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그 불완전한 나이.
20
…이게 뭐야. 사진 속 선명하게 찍혀 있는 나와 전원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말문이 막혀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이렇게 몰래 사진을 찍혀야만 하는 걸까. 소름이 끼치는 동시에 내가 전원우와 같이 있다고 이 사진을 찍은 애도 이상하고… 그냥 다 이상했다. 대체 언제 누가, 우리를 발견하고 이렇게 사진을 찍은 것일까.
"나 진짜 용기 내서 어제 원우한테 같이 있어주면 안 되겠냐고 물어본 거였거든…? 이런 말 하는 나도 쪽팔려 죽겠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원우가 내 옆에 있어줘서 너무 행복했어!"
"……."
"예전처럼 다시 사이가 좋아지는 건가 싶었어.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하고 있었는데…!"
너 때문에… 다 망했어. 그 말을 끝으로 최유진은 눈물을 뚝, 뚝 흘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기대해. 다시 너를 학교의 스타로 만들어 줄테니까. 이번엔 아주 제대로.'
최유진이 그때 말한 게 이거였구나…. 나를 또 이렇게 엿 먹이려고. 저번에는 그냥 최유진의 눈물 어린 심경 고백이었다면, 지금은 사진까지 나온 빼도 박도 못한 상황이었기에, 애들이 나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의 불씨를 더욱 활활 불타오르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래.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어제 갑자기 전원우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최유진이랑 같이 있던 것도 이상하고, 이렇게 작정을 한 것처럼 나와 전원우의 얼굴, 그리고 잡고 있던 손까지 정확하게 찍힌 것도 이상했고. 내가 너무… 방심을 하고 있었구나.
"너 잠깐 나와 봐."
여기서 이야기하라고 발악이란 발악을 다 하는 최유진을 끌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최유진은 역시나 흘리고 있던 눈물을 스윽 닦아내곤 제 손목을 잡고 있는 내 손을 세게 뿌리쳤다.
"익숙하지? 이 상황. 저번에도 화장실에서 이렇게 얘기했던 거 같은데."
"사진 찍은 거, 너야?"
"응. 맞아.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잖아."
"이번에는 대체 무슨 일을 꾸민 건데…?"
떨리는 내 목소리를 느낀 건지 최유진은 픽 웃었다.
"별 거 없어. 그냥 애들의 눈에는 어제 나랑 전원우가 잘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네가 끼어들면서 나는 다시 비련의 여주인공이 됐다- 이거니까."
"내가 전원우랑 만나는 건 어떻게 알고 사진까지 찍으러 온 건데…?"
"그건 네가 알 거 없고."
최유진은 내 손에 들린 핸드폰을 낚아채더니 그 사진을 내게 들이밀며 말했다.
"나 이거 당장이라도 김민규한테 보낼 수 있어."
"……!!"
"대충 보니까 너는 김민규한테 전원우랑 만나는 거 들키면 안되는 상황 같은데, 내가 이거 보내면 어떻게 될까?"
"…안돼."
사진… 보내지 마. 김민규가 저 사진을 봤을 때, 그 후의 반응을 나는 아직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미 김민규한테는 돌이킬 수 없게 거짓말을 한 것이 산더미였고, 가뜩이나 전원우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상황에서 저 사진을 본다면… 그 다음 일은 생각하기도 싫다. 발발 떨고 있는 내 모습이 흥미로운 건지 최유진은 으음- 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사진 안 보낼테니까, 그 대신 조건이 있어."
"……?"
"떨어져. 김민규, 전원우 둘 다한테서."
둘 중 한 명이라도 같이 있는 모습을 내가 보게 된다면, 난 가차 없이 이 사진을 바로 김민규한테 보낼 거야. 그 말을 듣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니, 전원우한테서 떨어지라는 거는 내가 전원우 옆에 있는 꼴을 보기가 싫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이해라도 한다지만, 김민규는 대체 왜? 나랑 김민규가 안 지가 벌써 9년인데, 네가 뭔데 나 보고 김민규한테서 떨어지라 마라야. 그렇게 얘기를 하니 돌아오는 대답은 가관이었다.
"그냥 네가 행복한 게 싫어."
"…허."
"그리고 너도 양심이란 게 있으면 생각을 좀 해봐. 그런 짓을 하고도 김민규 옆에 있을 수 있는지."
그 말을 끝으로 최유진은 화장실을 나섰다. …아. 그러네. 나 지금 무슨 낯짝으로 김민규를 만나고 있었던거지? 김민규한테 들키는 건 두려워하면서, 아까도 김민규가 알고 나서의 그 뒷감당을 버텨내지 못할 거 같아 벌벌 떨었으면서. 생각해보니까 나 되게 이기적인 아이였구나…. 김민규한테 숨기는 게 그렇게도 많으면서도, 나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내 모습에 허탈한 웃음만이 새어 나왔다.
*
그 이후로, 나에 대한 괴롭힘은 알게 모르게 시작되었다. 나를 볼 때마다 대놓고 수근거리는 건 기본이요, 책을 쓰레기통에 버려놓는다던지, 공책이나 필통을 어딘지도 모르게 없애버린다던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참다 참다 선생님께 말을 해볼까 싶어 찾아갔던 교무실에는 정확한 범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범인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기도 했고, 또 고3이라는 민감한 시기에 이런 일로 분위기 흐리지 말라는 말까지 듣고선 교무실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혹시라도 학폭위가 열릴까봐 애들도 정말 심한 정도까지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었고, 반에 있거나 복도를 거닐때에도 나를 향한 수근거림에 나는 이제 대인기피증까지 생길 것 같았다.
전원우는 그날 이후로 만나지 않았다. 나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던 그는 그 후로 나에게 연락 한 번 없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전원우보다도 더 문제인 건 김민규였다. 학교가 끝나면 같이 가던 독서실도 이제는 가지 않았다. 순전히 나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이제는 독서실에 가지 않을거라고 말을 하니 처음에는 왜 그러냐며, 같이 공부해야 하지 않겠냐며 찡찡대던 김민규였지만 정말 가지 않겠다며 단호한 나의 모습에 김민규는 갑자기 왜 이러는 거나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우연찮게 학교에서 만나도 나는 그냥 그를 무시했다. 이동수업을 할 때나, 밥을 먹으러 갈 때나 어쩌다 한 번씩 김민규를 만날 때가 있었는데 반갑게 내게 인사를 하며 다가오는 김민규를 나는 그냥 못 본 척 지나가야만 했다. 만약에 김민규랑 같이 있을 때 들려오는 수근거림이나, 꼭 그것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김민규에 대한 죄책감을 나는 이겨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번을 그를 모른 척하고 있을 때였다. 일은 얼마 가지 않아 터졌다.
"야!!!!!!"
오늘도 그를 무시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김민규가 뒤에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갑작스런 그의 목소리에 놀랐지만, 그래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꿋꿋이 걸어가고 있는데 내 손목을 낚아챈 김민규는 그대로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김민규는 화가 단단히도 난 건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어찌나 세게 잡고 있는지 내 손목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뿌리치려고 하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김민규는 더욱 꽈악 잡으며 말했다.
"너 요즘 나 왜 피하냐? 어?"
"이거 놔!"
"갑자기 이렇게 모른 척하면서 피하는 이유가 뭔데!!!!"
김민규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 처음 본다. 너무나도 낯선 그의 모습이 무서워 어찌해야 할 줄을 몰라 그저 가만히 있는데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자, 어느새 우리 둘은 모든 이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헐, 대박-.' 하며 자기들끼리 소근대는 소리가 점차 커지고, 그 목소리들은 내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도저히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던 나는 김민규의 손을 세게 뿌리치고는 화장실로 달려가 아무 칸이나 들어가서 귀를 틀어막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미안해, 민규야. 내가 정말 미안해….
쉬는 시간 종이 울리는 것을 듣고 나서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한 시간을 그대로 바닥에 앉아있었던 거다. 아, 나 지금 아예 수업 하나를 빼먹은 거네. 아무도 들어 오지 않는 이 칸 속에서 이렇게 계속 혼자 있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너무 지장이 클 것 같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으로 향했다. 수업도 땡땡이 치고 이제야 반에 들어오니 나를 향한 목소리들이 또렷이 들려왔지만, 나는 애써 무시하고 자리에 앉은 다음 바로 엎드렸다. 옆에서 대체 어딜 갔다 온거냐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은 대답을 해 줄 힘조차 없었다.
아까 화장실에서 계속 생각을 했었다. 이건 사과를 해야 한다고. 내가 지금 소문이 어떻게 났든 간에, 나는 김민규한테 그간의 일들을 다 설명하고 용서를 구해야했다. 용서를 할지 말지는 김민규에게 달려있는 거겠지만, 그래도… 나는 사과를 해야 했다. 내가 너무 겁쟁이여서 그랬다고, 그래서 너를 피한 거였다고. 절대로 네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고. 그렇게 말을 해줘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나에게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용기가 없는 나를 한없이 자책하고, 또 자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최유진, 나와."
…? 이 목소리는…. 갑작스레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정말 차가우리만큼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전원우는 최유진의 손목을 잡아 일으켜 세웠고, 최유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왜 이러냐며 반항을 했지만, 전원우는 그런 최유진을 한 번 노려보고는 억지로 그를 끌고 나갔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나가는 최유진의 모습을 보던 아이들은 대체 무슨 일이냐며 혼란스러워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전원우는 왜 저렇게… 화가 난 거지?
수업 시간 종이 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최유진은 돌아왔다. 눈물을 뚝, 뚝 흘리면서. 그 모습을 보고 애들이 무슨 일이냐며 최유진에게 달려갔지만, 최유진은 그런 애들을 뿌리치고 그저 책상에 엎드려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울 뿐이었다. 옆에서 그의 친구들이 당황을 하며 어떻게 해야 하냐 서로 말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왜 이렇게 소란스럽냐며 얼른 다들 자리에 앉아서 책을 피라고 하셨다.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누구도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수업 시간 내내 최유진은 엎드려서 울고 있었으니까. 수업이 끝날 때까지도 최유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나가고 나서야 최유진은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는 눈물이 범벅인 채로. 괜찮냐며 다가오는 친구들을 뿌리치고 최유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교탁 앞으로 걸어갔다. 소매로 눈물을 스윽 닦던 최유진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목이 메인 목소리로 말했다.
"…김여주, 미안해. 그동안 너 괴롭힌 거, 말도 안 되는 소문 퍼뜨린 거 전부 다… 미안해."
……? 갑자기 내게 사과를 하는 최유진에 놀라 나는 멍하니 그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이것도 연기의 한 부분인가 싶어 최유진을 살피는데 그런 것 같진 않았다. 전원우를 만나고 나서 최유진은 기가 한풀 꺾인 듯 툭 치면 금방이라도 다시 눈물을 터뜨릴 것만 같았으니까. 한숨을 푸욱 내쉬던 최유진은 시선을 교실 뒷쪽으로 옮겼다. 저기는 왜….
"……!!!"
창 밖을 보니 전원우가 팔짱을 끼고 서 교탁에 나가 말을 하고 있는 최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감시를 하는 것처럼. 뭐야, 전원우는 왜 저기 있고 최유진은 왜 전원우 눈치를 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아까 둘이 나가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최유진은 심호흡을 하면서 제 자신을 진정시키더니 목이 메어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김여주는 양다리 걸친 적 없어. 나랑 전원우는 사귄 적도 없고… 김민규는 그냥 김여주 친구일 뿐이었으니까."
"야, 최유진. 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는 알아?"
최유진 친구들은 당황을 한 듯 황급히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유진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놀이공원에서 나랑 전원우랑 같이 있었던 것도, 일부러 너희들 보여주려고 그랬던 거야. 그래야 내 말을 더 믿을테니까. 그리고 어느 정도 보여줬다고 느꼈을 때 전원우를 김여주한테 보냈어. 그리고 나서 그 둘이 같이 있는 걸 찍었지. 모두 내 자작극이었어. 그러니까… 이제 김여주 욕 하지마."
최유진은 그 말을 끝으로 내 앞으로 걸어 오더니 주먹을 꽈악 쥐었다. 쥐고 있는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보였다. 이거는 분명 분해서 떨리는 것일 거다. 왜냐하면 최유진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거든. 최유진은 전원우가 있는 쪽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꾸욱 다문 입이 자존심이 꽤 상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최유진은 이내 내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안."
그 말을 끝으로 최유진은 제 자리로 돌아가 가방을 싸더니 반을 나가버렸다. 그의 친구들은 '야, 최유진!' 을 부르며 뛰쳐나갔고, 최유진이 나가고 나서 아이들은 내게 천천히 다가오더니 물었다.
"방금 유진이가 한 말이 다 진짜야…?"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변을 했다. 아이들은 그제야 내게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자기들은 정말 최유진이 그렇게까지 연기를 잘하는 줄 몰랐다며 우리는 모두 깜빡 속아 넘어간 거였다고, 처음부터 네 말 안 듣고 무시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멋쩍은 듯 자기들끼리 내게 사과를 해왔지만, 나는 그 사과들이 달갑게 들리진 않았다. 지금 내 앞에서 사과를 하고 있는 아이들보다도 중요한 건 그것이었다.
전원우는 최유진한테 대체 무슨 말을 한 걸까.
그리고 최유진은 갑자기 나한테 사과를 왜 한 걸까?
*
"뭐하는 거야, 이거 안 놔?!"
유진을 잡고 있던 원우의 손은 학교 뒤, 쓰레기 소각장이 있는 곳에 다다라서야 떨어졌다. 유진은 빨갛게 물든 제 손목을 어루만지다가 원우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저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원우의 표정은 지독하리만큼 차가웠다. 저 표정은 그때…. 오랜만에 다시 본 그의 무서운 얼굴에 유진은 이내 시선을 회피했다.
"너.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었던 거야."
"내가 뭘?"
"기껏 부탁을 들어줬더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녀?"
원우는 그때를 떠올렸다. 학교에서 놀이공원을 가기로 하기 전날, 갑자기 저한테 전화를 해 온 유진을. 처음에는 전화가 온 것을 보고 받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제발 받아달라고 문자까지 남기는 유진을 보자, 계속 무시를 할 수는 없어 결국엔 전화를 받았었다. 전화를 한 목적은 정말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 것이었다. 하루만 제 남자친구 노릇을 해달라니. 우리가 그럴만한 사이도 아닌데 말이지…. 싫다고 말을 해도 이번 한 번만 제 부탁을 들어주면 다시는 네 앞에서 얼쩡거리는 일은 없을 테니, 한 번만 도와달라는 유진의 말에 원우는 뭔가 찝찝하면서도 승락을 했었다.
싫지만 이제 다시는 제 앞에 안 나타난다고 하니까. 팔짱을 껴도 원우는 그저 참았다. 오늘 하루만 버티면 되겠지. 그러면 이제 다시 얘랑 엮일 일은 없겠지. 유진이 어떤 걸 타자고 하면 같이 타고, 뭘 먹으러 가자 하면 같이 먹으러 가고 다른 애들 앞에서 정말 남부럽지 않은 남자친구 행세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
'이만하면 됐어. 이제 가봐.'
'뭐?'
'이제 됐다고. 김여주나 찾아서 걔랑 같이 놀아.'
그렇게 애걸복걸하게 매달릴 땐 언제고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서는 가 버리라고 말을 하는 유진에 원우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자기는 충분히 해줄 만큼 해줬다고 생각을 했기에 여주를 찾아다녔었다. 그런데 그렇게 부탁을 들어주고 나서 돌아온 대가는 웬 이상한 소문뿐이었다.
"내가 네 남자친구? 널 버리고 김여주한테 가?"
"솔직히 맞잖아!!!!"
"놀이공원에서는 분명 네가 나한테 됐다고, 가라고…!"
"그거 말고!!!!!"
유진은 제 마음을 몰라 주는 원우에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정말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야속하게도 원우는 지금 유진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뭘 말하는 건데? 원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으니, 유진은 서운함에 소리를 버럭 질렀다.
"네가 나를 버린 게 김여주가 나타나고 나서였잖아. 걔만 네 앞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잘 사귀고 있었을 거라고!!!"
"…너 아직도 그 소리야? 우리가 대체 언제 사귀었다고 그래."
원우는 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유진은 항상 저랬다. 우리가 사귀었다고. 대체 언제? 나는 너랑 진지하게 만난 적이 없었는데.
"원우야… 우리 다시 돌아가자. 응? 우리 다시 예전처럼 행복했던 그때로…!"
"최유진, 정신 차려. 난 널 좋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니까? 이젠 그만 현실을 좀 직시하라고!!!"
"거짓말 치지마! 너도 나 좋아하니까 그렇게 행동했던 거잖아.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준 거였잖아!!!"
"…하. 너 왜 이렇게까지 됐냐."
언제나 널 좋아한 적이 없었다고 항상 말을 해도,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유진을 보니 답답함을 넘어 이제는 안타까워지기까지 했다. 대체 유진의 기억 속엔 뭐가 자리하고 있는 걸까. 내 기억 속엔 너랑 같이 있던 시간들은 모두 지옥이었는데. 그리고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까지 된 거야, 내가 대체 뭐라고….
"왜 이렇게 됐냐고? 널 좋아하니까. 널 많이 좋아하니까!!!"
"…이제 그만하자. 응?"
"뭘 그만해. 난 절대 너 포기 못해. 나는 너를…!"
"그만하라고, 이제. 구질구질하니까."
뭐…? 유진은 원우의 말에 충격을 받아 하던 말을 멈췄다. 지금 구질구질 하다고… 했어? 내가? 그 말에 원우는 쐐기를 박아 버렸다. '그래.'. 그 말을 듣자마자 유진은 원우의 뺨을 내리쳤다. 허… 제 뺨을 내리친 유진에 화가 솟아 올랐지만, 그래도 참았다. 여자니까.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정신이 나간 듯 눈물을 줄줄 흘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유진의 어깨를 붙들고 원우는 말했다.
"잘 들어. 난 네 얼굴 보는 게 아직도 역겨워."
"…원우야."
"입 다물어. 너만 아니었으면 내가 이석민이랑 김민규랑 이렇게 틀어지는 일도 없었으니까."
"……."
"너 대체 무슨 낯짝으로 나한테 이러는 거냐?"
"말했잖아. 너 좋아한다고…!"
"그 입, 다물랬어."
원우는 그 날을 떠올렸다. 지금 이 앞에 있는 아이 때문에 모든 게 틀어지던 그 날을.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였지만, 유진으로 하여금 조금씩 떠오르는 기억에 원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아이를 제 눈 앞에서 없애고 싶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오늘로써 완전히 종지부를 찍어야겠지…. 원우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뭐를 찾더니 유진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이거 보여? 네가 나한테 보냈던 문자들."
"……!!"
"애들이랑 사이가 틀어지면서까지도 나 이거 안 보여줬어. 이석민이 진짜로 너 죽일까봐."
"……."
"이걸 밝히지 않았던 나에게 감사해하고, 너랑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이석민한테도 감사히 생각해."
안 그랬으면 이번 엿같은 소문의 주인공은 김여주가 아니라 너였을 테니까. 말을 마친 순간,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이제 슬슬 끝내야겠네…. 원우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유진의 눈물을 엄지로 스윽 닦아주었다. 그런 원우의 행동에 유진의 심장은 불행하게도, 두근거렸다. 봐봐. 넌 이렇게나 다정하잖아. 내가 울고 있으면 넌 항상 이렇게 닦아줬잖아. 이렇게 넌 똑같은데…. 하지만 그런 다정한 행동과는 달리 원우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너무나도 아팠다.
"너도 참 불쌍하다. 그냥 석민이랑 잘 만나지, 왜 나 같은 걸 좋아해서…."
"……."
"석민이는 너 정말 많이 좋아했는데…."
"이석민 이야기 그만해."
"…그래. 그 얘긴 그만하고, 너 이 수업 끝나고 당장 김여주한테 가서 사과해."
"…뭐?"
"애들이 보는 앞에서 놀이공원 일도 다 해명하고, 다 아니였다고 밝히라고."
"싫다면?"
"싫어? 그럼 하지 말아봐. 그 뒤에 일어날 일들은 내가 책임 못 지니까."
하는 게 너한테 좋을 걸. 다음 시간에 너네 반 가서 똑똑히 지켜보고 있을거니까 허튼 짓 할 생각도 하지 말고. 그 말을 끝으로 원우는 유진에게서 등을 돌렸다. 유진은 너무 분하고 또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이게 다 내 잘못인데. 그럼 네가 그때 그렇게 행동하지 말았어야지. 내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네가 그렇게 행동하지 말았어야지…!!! 사람을 그렇게 헷갈리게 만들어 놓고, 다 내 잘못이라고? 그리고, 그리고…! 유진은 학교로 들어가는 원우를 보며 빽 소리 질렀다.
"너 대체 김여주는 왜 그렇게 신경 쓰는 건데? 너 걔 정말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아?!!! 유진의 눈물 섞인 발악을 듣던 원우는 잠깐 멈춰 섰다가 천천히 뒤를 돌아 말했다.
그건 네 알 바가 아니야, 라고.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 신알신이 울려서 조금 당황하셨을 독자님들이 계시지 않으실까 싶네요. 엥 웬일로 벌써 다음 편이...? 하구욬ㅋㅋㅋㅋㅋㅋㅋ 유진이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탄산 가득한 사이다가 되지 못해 죄송하네요... 그래도 오늘은 나름 이야기가 나왔는데 독자님들 궁금증이 조금 풀리셨나요?!!!?! 독자님들의 궁금증이 조금은 풀리셨기를 바라며... 더 혼란스러워지셨다면 음... 앞으로의 이야기를 더 기다려주세요 허허 벌써 20편입니다. 제가 사실 소설 쓰면서 제일 많이 써봤던 게 20편이었는데 연중하지 않고 쓴 제 자신에게 너무 고맙고... 또 고맙네요.. 물론 독자님들의 애정어린 댓글 때문이기도 하구요♡ 전 독자님들의 댓글로 한편 한편을 써 가고 있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앞으로도 완결까지 열심히 써 볼게요. 아직 완결까지는 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금 남았습니다 허허허허 내일이랑 모레는 콘서트 이야기로 바쁘겠네여 콘서트를 가지 않는 저는 울고 있겠지요.... (주륵)
암호닉 : 일공공사님, 명호엔젤님, 달봉님, 여남님, 아봉님, 선뉴님, 원우야밥먹자님, 또렝님, 꽃소녀님, 천상소님, 최허그님.
독자님들의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항상 사랑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