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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청년 사이

 

 

4.

 

 

 백현이 신경질적으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두 시간짜리 강의 동안 꺼 두었던 휴대전화는 모르는 사람의 메시지로 한가득 뒤덮여 있었다. 끝없이 울려대는 진동에 자꾸 주변 눈치가 보여 휴대전화를 아예 꺼 버렸더니 이런 사단이 난 거다. 별 의미 없는 '뭐 해요?'가 대부분인 메시지창을 주욱 내린 백현이 꾸역꾸역 손가락을 움직였다. 안 그래도 개강을 하자마자 밀려드는 피로에 진이 빠질 지경이었는데 이건 또 무슨 시련인가.

 

 

 「누구세요?」

 

 

 마음 같아선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이나며 욕이라도 한 바가지 뱉어 내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배짱이 백현에겐 조금 부족했다. 백현과 달리 두 시간 가까이 메시지창만 바라보고 있었는지 상대는 빠르게 답장을 보내왔다.

 

 

 「누구게요.」

 

 

 아아, 욕 하고 싶다……. 백현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런데 어쩐지 메시지에 낯익은 목소리가 겹쳐졌다. 이런 유치한 짓을 할 사람이, 더군다나 인정하기 조금 민망하지만 저에게 이렇게나 집착 아닌 집착을 보일 만한 사람이, 지금 백현이 알기로는 제 주변에 단 한 명뿐이었다.

 

 

 「박찬열?」

 「박찬열? 그건 또 누구야? 그새 나말고 다른 사람 생겼어요?」

 「장난 그만 하고.」

 

 

 백현이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장난 아닌데. 나 누군지 몰라요?」

 「박찬열 아니야?」

 「글쎄 박찬열이 누군데요.」

 

 

 멍하니 휴대전화를 보며 백현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진짜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자 괜히 겹쳐졌던 찬열의 목소리가 조금 흐릿해지는 것도 같았다.

 

 

 「죄송해요. 누구세요?」

 「찬열이요.」

 

 

 아아, 진짜 욕 하고 싶다……. 백현의 입에서 끊일 줄 모르는 긴 한숨이 흘렀다. 백현이 찬열을 어떻게 혼낼까 고민하느라 잠시 답장을 미룬 사이, 찬열에게선 전화가 이어졌다.

 

 

 "……여보세요."

 「제 번호 저장했어요?」

 "내가 네 번호 저장을 왜 해."

 「나는 형 번호 저장했으니까.」

 

 

 백현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주말도 아니고 학원도 아닌데 찬열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고 있다니. 딱딱한 전공 수업을 들으며 한 차례 지친 몸이 바닥까지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다. 

 

 

 "내 번호는 어디서 알았는데?"

 「그건 정보 제공자의 안전을 위해 말할 수 없…….」

 "헛소리 그만 하고."

 「아아, 형도 얼른 내 번호 저장해요. 알았죠?」

 

 

 백현의 발이 느릿느릿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하필 에스컬레이터까지 고장이었다. 계단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다리에 모래 주머니라도 단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싫어, 너 보나마나 매일 이렇게 귀찮게 굴 거잖아."

 「귀찮아요? 와, 상처다.」

 

 

 전혀 그렇지 않은 목소리로 상처 받았다고 말하는 찬열에 백현이 작게 코웃음을 쳤다. 

 

 

 "근데 너 지금 학교에 있을 시간 아니야?"

 「쉬는 시간.」

 "너 두 시간 동안 나한테 문자 계속 보냈잖아."

 「아, 그건-.」

 "이거 봐라. 공부 안 하지?"

 

 

 찬열이 헤헤, 하고 멍청한 소리를 내며 웃는 게 백현의 귀를 타고 전해졌다. 그게 또 답지 않게 좀 귀여워서, 백현은 저도 모르게 픽 찬열을 따라 웃었다.

 

 

 「형, 왜 웃어요?」

 "내가 언제 웃었다고……."

 「방금 웃었잖아요. 잘못 들었나?」

 "잘못 들었겠지."

 「그런가봐요, 그럼.」

 

 

 찬열이 다시 헤헤 소리를 냈다. 백현은 이번엔 찬열에게 제 웃음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신경 쓰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다 가는 길에 신경을 쓰는 건 깜박 잊었는지,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으아-!"

 「왜,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백현이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주위를 빠르게 휙휙 살폈다. 천만다행히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휴우-."

 「왜! 뭔데! 무슨 일인데요!」

 "별 거 아냐."

 「별 거 아닌데 왜 소리를 질러요! 뭔데요, 네?」

 "그, 그냥……."

 

 

 끙차-. 하고 넘어진 몸을 일으키는 백현의 얼굴이 불그스름했다.

 

 

 "그냥 계단에서 좀 넘어졌어……."

 「계단에서-?」

 

 

 보는 사람 하나 없는데도 백현은 고개를 푹 숙였다. 

 

 

 "웃지 마, 인마. 너랑 통화하다가 넘어졌잖아."

 「웃긴 누가 웃는다고 그래요. 안 다쳤어요? 괜찮아요?」

 "……."

 「아, 왜 말이 없어? 다쳤어요? 아파요?」

 "……아냐, 괜찮아."

 

 

 들려오는 찬열의 목소리에는 정말로 '걱정'이 조금 묻어 있는 것도 같아서 백현은 자꾸만 얼굴로 쏠리려는 피를 꾹 참아 막았다. 그 성격에 당연히 깔깔대며 비웃을 줄 알았더니 이게 무슨 예상치 못한 다정함이람. 그런데 진짜 넘어지며 계단 모서리에 쓸린 무릎이 좀 아픈 것 같기도 했다. 

 

 

 "쓰읍-."

 「왜 그래요? 안 괜찮죠? 다쳤죠?」

 "아, 괜찮다니까. 너 수업 안 들어? 그만 끊자, 언제까지 통화할 건데?"

 「형이 다쳤는데 어떻게 끊어요-.」

 

 

 능구렁이를 열 마리는 더 삶아 먹은 것 같은 찬열의 대사에 백현이 또 한 번 웃음 소리를 냈다. 

 

 

 "어린 게 못 하는 말이 없네."

 「나이 많은 형이 못 하니까 저라도 해야죠.」

 

 

 받아칠 말조차 잊고 백현이 킥킥거렸다. 그 뒤로 수업 시작을 알리는 듯한 학교 종소리가 들렸다. 백현은 아픈 무릎을 조금 돌려 풀며 휴대전화를 고쳐 잡았다.

 

 

 "이제 수업 시간 아니야?"

 「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끊어."

 「형 목소리 더 듣고 싶은데.」

 "소름 돋는다, 야. 얼른 끊자."

 「아아아-.」

 

 

 어린 아이가 엄마를 보채듯 전화 끊길 거부하는 찬열의 목소리에 백현은 다시금 세 살짜리 조카를 떠올렸다.

 

 

 "학교 끝나고 다시 전화해. 받아 줄게."

 「진짜? 그럼 콜.」

 "그래, 그러니까 수업 좀 열심히 듣고-."

 「네, 네, 네.」

 

 

 그렇게 소소한 몇 마디를 더 늘어 놓고서야 겨우 통화가 끊긴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며 백현이 혀로 입술을 축였다. 이젠 진짜 찬열에게 익숙해지기라도 한 건가…….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익숙해졌다기보단 끊일 줄 모르는 찬열의 애정 공세에 반쯤은 포기를 했다는 게 더 그럴싸했다. 물론 애정 공세라는 단어가 많이 간지럽긴 했다. 백현은 머릿속에 톡톡 터지듯 샘솟는 생각들 속에서 느릿느릿 찬열의 번호를 휴대전화에 저장했다. 그리고 멍하니 그 번호를 바라보았다. 박찬열……. 박찬열……. 박찬…….

 

 

 "변백현!"

 

 

 백현이 저를 크게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종대였다.

 

 

 "이제 나오냐?"

 "어어."

 "다리는 왜 절뚝거려? 다쳤어?"

 "계단에서 넘어졌어."

 

 

 백현의 대답에 종대가 배를 부여잡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멀쩡한 다리로 멀쩡한 계단에서 넘어지긴 왜 넘어져?"

 

 

 "말도 마라. 학원에 박찬열 알지? 걔가 어디서 내 번호를 주워 듣고 와서는 전화로 따발따발대는 바람에-."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리는 백현을 보던 종대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이거, 아무래도 제가 찬열에게 백현의 번호를 넘겼다는 사실은 당분간 비밀에 부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너 걔랑 많이 친해졌나보다, 야."

 "그게 어디 친해지고 싶어서 친해진 건가. 걔가 하도 들이대니까……. 아니, 그냥 어쩌다 그렇게 됐어. 친한 거 아냐."

 "아니긴, 맞는데 뭘."

 

 

 종대가 다친 백현을 위해 앉은 의자에서 옆으로 살짝 엉덩이를 옮기며 제 옆을 툭툭 쳤다. 다음 지하철은 아직 한참 멀리에 있는 듯했다. 백현이 의자에 앉으며 별다른 뜻 없이 가벼운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근데 넌 걔 안 무섭냐? 난 내 또래보다 어린 애들이 더 무섭던데. 툭하면 자기 성질 못 이겨서 바락대고."

 "누구? 박찬열?"

 "으응, 학원 애들 얘기하는 거 못 들어 봤어?"

 

 

 백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종대를 바라보았다. 누구의 입을 통해 들은 말뿐 아니라, 백현은 찬열에 대해 아는 게 썩 많지 않았다.  

 

 

 "무슨 말?"

 "그냥 걔 좀 이래저래 멋대로인 애라고. 요즘 애들 다 그렇지, 뭐. 학교도 대충 다니는 것 같던데."

 "……박찬열이?"

 

 

 백현이 이젠 입술까지 동그랗게 말아 호오, 하는 소리를 냈다. 

 

 

 "날라리라고?"

 "그런가봐."

 "에이. 아냐, 야."

 "아니긴-."

 

 

 백현의 입에서 실없는 웃음이 터졌다. 박찬열이? 그 박찬열이 날라리라고? 모범생이라기엔 공부는 좀 안 하는 것 같고 성격도 좀 왁자지껄하긴 하지만, 그럴 아이는 아니었다. 적어도 백현이 아는 찬열은. 

 

 

 "아냐, 아냐. 그냥 자기 친구들끼리 장난 좀 치는 정도겠지-. 그렇게 질 나쁜 애는 아니야."

 "얼마나 알았다고 박찬열 보호자 다 됐네, 이 놈."

 "보호자는 무슨."

 

 

 백현은 지하철이 얼마나 왔나 확인하기 위해 몸을 빼꼼 내밀며 종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쓸린 무릎이 아까보다 조금 더 아픈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찬열이 물을 때 그냥 아프다고 할 걸 그랬나……. 이유 모를 옅은 후회가 백현의 머리에 둥실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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