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기, 크리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거 같아요."
"뭐가?"
주유소가 마치 제 본가의 앞마당 수영장이라도 되는 양 도끼라는 형님께서 사온 테이크아웃 레모네이드를 친히 스트로우에 머금으며 느릿하게 되묻는 크리스를,
...정말 진심으로 한대 패고 싶어졌다.
척 보기에도 -나 존나 비쌈- 이라고 씌여진 수트를 입은 채 열심히 땀흘리며 주유를 하고 있는 도끼형님을 구경하며 편히 누워있는 작업복 차림의 알바라니. (사실은 가시방석이었다. 도끼형님은 나나 크리스보다 못해도 열 살은 많아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옆에서 가끔씩 도끼야 딴건 안사왔어? 라고 건방지게 묻는 크리스는 정말 내새끼였으면 뒈지게 팼을 거다.
"크리스, 혹시 집이...."
"응? 왜?"
"사채업에 종사하고 계신다거나......"
"에이, 무슨 그런 섭한 말을! 그런 부류의 유사 금융업에 살짝 몸담고 있긴 하지만 우린 걔네랑 달라."
그러니까 그게 사채업자잖아!!!! 번듯한 대기업의 후계자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은 깔끔하게 빗나가버렸다. 어쩌면 이게 더 정확할지도 몰라, 대체 어떤 대기업에서 애새끼를 이따위로 키워. 역시 사람은 환경이 중요해. 얼빠진 표정으로 크리스를 쳐다보고 있는데, 연속으로 14대 주유를 마치고 잠시 한숨 돌린 도끼형님이 맑게 웃으며 이쪽으로 걸어와 크리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도련님, 지루하실텐데 친구분이랑 편히 놀다 오세요. 열한 시까지 하면 되죠?"
저기요, 저 쟤랑 친구 아닌데요. 라고 말하려는 순간 크리스가 아이스 레모네이드를 들고 있던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아 씨발 차가워!!!! 손을 떼려해도 어찌나 악력이 센지 꼼짝도 안 한다. 크리스는 도끼형님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그럼 수고, 라는 말과 함께 옆에 있던 바이크 키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내 손목을 홱 낚아채 잡아끌었다. 아, 왜이래요!!!! 두 손으로 잡아당겨봐도 크리스는 이미 내가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종족이 아니었다. 나를 바이크에 억지로 태우고, 헬멧을 씌우고, 자기도 올라타 시동을 거는 데 10초도 안 걸렸다. 당황한 내가 도끼형님께 SOS를 쳐봐도 형님은 그저 우리를 인자한 미소로 쳐다볼 뿐이었다. 이런 옘병할!!!!!!!!!
"꽉 잡아, 도로 위에서 생 마감하기 싫으면."
...출발하기 직전엔 명대사를 날려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니 그러니까 어디 가는데에에에에에에엑!!!!!!!!!!! 급출발하는 바람에 목 꺾일뻔했다. 온갖 쌍시옷을 내뱉어봐도 크리스는 들은 척도 안한다. 진짜 미치겠다고!!!!!!!!
"으아아아아아아악!!!!!!!!!"
"백현, 신나지? 역시 스트레스엔 바이크가 최고야!!!!!!"
"멈추라고오오오오오오!!!!!!!!!"
"뭐? 더 밟으라고?"
세우라고 미친새끼야!!!!!!!!! 머리털을 쥐어뜯으려고 크리스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봤지만 잡히는 건 정교하면서도 묵직한 고급 바이크용 헬멧뿐. 크리스의 바이크는..... 마치.... 내가 지은 죄가 많아 저승사자가 나를 데려가는 용도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근데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일찍 만들어졌다. 나 아직 못 죽어... 방 2칸짜리 집에도 살아봐야 되고 백화점가서 여기부터 여기까지 다 주세요 도 해봐야되고 찬열이 축구장이랑 전용기도 사줘야 된단 말이야.....
난 정말.....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나보다. 아니 덤으로 부모도 얹어줬나보다.....
"...헉....허억......."
"와, 존니 빨리 도착했어. 백현, 주유소에서 백화점까지 10분밖에 안 걸린다?"
목숨을 내놓은 대가로 30분 단축을 한다면 난 그냥 달팽이랑 사이좋게 손잡고 걸어갈래, 씹색끼야. 먹은 것도 없는데 올라올 것 같아서 길거리에 그냥 주저앉았더니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빛의 속도로 나한테 달려온다. 백현 왜그래? 어디 아파? 내가 지금 안 아프게 생겼냐고 똘추야, 흔들지 말고 나 좀 가만히 냅둬봐 제발....
"에이, 보기보다 연약하네. 뭐 마실래?"
"괜찮아요."
"니 돈 안들거든요."
크리스는 어디론가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아이스티를 사왔다. 와, 다리가 기니까 보폭도 존나 크구나. 크리스가 내민 아이스티를 입에 머금으며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는데, 그러고보니까 여기가 어디라고?
"...백화점?"
"응, 아 동생새끼가 옷 사달래잖아."
"...."
일어날 수 있어? 좀 앉았다 갈래? 자기도 미안하긴 했던 모양인지 허리를 숙여 내 머리에 손을 올려놓고 물어본다. 양심은 있네, 다행히도. 근데 저새낀 무슨 고딩이 옷 사달라는 말에 당연하다는 듯이 백화점으로 와, 난 옷을 어디서 사더라? 기억도 안 난다. 그나저나 크리스 동생이면 어떤 인간일까? 당연히 외형은 뭐 조각상일 거고, 크리스만큼 멍청할까?
"오, 에어컨 졸라 빵빵하다."
"그러네요. 근데 크리스 동생이면 돈 많을 텐데 왜 굳이 옷 사달라 그래요?"
"아, 걔 아버지가 카드 잘랐어. 얼마전에 차 뽑았다가 호적 파일 뻔했지, 낄낄."
"...대체 왜 필요해서요....?"
"몰라, 좋아하는 사람한테 선물한다나."
.....누군진 몰라도 하는 짓 보면 크리스 동생이다. 저새끼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는다.
크리스는 주위를 성의없이 몇 번 둘러보더니 동생이 평소 좋아하던 브랜드라며 한 매장에 들어갔다. 여기 딱 봐도 엄청 비싸보이는데? 옷 한 벌이 나 한달 생활비거나 그런 거 아니야?
"여기서 제일 비싼 게 뭐예요?"
"고객님, 가격이 비싸다고 해서 모든 제품이 좋은 건 아니구요 꼼꼼히 따져보신 다음에....."
"그럼 제일 잘 팔리는건요?"
...야이 미친새끼야, 넌 사람 말을 겨드랑이로 듣냐. 척 보기에도 우리보다 서너 살밖에 안 많아보이는 새파랗게 어린 직원이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로 크리스를 올려다봤다. 연약한 여인이 상대하기에 저새끼는 너무나 벅찬 걸 안다. 가엾은 사람, 하지만 내겐 저인간을 저지할 힘이 없는걸요. 미안해요.
구석탱이에 짜져있던 내가 슬그머니 물었다. 동생이 어떻게 생겼는데요?
"키는 나보다 약간 작고, 엄청 말랐어. 그리고 얼굴은 좀 까맣고."
"음...글쎄요, 솔직히 크리스 동생이면 뭘 입어도 마네킹같긴 하겠는데."
"아니지, 난 얼굴이 받쳐주는거고. 걘 그냥 멀대같이 크기만 해."
에라이 썅, 너 잘났다. 우리 둘의 대화를 듣고있던 어린 점원이 조심스럽게 깅엄체크 패턴이 들어간 셔츠를 권했다. 오, 저 직원 뭘 좀 아는구만. 돈이 없는건지 시간이 없는건지 옷에는 관심이 잘 없는 나도 수긍할 수 있을 만큼 괜찮아보였다. 크리스, 어때요? 크리스의 의견을 묻고자 고개를 들었을 때 저새낀 이미 얼굴 가득 귀찮음을 내보이며 그걸로 주세요, 라고 말한 뒤였다.
저새낀 저 많은 돈을 악용할 수 있는 머리를 안 갖고 태어나서 다행이다.
"좀 성의있게 골라봐요,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하려고."
"형이 사준건데 넝마라도 입어야지. 안 입으면 뒈지게 팰 거야, 나."
잊고 있었다. 저양반의 가정 환경을. 저렇게 포악한 형을 두다니, 크리스의 동생이 순간 진심으로 불쌍해졌다. 아마 박찬수한테 맞고 큰 나보다 배는 맞았을 것이다.
"바지는 안 사요?"
"귀찮아, 벗고 다니라 그래. 걘 다리가 그래도 봐줄만 해서 벗고 돌아다니면 여자들 코피 여럿 쏟겠는데."
"...."
"백현, 옷 사줄까? 남는 게 돈이랑 시간인데."
"아니요, 사양하겠습니다."
하다못해 옷을 걸어둔 저 옷걸이 하나까지도 귀티가 좔좔 흐르는 이곳에서 제가 뭘 사겠습니까, 저 숨막히니까 이만 나가죠? 무언의 압박을 주며 슬그머니 입구로 크리스를 잡아끌었다. 그래도 뭐 하나는 사주고 싶은데, 여기까지 왔잖아.
"백현, 내가 이러는 거 부담스러워?"
"...."
"난 니가 정말로 좋아서 그래, 다른 건 없어."
...그래서 그래요, 크리스가 나 좋아하는 게 뻔히 보이니까. 내 선입견일 지 몰라도, 크리스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말,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그런 거 아니예요."
"...."
"에어컨 바람 너무 오래 쐬서...아, 추워서! 추워서 그래요, 밖으로 나가면 안되요?"
최대한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더니 안 어울리게 시무룩해있던 크리스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이 인간도 은근히 박찬열과다. 다루기는 쉬운데 뭔가 같이 있으면 유치원 선생이 된 기분이라고 해야 되나. 밖으로 나가서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바이크 옆에 섰다. 주인 닮아서 그런지 쌔끈하게 잘 빠졌다. 박찬수가 타면 그냥 짱깨 알반데 크리스가 타면 무슨 외국 잡지 모델같다. 이게 모완얼이라 이거지, 박찬수도 솔직히 말하면 어디가서 인물은 안 빠지는데. 지 형 닮아서 그래.
오늘 왠지 카드 긁는거에 꽂힌 것 같은데, 같이 있어봐야 계속 뭘 사줄 것만 같다. 어차피 도끼형님이 일은 다 해놓으실 것 같고(이것도 존나 진지하게 미안했다.)적당히 핑계 대서 집으로 가야겠다.
"알바도 안 하는데, 그냥 더 놀다 가지."
"전 집에서도 일해요, 부업이라고. 지금 이 시간에도 명찰을 몇 개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진짜 시간 없어서 그러는거라니까."
"다음엔 절대 이렇게 안 보내준다? 가자, 데려다줄게."
"...저거 또 타라고요?!! 싫어요!!!!!!"
"미안해서 그런 거라면 괜찮ㅇ....."
"절대 아닙니다."
정색을 하고 쳐다보는 내 눈빛에서 진심을 느꼈는지 크리스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바이크 뻔히 있는데 택시 태워서는 절대 못 보내겠으니 얌전히 운전하겠다고. 어머, 난 버스타고 가려고 했는데. 나 택시 언제 타봤는지 기억도 안 나는 사람이야..... 결국 난 속력을 거의 절반 가까이 줄인다는 약속을 듣고서야 바이크에 올라탔다.
"다음부터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좋겠어요."
"뭐, 모범택시?"
모범택시가 대중교통이래요, 저새끼는.....
*
집, 학교, 알바, 집, 알바, 학교의 연속이라. 이 무슨 끔찍하고도 잔인한 현실이란 말인가. 오호, 통재라. 나의 십대는 알바와 부업으로 찌들어진 완벽한 가난뱅이의 일상이었다. 이만큼 뼈빠지게 벌었으면 이제 좀 이 집을 벗어날 때도 되었는데 이 집과 나의 악연은 10년이 넘도록 끊어지질 않고 있다 이거다. 참 징하다, 징해. 박찬열도 징하다. 내 빈정거림과 막말을 수년간 참고 들어온 찬열이도 아마 죽은 후 몸에서 사리가 나올지도 모른다.
당연하지, 하루종일 자도 모자랄 주말 오후를 PC방 알바하는 친구한테 투자하는 걸 보니.
"어젠 웬일로 그렇게 일찍 들어갔어?"
"어?! 아, 그러니까...어제 사모님이 오셔서 그냥 두 분이서 하신다고 일찍 들어가라 그러시더라. 하하하."
이상하게 찬열이한텐 크리스 얘기를 못하겠다. 하긴 이상할 것도 없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찬열이는 크리스를 엄청 싫어하는 것 같아보였으니까. 카운터에 앉아 영화나 볼까 하고 컴퓨터를 켜는데, 박찬열이 옆에 있던 막대걸레를 집어든다. 저새끼가 또,
"동작 그만."
"심심해서 그러는데."
"그럼 가서 게임을 해. 금연석 텅텅 비었어."
"저게 금연석이냐, 칸막이 하나 없는데. 공기층으로 나눔? 넌 하필이면 담배냄새 풀풀 풍기는 데서 알바하고 싶어?"
"새끼 깔끔떨긴."
왜, 마스크라도 주리? 심심하면 좀 나가세요, 이거 다 내가 해야되는 일이잖아. 사장님 보시면 클남.
내 말에도 찬열인 아랑곳하지 않고 과자박스를 들어 창고로 옮긴다. 아, 진짜...솔직히 친구가 일 몇번 도와준다고 하늘이 두쪽 나는 건 아니다만, 저게 어디 한두번이어야 말이지. 차라리 창고정리라도 하면 눈에 안 보이니까 잘됐다. 영화를 다운받던 창을 꺼놓고 기지개를 켰다. 아, 목 뻐근해.
"아!!!!!!! 씨발!!!!!!!!!!"
흡연석 쪽에서 걸걸한 남자의 욕설이 들려왔고, 난 무슨 일인가 싶어 기지개를 켜던 팔을 내리고 그쪽을 쳐다보았다. 곧 도끼형님의 미니어처 사이즈 쯤 되는 키만 작고 우람한 남자 하나가 내게로 씩씩거리며 걸어왔다. 양 옆에는 도라에몽의 비실이와 퉁퉁이를 하나씩 달고. 무적의 삼총사냐? 비웃음을 꾹 참고 올려다보았다.
"야, 알바!! 니가 내 컴퓨터 껐냐?"
"네?"
"시간 다됐다고 그렇게 끄는 게 어딨어!!! 너 롤 몰라?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좆되는 거. 너 알아 몰라?!!! 어떡할 거냐고, 나 계금먹으면 책임질거야??!!!!!!"
아니 그게 왜 내 잘못이냐고....굳이 알바가 신경써서 친절히 꺼주지 않아도 후불이 아닌 이상 시간이 되면 알아서 컴퓨터가 꺼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롤 할 거면 후불로 달든가, 인간아....하지만 이렇게 말했다간 딱 봐도 박찬수보다 열 배는 포악해보이는 저 성질머리에 바로 사장님 호출이라 어쩔 수가 없다. 원래 서비스업은 설설 기어야 하는 게 맞으니까.
"손님, 그건 제가 끈 게 아니라...."
"니가 안 껐으면 내가 껐냐?!!! 어떡할거야!!!!!!!"
"시간 다되면 저절로 꺼지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컴퓨터가 인공지능이야?!!"
"....아, 그러니까 롤 하시려면 후불로 하셨어야죠! 시간 보니까 접속은 10분 전에 하셨네, 뭐 노래방처럼 서비스 주는 줄 알았어요?!!!!!"
....좆됐다.
빌어먹을 성격. 한번 생각한 건 말하고야 마는 더러운 성질머리. 역시 난 서비스업 체질이 아니야, 주유나 해야지. 아맞다 그것도 서비스업이구나........
"뭐...뭐?! 이새끼가 진짜!!! 너 몇살이야? 어디 눈 똑바로 뜨고 따박따박 말대답이야?!!!!"
"...."
"너 따라나와, 넌 오늘 뒤졌어."
"근무시간엔 자리 못 비우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짝 하는 타격음과 함께 내 고개가 돌아갔다. 딱 2초 후부터는 얼얼한 통증이 뺨에서부터 전해져왔다. 저새끼가 내 뺨을 때린 것이다.
진짜 인정하긴 싫지만 워낙 어릴 적부터 곱상하게 생겨먹은 탓에 들끓었던 시비거는 놈들도 주먹 몇 번 꽂아넣고 두어 번 밟아주면 끝나는 일이라 팔, 다리, 허리, 뒷목이나 머리통까지 맞아봤어도 뺨은 맞은 적 없었다. 드라마에서 왜 뺨을 때리는지 알 것 같았다. 정말, 사람 기분을 존니 더럽게 만드는구나.
"왜, 꼽냐? 억울하면 때려봐, PC방 알바 손님 폭행이라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려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
"...."
"가만 보니까 얘 존나 기집애처럼 생겼지 않냐? 얼굴도 허옇고 입술도 조막만한 게,"
참는다. 참아야 한다. 상대는 무뇌인간이다. 때려봤자 나만 똑같은 놈인거다.
"자지 잘 빨게 생겨ㅆ....."
퍼억-
이게 무슨 소리냐면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줄기차게 다녔던 태권도 학원에서 배운 날라차기로 저 쓰레기의 면상에 내 발을 꽂아넣은 소리다. 물론 카운터 안에서 그랬다면 난 그냥 국가대표 나갔어야 했지만, 테이블을 짚고 올라 뛰어내리면서 했다. 아, 그게 더 엄청난 짓인가.
"반휘혈!!!!!!"
....왓? 지금 저 도끼 미니어처 이름이.........
.....존나 코미디다.
"끄으으...씨발, 저게 뭐야!!!!!!"
"휘혈아, 너 코피......."
존나 낯간지럽게도 어울리지 않는 무슨 4대천왕 리더같은 이름을 계속 불러대며 뒤로 넘어져 뇌진탕 될뻔한 미니 도끼를 일으켜세우던 똘마니 1이 말했다. 반휘혈은 잽싸게 제 코에서 흐르는 뜨뜻한 액체를 손으로 닦아냈다. 아, 힘조절 잘못했나보다. 코뼈 부러진 거면 어떡하지, 난 합의금 줄 돈 없는데.
"....저....저 씨발년이!!!!!!!"
반휘혈이 괴성을 질러대며 내게 달려들었다. 이제부턴 눈 딱 감고 전치 6주만 뽑는거다. 항상 내 싸움은 먼지나게 처맞는 것으로 끝났다. 선빵을 누가 때렸든 많이 다친 놈이 승리자니까. 난 그 수많은 싸움을 거쳐왔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이기면 명예보다 드높은 합의금이 나를 반기니까. 그래서 난 학교짱 타이틀보다는 그냥 독한놈으로 불리고 있었다. 제 몸 바쳐 합의금 뜯어내는 버러지같은 놈. 그게 나다.
코피흘린 얼굴을 들이밀며 나를 무자비하게 밟고 있는 반휘혈과 그의 똘마니 원투는 그야말로 호러 그 자체였다. 온몸을 밟히고 있는데 이젠 지겹도록 맞아서 그런지 아프지도 않다.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계속 흘러나오는데도.
(찰칵-여기보세요-)
익숙한 셔터 소리가 들리자마자 셋은 나를 밟는 것을 멈췄다. 눈동자만 굴려 위를 쳐다보니 존니 무섭게 굳은 얼굴로 핸드폰을 들이밀고 있는 찬열이가 서있었다. 잊고 있었다. 아, 망할. 찬열이는 내가 맞고 들어오는 걸 제일 싫어했다. 합의금같은 거 신경쓰지 말고 꼴리면 패라고 그렇게 말해도 안 듣는다고. 어쩔 수 없어, 난 부모님이라는 변호사조차 없잖아.
"넌 또 뭐야?!!!"
"...인상착의, 때리는 동영상, 목소리."
"...."
"거기 비실이, 넌 여기 정액회원이지? 신상 다 캐낼 수 있으니까 내뺄 생각 하지 말고."
"...야...."
"3일 안에 청구서 보낼 테니까, 그거나 기다리고 있어."
변백현, 일어나. 찬열인 먼지 때문에 허옇게 일어난 내 후드를 손으로 탁탁 털고는 날 일으켰다. 찬열이한테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연기했지만 얼빠진 표정의 셋을 홱 돌아보고 난 크리스에게 배운 존나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한탕 뜯겨줘서.
그나저나 찬열이 많이 화난 것 같은데 어쩌지, 이번 알바도 그만두게 생겼네.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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