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하였다.
처음 본 순간... 그대를 雪花 라 일컬으니 너는 내게 스며들어와 하얀 '눈꽃' 이 되었다.
자신을 향해 악을 쓰며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김재호를 바라보던 선월은 동정 하나 생기지 않은 듯한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마주 할 뿐이었다.
무슨 연유인지... 저리도 모질고 독한 사내가 왜 눈물을 흘리는지... 선월은 궁금하지 않았다.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정신을 잃은 금옥의 상태만이 걱정 될 뿐이었다.
그에게서 시선을 거둔 선월은 열이 오르려는듯 뜨거워지는 금옥의 뺨을 쓸어내리고는 꽉 깨문 이 사이로 차가운 말을 내뱉었다.
"그만 돌아가시지요. 더이상은 마주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눈빛조차 던지지 않은채 차디찬 말을 쏟아내는 여인의 말에 그는 눈물로 범벅이 된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었다.
눈앞의 여인은... 자신이 그리워하는 이가 아님을 김재호도 잘 알고 있었다.
하나, 처음 본 그날.
자신을 바라보는 선월의 눈빛에 김재호는 뭔가에 홀린듯 이끌리고 말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초연을 그리워하다 만들어낸 환상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떠난 이를 그리워하며 오랜 시간을 방황하던 그에게 선월의 존재는 어떤 이유에서든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선월을 보고 있으면... 그 고운 얼굴에 자신을 두고 말없이 떠나간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 화가 날때도 있었다.
감정없는 두 눈을 매섭게 떠올리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모습에 삐뚤어진 자신의
인생을 탓하고 훔쳐보는것만 같아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느샌가 편안해져서...
이 감정이 초연을 향했던 마음과 같은지는 알 수 없었으나, 김재호는 선월을 보면 안정을 되찾았다.
여전히 시선을 거둔채 자신을 보기 원치 않는다는 선월의 말에 김재호는 뺨에 흘러내린 눈물을 추스리고
선월과 금옥을 지나쳐 천천히 숲길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고는... 차분해진 어조로 선월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절대... 말없이 사라지지마라. 또다시 그런다면...이렇게 끝내진 않을 것이다."
"...나으리!"
협박을 가하는 그의 언행에 선월은 힘주어 그를 불렀으나 김재호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채 숲길 어두운 곳으로 사라져갔다.
그의 뒷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선월은 그가 완전히 사라지고나서야 안도감에 작게 한숨을 내어쉬고
바닥에 쓰러져있는 금옥을 안아들었다.
얼마나 모질게 여인을 대했는지 퉁퉁 부은 모습에 흙이 잔뜩 묻은 얼굴을 닦아내던 그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따스한 물을 적신 수건을 들어 입가에 말라붙은 핏자국을 조심히 닦아내자 금옥이 눈썹을 찡그리며 헛소리를 내뱉는다.
살려달라 애원하며 끙끙거리는 그 목소리에 가슴이 미어져...선월은 입술만 깨물었다.
얼굴 이곳 저곳과 흙이 묻은 손을 꼼꼼히 닦아내던 선월은 차갑게 식은 물을 갈으려 몸을 일으켰다.
물이 담긴 바가지와 젖은 수건을 챙겨들고 목채 건물 밖으로 발을 내딛자 어느새 성큼 다가온 겨울 바람에 그의 몸이 움츠러든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땅에 발을 내딛어 부엌으로 향하려던 그가 불빛 아래 흔들리는 누군가의 인기척에 곧 걸음을 멈춰섰다.
"거기..누구십니까?"
놀란 마음에 조용히 묻는 선월의 목소리에 누군가 자신을 향해 몸을 돌려세운다.
그러고는 다정히 불러오는 자신의 이름 하나에 선월은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 마른 입술 사이로 작은 신음이 터져나왔다.
"설화..."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선 반가운 얼굴에... 감출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얼마나 그리웠는지... 얼마나 보고팠는지...
수없이 그리던 그의 모습에 젖은 수건을 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쏟아냈다.
입술을 꼭 깨물고 간신히 울음을 참으려는 여인의 모습에 마주 서있던 남자가 놀란 표정과 함께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찌 그러십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던겁니까."
입술 사이를 비집고 새어나오는 여인의 울음소리에 쑨양은 살며시 설화의 손목을 잡고 아래로 내렸다.
화장기 하나 없는 맑은 얼굴에 얼룩진 눈물.
...그의 가슴이 턱- 하고 막혀온다.
"아닙니다...반가워서...너무 반가워서..."
눈물과 함께 쏟아지는 설화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림과 동시에 쑨양의 가슴으로 따뜻한 무언가가 닿아왔다.
손에 들린 바가지를 힘없이 바닥에 떨구고 안겨오는 여인의 몸에 쑨양은 너무 놀라 그대로 얼어버렸다.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쏟아내는 설화를 어찌해야할까... 멀뚱히 서있던 쑨양은 천천히 팔을 들어
등을 다정하게 토닥여주고 자신에게로 가까이 당겨 안았다.
자신의 옷자락을 쥐고 서럽게 우는 여인의 눈물에.. 그 자신도 가슴이 먹먹해져 두 눈을 지그시 내리감는다.
금옥의 헝클어진 머리를 조심히 매만져주고 퉁퉁 부은 얼굴을 정성스럽게 쓰다듬는 여인의 손길을 한없이 바라보던
그가 설화를 향해 조심히 입을 열었다.
"혹...그자입니까."
조심히 물어오는 그의 질문에 설화는 대답 대신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였다.
그러고는 마른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모른척 해주셔요.. 이건 제가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어두워진 표정으로 묵묵히 금옥의 상태만 살피는 설화를 향한 시선을 거둔채 쑨양은 조금 전, 숲길에서 마주쳤던
낯선 남자를 떠올렸다.
짙은 그늘을 가진 차가운 인상의 남자였다.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었지만 쑨양은 쉽게 떠올리지 못했다.
도포자락을 날리며 자신과 잠시 눈을 마주쳤던 그는 곧 시선을 거두고 어두운 길 한가운데로 사라졌다.
잠시였지만... 그 눈빛이 서늘하고 차가워 쑨양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이와 설화가 엮여 있다면.............
불빛 아래 은은하게 드러난 여인의 옆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미처 가리지 못한 얼굴 상처에 시선을 두었다.
처음보다는 호전되어 많이 흐려졌지만 그 상처를 볼때마다 그의 가슴이 따끔거렸다.
얼굴 상처와 오늘 여주인의 일이 한 사람의 짓이라면 더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천천히 손을 들어 여인의 뺨에 손끝을 가져다대자 설화가 흠칫..하며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젠 좀 괜찮아지셨습니까."
다정하게 물어오는 그의 목소리에 설화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어보이곤 자신의 뺨에 머물어 있는 그의 손을 마주잡았다.
"그리 바라보시면 제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오늘은 분칠도 하지 못하였는데..."
그의 손을 두루마기자락 위에 살포시 놓아두고 고개를 돌리려하자 쑨양은 급히 손을 뻗어 다시 여인의 손을 잡았다.
"그래도... 고우십니다."
".........!........."
처음 만났던 날만 해도 부끄러워 자신을 마주하지 못했던 사내가 맞는가 싶은 생각이 들어 설화는 동그래진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여전히 얼굴은 붉어졌지만... 쑥쓰럽거나 곤란할때 보이는 이마 긁적이기는 여전했지만...
어느 날 부터인가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는 그의 모습에 설화는 몹시 기뻤다.
하나, 그럴때마다 자신의 처지가 떠올라서.. 솔직히 말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한켠으로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저의 거짓 없는 모습을 알게 되신다해도... 지금처럼... 다정하게 웃어주시겠습니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그를 향한 질문만이 설화의 입속에 맴돈다.
그 일이 있은 후, 금옥은 얼굴 상처때문에 당분간 대화방에 나오지 못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받은 여인이... 마치 자신때문에 그리 된 것 같아서 선월은 금옥을 대신해 대화방 일을 도맡아했다.
그 밤 이후로도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김재호는 선월을 찾아왔다.
예전처럼 협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강제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으나 그를 마주보고 있는 것 자체가 선월은 피곤하고 불편했다.
그저 옆에만 있어 달라 부탁하는 그의 말에 술도 따라주지 않고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날 이후로 며칠을 보이지 않는 다른 이 때문에 선월은 신경이 곤두서 남을 돌아볼 처지도 아니었다.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모르나 높은 신분의 사람이기에 바쁘겠거니 생각했지만 때가 되면 나타나던 이가 보이질 않으니
한편으론 섭섭해지기도 했다.
김재호가 돌아가고 난 후, 목채 건물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 선월은 바람에 흔들리는 불빛 아래에 몸을 웅크리고 서서
인적 하나 없는 숲길을 바라보며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흔들리는 호롱불 아래 서책을 넘기던 쑨양은 자신을 부르는 하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문 밖에 서있는 두개의 그림자.
하인의 옆에 서있는 그림자 하나에 멈칫했던 그가 곧 누군가를 떠올리고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들라하십시오."
차가운 바람과 함께 방안으로 들어선 반가운 얼굴에 쑨양은 활짝 웃어보였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정중히 인사를 해보이는 그에게 쑨양은 앉으라 손짓을 해보이곤 읽던 서책을 덮어 옆으로 밀어두었다.
"나는 잘 지내었다."
"신관이 좋아보이십니다."
"그래, 장린. 너는 어떠하였느냐?"
"저도 잘 지냈습니다."
그의 대답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보인 쑨양은 품속에 깊이 담아 가지고 온 듯한 편지를 꺼내는 그의 모습에
곧 표정을 굳혔다.
"황제께서 보내신 서찰입니다."
조심히 건네오는 편지를 받아든 쑨양은 그안의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까지 내게 시간이 주어졌느냐."
"보름 후에는 돌아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보름이라..."
미간을 찌푸린채 뭔가 고민을 하던 쑨양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이곤 멀리 떨어져 앉아 있는 장린에게
가까이 다가오라 손짓을 해보였다.
"내 너에게 부탁을 할 것이 있다."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찾아내야 할 사람이 있다. 그에 대해 알아와라."
다정한 눈빛은 어느새 사라지고 날카로운 빛을 뿜어내는 그의 눈빛에 장린은 깊이 고개를 숙여보이고 몸을 일으켰다.
"내가 청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까지.. 알아내야한다."
"예."
정중히 인사를 해보이고 돌아서 나가는 장린을 지켜보는 그의 눈빛이 매섭게 빛난다.
***
안녕하세요~흰둥이입니다!
오늘 쑨양 분량!!! 맘에 드셨습니까? ㅎㅎㅎ
요즘 들어 느끼는건데...
쑨환 글이 없네요...별로 없어요...이럴수가..
글쓰는 저까지 기운이 쪽...빠지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작가님들 다 어디 가신 겝니까...
인티포털에도 잘 안올라오고..왠지 슬프네요.
'설화'를 끝으로 저도 떠나야하나 봅니다ㅎ
이제 코트를 입고 다녀야 할 정도로 엄청 추워졌어요.
옷 따숩게 입고 다니세요~
늘 재밌게 읽어주시고...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해요~
달아주시는 응원의 글에 힘을 냅니다♡
다음이야기로 다시 만나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