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하였다.
처음 본 순간... 그대를 雪花 라 일컬으니 너는 내게 스며들어와 하얀 '눈꽃' 이 되었다.
서안 위에 놓인 노란 비단 보자기만 하염없이 바라보던 쑨양은 손을 뻗어 곱게 묶인 매듭을 풀어냈다.
그 안에 가지런히 놓인 고운 색감의 저고리와 치마.
일을 가지러 온 사내의 누이 솜씨가 그리 좋다고 비단 가게 주인의 칭찬이 자자하더니만 잘 모르는 그가 보기에도 제법 훌륭한 솜씨였다.
저고리에 수놓아져 있는 하얀 꽃잎을 손끝으로 매만지는 쑨양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오르며 설화의 모습과 겹쳐져 왠지 쑥쓰러운 기분이 든다.
그나저나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어야 했는데 관청에 다녀오는동안 두고 간 터라 하인을 통해서 품삯만 전해주었다.
쑨양은 손끝에 매달린 저고리를 다시 잘 개어 치마 위에 포개어 놓고 보자기로 꼼꼼히 싸맸다.
해가 떨어졌으니 설화에게 가 볼 참이었다.
선물을 받고 기뻐할 여인의 모습이 궁금해 보자기를 챙기는 쑨양의 마음이 급해진다.
쌀쌀한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방 밖을 나선 그는 누마루에 걸터 앉아 목화를 신고 비단 보자기를 챙겨들었다.
인기척 하나 없는 마당을 휘- 한번 둘러보고 급히 걸음을 옮기던 그가 마당 한구석에서 불쑥 튀어 나온 하인때문에
화들짝 놀라 걸음을 멈춰섰다.
도대체 매번 저 구석에서 무엇을 하는지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쑨양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니, 대체 거기서 무얼 하시길래 매번 저를 놀래키시오?"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서려던 그가 괜시레 가슴이 찔려 하인을 나무랬다.
"아니..저는 그저..."
"제발 갑자기 좀 나오지 마시오. 이게 몇번째인지..."
고개를 조아리고 그의 투덜거림을 묵묵히 듣던 하인이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입술을 꿈질거리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에 그를 바라보는 쑨양의 짙은 눈썹이 꿈틀댄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소?"
"...저....음...이번이 두번째인데... 오늘까지 두번 밖에 안 그랬는데......"
손가락까지 두개 펼쳐보이며 억울하다는 듯 조심스럽게 내뱉는 하인의 반박에 쑨양의 얼굴이 민망함으로 빨개진다.
그러다가 그의 손에 들린 노란 비단 보자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하인의 시선에 쑨양은 재빨리 보자기를 뒤로 감추었다.
"이 한밤중에 또 어딜 그리 급히 가시는겝니까? 제가 따라 나설깝쇼...?"
얼굴에 희미한 웃음꽃을 피우고 묻는 하인의 말에 쑨양은 손을 크게 내저어보이고는 그를 지나쳐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허~참! 혼자 갈 수 있소. 오늘도 그냥 먼저 주무시오!"
붉어진 뺨을 쓸어내리며 급히 대문 밖을 나서려던 그가 자신의 뒤를 쫒는 하인의 발소리에 미간을 찡그리며 휙- 돌아섰다.
"혼자 갈 수 있으니 따라오지 마시오."
"아니..저는 그저 문을 닫으려고.."
전혀 따라갈 마음도 없었다는 듯 대문을 붙들고서서 다녀오시라 인사를 건네는 하인의 말에 그의 붉어진 뺨에 이어 귀까지 발갛게 물든다.
흠흠- 헛기침을 하며 잰걸음으로 멀어져가는 그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하인은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삼켰다.
나으리가 청나라에서 사신으로 온 이후로 이 집에서 몇달을 함께 지내었다.
늘 관청 업무 아니면 궁에 들어가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집에서 책을 보는 일이 다였던 그에게 새로운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술도 잘 마시지 않던 이가 새벽녘에 들어오지를 않나... 요 며칠전에는 사람까지 불러다 여인의 옷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까지 하다니.
샌님인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얼굴이 훤하게 잘생기어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계집아이 하나가 그를 보는 재미에 일한다 하였는데,
요즘은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다보니 자주 볼 수 없어 섭섭해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무슨 일이 생기었나 했더니..여인이라니.
사람은 참..알다가도 모르고, 두고 봐야 할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저 훤~한 인물에 어떤 여인에게 빠진 것일까 하인은 늘 궁금했다.
길 한 가운데 어둠속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나으리의 뒷 모습을 쫒으며 하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오늘은 언제쯤 오시려나.."
경대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가채를 매만지던 설화는 모란실로 가까워져오는 걸음소리에 곧 손을 멈추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한동안 듣지 못했던 낯익은 목소리에 설화가 입구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반가운것도 잠시,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라 그가 다가와 앞에 앉을때까지 설화는 인사 한마디를 못한채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것인지 한껏 들뜬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바라보다 그의 손에 고이 들린
노란 비단 보자기를 발견하고 가슴이 따끔거려와 얼른 눈을 돌렸다.
"오랜만입니다. 한데, 어찌 얼굴이..."
피곤해보이는 설화의 안색을 살피며 걱정하는 그의 모습에 설화는 그제서야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요즘 통 잠을 청하지 못하여서..저는 괜찮습니다."
설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쑨양은 잔을 챙기려는 설화의 손을 제지했다.
"여주인에게도 말하였습니다. 오늘은 술 생각이 없어 잠시 얼굴만 보고 돌아갈것입니다."
"어찌...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겝니까?"
"아닙니다."
긴 대답 대신 웃어보이는 그의 표정에 설화는 더는 묻지 않았다.
차라도 드시라 권했지만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 답한 그는 자신의 옆에 가지런히 놓인 노란 비단 보자기를 들어 탁자 위에 올렸다.
"이것을 드리러 온 터라.. 받아주시겠습니까?"
"................"
아침까지만 해도 자신의 품에 안겨있던 보자기를 바라보는 설화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애써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무어냐 묻자 쑨양은 설화의 앞에 보자기를 밀어두었다.
치마 위에 살포시 올려 두었던 손을 움직여 매듭을 풀어내자 고운 색감의 저고리와 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며칠을 밤새워 정성스럽게 만든 옷.
그가 자신에게 줄 것임을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그에게서 직접 받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저고리에 새겨진 하얀 꽃잎을 매만지는 여인의 손길이 다정하다.
"저에게 주시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비단을 보고 설화, 그대가 생각이 나서..."
쑥쓰럽게 웃으며 이마를 긁적이는 그의 모습에 설화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빙그레 웃어보였다.
"전에 가지고 오셨던 약과도 그렇고.. 요즈음 나으리께선 진정 꽃밖에 보이질 않으신가 봅니다."
환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여인의 말에 쑨양은 잠시 대답을 주저하는가 싶더니 곧 입을 열었다.
"꽃을 보면... 설화, 그대가 생각이 나는 것이겠지요."
다정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여인은 가슴이 뛰어 어찌 할줄을 몰랐다.
[어찌 이리도 변하셨단 말입니까.
처음 뵈었던 그 날만 하여도 제 눈조차 바라보지 못하셨던 나으리셨는데...
어찌 이런 다정한 눈빛으로 저를 다독이신단 말입니까.
나으리의 따스한 눈빛에 제 가슴이 떨리고.. 또, 무너집니다.
나중에 어찌되든,
나중에 모든 걸 알고 떠나신다 해도,
지금은 행복해하여도 되겠습니까.
그 웃음에 답하여도 되겠습니까.]
설화를 대신해 저고리를 개어 보자기에 정성스럽게 싸매는 그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눈가에 맺힌 눈물 한방울에
그 모르게 급히 닦아내었다.
어느새 곱게 매듭을 묶어 자신에게 내미는 그의 손에서 보자기를 받아들고 설화는 정말 행복하게 웃어보였다.
그 웃음이 너무 고와 여인을 바라보는 쑨양의 눈빛이 행복감에 물든다.
"선월!!!!!!!!"
모란실로 가까워지는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금옥의 다급한 목소리.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서는 여인의 모습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시선을 거둔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금옥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연유인지 탁자 앞에 앉아 있는 설화의 손목을 다짜고짜 쥐고 일으켜 세우려는 여인의 행동에 설화가 깜짝 놀라
눈을 커다랗게 떠올렸다.
"무슨 일이오! 왜이리 호들갑이오?!"
"지금 당장 도망가야 하오! 누가 고했는지 포도청에서 우릴 잡으러 온다 하오! 얼른 일어나시오!"
불법 장사를 누군가 알렸는지 포졸들이 이곳에 들이닥친다는 금옥의 말에 설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에게 잡힌다면 자신의 정체가 탄로나는건 시간 문제일 것이다.
놀란 얼굴로 금옥의 손에 붙들려 몸을 일으키던 설화는 자신의 반대쪽 손을 쥐는 나으리의 손길에 커다래진 눈으로 멈춰섰다.
"여주인께서는 다른 이들을 챙겨 도망가십시오. 이 여인은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금옥의 대답을 들을새도 없이 설화의 손을 꼭 쥔 쑨양은 그대로 모란실을 빠져나가 어두운 숲 길 어딘가로 급히 내달렸다.
저 멀리서 숲 길을 따라 일렁이는 횃불의 행렬에 설화는 공포감이 밀려와 자신의 손을 쥔 그의 따스한 손을 꼭 잡았다.
그 손길에 급한 걸음을 내딛던 그가 여인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확고한 표정으로 다독이는 그의 모습에 설화는 마주 고개를 끄덕여보이곤 그의 손에 의지해 어두운 숲 속 어딘가로 몸을 숨겼다.
***
안녕하세요~흰둥이입니다~
주말 내내 일과 약속이 끊이질 않아서 이제서야 왔어요.
혹, 많이 기다리셨다면..죄송합니다...ㅠㅁㅠ
오늘 쑨양 메인 사진!!
강한 남자의 눈빛!! 뙇!!
귀여운 사진 밖에 없어서 헐...이랬는데..있군요ㅎㅎㅎ
역시..남자다잉~
벌써 2시가 넘었네요..
긴 이야기 대신 굿나이 인사하고 갈께요~
실은 저도 졸려서...=_=~~~*
모두 모두 좋은 꿈 꾸시고요~!
재밌게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굿 밤? 굿 새벽~!!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