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백현이랑 나랑은 수없이 싸워왔지만 그 중, 내가 처음 취직했을 때 분과선택에서 미친듯이 싸웠던 적이 있었다. 그때 변백현은 본과를 정할 시기였고 나는 취직을 하고 희망하는 과를 3개를 지망할 시기였다. 나는 외과, 수술실, 소아과를 지원하려 했었고 그 때 당시 변백현은 본과로 외과를 선택하려 했었다. 그런 변백현은 내가 외과를 1지망으로 넣으려 한다는 말을 듣고 불같이 화를 냈었고 나는 변백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피튀기며 몇일을 싸워댔었다.
"미쳤어? 거기가 진짜 생고생하는 곳인거 몰라?"
"그러는 너는 왜 본과 외과로 가는데? 그렇게 따지면 너야말로 생고생 자처하는 미친놈아니야?!"
"..그거야 우리는 외과가 무난하니까 가는거고! 너 거기가면 백퍼 응급실 간다니까? 매일 피보고? 다리 절단되고, 머리 터지고, 그런 사람들 매일같이 실려오는거 봐야된다고 몇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내가 일하는 곳 내가 정한다는데 니가 왜 자꾸 난리야! 나 피보는거 잘하고, 응급실 로테이션 되는 건 외과랑 상관 없다고 내가 말했,"
"씨발, 차라리 비뇨기과를 가라."
갈게! 간다! 비뇨기과 간다 진짜! 내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홱 뒤돌아 버스정류장으로 향했고 변백현은 빠른 걸음으로 나를 쫓아왔어. 그 기척을 느낀 내가 아예 뜀박질을 시작했지만 얼마안가 손목을 붙들려 버렸지.
"..진심 아니지?"
"뭐가, 또! 놔!!"
"..비뇨기과, 진짜 쓰는 거 아니지?"
"니가 가라며! 가라며! 일지망에 넣을거야!"
"아니 내 말은..아 진짜!"
결국 나는 일지망으로 넣은 외과에 척하고 붙어버렸고 곧이어 응급실 인력배치가 되어버렸다. 변백현이 말한 그대로 실현된 꼴이었고 나는 괜한 자존심에 힘들어도 힘들단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뭣도 모르고 열심히 일할 의지에 불타 선택한 외과는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고 엄청난 체력부족에 시달렸다. 게다가 병원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신규라는 이유로 응급실 배치가 되었고 변백현 말대로 온갖 사람들이 실려 들어왔다. 다리가 절단된다든지, 변백현이 오버했던 사람들은 없었지만 교통사고 후 만신창이가 된 부상자를 처음 본 날 후유증은 대단했었기 때문에 지금도 난 그날의 내가 병원에 사직서를 쓰지 않은 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발목이 짓이겨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인 부상자를 처음으로 드레싱하고 나서 충격에 휩싸인 나는 퇴근 후 엉엉 울면서 변백현에게 전화했었다. 지방에 있는 동생 덕에 거의 집에 혼자 살다시피했던 나는 집에 혼자 있을 용기가 나지 않았고 그 상황에 부를 만한 사람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변백현 뿐이었다. 그때 당시 미친듯이 공부하고있었던 변백현은 내 전화에 깜짝 놀라 병원 앞 까지 택시를 타고 달려왔었다. 평소엔 돈아깝다고 절대 타지 않는 택시를.
병원 앞 버스 정류장에 앉아 훌쩍이고 있던 나를 발견한 변백현은 세상이 무너진 것 마냥 뛰어와 품 속으로 끌어당겼고 내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몇 분이고 기다렸다. 조금 진정이 되고 슬슬 울었던 게 민망해지려고 할 때쯤 변백현이 나를 놓아주곤 옆자리에 앉아 찬찬히 물어왔다.
"무슨 일 있었어? 응? 어디 다쳤어?"
"..아니, 나 멀쩡한데.."
"근데 왜 그렇게 울었어, 혼났어?"
"..너 왜 나 외과간다고 할 때 끝까지 안말렸어?"
"외과? 갑자기 무슨.."
변백현은 잠시 내 말 뜻을 생각하는 듯 했고 다시 눈물이 터진 나는 손으로 아무렇게나 눈물을 훔쳤다. 그런 내 손을 본 변백현이 그제야 여기저기 엉망진창이었던 나를 인지했고 내 손을 감싸잡았다. 더 서러워져 엉엉 울어버린 나를 달래랴, 여기저기 묻은 핏자국을 닦아내랴. 변백현은 정신이 하나도 없어보였다.
그러게 내가 그랬지, 왜 말을 안들어서..
하고 말을 꺼낸 변백현은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아니다,하고 말을 끊었다. 병원에서 신는 크록스에는 여기저기 피가 튀어있었고 변백현이 그렇게 휴지로 문질러도 안지워지는 듯 했다. 이것도 변백현이 나 취직한다고 사준건데. 가만히 신발을 쳐다보는 날 보더니 변백현이 망설임없이 신발을 벗겨내서 버스정류장에 있던 휴지통에 버려버렸다.
"니가 사준건데.."
"알아, 하나 더 사줄게. 버려."
"나 내일도 출근 하는데, 신발.."
"내일만 내 실습화 신고가."
그거 클텐데..나는 속으로 생각했지만 입밖으로는 꺼내지 않았다. 그런 내 옆에 한참을 앉아있던 변백현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잡을 수도 없었고 결국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 다리아파."
"그래, 업어줄게."
변백현은 자기 운동화를 벗은 내가 맨발로 땅이라도 디딜새라 재빨리 등을 내밀었다. 집에서 급하게 나온건지 검은 색 티셔츠만 달랑 입은 변백현이 추워보여 맨살이 나온 팔을 슥슥 문질러주었다. 변백현은 읏차, 하고 나를 업더니 내 가방을 손에 쥐고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향했다. 오늘 우리집에서 같이 자자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있잖아..내가 어릴 때 의사랑 결혼할거라고 했잖아."
"응, 그랬지."
"그 때 내가 어렸나봐."
"왜?"
"의사들 히스테리 부린다는 거, 이제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그거야, 가끔 있는 싸이코들이.."
"아냐, 의사들은 멘탈이 정상일 수가 없어. 그런 걸 매일 보면서 눈 하나 꿈쩍 안하는데.."
"..그래서, 변호사 잡으시게?"
"그냥 직장인. 안정적인 직업이 좋은 것 같아."
내 말에 변백현은 대답없이 걷기만 했다. 몇분이 지났을까, 변백현이 조용히 입을 뗐다.
"그런 말을 의대생한테 하냐, 섭섭하게."
조금은 섭섭함이 묻어나는 것 같기도하고, 장난처럼 툭 내뱉은 변백현의 말 뒤로 나는 그냥 잠들어버렸던 것 같다.
ㅡ
변선생님 ! 인턴 쌤 ! 아, 귀가 쟁쟁하다. 변백현이 눈에 보인다 싶으면 이때다 하고 열심히 불러재끼는 신규때문에 귀가 터질 것 같았다. 나 신규때는 눈치보느라 바빴던 것 같은데 요즘은 또 아닌가봐. 변백현은 거기다가 또 샐죽샐죽 웃어주며 네~간호사쌤~ 한다. 얄미워서 한대 치고 싶은 걸 겨우 눌러 참았다.
"선생님~ 저 인턴쌤 번호 주시면 안돼요?"
"걔 번호 나도 몰라."
"에이! 쌤 알잖아요~ 선생님 변쌤이랑 친한거 누가 몰라요?"
번호를 안 알려주면 끝까지 눌러붙을 기세길래 내 폰을 던지듯이 내밀었다. 게다가 일은 똑부러지게 잘 해서 뭐라 트집 잡을 것도 없었고,나는 내 앞가림하기도 바빠 신경쓰기도 싫었기 때문에 그냥 무시할 심산이었다. 내 폰을 톡톡 두드리던 신규는 쌤, 똥백 맞죠? 별명 귀엽다. 라며 웃다가 내게 다시 폰을 돌려줬다. 아, 쌤. 카톡 왔던데? 똥백한테? 라며 생긋웃는 이지은의 말에 그냥 변백현이라고 저장해야겠다 생각했다.
[니네 새로 온 신규? 상큼하더라]
이지은이 저토록 입이 귀에 걸린 이유가 있었구나. 저더러 귀엽다는데 싫어할 사람없지, 암. 기분이 나쁠 필요가 없는데 기분이 나빠 습관처럼 미간이 찌푸려졌다. 오늘 변백현이 내게 조금이라도 시비를 털면 그대로 주먹을 날려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