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 저녁에 찬바람을 쐬서 그런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와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오랜만에 밤잠을 집에서 자보는구나, 엄마랑 아빠는 회사에서 등산 모임이 있다며 나가 버렸고 괜히 외로워져 이불을 거머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한참을 잤을까 돌연 잠에서 깨버렸다.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파왔고 속은 메슥거려 윗배를 부여잡았다. 순간적으로 폰을 꺼내 변백현의 번호를 찍었지만 이내 아차싶어 폰을 내려놨다. 우리 어제부로 굉장히 어색해진 사이였지. 다시 잠에 들려 시도했지만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고 몸은 불덩이가 된 것 마냥 뜨거웠다. 정말 이기적인 걸 알고서도 나는 결국 변백현에게 전화를 걸고 말았다. ..여보세요? 긴 신호음이 가고 나서야 받은 변백현은 잠에서 막 깬건지 목소리가 꽉 잠겨있었다. 내가 한참을 말을 하지않자 색색 숨소리만 내던 변백현이 다시 입을 뗐다. "..잠 안와?" "..." "자다가 버튼 잘 못 눌렀냐?에이 시발, 난 또.." "백,현아." "어,어. 어. 왜?" "나 아퍼.." "아파? 어디야, 집이야?" 응. 짧게 대답하는 내 말에 변백현은 전화를 뚝 끊었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번호키 버튼을 누르는 소리에 눈을 슬쩍 떠보였다. 헉헉 거리며 신발을 내던지듯 벗고 들어와 내 이마를 짚으려다 멈칫한다. 변백현이 몸에 달고 온 찬바람에 내가 몸을 움츠리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자 제 손을 이불 속에 넣곤 슥슥 비비다가 내 이마를 짚어본다. 아, 차가워. 그래도 찬기운이 남아있는 손바닥에 움찔하는 나를 달래듯 톡톡 두드리며 목에서 맥박을 짚어낸다. 꼴에 의사라고 여기저기 짚어보는 손이 꽤 익숙했다. "언제부터 아팠어? 왜 진작 전화 안했어?" "..몰라, 자고 일어났는데 아팠어.." "집에 해열제 있어?" "5년 전에 산거 있을걸.." 그걸 말이라고..픽 웃은 변백현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얼 꺼냈다. 그러더니 주사한번 맞자, 어? 안아프게 해줄게. 라며 내 팔을 걷어올렸다. 알코올 솜으로 슥슥 문지르는 느낌에 팔을 이불 속으로 집어 넣었다. "안 맞을래.." "집에 약도 없다며, 진-짜로 안아프게 할게." "싫어어, 나 추워." 칭얼칭얼 대는 나를 어르고 달래가며 겨우겨우 팔을 다시 꺼낸 변백현이 입으로 캡을 뜯어 재빨리 주사를 찔러넣었다. 아, 변백현 입으로 캡 뜯는거 되게 섹시한데. 예전에 응급실에서 입으로 캡 뜯는 모습을 보고도 감탄했었는데 여기서 또 보는구나. 주사를 빼낸 변백현이 솜으로 팔을 꼭 누르며 다시 이불 속으로 팔을 넣어줬다. "백현아," "어. 어?" "나 진짜 추운데.." "많이 추워? 이불 더 가져다 줄까?" "옆에 누우면 안돼?" "어..?" 당황한 변백현의 손을 잡아 끌자 엉거주춤하게 내 이불 속으로 들어온다. 아, 좋다. 내가 변백현의 허리를 끌어 안으며 가슴팍에 이마를 부비자 변백현은 일직선으로 굳어버려 내 머리만 만지작거리다 어깨를 감싸 안았다. 얼른 자라며 등을 토닥이는 손길에 몸이 나른해져왔다. 백현아, 몇 달 동안 생각해봤는데.. "너 없으면, 좀 허전할 것 같아." "이제 살만한가 보네, 말도 잘하고. 얼른 자." "아니, 백현아. 어제 니가 한 말.."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계속 친구할테니까 얼른 눈 감아." 한 손으로 내 눈을 억지로 감기며 변백현이 씁쓸하게 웃는다. 답답해진 내가 손을 치워내고선 변백현의 눈을 마주하자 이내 눈을 피해버린다. 아니, 나도 니가 좋은 것 같은데. 잠도 많은 애가 새벽 3시에 달려와 안절부절 못하는 것도, 내 어깨를 제대로 감싸지도 못하고 굳어 있는 것도, 내가 혹시나 거절할까 미리 선수치고 눈을 꼭 감아버린 것도. 내 눈을 폭 가렸다가 다시 이불속으로 집어 넣으려는 변백현의 손을 꽉 잡았다. 눈을 슬쩍 뜬 변백현이 피익 웃으며 손을 잡은 채로 이불 속에 넣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눈치 못 채면 어떡해. 에라이 모르겠다하고 손가락 사이사이에 내 손을 꾸겨넣어 깍지를 껴버렸다. 괜히 부끄러워져 이번엔 내가 먼저 눈을 감았다. 눈 뜨면 쟤랑 눈 마주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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