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리팀에서 차장님을 뺀 세명이 일을하는데
한 팔에 깁스하고 무슨 일을 척척 잘 할 수 있을까..
왠지 모르겠지만 무기력한 날이었음
설상가상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날씨.. 찔끔찔끔 내리는 기분나쁜 비
[영화 보러 가자] - 오빠
오빠 = 1화에도 나왔고 얼마 전 전화씬에 나왔던 그 오빠가 이 오빠고 이 오빠가 그 오빠야 (박해진/30)
[밥]
[돼지야]
[아니 사람이 밥을 안 먹고 살아?]
[ㅋㅋㅋㅋㅋㅋㅋ데리러 갈게 퇴근할 때 문자해]
[ㅇㅇ]
차장님도 없고 어차피 밥 먹을 사람도 없었는데 잘됐다 싶었음
퇴근하고 건물에서 나왔는데 앞에 차가 있었음
비 오는데 그냥 차까지 냅다 뛰어가서 올라탐
"어 왔냐"
"비 오는데 말이야"
"못 봤어 ㅋㅋㅋㅋㅋㅋㅋ
벨트해 어디 갈까"
"사 줄거야?"
"그래"
"아무데나 맛있는데 비싼데로 가자"
"벨트"
낑낑 힘겹게 벨트 맴
차타고 좀 가서 식당에 도착했는데 입구부터 비싼 냄새가 났음
"오 좀 잘나가네"
"내가 좀 벌어"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못하게 웃긴 사람인데... 낯을 가려서 그렇지
식당에 들어가서 자리잡고 주문한다음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음
"팔은 언제 풀러"
"몰라 곧"
"어렸을때부터 좀 둔한지는 알았는데"
"야유회는 재밌었어?"
"힘든데 재밌었어"
"다 남잔데?"
"응 완전 잘 해줘"
"그럼 다행이고"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앞 자리에 쫙 빼입은 남자랑 고급진 분위기 여자분이 앉았음
얼굴이 익숙하다 싶었음
누구긴 누구겠어 차장님이지
퇴근은 한참 전에 해놓고 왜 하필 식사시간이 겹친건지
분명히 앉을 때 눈이 마주쳤는데 못 본건지 모르는 척인지 아는척은 안하셨음
선자리니까.. 뭐 그럴 수 있다고 봄
항상 대리님들이나 회사분들 (= 남자)이랑 어울리는 것만 봐와서 그런가
여자랑 단 둘이 식사를 하러 온 차장님이 조금은 낯설었음
신경은 쓰이나 쳐다보진 못하겠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는데 기억은 하나도 없음
살짝 벙찐 상태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왔음
칼질하기 불편한 나 대신에 오빠가 고기는 다 썰어 줌
싱숭생숭한 기분에 음식을 먹었다기보단 밀어넣음
"천천히 먹어 돼지야"
"말 안 들어"
"맛있는 걸 어쩌라고"
"맛있는 표정이 아니야"
오빠한테도 예전에 팀원들이랑 찍은 사진 보여줬던 적 있는데 기억을 못 하나 봄
"오빠나 먹어"
하고는 입에 스테이크 하나 쑤셔넣음
"맛있네"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뭐"
"만약에 오빠가 좋아하는 사람이 선을 보면 어떨 거 같아?"
내가 차장님을 좋아한다는 건 아니고
"뭘 어쩌긴 어째,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냐 내가 좋아하는 거지"
"맞는 말이네"
"왜 갑자기"
"아니야. 얼른 먹고 나가자~~"
앞 테이블 눈치보랴 밥 먹으랴 정신이 없었음
나와서 차타고 영화관으로 감
"팝콘 사올게 기다려"
"오빠 팝콘 안 먹잖아"
"너 먹잖아"
"나도 안 먹을래"
"왠일로"
예매한 자리에 앉아서 영화를 보는데
그날따라 영화가 너무 슬픈거임
보다가 눈물이 주르륵 흐름
(귓속말)
"너 우냐?"
"슬프니까"
"25년 동안 처음 보는데 너 영화보면서 우는거"
"보던거나 봐"
-
조금 일찍 출근을 했는데
차장님이 자켓을 벗으시며 인사를 하심
괜히 심술나서 모니터만 보고 짧게 네, 하고 대답함
생각해보니 차장님께서도 어이가 없으셨을 듯 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에 오신 대리님들께는 다정하고 친절하게 좋은아침이에요~~ 함
사실 체해서 좋은 아침은 아니었지만
대리님들께서는 점심시간 되자마자 사라지셨고
평소에도 줄곧 차장님과 점심을 같이 해왔는데
어제 저녁도 얹힌게 아직 안 내려가서 그래 오늘은 굶자 이런 마음가짐으로 자리에 안자있었음
"점심 먹으러 갈까요"
"아니요"
"식사 거르면 안좋은데"
"몸이 좀 안 좋아서요"
"어디가요?"
"그냥요"
그냥 체했다고 하면 될 것을 괜히꼬여서 툴툴거림
그랬더니 쿨하게 자켓 챙겨서 나가심
자리에 엎드려서 뻘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눈 앞에 쇼핑백 턱. 하고 나타남
쇼핑백만 내려놓고 차장님은 다시 나가심
열어보니까 죽이랑 온갖 종류의 약이 다 들어있었음
그걸 보며 내가 잘 못 했구나, 라는 걸 절실히 느낌
솔직히 차장님이 잘 못한 건 없는데 왜 혼자 삐져서 그랬는지
약 챙겨먹고 기다리는데 한참 지나도 안 들어오시길래 혹시나 해서 옥상에 가 봄
역시나 담배 태우고 계셨음
"죄송해요"
화들짝 놀라더니 급하게 담배를 끄심
기다려요 내려가서 양치좀' 이라는 손짓을 하시길래
얌전히 기다렸음
"뭐가"
바로 옆에서 차장님 목소리가 들림
"그냥 오늘 전부 다요"
"이사원이? 언제"
"제가 아침부터 기분나쁘게 굴었잖아요"
"내가 그렇게 속 좁아 보여요?"
혼자 웃으시면서 내 머리를 톡톡 쓰다듬으셨음
가만히 서서 절래절래만 했음
"아직 어려서 그런가"
"그래서 약은 챙겨먹었어요"
끄덕끄덕
"얼굴보고 대답을 해야지"
"네"
"내가 뭐 잘못 했어요"
"아니요"
"나한테 물어볼게 있는건가?"
"아니요 신경 안 쓰셔도 되는데"
있지 그럼... 많지 그럼....
"나는 있는데요"
"네?"
"어제 식당"
"네??"
"그 사람이 누구냐, 그런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