있어."
"에이, 공연이 중요해? 오빠 일이 더 중요하지."
내말에 오빠는 웃으면서
"역시, 애기는 속도 깊어."
말은 이렇게 했는데 막상 자주 못본다 생각하니 서운하긴 했음.
"우리 집 놀러갈래?"
"아니야... 오빠는 가족이 다 같이 산다며."
"그러니까, 엄마아빠한테 얼굴도 한번 보여주고."
"에이,"
"우리 결혼 안할거야? 상견례 전에 얼굴 한번 쯤은 뵈야지."
결혼?.... 심쿵했어.
이제 다음달이면 나도 26살, 오빠도 29살ㅋㅋㅋㅋ
그래 결혼할 나이기는 하네.
"어? 어... 나 근데 아직은 준비가 ..."
"우리 부모님도 너 궁금해 하셔. 어떻게 너랑 취향이 딱 맞는 처자가 있냐면서."
"어, 오빠 아직은 부모님 뵈기까진 좀 이른것 같아."
"그렇구나... 음 그럼 부모님 없을 때 놀러가자. 나 너한테 보여줄게 있어."
그렇게 놀러가게 됨.
집은 좋았음. 넓고 방도 크고ㅇㅇ 미안. 설명 고자라ㅋㅋㅋㅋ
아무튼 오빠 성격처럼 깔끔하기도 하면서 종대처럼 시원하게 인테리어 되어있는게
딱 이 가족이랑 잘 어울린다 생각 듦.
집 거실에 가족사진이 걸려있는데 어머님이 참 미인이시더라. 아 아버지도 ㅋㅋ
멍하니 보고 있는데 고향에 있는 우리 엄마 생각 났어.
오빠가 차 내오면서 물었음.
"여주야, 내가 너 나름 배려해서 생각해 낸게 있어."
"뭘?"
"우리 어머니랑 같이 공연보자."
"공연?"
"응! 나랑 종대랑 평소에 엄마 공연 자주 보여드렸었거든. 좋아하시기도 하고.
이런데서 격식차리고 불편하게 만나는 것 보다 너도 나도 편하게 관극하면서 만나는 게 더 낫지 않아?"
"아, 그럴수도 있겠다. 그렇게 해."
대답해주고 다시 가족사진 봤음.
공연?
그러고 보니 나는 엄마랑 같이 공연 본 적이 없네...
오빠는 자주 같이 보나보다.
"어머니가 참 미인이시네."
"응, 그런 소리 많이 들으셨지."
"오빠랑 닮았다. 종대는 아버지랑 닮고."
그 때 오빠가 보여준다고 했던거 가지고 옴.
티켓북이랑 데세랄 사진인화한거였어.
"여주야, 나 원래 티켓 안모으는 거 알지?"
"응."
"근데 나 실은 너 좋아한 이후로 같이 공연본 티켓은 모아뒀어."
그러면서 티켓북 보여주는데
진짜야 ㅋㅋㅋㅋ 풍월주 부터 최근에 본 것 까지 오빠랑 나랑 겹치게 본거나 같이 본 공연 티켓들 모아놨더라 ㅋㅋㅋ
그게 오빠는 나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뜻이잖아
되게 고맙고 뭔가 뿌듯한 느낌ㅋㅋㅋㅋㅋ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 오빠가 들고다녔던 데세랄
근데 나랑 사귀고 난 후에는 들고다니는 거 못봤어.
"원래 이거 커튼콜 때문에 샀는데 너 만나는 이후론 너 외에는 아까워서 사진을 못찍겠어서."
건네준 사진첩 보니까 언제 찍었는지도 모르게 알차게 찍어서 다 인화해뒀더라.
"고마워, 오빠."
그 말에 오빠는 또 실없는 아이같은 웃음 지음ㅋㅋㅋ
"나 이렇게 사랑해줘서, 진짜 고마워."
오빠 방도 한번 구경했는데
방 한켠이 다 책이였음
유기화학, 생명과학론, 유전학, 교육학 등 전공서적에서 시작해서 우리가 흔히 하는 고등학교 교재 있잖아?
수능특강, 수능완성, 자이스토리 이런거
그렇게 다 꽂혀있었음
"와, 이게 다 오빠 책이야?"
"응, 선생하고 살려면 계속 공부해야지."
"대단하다."
진심이었음.
오빠는 뮤지컬 보면서도 이렇게 자기 일에 충실하게 사는데
난 과연 그랬나, 하고 진지하게 고민해 봄.
갑자기 오빠가 존경스러워지더라.
집 구경 다하고 오빠가 차려준 저녁까지 먹고 집에 돌아왔음.
오빠의 말대로 오빠는 3학년 담임으로 인사가 확정되었어.
1월달 부터 반배치 되서 바로 일 시작이었지.
오빠가 잡아놨다던 어머님과의 데이트도 하루하루 다가왔어.
오빠가 너무 바빠서 그날 못보게 되면 어쩌나 걱정도 됐음.
걱정이 현실로...22
공연 당일 날 오빠한테 연락이 왔어.
급하게 3학년 전체 담임 친목회가 있다고 빠지면 1년동안 고생이라고ㅠㅠㅠ
너만 괜찮으면 어머님이랑 둘이 공연 볼수 있겠냐고 사정을 하는거야...
난 하는 수 없이 알겠다 했어.
오빠 이름으로 티켓 찾고 가족사진에서 뵌 분을 찾으려 이리저리 눈 굴리는데
뒤에서 날 콕콕 찌름.
"저, 준면이 여자친구?"
급하게 뒤 돌아서
"아, 예! 어머님 안녕하세요?"
"와 맞네. 이름은 아니까 소개 안해줘도 괜찮아요."
보는데 실물이 훨씬 더 미인이심. 오빠랑 더 닮은 것 같기도 해서 기분이 묘했어.
공연 시작시간이 20분 정도 여유 있길래 로비에 있던 자리에 잠깐 앉아서 대화를 했어.
"아는 언니랑 둘이 산다고 들었는데 고향이 여기가 아닌가?"
"아, 네. 광주가 고향이예요. 대학생 때 올라왔어요."
"와, 광주 한번은 내려가 봐야지 했는데 한번도 못갔어요."
"한번 놀러오세요!"
"한번만? 나중에 아들이랑 결혼하면 매번 갈건데 왜 굳이 가겠어요. 호호호"
하면서 기분좋게 웃으신다.
처음만나서 게다가 오빠의 어머니라고 생각해서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막상 내가 만난 분은 굉장히 여유도 있으시고 사람으로서 편하게 대해줘서 참 감사했어.
집에 바래다 드리고 내 아파트로 버스타고 오는데
친정엄마가 그렇게 보고싶더라.
일년에 두세번 정도밖에 못가고 그나마도 삼일도 채 못되서 돌아왔거든.
엄마한텐 공연본다는거 숨기고 살았기 때문에 저렇게 취미를 공유하는 오빠가 더 부러웠나봐.
1월, 오빠의 겨울방학이 딱 일주일 주어지는 시기 있잖아
전화로 오빠한테 물었어.
"오빠 우리 여행가자."
"어디로?"
"바다. 부산?"
"그래, 좋아."
너무 쉽게 얻어낸 동의...ㅋㅋㅋ
"오빠 오늘 야자 감독이야?"
"아니, 감독은 아닌데 서류 정리할게 좀 남아서. 의도치 않게 야근이네..."
"응, 힘내고."
전화 끊고 난 도시락을 쌌어.
오빠 학교 찾아가려고 ㅋㅋㅋㅋ
1,2학년은 오후에 다 보내주는데 3학년은 1월부터 야자를 시키는 우리나라 고등학교.
난 깜짝 놀랠 오빠를 상상하며 1층 교무실 문을 열었지.
불은 환히 켜져 있었는데 거기에 선생님은 오빠밖에 없었어.
오빤 종이뭉치에 집중하고 있었음.
"오빠!"
내 등장에 역시 ㅋㅋㅋㅋ 놀랐음ㅋㅋㅋ
"어, 왠일이야?"
"오빠 고생하는거 보고싶어서."
그러면서 오빠 책상에 내가 싸온 도시락 턱 하고 올려놓음.
그리고 나한테 의자 갖다줘서 오빠 책상에 나란히 앉았어.
눈 앞에 수능특강 책 있길래 꺼내서 읽어봄.
..ㅋㅋㅋ.ㅋㅋㅋ... 뭔소린지 몰라
오빠는 진짜 중요한 일인지 내가 옆에 있는데도 계속 일했음.
근데 내 진짜 목적은 도시락 갖다주는게 아니였거든.
"오빠,"
"응."
"오빠,"
"응."
"김준면."
그제서야 내 얼굴 보더라
"나 오빠한테 할 말 있어서..."
오빠는 보던 것들 한쪽으로 치우고 나한테 한발짝 왔어.
"뭔데?"
"있지, 나 생각 많이 해봤는데."
"응."
"음, 어디서 부터 말해야하지?
저번에 내가 아픈 이유 지금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실은 용인에 공연보러 갔다가 팀장 두집살림을 목격했어.
팀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는데 이제 갓 입사한 새내기인 나한텐 너무 무섭고 버거웠어.
혼자 마음고생 끙끙 앓다가 오빠 얼굴 보니까 마음 풀려서 울었던거고."
"그랬구나.... 우리 애기. 이제라도 믿고 말해줘서 고마워."
"근데 그 때 처음 생각했어. 차라리 내가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이런일은 없었을 텐데.
처음으로 뮤지컬에 대해 회의를 느꼈어.
저번에 오빠 집에도 가고 어머님도 만나고 하면서 더 강하게 들었던 게
난 내가 좋아하는 게 가장 최우선이라 가족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했단 마음이였어.
솔직히 난 오빠처럼 내가 하는 일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지도 않고 열정도 없어.
오빠는 언제까지나 취미로 뮤지컬을 보는데 나는 뮤지컬을 보기위해 돈을 벌거든.
그러는 과정에 내가 놓친게 너무 많은 것 같아.
부끄럽지만, 난 아직 우리엄마랑 데이트 한번도 제대로 못해봤어.
이런 내가 자신에게 당당하지 못한 모습인 내가, 과연 오빠에겐 어떻게 비춰질까.... 고민했었지."
".....그런걸 왜 고민해. 넌 그냥 존재 자체로 멋져."
"아니, 그 이전에 내가 먼저 생각할 수 있었던 건 오빠에게 비춰지는 내가 아니라 내게 느껴지는 오빠였어.
내게 김준면이란 사람은 남자로서, 인간으로서 어떤 존재일까.
나 오빠 존재 자체가 좋은걸까, 오빠랑 같이 보는 뮤지컬이 좋은걸까, 뮤지컬을 보여주는 오빠가 좋은걸까, 같이 공연을 보며 느껴지는 공감과 존중이 좋은 걸까...
아직 생각만 하고 결론은 못내렸어."
"...... 여주야,"
"이게 내 답이야. 미결. 오빤 내게 미결이야. 잘... 모르겠어."
오빠는 진지하게 내 말 들어주다가 고개를 숙였어.
"....갑작스럽기도 한데 한편으론 나만 이런 생각 하는게 아니라 다행이기도 하네..."
"어?"
"...... 너만 그런 생각 한거 아냐. 나도 그랬어.
문득, 내게 안겨있는 네 모습이, 갑자기 멀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 네 말대로 난 네가 좋은건지, 너와 있을 때 느껴지는 공감이 좋은건지.
나도 답을 못내렸었거든."
"아...."
"......"
"오빠, 우리 천천히 생각 해보자. 다다음주에 부산에서 만나.
난 오늘 이길로 광주 내려가서 엄마 얼굴도 좀 보고 생각 정리도 좀 하고....."
"..... 응 알겠어."
"그 때 봐."
"응."
그렇게 우린 서울에서 헤어졌어.
오빠 몰래 오빠가 담임 맡은 반에 올라가서 학생들도 훔쳐보고.
공학인줄 알았는데 남고더라 ㅋㅋㅋ
새벽길을 달려 광주로 내려와서 친정엄마 얼굴도 보고,
엄마 가게 일도 도와주고.
오빠 생각도 가끔 하면서 일주일을 보냈어.
부산일정 하루전에 그냥 먼저 짐싸서 나왔어.
엄마한텐 내일이 만나기로 한 날이야 이렇게 말하고 하룻밤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잤어.
근데 자고있는데 느낌이 께름직한게 이상했어.
젊은 여자 혼자 이렇데 자면 위험한거 알긴했는데
집에 엄마랑 같이 있으면 생각 정리가 잘 안돼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거든.
밖에선 쿵쾅거리는 소리 들리고 덕분에 잠도 안오고 손은 벌벌 떨리고...
이와중에 떠오르는 얼굴은 오빠밖에 없어서 늦은 밤에 문자 하나 남김.
그리고 폰 꼭 잡고 다시 자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또 안정되면서 잠이 잘왔음.
무사히 하룻밤 자고 생각도 어느정도 정리한 다음에 딱 나왔는데
내가 묵은 방 앞에 오빠가 서있었어.
"걱정했잖아."
"...."
"어제 문자 그렇게 보내놓고. 문자보고 바로 부산 내려왔어. 이 못된 여자야."
"......"
그렇게 말 없이 오빠차 탔고 오빠도 그 뒤로 별다른 말을 건네지 않았어.
그리고 우리가 계획한 대로 바다로 가는데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음.
설렘도 아니고 긴장도 아닌, 그래도 좀 기분나쁜 두근거림.
그렇게 바다 내려서 말없이 걷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멈췄어.
오빠가 나 내려다 보더니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정리해 주면서 이마에 입 맞춰줌.
"........여주야,"
".........."
난 조용히 눈 감았어.
"..........우리 잠깐만 헤어지자."
예상했어. 내가 바라기도 한 거고.
애써 담담하게 반응하는 데 아까부터 뛰던 가슴이 이젠 울렁거리더라.
"응,"
"........"
"오빠도 수고했어. 힘든 결정."
"......."
"미안하다는 말 하지마. 그럴 필요 없어."
"응."
그리고 내가 오빠 입에 입맞췄어.
"잘가."
"잘가."
"또 봐."
"또 봐."
그렇게 말하고 내가 먼저 등돌려서 걸었어.
눈물은 안나는데 하늘에 구름은 잔뜩 끼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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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얼말럽 (퓨어/화산송이/낯선이/작가님사랑합니다/봄내음/잭프로스트/슈이/현수레기)
이런 작가라 죄송해요......
이런 내용 전개 밖에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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