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줄리안과 글 속의 줄리안은 사랑입니다.
+ 영화 속 이웃사람과는 내용이 다릅니다.)
-
어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술을 진탕 마시고 필름이 끊겼다.
자고 일어났는데 누군가가 두들겨 때린 듯
온 몸이 쑤시고 아프고.......
눈을 떴는데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일어났으면 와서 밥 먹어요."
응? 웬 처음 보는 남자가 쑥 들어오더니
한 마디 하고는 다시 나가버렸다.
나..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여긴 저 남자 집인 건가?
옷은 입고 있는 걸 보니 사고친건 아닌 거 같은데.
어! 근데 저 남자는 누구지?
한국인이 아니라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일단 좀 씻고 보자란 생각으로
화장실로 보이는 방 안 쪽으로 들어가 간단히...
얼굴만... 씻으려 했는데
마스카라며 립스틱이며 다 번져서 얼굴이 엉망진창이다.
윽..... 나 어떡해..... 엄마... 이런 못난 딸을 용서하지 마세요.....
다행이라고 말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남자의 욕실에는 꽤나 종류가 다양한 클렌징 제품들이 있었고
뽀득뽀득하니 그나마 생얼 이긴 하지만 전 모습보다는 봐줄만 했다.
"저……."
"아, 이리 와서 앉아요."
외국 사람인데도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 한다.
남자가 안내하는 식탁으로 가니 콩나물국과 밥, 그리고 반찬들.
그냥 한식 상차림이다.
"일단 속 아플 테니까 밥부터 먹어요."
내 손에 숟가락을 건네주고는 국이 식었나? 하면서
국그릇에 손을 대보곤 자기도 자리에 앉는다.
"저.... 제가.... 왜.."
"입에 안 맞아요?"
"네? 아.. 아뇨. 맛있네요. 잘 먹을게요."
못 물어보겠다. 실패, 낭패, 이런........
밥까지 다 먹고 났더니 남자가 식탁을 깨끗이 치우고는
갓 내린 원두커피 한 잔을 건네줬다. 이럼 너무 미안한데......
"속은 괜찮아요?"
"네? 아, 네..... 죄송했어요. 이렇게 실례를 해서....."
"뭐, 조금 놀라긴 했는데 괜찮아요."
이 남자의 이름은 줄리안이란다.
어제 내가 술이 떡이 되어 줄리안의 집 앞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는데,
경찰을 불러도 바쁘다고 오지 않고
깨워도 내가 일어나지 않아
그냥 그 자리에 두기에는 위험할 거 같아서 데리고 들어왔단다.
사실 눈 떠서 내 몸이 안전했다는 생각이 든 순간부터
너무 미안한 마음이 커서 후딱 왜 내가 여기 들어온 건지
얘기만 듣고 집에 가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같이 밥도 먹고
이렇게 커피까지 얻어먹고,
이렇게나 민폐를 끼치게 되다니.....
"고마웠어요. 줄리안."
"네. 조심히 가세요."
그렇게 줄리안에게 인사를 하고 그의 집밖을 나와 보니 알았다.
여기는 우리 동네였다.
줄리안의 옆 건물 빌라에,
우리 집.
내 원룸이 있다.
-
줄리안에게 신세지고 3일이 지났다.
아침에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우연하게 줄리안을 만났다.
지금 이 시간에 들어오는 건지 조금은 지친 표정이 드러난다.
"안녕하세요."
"어? ㅇㅇ씨!"
"그때는 정말 고마웠어요. 저, 사실 여기살아요."
"아~ 그랬어요?"
먼저 아는 척을 하고 인사를 하자 줄리안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피곤한 듯 한 표정의 줄리안이 안쓰러워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 하고 집에 들어오려고 하는데
줄리안이 뒤에서 말을 한다.
"아침 안 드셨으면 식사나 같이 하실래요?"
줄리안의 말에 또 이 집에 들어와 버렸다.
줄리안이 옷만 갈아입고 다시 앞치마를 두른다.
뭔가 멀뚱멀뚱 앉아 있자니 뻘줌해 도와주러
부엌으로 가자 줄리안이 뚝딱뚝딱 금세 국을 끓여낸다.
"된장찌개 괜찮죠?"
"네? 네."
"앉아 있어요. 금방 돼요."
부엌에서 밀려났다.
딱히 보니 내가 도와준답시고 이것 저것하면
줄리안이 더 귀찮아질 것 같았다.
나보다 더 집안일을 잘 하네.....
"줄리안 피곤한데 나 때문에 괜히 요리하는 거 아니에요?"
"아, 좀 피곤하긴 해도 배가 고파서......
혼자 먹는 것 보다는 같이 먹는 게 좋잖아요."
"제가 대접해야 하는데 또 실례만 하네요."
줄리안이 젓가락을 놓으면서 웃는다.
뭘, 이런 걸로 실례에요, 하면서......
다 완성된 된장찌개가 맛있는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고
나도 줄리안을 도와 반찬들을 놓기 시작했다.
"얼른 앉아요."
지난번에도 줄리안이 차려 준 음식을 먹었을 때
꽤나 맛있었는데 이번음식도 기대 이상의 맛이라 솔직히 조금 놀랐다.
순수 토박이 한국인인 나보다 더 잘하는 것 같다.
어때요? 하고 묻는 줄리안의 물음에 맛있어요. 하고 밥 한술을 더 입에 넣었다.
"무슨 일 하는지 물어봐도 돼요?"
밥 다 먹고 설거지는 내가 해야 할 거 같아서 앞치마를 맸더니
줄리안도 도와주겠다며 옆에 와서 같이 설거지를 하는데
조용히 설거지만 하려니 어색해서 먼저 말을 걸었다.
"DJ이요. 찾아 주는 곳마다 하는 대로 다 가서 일하고 있어요."
"아~ 음악하시는 분이구나."
"ㅇㅇ씨는 무슨 일 하세요?"
"저는 교정, 교열 이런 거해요."
"교정? 교열? 그게 뭐에요?"
"음... 어떤 사람이 글 써논 걸 문장이 매끄럽게 이어지게 고쳐주는 거요. 오케이?"
"아, 음...... OK."
또 한 차례 침묵의 시기가 다가왔고
그 시기에 비슷하게 설거지도 마무리 지어졌다.
손에 묻은 물을 대충 옷에 쓱쓱 닦아내고 집에 가기 위해
줄리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요."
"아, 네. 별 말씀을요."
집을 나가려고 신발을 신다 순간 이대로 나가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리안, 오늘 저녁에 바빠요?"
"오늘은 마침 일이 없네요. 왜요?"
"두 번이나 신세지니까 죄송해서요.
오늘 저희 집에서 저녁 대접하고 싶은데 어떠세요?"
막상 얘기하니 쑥스러워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채
말을 꺼냈는데 그가 대답이 없다.
아, 그건 좀 무리였나, 란 생각이 들었고 그 자리에 계속 있기 민망해서
얼른 나가려고 덜 신은 신발을 마저 신고 줄리안의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고개만 꾸벅 숙이고 나가려고 문고리를 잡았다.
"네, 좋아요. 늦지 않게 갈게요."
-
줄리안이 오기로 한 시간이 채 10분도 안 남았다.
그가 온다고 해서 이 원룸에서 처음으로
햇반이 아닌 압력밥솥에 밥을 해봤다.
실수하면 어쩌나 했는데 나름 밥은 잘 된 듯하다.
그리고 고기를 좋아한다는 그의 식성에 맞춰 갈비찜까지 했다.
갈비찜 하려고 인터넷과 엄마찬스를 얼마나 썼는지 모르겠다.
맛이 있으려나, 꼭 그를 기다리고 있자니 남편을 기다리는 새 신부 같은 느낌이다.
"이게 뭐라고 긴장되지? 후... 그냥 밥 먹는 거다. 그런 거다."
'딩동 딩동'
초인종소리에 나도 모르게 엄청난 반사 신경으로 튀어나가
문을 열자 줄리안이 환한 얼굴로 웃으며 서있다.
"처음 여성분 집에 오는 거라 뭘 살까 하다가 ㅇㅇ씨한테 어울리는 꽃을 골라봤어요."
줄리안이 몸 뒤에서 후레지아 꽃다발을 내민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
"고마워요. 얼른 들어와요. 음식 해 놓은 거 다 식겠다."
줄리안의 꽃다발을 건네받고 향기를 맡는데
역시나 향이 강해 아찔하기까지 하다.
이래서 후레지아 향이 좋다.
강한 향.
식탁에 앉아 있는 줄리안에게 따뜻하게 데워진 갈비찜을 놔주자
맛있게 먹는데 그 모습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역시 이 맛에 요리하는 건가 싶다.
식사를 다 마치고 설거지를 해주겠다는 줄리안을
다시 식탁에 앉혀놓고 아까 밥 때문에 싱크대 위에
그냥 올려놓은 후레지아 꽃다발을 잡아들었다.
"꽃다발 식탁 위에 올려놔야겠어요."
꽃다발을 꽂을 만한 것을 찾다
집 찬장 꼭대기에 있는 물병을 꺼내려고 하는데
너무 높아 힘들어 의자를 끄집어 당기려 하자
뒤에서 손이 쑥 나오며 줄리안의 손에 물병이 들려 내려온다.
"이거 꽃다발 그냥 꽂으면 안 되는데. 중요한 게 들어있어요."
하며 꽃다발 안에서 작은 쪽지 더미를 꺼내주고는 식탁으로 가서 다시 앉는다.
줄리안을 보고 쪽지를 펴자 쪽지에는 삐뚤빼뚤한 글자가 적혀 있다.
'고맘습니다. 초대해 줘서......'
그 다음 장에는 ......
'그리고 ㅇㅇ시는 천모습이 곡 천사 가태요. 에뻐요.'
마지막장에는......
'ㅇㅇ시. 우리 대이트 하실레요?'
예상치 못한 그의 쪽지에 당황하기도 해
줄리안을 쳐다보자 줄리안도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싫은 거예요? 하고 물어보는데
순간 멍해서 아무런 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음, 설레기도 하지만 일단 직업병이 먼저 튀어나온다.
그의 마음이 전달되기는 한데....
아무래도 이 남자 붙잡고 한국어 공부 좀 더 시켜야겠다.
멍하니 서있기만 한 내 옆에 와서 서더니
줄리안의 실망한 듯 한 목소리가 들리고 그럼 됐어요. 저 갈게요. 하며
부엌을 벗어나려는 줄리안의 손목을 급하게 잡았다.
"줄리안."
먼저 그에게 받은 데이트신청의 답을 해주는 게 예의겠지.
"좋아요."
그의 예상치 못한 말이었지만
나도 그가 오기를 기다리며 설레 했고
이건 그냥의 감정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를 계속 꾸준히 만나면 더 좋은 감정으로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고......
"ㅇㅇ씨, 제 고백 받아주는 거죠? 그럼 당장 지금 데이트 갈래요?"
"그런데 오늘은 안 되겠어요."
단호하게 거절하는 나의 말에
강아지마냥 꼬리를 흔드는 게 보이는 듯 한 모습의 줄리안이
내 거절에 꼬리마저 축 져진 강아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오늘은 데이트보다도 급한 게 있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줄리안, 철자법 배워요."
완전 기운 빠져있던 줄리안이 내 말을 듣고는 얼른 내 옆으로 와 자리를 잡는다.
뭔가 나보다 크고 애교가 많은 대형견을 보는 기분이 들어 묘하지만
이런 대형견이라면 10년이고 100년이고 잘 지낼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 여기서는 고맘이 아니라 고맙. 고맙습니다. 라고 하는 거예요."
고맙습니다. 나에게도 봄이 찾아오게 해주셔서…….
*
사실 줄리안은 어떻게 써야 싱크가 돋을 수 있을까 고민을 했는데...
그냥.. 제가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썼어요...
그냥.. 저렇게 다정돋는 줄리안... 이었으면 해서...
더 폭풍 업댓하고 싶은데... 내일.. 할게요...
알바하고 왔더니.. 잠이 와서.. ㅜㅜ
그냥.. 사실망글이에요...
망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