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yLove
; 사랑에 빠진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03
: 스트라이크? I LIKE!
그가 전 날 밤처럼, 다시 한 번 나를 끌어 안았다. 열이 나지는 않는 것 같은데... 나는 밤 사이 더운 기운으로 고생을 한 그를 쉽게 밀쳐 내지 못했다. 혹시라도 여전히 아파서 정신없이 한 행동일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그의 몸값은 얼마를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다. 덕분에 내 손은 그의 허리를 끌어 안지도 못하고, 이번에도 어정쩡하게 공중에서 제 위치를 찾지 못했다. 그러자 잠시 뒤, 그가 내 품에서 멀어지며 말했다.
"이럴 땐 밀어버리는 거예요. 멀리."
"아, 아니! 그 쪽 아팠어가지고 또 그런가 싶어서..."
"사실 나 좋아하죠."
"아니거든요."
"볼에 침자국 났는데."
그는 이럴 때는 자신을 밀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되려 의문을 제기했다. 아니. 멋대로 안기고 멋대로 멀어지면서, 무슨. 나는 그의 영양가 없는 말에 대충 대답하며, 새삼 잘생긴 그의 얼굴을 살폈다. 와. 아침인데도 얼굴이 어떻게 저러냐. 진짜. 그는 내 속마음을 읽은 건지, 내 옆을 지나가며 내 오른 볼을 제 검지 손가락으로 툭툭 치고는 말했다. 볼에 침자국 났는데. 하고. 나는 그의 말에 황급히 두 손에 얼굴을 묻고는 등을 돌렸다. 세수라도 할 걸 하는 후회가 뒤늦게 밀려왔다. 동시에 결코 열리지 않을 것 같던, 현관문이 열렸다. 오다가다 본 적 있는 그의 매니저였다. 곰돌이 같이 생긴 인상이 꽤나 푸근하신 분이었다. 가만 보니 곰젤리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저, 기자들 다 제작 발표회 가셨는ㄷ,"
"그럼 이만. 안녕히 계세요!"
매니저 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와 매니저를 향해, 대충 인사를 마치고 서둘러 방을 빠져나왔다. 나도 가야 되는데, 발표회!
**
공식석상에 선 김태형씨를 보자, 새삼 낯선 감정이 들었다. 높은 단상 위와 끊임없는 플래쉬 세례가 당연한 사람인데. 고작 하루 밤 사이 편하고 약한 모습 좀 봤다고, 옆집 사는 사람 같고... 어쨌든 막, 그랬다. 뭔가 그 사이의 괴리감도 들면서 지난 밤 같이 있던 사람이 맞나 의심도 들고.
그는 익숙하게 기자들의 질문을 받아내며, 이번 신작 'Love Die' 에 대해 이야기했다. 기자들부터 그를 비롯한 영화팀 모든 사람들이 단정한 차림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그의 방에 두고 온 셔츠 탓에 이곳에 올 때 입고 왔던 하늘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민선배 말로는 창피하니까, 질문 하지 말고 사진이나 찍으라는데. 평소 같았으면 바락바락 대들었겠지만, 오늘은 그 말에 백 번이고 수긍했다. 심지어 카메라까지 그의 호텔방에 두고 와서, 민선배의 신상 카메라까지 빌렸다. 밥 세 번하고 맞바꿔서. 나는 최대한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 카메라 앵글 뒤로 숨어 그를 담아냈다.
"마지막 질문을 하게 된, 빅히트 연예부 기자 민윤기입니다."
"알아요. 우리 꽤 오래 봤잖아요."
"그렇죠. 뭐. 이번 영화도 흥행 성공 하시고, 좋은 기사 쓸 수 있게 해주세요."
"네. 아. 저번 기사 잘 봤어요. 얼굴천재 김태형, 얼굴 뒤에 가려진 진짜 연기실력. 이거요. 제 입으로 말하고 나니까 민망하기는 하네요."
"봐주셨다니 영광이네요."
"저야 말로."
발표회가 끝나가서인지, 제법 자유롭게 질문을 주고 받는 분위기였다. 그의 재치 있는 답변들에 기자들과 배우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는 워낙 능글 맞으면서도 젠틀한 성격이었기에 어디에서도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다. 가만 보면 참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밝히는 것 같았다. 하는 작품마다 후배들이고 동료 배우들이고 배려하고 또 배려해서, 최고의 캐릭터를 만들어 준다는 소문이 자자하니까. 저 얼굴에 저 연기력에 스타병 없기도 쉽지 않은데.
"제가 매번 마지막에 드리는 질문 중 하나인데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게, 특별히 있으신가요."
민선배 특유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질문이었다. 모든 스타들을 만나 인터뷰 할 때, 마지막을 장식하는 질문. 이번 일을 통해 얻고 싶은 게 무엇이냐. 어찌 보면 지나치게 기본적이면서도 또 한 번도 깊이 고민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그의 답을 기다렸다. 그 순간 민선배와 눈을 맞추며 대화를 하던 그가 잠시동안 정적을 만들어 내고는 내 앵글을 곧게 바라보며 답했다.
"신기해요. 그 질문. 저번 작품에서는 작품 관객이 천 만 넘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진짜 이루어졌거든요. 음. 작품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은 크게 없어요. 수상이나 그런 외부적인 것들에 욕심이 정말 많이 줄었거든요. 작품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낄 줄 알게 됐어요. 부끄럽게도 이제서야. 그래서 앞으로는 조금 더 용기 있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멋진 역할만 고수하지 않고, 제게 맞는 역이라면 조연도 얼마든지 하면서요."
그의 긴 대답이 이어지자, 기자들은 빠르게 타이핑을 치며 그의 말을 녹음했다. 민선배 역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낮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다 컸네. 김태형. 하면서. 나는 민선배가 끄적이는 수첩 위의 글자들을 의미없이 바라보다가, 다시 한 번 앵글에 그를 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여전히 나를 바라보는 그와 시선이 맞닿았다. 그는 내 앵글을 향해 어깨를 으쓱이며, 제 볼을 검지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보았다. 아침 사건을 다시 한 번 놀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그를 피해 앵글 뒤로 얼굴을 숨겼다. 창피해. 진짜.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내 앵글을 보며, 제 입을 벙긋였다.
'볼펜. 묻었어요.'
볼펜? 나는 그의 말에 왼 볼을 살짝 쓸며, 민선배를 쳤다. 나 여기 뭐 묻었어요? 하고 물으며. 그러자 선배는 무심하게 어. 하고 답하고는, 제 볼펜을 흔들어 보였다.
"아까 뭐 닿는 것 같더니. 네 볼이었네."
선배의 말에 서둘러 후드집업을 쓴 나는 대충 셔터를 몇 번 누르고는 자리를 떴다. 먼저 나가 있던가 해야지.
**
"기자님."
"..."
"탄소 기자님."
"..."
"나랑 어제 같이 호텔에서 ㅈ,"
"왜요! 뭐요! 뭐!"
"호텔에서 같이 잔 기자님이라는 호칭이 좋은 건가."
"미쳤어요. 진짜?"
"너무 긴데. 저 호칭은."
"...할 말이 뭔데요."
"영화 보러 오라고요."
"바빠요. 저."
"빚 진 거 값으려고 그럽니다. 오세요. 초대권 석진이 형한테 줬으니까."
"...다른 연예인들도 와요?"
"네. 강동원 선배도 오시는ㄷ,"
"늦지 않게 갈게요."
민선배가 나올 때까지 복도를 서성이다가, 발표회가 끝난 그를 발견했다. 그래서 서둘러 등을 돌렸는데. 그는 이미 나를 발견한 것인지, 내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아니. 알려준 적도 없는 이름을 언제 어떻게 또 알아냈지. 나는 후드티를 더욱 뒤집어 쓰며, 그의 말에 서둘러 숨을 곳을 찾았다. 하지만 불러도 대답없는 내게 말도 안 되는 호칭을 덧붙이는 그에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물론 김태형. 그의 앞으로. 그리고는 후드를 내리고는 버럭 대들었다. 뭐요! 하면서. 그러자 그는 꽤나 곤란하다는 듯, 이 호칭이 마음에 드냐고 묻는다. 나는 정말 그가 미친건가 싶어, 나름 진지하게 정말 미쳤냐고 물었는데. 그는 그런 내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영화를 보러 오라는 답을 내놓았다. 내가 무슨 사이라고 그의 시사회를 가나 싶어, 거절을 하려던 찰나. 그의 넓은 인맥이 떠올랐다. 얼마 전, 강동원씨 인터뷰에서 그의 이름이 거론된 걸 본 적이 있었는데...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연예인도 오냐고 물었다. 그리고 원하는 대답을 얻었고. 나는 그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늦지 않게 가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자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더니 내 쪽으로 한 걸음 걸어오며 물었다.
"탄소씨는 주로 볼에 뭘 묻히고 있나봐요."
"...네?"
"저번에는 침. 아까는 볼펜. 지금은 카메라 자국."
"...아. 아까 카메라 들고 있어서."
"얼마나 가까이 얼굴을 가져 갔으면, 자국이 아직도 있어요."
"곧 사라져요."
"다음에는 뭘 묻히고 있을지, 기대하고 있을게요."
"기대는 무슨."
그는 내 대답에 환하게 웃고는, 내 등 뒤의 후드를 내게 씌워주었다. 그리고는 매니저를 향해 긴다리를 휘적이며 사라지다가, 문득 등을 돌려 제 입을 벙긋였다.
'감기 조심해요. 탄소씨만 못 들은 것 같아서.'
...뭐야. 진짜.
**
영화는 생각보다 지나치게 슬펐다. 때문에 영화가 후반부로 향할 수록, 곳곳에서 더욱 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나 역시 제외는 아니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김팀장님은 그런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다, 이미 다 써버린 휴지를 가져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화는 이미 그가 죽은 뒤, 혼자 남은 여자 주인공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여자의 삶을 깊이 공감하며 보다가, 결국은 또 한 번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자 어느새 팀장님이 돌아온 건지, 옆자리가 작게 움직였다. 나는 스크린에 시선을 떼지 않으며, 팀장님에게 손을 뻗었다. 주세요. 휴지. 하고. 그러자 팀장님은 휴지 대신 내 쪽으로 가깝게 붙어오며 물었다. 여전히 어두운 영화관에서.
"...울어요?"
팀장님의 목소리가 아닌 탓에 화들짝 놀라며, 옆을 바라보자 우는 내가 재밌다는 듯 바라보는 김태형씨가 보였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주연배우들이 앉아 있어야 할 자리가 한 곳 빈 게 눈에 들어왔다.
"몰래 내려오느라 애 좀 썼어요."
"...왜 왔어요."
"울길래."
"...안 울었는데."
"아닌데, 울었는데? 딱 보니까."
"...사실, 그 쪽이 죽어가지고..."
"영화잖아요."
"그래도 남자주인공 캐릭터가... 완전 멋졌어요. 근데 죽어서... 그래서 그래요."
그와 나는 아직 진행되고 있는 영화에 서로 속닥이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는 영화에서 죽은 게 뭐 대수라도 되냐며, 나와 상반 되게 반응했다. 나는 지금 스크린 속에서 죽은 사람이 내 앞에 있으니, 여자 주인공 된 것 같아서 더 슬프고 그렇구만... 나는 그의 말에 대충 그의 캐릭터가 멋져서 그렇다고, 답하고는 다시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는 여전히 짖궃게 다가와 말을 붙였다.
"그래서 나 아플 때, 죽을까봐 그렇게 간호해줬나?"
"...그 얘기는 그만 할 ㄸ,"
"엄청 열심히 한 것 같던데. 완전 열과 성을 다해서."
"그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그래요? 서운하네."
"...그럼 그 쪽이야 말로 열과 성을 다해서 매번, 그렇게 아무 여자 막 안아요?"
"아무 여자를 안는 게 궁금한건가, 그 쪽한테만 그러는 게 궁금한 건가."
"...그런 거 아니거든요."
"기자가 뭐 이렇게 질문 속이 다 보여요."
"..."
"아무 여자한테 안 그래요. 그리고 아무 여자 아닌데 그 쪽."
"..."
"뭐지. 그 초롱초롱한 눈빛은."
"...그럼 뭔데요."
"나랑 같이 잔 여자."
"아. 진짜!"
나는 그의 말에 그의 팔뚝을 아프지 않게 내려쳤다. 그러자 그는 자신을 내려친 내 손을 한 손으로 잡고는 말했다.
"되게 생각나던데. 이거."
"..."
"아. 이것도."
그는 무언가 생각난 듯, 이것도 하며 내 볼에 다른 한 손을 가져댔다. 그리고는 내 볼에서 무언가를 떼고는 말했다.
"기대한 보람이 있네요."
"...뭐 있어요?"
"휴지 조각 붙어 있었어요."
"아."
"다음에는 뭐일지 또 기대해도 되나."
**
-
Q. 애인이 생긴다면, 부르고 싶은 애칭이 있나요?
A. 애인이 원하는 대로요.
-
욕심 나는 삶, 욕심 나는 사람 |
"신기해요. 그 질문. 저번 작품에서는 관객수가 천만이 넘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진짜 이루어졌거든요. 음 작품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은 크게 없어요. 수상이나 그런 외부적인 것들에 욕심이 정말 많이 줄었거든요. 작품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낄 줄 알게 됐어요. 부끄럽게도 이제서야. 그래서 앞으로는 조금 더 용기 있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멋진 역할만 고수하지 않고, 제게 맞는 역이라면 조연도 얼마든지 하면서요."
태형은 제 대답을 차분히 이어가며, 밤 사이 여자와 눈을 맞췄다. 여자는 자신의 볼에 묻은 파란색 볼펜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만히 태형의 대답을 듣고 있었다. 태형은 그런 여자의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낮게 볼펜이 묻었다고 속삭였다. 그러자 여자는 모자를 뒤집어 쓰고는, 서둘러 제작 발표회장을 나섰다. 태형은 그런 여자의 작은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다, 남은 대답을 이었다.
"물론 배우가 아닌 그냥 사람 김태형으로도 조금 더 삶을 용기 내고 욕심 내려고 합니다." "멋진 대답이네요." "감사합니다. 이제 제작 발표회를 마칠 시간이 됐는데, 오늘 자리 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
Behind |
"호빵 파네." "겨울이니까. 왜. 먹고 싶어?" "보고 싶다."
**
"왔네." "누구요? 태형씨가 초대하신 분들?" "네. 저기 왔네요. 안 올 줄 알았는데." "누구길래 그래요. 궁금하게!" "그러게요. 누구길래 이러나 몰라. 나한테."
**
[야. 니가 거기 앉으면 난 어디 앉아.] [내 옆자리 여배우 아미씨인데. 싫어?] [고맙다. 잘할게. 내가] |
안녕하세요. 겨울소녀입니다.
러블리러브 이번 화도 나눠주셔서 고마워요.
사실 이번 작품은 정말 대놓고 달달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전개나 감정선들이 조금 급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ㅜ_ㅜ
그리고 저 원래 이렇게 막 설레고 설레고 달달한 거 잘 못 써서...! 혹시라도 전개가 너무 급하다 싶으시면, 꼭 말씀해주세요 :)
여자 주인공의 감정선은 다음 화에서 보실 수 있을 거예요 -
사랑스러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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