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맞다, 변백현 너 뭐 만드는 거 잘하지 않냐?"
"...목적어를 빼먹고 말하면 어쩌라는 거야, 내가 뭘 잘 만들어?"
급식판에 고개를 처박고 밥을 우적우적 씹고 있던 내 얼굴이 처음으로 정면을 향하게 만든 건 내 앞에 앉아 후식으로 나온 요플레와 밥을 합체시키고 있던 김종대였다. 빨리 먹고 축구하러 가야된다며 반 친구들 다 버리고 우리반 줄에 꼽사리꼈을 정도로 파렴치한 놈이지만, 그런 건 생략하기로 했다.
"그 뭐냐, 십자수나 퀼트 이런 거. 불알 단 몸으로. 너 그걸로 예전에 부업도 했지 않았음?"
"여자친구한테 선물한다고 한달 내내 뜨개질한 병신호구는 쌉쳐."
"아 그건...! 진짜 돈이 없어서 그런거고! 누군 남자체면에 그런 거 해주고 싶었겠냐."
"왜이래, 21세기 글로벌 리더의 성공조건으로는 양성평등 사상을 생활화하라는 것도 있어."
"나 모르게 글로벌 리더라는 단어의 뜻이 많이 바꼈나보다, 요새는 알바소년을 영어로 그렇게 부르니?"
종대야, 혹시 숟가락으로 맞아본 경험 있어? 다정한 미소와 함께 식판을 부러트릴 기세로 잡아비트는 내 손을 봤는지 김종대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릴렉스하란다. 염병, 릴렉스는 무슨. 아니 근데 저건 급식비가 아깝지도 않나 멀쩡한 반찬 놔두고 왜 딸기맛 개밥을 먹고있어. 니 비엔나 내가 먹는다, 대답을 듣지도 않고 수저로 비엔나를 퍼가는데 옆에서 김종인이 그런다.
"근데 십자수 얘기는 왜 꺼냄?"
...듣고 있었냐? 어지간하면 김종인은 5분 안에 식사를 마치는 놈이라 이상할 것도 없다.
"우리 수만고 근로소년께서 요즘 돈이 궁하신지 영 표정이 어두워서 말이야, 내가 의뢰를 하나 가져왔지. 보수 빵빵."
"...우리학교 학생한테서?"
"너 가끔 잊어버린다? 여기 생각보다 숨은 보석들 많음. 내신 잘 따서 수시로 대학가려고 일부러 여기 온 애들. 그 중 하나가 작년 축제때 니 주머니 채워주신 누님이잖아."
"닥치고 뭔지나 말해."
...마지막 말은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이미 우리 둘의 대화에 깊이 심취한 김종인의 대사다. 반짝이는 김종인의 눈빛을 읽었는지 김종대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난 가끔 저 둘이 형제가 아닐까 의심한다. 생긴건 몰라도 하는 짓이랑 정신연령이 비슷하거든. 그리고 이름도. 근데 만약에 진짜 그러면 누가 형일까?
"3학년에 남자선배 하나 있거든? 키 졸라 크고 잘생겨서 인기 쩔어. 근데 그 선배 팬클럽 회장이 누구냐면 3학년 이수진선배."
이수진, 몇 번 들어봤다. 소문에 의하면 존나 이쁘고 존나 가슴크고 존나 돈많다는. 그리고 그에 걸맞게 존나 싸가지없다는.
"그 남자선배가 뭐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걸 좋아한다나 뭐라나...암튼 그래서 이수진선배가 십자수를 선물하면서 고백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이수진선배가 그런 거에 젬병이래요."
"...설마."
"응. 인건비랑 재료비 다 합쳐서 칠만원. 기한은 상관없는데 어지간하면 일주일 안에 해달래."
"개콜, 야 씨발 3일만에 해올테니까 추가요금 달라그래."
십자수 그딴거 껌이다. 초중딩때 즐거운 생활이나 가정 수행평가로 만들어주면서 천원 이천원씩 받기는 했어도 세상에, 칠만원이라니. 말만 하렴, 베개는 고사하고 라꾸라꾸 5종묶음세트도 만들어올게.
"근데 그 남자선배 누군진 몰라도 취향 존나 독특하다, 십자수래."
"그러게. 얼굴값하는 놈들은 시계나 옷 신발 뭐 이딴거 받으려고 들던데. 내 옆에 누구처럼."
"...그 선배 이름이 혹시 뭐냐? 궁금하네."
내 디스에 황급히 화제를 돌리고자 김종인이 요플레밥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싹싹긁어 입에 처넣는 종대한테 물었다. 남은 식사에 열중하기 위해 막 수저를 들었을때, 그대로 떨어트릴 수밖에 없었다.
"아, 혼혈이라 우리나라 이름은 아님. 크리스라고."
.....하... 이젠 내가 너 줄 십자수까지 해야되는거냐.
*
수만고 마당발을 친구로 둔 덕에 커다란 십자수 시트에 I LOVE YOU라는 오색찬란한 글씨와 함께 남자곰돌이 여자곰돌이가 나란히 서있는 그림이 그려진 도면대로 십자수를 놓고 있었다. 아니, 물론 마음이 급한 건 알겠는데 다른것도 아니고 이런 고백성 짙은 선물은 자기가 직접 해야되는 거 아님? 딱 5초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3일 안에 해오면 만원 더 얹어준다는 말에 내 손은 다시 바빠졌다.
"...과연 크리스가 어떤사람인지 알면서도 좋아할 수 있을지."
하긴, 대한민국에서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외모지상주의가 이미 뿌리깊게 박혔는걸. 손댄 지 한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글자의 I LOVE까지 새겼다. 아, 나 그냥 이쪽으로 나갈까봐. 어쩜 좋아, 너무잘해. 발로 해도 찬열이보단 잘할듯. 중1때 가정 수행평가로 제출했던 찬열이의 작품이 기억났다. 그림은 고흐 뺨치는 주제에 십자수는 존나게 못했다. 난 변카소주제에 십자수는 또 기가막히게 잘했다. 그걸 보고 김종인이 너네는 천생연분이라고 놀려댔던 게 또 생각난다.
그 말을 듣고 박찬열이 달려들어 김종인의 팔을 꺾었고 난 그걸 구경하며 짤깍짤깍 물개박수를 쳤지만 솔직히 나도 그때 인정했다. 십자수 빼고 다 잘하는 박찬열과 십자수만 잘하는 나. 이 무슨 퍼즐의 한조각같은 운명이란 말인가. 참 아련한 추억이다.
"오, 많이 했네? 역시, 니가 피부만 까맸으면 외국인 노동자라고 칭찬해주려고 했는데. 아쉽다."
"김종인 존나 자기소개하세요?"
"새끼...어? 박찬열! 웬일?"
ㅈ...저 눈치없는 새끼가!!!!! 김종인이 문 쪽을 돌아보며 반갑게 소리치자 나는 미칠듯한 스피드로 십자수를 옆에 밀어놓고 책상에 파바박 엎드렸다. ㅆ..씨발....근데 내가 왜 엎드렸지?
"...뭐하냐, 거기서."
찬열이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종인은 바로 대답하려다 찬열이가 오자마자 자는척을 시전하는 나를 흘끗 쳐다보더니 실소를 날리며 입을 열었다.
"자는거 구경중."
"왜?"
"재밌어서."
둘의 대화는 귀에 들어오지 않고 오직 박찬열 빨리가라 하며 주문만 외우고 있는 나다. 시발...그러고보니까 나 그때 찬열이가 방송실로 오라그랬는데도 씹고 그냥 갔잖아, 아 진짜 어떡하지? 아마 찬열이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내 옆에 있는 십자수를 바라보겠지. 내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건지 눈앞에 훤히 그려지는 그림에 나도모르게 놀랐다.
"체육 가려던 거 아님? 빨리가."
나의 과민반응과 찬열이의 시선을 느끼고 눈치깐건지 김종인이 박찬열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문앞에 서있던 찬열이는 체육복 차림에다 축구공을 손에 든 채였다. 박찬열 체육복 가지고다니는 꼴을 내가 못봤는데. 맨날 나한테 빌려갔지, 망할놈.
"...간다."
찬열이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완전히 인기척이 사라지자 그제서야 내가 고개를 들었다. 와, 씨발 죽는 줄 알았네. 경직된 어깨를 바로 펴자 내 옆자리 책상에 불량스러운 자세로 걸터앉은 김종인이 한손으로 내 턱을 치켜들었다.
"손에서 담배냄새나, 시꺄."
"너 쟤랑 뭔일 있지."
"...꺼져."
"너 알아 몰라, 우리동네 속옷도둑 내가 잡은거."
그래, 알지. 그걸 어떻게 잊어 썅놈아.
당시 11세였던 박찬열과 김종인, 그리고 나는 달동네에 처음으로 출현한 변태 바바리맨을 잡는 데 일조했었다. 장대같은 키에 수염이 수북한 얼굴 그리고 다리털을 휘날리며 한여름에도 바바리 코트를 걸친 채 두문불출하는 바바리맨 때문에 우리동네가 패닉에 빠졌을 무렵, 사건이 터진 것이다. 종인이네 옆집 미진누나의 속옷이 몽땅 없어진 대사건이.
그리고 그 범인이 예의 그 바바리맨이라는 것을 밝혀낸 것은 순전히 김종인의 촉이였다. 코찔찔이 동남아를 연상시키는 까만 얼굴의 초딩 애새끼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쪽으로 어른들이 가보니 아니나다를까 다음 표적인 정혜누나네 집 담을 타고있던 바바리맨이 있었다. 바바리 코트 안쪽 주머니에는 핑크색 팬티 한 장을 보물처럼 간직한 채.
나의 18년 평생 겪었던 사건 중 가장 엽기적이었던 그 일을 떠올리며 이제는 나보다 머리통 한 개 정도 더 큰 동남아를 올려다보니 그 썅놈이 그런다.
"나 속일 생각 하지마."
"...너 그날 전해줬냐? 나 일 있어서 먼저 간다고."
"말 돌리지 말ㄱ...뭐라구?"
"아, 이틀 전에!!! 박찬열이 나보고 방송실 오라그랬다며!!!!!!!"
"...아하, 당근 전해줬지. 알았다고 그러던데?"
아...그런가? 그럼 내가 방금 쟬 왜 피했지? 방송실 안 왔다고 찬열이가 화낼까봐?
...그제서야 생각이 정리가 됐다. 만약 내가 최근 느꼈던 그 야시꾸리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더라면 고작 부르는데 안 갔다고 이렇게 과민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하, 그래. 바로 그거야. 박찬열은 나한테 뭐 화가 났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왜냐하면 난 지금까지 찬열이랑 한 약속을 지킨 것보다 깬게 더 많았으니까........
젠장, 왜 갑자기 내가 쓰레기같냐.
"근데 변백 그거 아냐?"
"뭐."
"...어느 병신이 가방 손에 쥐고 잠?"
.....그제서야 내 손에 곱게 들려있는 가방을 내려다보았다. ㅅ...실이 모자라서 꺼내려는 순간 박찬열을 부르는 김종인의 목소리가 들려서 그대로 엎드렸나보다....시발....그럼....찬열인 내가 자는척 구라친 거 다 알고 있었던ㄱ....?
"...야이 씨발새끼야!!!!!! 그걸 왜 이제말해!!!!!!!!!!!!!"
"난 너 아는 줄 알았지!!!!!!!!!!!!!!!"
씨발....진짜 어떡하지, 쪽팔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망했다.
+
"변백현."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물론 저 익숙한 동굴목소리가 누군지 매우 잘 알고 있지만 차마 돌아볼 수가 없었다. 못 들은 척 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또 변백현, 하고 쐐기를 박아버린다. 이제 더이상 피할 공간이 없다. 쓰바.
"하하하, 안녕 찬녀라."
"...벌써 가냐?"
"어?! 아, 그게!!...알바."
"그날은 어디 가느라 말도없이 그냥 갔어? 김종인이 되게 바쁘게 갔다고 그러던데."
제일 피하려고 했던 질문이 돌아오고야 말았다. 니미럴, 어쩌지?
"아...그러니까 그게....."
"...."
뭐라고 변명하지? 갑자기 알바가 펑크나서 땜빵하러 갔다, 아니지 주유소에 알바 나 하나인 거 쟤도 알잖아. 그럼 부업...은 며칠 전에 받아왔고, 아 시발 진짜 뭐라그러지? 고민하다가 고개를 들어 찬열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순간 숨 멎는 줄 알았다. 씨발, 오늘은 어제보다 더 잘생겼다. 이러니 내가 훼까닥 돌아서 그런 생각을 품을 만도 했다.
"뭐 말 못할...그런 게 있는거야?"
"어? ㅇ...어어!!!"
찬열이의 말에 딱 2초 고민하고 바로 수긍했다. 새끼, 많이 컸네 대답하는 상대방 배려도 해줄 줄 알고!!! 갑자기 찬열이가 겁나게 사랑스러워보여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는데 찬열이 표정은 그게 아닌 거다. 조...존나 무섭다.....아 씨 얜 또 왜이래, 그렇다고 내가 너만 생각하면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피했다고 할 수도 없잖아.
"...미안, 다음엔 안 그럴게."
한번만 봐주세여 찬열신....난 애들한테 존나 비열해보인다고 폭풍같이 까였던 나름 초롱초롱한 불쌍불쌍 눈빛빔을 쏴댔다. 원체 마음 약한 놈이라 금방 먹힐 줄 알았는데 여전히 딱딱한 표정으로 알겠다고 대답한 후 바쁘다며 방송실로 향한다. 아 씨, 저새끼 삐쳤나. 보기와는 달리 한번 삐치면 꽤 오래가는 놈이다. 예전에 반대항 축구경기 때 자기 말고 김종인 응원했다고 사흘 삐친 놈이였다. 아니 그럼 씨발 내가 1반인데 1반을 응원하지 너때문에 2반 응원하리? 응? 뭐라 말 좀 해봐......
물론 당사자는 절대 못 들을 말.
"하아....."
날씨 한 번 끝내주네. 이제 여름이 다가오는지 슬슬 더워지니 아무래도 내일부터 하복을 입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학교 측에서는 아직 혼용기간이라는 말도 안 나왔지만 학생들이 그딴 걸 지킬리 만무했다. 반항한답시고 한겨울에 하복 입고 오지 않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된다. 물론 그런 병신이 내 주변에 있다고는 말 안하겠다. 절대 종으로 시작하고 대로 끝나는 사람은 아닌 거다.
"변백, 지금 감?"
반장임에도 불구하고 발레복마냥 줄인 바지가 바람에 아무리 날려도 절대 펄럭이지 않는다. 왠지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구나, 우리 오수라. 질리는 얼굴이지만 예의상 손 한번 까딱 들어줬다.
"같이갈래?"
"버스 승객은 정류장으로 꺼져주세요."
"나 오늘 집으로 안 가, 가출했거든."
"아침에 나와서 저녁에 들어가는 가출?"
"그건 외출이고 병신아."
알지, 누가 그걸 모르냐. 다만 너같은 범생이가 가출의 뜻을 알고있는 게 신기해서 그랬을 뿐이다.
"엄마가 과외 하나 더 구했대."
"...."
"이건 농민봉기도 아니야, 학생봉기지. 존나 과외 자른다고 확답받기 전까진 집에 절대 안 들어갈거임."
"다른놈이면 몰라도 나한테 그 말을 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선택이라고 본다, 세훈아."
돈 많다고 째냐, 누군 과외는 고사하고 학원 보조강사 알바 하는구만. 하루에 몇백장씩 채점하던 그 시절이 생각나자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었다.
"야, 오수라."
"뭐."
"김종인이랑은 뭐 좀 진전이 있냐?"
솔직히 너 지금 평소처럼 김종인 얘기 할라고 나 잡은 거잖아, 안그러니 친구야? 입꼬리를 잔뜩 올려 비열하게 웃어보이자 오세훈은 언제나처럼 맑게 웃었다.
"너지? 씹년아."
"...왓?"
"김종인한테 나 미친 게이새끼라고 떠벌린거."
...쟤가 지금 뭐라는거야.
"무슨 말을 듣고왔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건 사실이니 너무 크게 화낼 필요는....."
"뭔소리야 미친새끼야!!!!! 젠틀하고 매너있게 작업 걸려고 했던 내 계획이 산산조각났단 말이야!!!!!!!!! 책임져, 도와주진 못할망정!!!!!!!!!!!!!"
"야, 솔직히 내가 양심이 있지 남의 연애사 파토낼 파렴치한은 아니거든요? 지금까지 김종인한테 니 욕한 건 김종인이 너 기집애같다고 깔 때 옆에서 맞장구쳐준 것 뿐이야."
"...그게 와전됐나?"
"솔직히 틀린 말 아니잖아, 너 게이 맞지 않냐?"
난 남자가 좋은 게 아니야, 김종인이 좋은 거야. 미친 퀴어영화에나 나올법한 대사 치고 지랄이다. 난 지금 누구 연애상담 해줄 기분은 아니다만.
"야."
"왜."
"수영ㅈ...이 아니고 너 김종인말고 다른 남자 좋아해본 적은 없어?"
"없는데? 나 눈 높음. 강동원빈쯤은 돼야지."
"김종인이 솔직히 그 정도 급은 아니다....아무튼, 이건 내 얘기는 아니고 내 친구 얘긴데."
"그래 무슨 고민인지 다 털어놔봐 백현아."
"...내 얘기 아니라니까!!!!!"
"지랄."
오세훈은 무표정과 웃을 때의 갭이 굉장히 크다. 물론 둘다 재수없는건 똑같음.
"그래, 그럼 그렇다 쳐."
"...존나 친한 여자사람 친구가 있어."
찬열이를 여자에 비유한 건 좀 그렇지만 말이다, 솔직히 그정도면 예쁘게 생긴 거 아닌가. 오다리인데도 신체검사 때 180대 초반을 훌쩍 넘겼던 키와 미친 어깨빨이 에러지만 얼굴만 떼놓고 보면 존나 이쁘다. 내가 안다.
"십몇 년을 같이 있었는데 그냥 친구같았어. 아니지, 친구도 아니야 그냥 리얼 가족같았다니까? 존나 걔 앞에서 옷벗고 같이 목욕ㅎ...아 이게 아니지, 여자잖아... 아무튼!!! 근데 얼마전부터 계속 걔만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들어."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
"그냥...얼굴만 봐도 막 여기가 간지럽고 눈도 못 마주치겠고...어, 그리고 말도 예전처럼 못하겠어."
"그건 그냥 니가 좀 모자란 거 같은데."
"아니라고!!!! 뭔가 있어, 근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단말이야......"
아으윽, 미치겠다. 머리를 쥐어뜯을 기세로 징징거리는 내가 귀찮았는지 오세훈이 한손으로 내 턱을 잡아 치켜세웠다. 이거 뭔가 좀 익숙한데, 어느 병신처럼 손에서 담배냄새는 안 난다. 찬열이 손에서는 좀 옅은데 달달한 향이 났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누구냐, 박찬열?"
"여자라니까?!"
"고소미먹을래? 너같은 놈이 여자사람 앞에서 잘도 옷 벗겠다."
"...시발."
"그래, 이것도 다 사춘기의 한 과정이지. 일단 내가 너랑 성격도 다르고 상황도 많이 달라서 뭐라고 말은 못 해주겠다만."
"다만...?"
"받아들여, 최대한 빨리."
"...."
"그 다음은 네 몫이야."
어떤 선택이든, 뭐 당사자가 했는데 그게 정답이겠지. 바로 10분 전에 입 밖으로 내뱉었던 가출이란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는지 발랄하게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참 재수없다. 이래서 니가 내 친구인가봐.
모든 사람들이 오세훈같은 마인드로 살았으면 어땠을까, 대한민국 평균 수명이 한 110살쯤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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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완결내야되는데....그럴 기미를 안보이네요ㅠㅎ어허어헝허어어헝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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