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아빠 박지훈
혼인신고서쓰러. 혼인신고라는 말에 너무 놀라 잠깐동안 머릿속이 멍해졌다. 난 이 말을 어떻게 받아쳐줘야하는거지. 결국,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냥 실없이 웃기만했다. 박지훈은 그런 나를 백미러로 쳐다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귀엽네. 어? 뭐라고? 귀엽다고. 누가? 성이름, 너. 아니나 다를까 또 얼굴이 빨개졌다. 아니, 근데 아까 우리집 벨 누를때부터 느낀건데, 갑자기 왜 상남자 컨셉인거지? 학교에서는 되게 귀엽고─그래, 귀여운건 귀여운거니까 귀엽다고하겠다─ 말도 잘 듣는거같고─딱히 내가 무얼 시킨 적은 없지만 그냥 흘러가는 상황이 그랬으니까 그냥 말도 잘 들었던걸로하겠다─ 근데 갑자기 왜 박력있는건데. 혼인신고서라니… 아직 엄마한테 말도 못했는데. 너 만났다고.
엄마 생각을 하니, 또 박지훈의 집까지 가는데 박지훈의 부모님이 생각났다. 아, 이걸 지금 물어봐야돼, 말아야돼. 머릿속은 이미 백팔번뇌를 하고도 남았다. 박지훈 눈에도 내가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는 것으로 보였는지, 운전을 하면서도 백미러로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는게 느껴졌다. 무슨 생각해? 라고 물었는데, 할 말이 없었다. 아직 말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어… 라고 뜸만 들이고 있자, 내 생각을 읽은것인지, 정말 정훈이가 눈치가 빠른게 박지훈을 닮아서 그런것인지, 소름돋게 내 생각을 단박에 맞췄다.
" 걱정하지마. 부모님도 아셔. "
" … 뭐? 어떻게? "
" 고등학교때 큰맘먹고 다 말씀드렸어. 나도 그때 나 엄청 혼내실줄알았는데, 아, 혼내긴 혼내셨지. 아무튼, 그러시면서 언제라도 너 만나면 데리고 오래. 애 혼자 얼마나 힘들겠냐고 잘해주신다고. "
" … … "
" 그러니까 내 부모님보다는 네 어머니 뵈는게 우선일거같아. "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박지훈이 이미 말했을줄이야. 한편으로는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박지훈이 그동안 나를 얼마나 찾았는지 알것같아서 미안하기도했다. 그렇게 나혼자 독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내 잘못인것같기도 했다. 그러면서 박지훈은, 그러니까 내 부모님보다는 네 어머니 뵈는게 우선일거같아. 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때 그렇게 친했으니, 박지훈도 우리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신 것을 잘 안다. 원래 말해줄 의향은 없었지만, 어쩌다보니 말실수를 하게됐는데, 그게 아니더라도 박지훈이 워낙 눈치가 빠르다보니 굳이 말하지도 않았어도 알았을거같긴하다.
어느새 다 온것인지─내가 혼자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시간만 말해서 그렇지, 내가 살던 집과 박지훈의 집은 나름 가까웠다─ 박지훈은 능숙한 솜씨로 차를 주차하고, 먼저 차에서 내리려고 할 때, 나도 내리려고 아직 아무것도 모른채 자고있는 정훈이를 안고 내리려고 했는데, 씁- 소리를 내며 박지훈이 눈짓으로 앉아있으라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뒷자석에 앉아있었는데, 트렁크 열리는 소리가 나고, 이어 내가 앉아있는 좌석의 문이 열렸다. 내려, 여보. 힘드니까 정훈이 나한테 주고. 아니, 난 괜찮다고 말하기도 전에 박지훈이 정훈이를 안았다. 캐리어도 끌고, 정훈이도 안으려면 힘들텐데… 박지훈은 차 키 버튼을 눌러 차 문을 잠구고, 내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가자, 우리가 앞으로 살 집.
도대체 이건 무슨 감정인지. 박지훈이 정훈이를 한 손에 안고, 한 손으로는 도어락을 푸는데, 되게 멋있어보였다. 아니, 단순히 멋있는 감정이 아니라 이 남자가 내 남편이라 다행이라는 감정이랄까? 만약 박지훈이 내 남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만약, 학교에서 같이 있는 것을 본 그 여자의 남자였다면, 와, 말이 나오지 않았을거같다. 이렇게 자상한… 자상하고 또 자상한 남자가 내 남편이라니. 박지훈이 현관문을 열자, 집 내부가 보였다. 혼자 살기 딱 좋은 집인거같았다. 엄청 넓지도 않고, 그렇다고 좁지도 않고. 박지훈은 어디로 들어가는건지, 들어갔다가, 정훈이를 놔두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아직 신발을 벗고 있지 않은 나를 보고 얼른 신발 벗고 들어오라고 말했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물론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상황이 익숙하지 않아서 어색했다.
" 떨려? "
" 어? 뭐가? "
" 안 떨리다고 하면 나 좀 서운한데. "
" … 무슨 소리야? "
" 그래도 남자 집인데. 뭐, 부부이긴 하지만. 처음일텐데… "
신발을 벗고, 거실 소파에 앉아 할 것이 없고 분위기가 어색해서 미동도 없이 앉아있자, 박지훈은 그런 나를 보고 떨리냐고 물었다. 항상 말하지만 난 주어가 없으면 잘 알아듣지 못한다고. 이번에도 잘 알아듣지 못해 어? 뭐가? 라고 물어보니, 안 떨리다고 하면 나 좀 서운한데. 라고 말하는 박지훈이다. 아니, 그러니까… 난 너처럼 눈치가 빠르지 않다고! 그래도 남자 집인데. 뭐, 부부이긴 하지만. 처음일텐데… 라고 말했다. 그 말이 이제 이해가가 무슨 말을 해야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박지훈 딴에서는 내가 아무말이 없자 조금 당황한 것인지, 뭐야? 남자 집 가본 적 있어? 라고 물었다. 아니, 당연히 없지. 누구때문에. 남자 집은 무슨. 남자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하지만, 박지훈을 조금 놀리고 싶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 … 진짜야? "
" 응. "
" 가서 뭐했어? "
완전 아연실색이 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데 이것보다 재밌는 것은 없었다. 그냥 정말 갔었냐고 뭉러보고 끝날 줄 알았는데, 예상밖의 질문을 던졌다. 가서 뭐했어? 어? 아니, 정말 간 게 아니라서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하지. 어떻게 해야 박지훈을 더 놀릴 수 있을까. 생각을 너무 열심히 했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 느껴졌다.
" 뭐야, 얼굴은 왜 빨개져. "
" 어? 아니… "
" 나 화날거 같으니까 얼른 말해. 가서 뭐했어? "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졌다. 여기서 장난이라고 말해도 안 믿을거같고, 설령 믿는다고 해도 난 그럼 박지훈을 떠 본 사람이 되는 거고. 아, 볼아. 갑자기 왜 멋대로 빨개져서는… 박지훈의 표정에 '나 화났어요'가 완연하게 보였다. 어떻게 넘겨야하지? 이 상황을 어떻게 넘겨야돼…
" 말 안 하면… "
어떻게 말해야하나 눈알을 굴리고 있을 때, 박지훈이 '말 안 하면' 이라고 말하고, 내 옆으로 쑥 들어왔다. 갑자기 들어오는 바람에 놀라서 눈이 동그랗게 떠지자, 내 입술에 박지훈의 입술이 닿는 느낌이 들었다. 달콤하기도 하고, 뭔가 생경하기도한 느낌이었다. 당황해서 놀라기는 했지만, 그 입술을 떼고싶지는 않았다. 박지훈은 내가 거부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내 양 볼을 잡고 조금 더 깊게 다가왔다. 저의 혀로 나의 입술을 쓸더니, 이내 내게서 떨어졌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 앞으로 어디 못가. "
" … … "
" 내 옆에만 있어. "
──
어젠 어떻게 잤는지 모르게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눈을 떠보니 나는 침실 침대에 누워있었고,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햇살이라. 지금 도대체 몇 시길래… 요일 개념도 없는 나는 오늘이 몇 요일인지,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게 강의에 늦었다는 생각으로 핸드폰을 켜서 날짜를 확인하자, 다행히 토요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정훈이와 박지훈 모두 어디간것인지, 몸을 일으켜 침실을 나오자, 서로에게 공격을 하고 있는 정훈이와 박지훈이 보였다. 그렇게 싸우는 것을 보고있으니, 박지훈이 좋은 아빠인거 같기도하고, 한 편으로는 정훈이 친구인거 같기도 했다. 침실에서 나온 나와 정훈이가 눈이 마주쳐 '어, 엄마 깼다!'라고 외쳤다. 정훈이가 말하는 것을 보고, 박지훈도 뒤를 돌아 정훈이와 같이 내게로 뛰어왔다. 이렇게보니 두 마리 강아지인거 같기도 하고… 박지훈과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올라 또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 엄마, 잘 잤어? "
" 여보, 잘 잤어? "
" 어어, 잘 잤어. 근데 너는 어디서 잔거야? "
둘이 한꺼번에 나한테 달려와 잘잤냐고 물어보는데, 그렇게 잔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 모습에 살풋 웃고는, 박지훈에게 너는 어디서 잔거야? 라고 물었다. 그러자 정훈이와 박지훈은 서로를 쳐다보고 눈빛을 교환하는 거 같았다. 뭐야, 벌써부터 나 왕따시키는거야?
" 어디서 자긴. 여보 옆에서 잤지. "
" … 뭐? "
" 그나저나, 언제까지 나한테 너라고 부를 거야. 난 여보라고 부르는데. "
당황. 또 당황. 또또 당황. 내 옆에서 잤다니. 난 내 잠버릇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넌 잠버릇이 __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고로, 모른다. 잠버릇을. 그런데 내 옆에서 잤다고? 아, 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리고는 박지훈은 토라진 표정을 짓고는 언제까지 '너'라고 부를거냐고 물었다. 아, 호칭 정리에 대해서는 생각해본적 없었다. 그거말고도 여태까지 생각해볼게 산더미였으니까. 막상 박지훈이 이렇게 물어보니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부터 '여보'라는 호칭을 쓰기에는, 너무 오글거렸다. 여보라니.
" 언젠간 부르지 않을까. "
" 강요는 하지 않겠지만, 그 언제가 되도록 빨리였으면 좋겠다. 그치, 정훈아? "
" … 노력해볼게. "
" 그럼 일어났으니까 바톤터치해. 난 아침 준비 할게. 빨리 먹고 가야지, 구청. "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못 부르겠기에 언젠간 부르지 않을까라고 말했더니, 내게는 반협박으로 빨리 부르라는 식으로 들렸다. 그리고는 내게 정훈이와 놀아주라고 하고, 자기는 아침을 준비한다고 했다. 내가 해도 되는데. 라고 말하기도 전에, 박지훈은 앞치마를 둘렀다. 빨리 먹고 가야지, 구청.
+ 여러분.... 저도 얼른 결혼하고 싶어요..... 결혼...
아, 참고로 원래 이 글 10회를 마지막으로 쓰려고 했는데
조금 더 늘어날듯 싶네요. 독자님들 반응이 정말 넘 귀여워서,,
아 맞다 그리고 저 초록글 올라갔어요!!!!!!!!
이번이 두번째!!!!!! 이번엔 저도 봤어요!!!!!!!!!!
[인연] [절편] [돌하르방] [자두] [카레] [유자청] [솦] [수닝][꾸쮸뿌쮸] [현] [나뱅] [지부] [■계란말이■] [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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