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아저씨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은데
모르겠어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달리고 달려서 우리집 가까운 골목 까지 와버렸거든
낮인데 주택가라 그런지 사람도 없고 한산해서
맘 놓고 엉엉 울었다..ㅎ(요즘 왜 이렇게 울 일이 많은지 모르겠음)
속으로 아저씨 욕도 실컷 하고 그 여자 욕도 하고..
그러다가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울고.. 또 울고
집이 코 앞인데 안 들어가고 골목길에서 담에 기대어 쭈구려 앉아서 펑펑 울었다ㅋㅋㅋㅋㅋ
그렇게 한참 울고나서 더이상 눈물도 안 날 것 같다 싶을 때 조용히 고개 들었어..(다리 쥐나서 쥬글뻔)
근데..... 정말 황당스럽게도.....
민윤기가 ㅇㅁㅇ 이런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음
"야.. 너.. 김탄소.....?"
응.. 맞아.....
넘 쪽팔려서 차마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음
지나쳐서 집에 잽싸게 들어가려다 손목 잡힘 ㅠㅠ
"와 우노? 누구한테 차였나?"
뭐라카노
아 근데 맞는 말 같아서 슬퍼졌당ㅠㅠㅠㅠㅠㅠ퓨ㅍㅠㅠ
나 아저씨한테 차인 거쟈나......................
"몰라두 돼 너언....."
코가 완전 꽉 막혀서 앵앵 소리 나고 창피했음 ㅠㅠㅋㅋㅋㅋㅋ
얘는 우는 사람 첨 봤나 얼빠진 표정으로 내 손목 잡고 계속 그러고 서 있었음..
그 때 손에 있던 내 폰 진동이 막 울리고 나는 그 와중에 문자 확인하는데
[태형이 할머니 돌아가셨대.. XX장례식장.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현재 해외에 계셔서 일단 상조회사 보내놓는다고는 하셨는데..]
정유진 문자였음.
문자 저기까지만 읽었는데 눈 앞이 캄캄해지는거야..
그럼 태형이는.....?
태형이는...........
"뭘 보고 표정이 그렇게 안 좋아ㅈ......"
"나 여기 데려다줘. 빨리."
"뭐?"
"데려다줘!! 흐허엉ㅡ"
급한 마음에 뒤에 세워져있던 민윤기 바이크 가리키면서 막 울었어
민윤기는 휴대폰 받아들고 뭐..? 이거 설마 김태형이가? 하다가 내가 엉엉 우니까 사태파악 한건지
갑자기 손수건 꺼내서 내 얼굴 박박 문지르는 거야
그러더니 바이크에 걸려있던 헬멧 가져와서 무작정 뒤집어 씌움..
"빨리 타라."
그렇게 민윤기 바이크에 올라타게 됨.
민윤기는 엄청난 속도로 달렸어.
와 난 오토바이가 그정도 속도까지 낼 수 있는 줄 몰랐어..
무서워서 꽉 잡았다가 다시 손이 후들거려서 풀릴 때즈음 민윤기가 "무서우면 눈 꼭 감고. 꽉 잡아, 다친다."하는 말 듣고 다시 꽉 잡고.
그렇게 무슨 정신으로 장례식장 안까지 들어왔는지 모르겠어..
다시 정유진 문자 읽어서 맨 끝에 있는 성함 확인한 뒤 폰 끄고 들어가서 무작정 리스트 확인하는데 2층이더라
뒤돌아볼 것도 없이 성큼성큼 계단 올라갔어.
2층 도착했는데 정말 나랑 민윤기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사람이 없더라
장례식장에 원래 이렇게 사람이 없던가? 하면서 이쪽 저쪽 살펴보다가
검정색 정장 입은 사람들이 막 지나다니는 빈소가 딱 한 곳 뿐이길래 그쪽으로 다가갔음
"저기.. 영정사진 있는데는 어디에요?"
"아, 그 할머니 모시는 학생 친구들이구나. 저 쪽이에요. 잘 왔어요.
사실 그 학생이 아무 가족도 없어보이고.. 그래서 내심 마음에 걸렸거든요."
장례조무사로 보이는 한 남자가 가리키는 곳으로 들어가는데 왠지 모르게 다리가 떨렸어..
조심스럽게 어떤 방 안으로 들어서는데
"태형아.."
어울리지 않는 검정색 정장을 입은 김태형이
무릎에 얼굴을 묻고 그렇게 우두커니 영정사진 옆 벽에 기대어 쭈구려 앉아 있었어
그걸 딱 보는데 마음이 미어지는 거야..
"태형아.. 김태형.."
난 다가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계속 태형이만 지켜봤어
어쩐지 용기가 안나서.. 난 태형이 곁에 다가갈 자격도 없으니까..
"야, 태형아!"
민윤기가 크게 한 번 소리내니까 그제서야 김태형이 천천히 고개 드는데
눈 옆에 말라붙은 눈물자국 보니까 나도 눈물이 나는 거야
"어..? 어떻게 왔어..?"
태형이 갈라진 목소리 듣고 눈물 터지고
그렇게 태형이 앞에 가서 주저 앉아서 울었어
"너 이 바보야.. 왜 말 안 했어.. 흐윽.. 왜.. 그동안.."
"뭘..?"
"왜 내가 네 얘기를 다른 애한테서 들어야 해? 내가 너한테 얼마나 못 되게 굴었는데, 흐엉ㅡ"
"아.. 신경쓰지 마. 괜찮아. 나 이제 다 잊었어.."
"미안해.. 미안해 태형아.. 일찍 못 알아줘서 미안해, 정말로.."
눈물은 계속 뺨을 타고 흐르고 급기어 내가 얼굴 손으로 가리고 흐느끼니까
태형이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와서 꼭 안아줌
등 살짝 토닥여주고, 민윤기는 뒤에 와서 조용히 꽃 올렸어
시간 지나니까 눈물이 자연스레 멈추고
태형이 힘들까봐 품 안에서 조심히 떨어져나갔어
"뭐야 김탄소. 너네 그런 사이였어어? 내가 물어봤을 땐 태형이 모른다고 했잖아."
"그때는.. 내가 오해를 해서.."
"둘이 아는 사이야?"
"그래 임마. 니는 와 그동안 연락을 안하나 했더니만.."
"미안하다."
"됐다. 김탄소, 너 계속 여기 있을거가?"
"응."
"그래라. 솔직히 나도 친구로서 여기서 밤 새고 가는 게 맞긴 한데.. 내일 우리 누나 결혼식이라 도저히 빠질 수가 없다.
내일 다시 올게. 그 때 보자, 김태형. 힘내라."
"으응, 조심해서 가라."
민윤기가 방을 나가버리고
조용한 방 안에 태형이와 나, 둘만 남게 됨
품에 안겨서 눈물 콧물 다 쏟아냈는데 막상 둘만 있게 되니까 얼굴 쳐다보기도 부끄러운 거야.
"누가 말해줬어? 유진이?"
"으응.."
"하.. 내가 그렇게 말하지 말랬는데도."
"뭘 말하지 말라 그래. 그럼 넌 내가 평생 너 미워하며 살아도 된다는 말이야?"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나한테 다 털어놓지 그랬어.. 내가 너 돈 보고 사귀는 줄 알아? 아니야, 나는 그냥.."
내가 태형이랑 왜 사귀게 되었더라..
다정해서.
잘 웃어줘서.
만화책을 좋아해서.
사람을 잘 웃게 만들어서.
요리를 잘 해서.
.....아저씨랑 비슷해서.
"이제라도 알았으니까 됐지."
"미안해.."
"사과하지 마. 네 잘못이 아니잖아."
"못되게 굴어서 미안해. 너 이제 나한테 완전 정 떨어졌지.. 나 나쁜 년이란 거 알아서.."
"네가 왜 나빠. 내가 나쁜 놈이지."
"사람이 왜 그렇게 멍청해? 자꾸 나만 나쁜 사람 만들래?"
"내가 너한테 나쁜 사람이 될 순 없잖아.. 네가 날 떠나면 나한텐 이제 정말로 아무것도 안 남으니까."
이렇게 마음이 여린 애를 그땐 어떻게 대했는지
이젠 생각조차 하기 싫은 과거 생각들을 다 밀어놓고
그렇게 죄책감 하나로 똘똘 뭉친 내 마음이 저절로 태형이에게 손을 뻗었어
행여나 내 손길이 이 애를 아프게 할까봐
머리부터 쓰다듬어주고 그 다음 어깨.. 무릎..
태형이는 가만히 날 쳐다보다가 희미하게 미소 지음
"그럼 이제 다시 나 좋아해 주는 거야?"
"응.."
"다행이다...... 할머니가 이제 안 계신다고 생각하니까 나 너무 무서웠어. 그래서 울었어.
이젠 날 사랑해줄 사람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 무서워서.
내가 왜 태어났지, 생각하다가 나는 먼지만도 못한 존재구나 싶어서 서럽고.."
태형이 눈가에 눈물이 차오르는 게 보이니까
옆으로 다가가서 눈물 쓸어 닦아줬어
언젠가 한 번 태형이가 아기사자 같다고 느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한 번 느낌
얘는 정말 겉으론 강해보이지만 사실 속은 항상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하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아이 같은 존재라는 걸.
그렇게 태형이와 얘기하다가, 할머니 얘기가 나오니까 우는 태형이를 달래주고,
몇 시간동안 그렇게 방 안에서 둘만 도란도란 얘기하고.
태형이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두 분 다 돌아가셔서 그 뒤로 쭉 몸이 편찮으신 할머니 아래서 자랐대.
이건 정유진 말고 다른 친구들한테는 절대 비밀로 꽁꽁 숨겨온 거라고.
정유진한테도 말 못하게 한 이유가 걔가 피해받는 게 있을까봐 그랬대.
시간이 어느덧 흘러서 밤 10시가 된 거야.
헐 나 야자 끝날 시각인데!! 조금만 늦어도 걱정하실 아빠 때문에 얼른 전화드려서
친구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XX장례식당에 와 있는데 하룻밤만 자고 가면 안 되냐고 말씀드림
아빠는 조금 걱정하시는 말투로 허락하시고
그렇게 태형이랑 객실에서 이부자리 깔고 누웠어
"나 진짜 웃긴 애 같아..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네 연락 다 씹고 네 욕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이렇게 확 돌아서서 너랑 마주보고 누워있고. 사람 맘이라는 게, 진짜 무서워."
"아직도 내가 미워? 죽이고 싶고 그래?"
"......미안."
"그럼 다행이다. 이제 문자 답장 해줄거야..?"
그걸 묻는 태형이 말투가 오갈 데 없어진 어린아이 같아서 나는 힘껏 고개를 끄덕여줬고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는지 태형이가 내 얼굴을 품에 살짝 안고서 그렇게 서로 심장박동 소리 듣다가
ㄴㅏ더 몰라 언제 잠들었는지.....
일어나보니 저 쪽에서 꽃 가지런하게 정돈하는 태형이가 보였음
나는 입고 자느라 다 꾸겨진 교복 막 피면서 일어나다가 태형이랑 눈 마주쳐서 배시시 웃었어
태형이가 날 보고 웃어주긴 하는데 얼굴에 여전히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서 마음 한 켠이 먹먹했음
만약 하루 아침에 혹시나 우리 아빠가 내 곁에서 영영 사라진다면..?
아마 그 마음의 공백은 아저씨로도 다 채워지지 않을것 같음
태형이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 내가 지금 와서 태형이를 다시 좋아해주고 또 곁에 있어준다 하더라도
결국 태형이와 24시간 내내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태형이는 끊임없이 외롭고 슬프겠지
나는 가만히 태형이 지켜보다가 화장실 가서 세수 먼저 하고
주방 같은데 가서 국이랑 밥, 반찬 이것저것 담아서 밥상 차려옴
태형이가 계속 영정사진 쳐다보면서 밥 먹을 생각을 안하길래 내가 국에 말아서 직접 떠먹여줬어
나중엔 자기가 알아서 잘 먹음 나도 앞에서 잘 먹음
그러고나서 폰을 켰는데
부재중 4통, 전부 다 아저씨 꺼. 문자 메세지 5통
정유진 [태형이 만났어?] 3:42
♥우리 아저씨♥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싶은데 연락 줬음 좋겠다..] 3:44
♥우리 아저씨♥ [네가 생각하는 장난 같은 거 아니야. 진심으로 너에게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4:15
♥우리 아저씨♥ [연락 안 되네.. 또 울고 있어?] 4:29
♥우리 아저씨♥ [울지 마. 미안해. 문자 보면 꼭 전화 줘.] 4:51
태형이에겐 집에 들러서 옷가지 등을 챙겨온다고 말하고 꼭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까지 하고
(사실 태형이는 그냥 가도 된다고 했는데 내가 꼭!꼭! 돌아올거라고 손도장까지 찍음)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탐
그리고 아저씨한테 전화를 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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