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아빠 박지훈
" 엄…마? "
정훈이의 말에 정수정과 나 둘 다 당황해서 눈도 깜빡거리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라가 되었다. 오늘 하루에 몸만 몇 번 굳어지는지.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수정이가 정신차려 아, 정훈이가 계속 엄마랑만 있어서 헷갈렸나보네. 이모지, 이모! 아니, 누난가? 아니, 고모? 이모 맞지? 망했다. 역시, 정수정은 폭로의 아이콘이었다. 정수정이 말을 꺼내 사태가 더 심각해진것같았다. 아니, 거기서 말은 왜 더듬어… 깊은 화남에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조용히 눈만 감고 있었다. 정훈이가 아무리 애어른같아도 지금 상황은 이해가 가지 않았는지 의자에서 내려와 눈 감고 있는 내 등을 토닥거려주며 다시 한 번 엄마 괜찮아? 라고 물었다. 그래… 난 네 엄마지.
──
박지훈이 약속이 있다며 나가고, 상황은 개판이 되었다. 사실, 박지훈이 약속이 있다고 나가는 것도 상황이 상황이 아닌지라 급하게 지어낸 느낌이 없지않아 있었다. 수정이는 내게 미안하다며 설마 정훈이를 내 애로 생각하겠냐며 나를 달랬다. 수정아, 사실 말이야.
개판이 되었던 상황은, 내 말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전부 다 말해버렸다. 그 개자식이 박지훈인것도, 정훈이가 박지훈의 애인것도. 오늘 강의실에서 있었던 일도. 수정이는 충격도 이런 충격이 없다며 머리를 싸맸고, 이어 내게 미안하다며 내 손을 잡았다. 다 자기 탓이라고 마음껏 때려도된다고. 아니, 차라리 때리고 속시원히 털어버리라고. 넌 아무것도 몰랐는데 뭐가 잘못이겠니. 잘못이라면 그때 그런 짓을 한 내 잘못이겠지.
" 그럼 이제 어떡해..? "
" … 뭘 어떡해. 망한거지, 뭐. 걔 여자친구도 있다며. 난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던거야. "
" 아니야, 아닐거야. 여자친구도 그냥 해본 말일수도 있어. 진짜… "
날 너무 걱정해주는 수정이기에 난 정말 괜찮다며 한 번 웃어주고 정훈이를 데리고 카페를 나왔다. 투명한 카페 창을 통해 보이는 수정이는 아직도 아연실색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수정이를 몇 초 간 보고는 얼른 자리를 떴다.
" 정훈아. "
" 응, 엄마. "
" 아까 그 삼촌 말에 왜 고개 끄덕거린거야? "
" … … "
" 엄마한테 말 해주면 안 돼? "
" 삼촌 아니잖아. 정훈이 아빠잖아. "
큰 돌로 머리를 쿵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이 어린 아이가 그걸 알아챈거지? 정수정도 내가 말하기 전까진 눈치 못챘는데. 정훈이는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곧이어, 울먹거리며 말을 이었다. 정훈이… 아빠 보고 싶었는데.. 정훈이는 아빠 알아봤는데.. 아빠는 정훈이 못 알아본거같아… 그 말을 듣고 애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늠조차 가지않아 그냥 정훈이를 꼭 안은 채 뒷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정훈아, 못난 엄마라서 미안해….
──
어제는 그렇게 많은 일이 한꺼번에 지나가고, 수정이는 나한테 아직도 미안한지 학교에 있는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이름아, 오늘 스타벅스 신상 나왔다는데 마시러갈래? 내가 사줄게! 아, 정훈이도 데리고 와!' 라거나, '그냥 우리 집 합칠래? 내가 정훈이 진짜 잘 돌봐줄게! 나 애 완전 좋아해!' 라거나. 내가 듣기에 더 미안한 말만 쏟아냈다.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듣지않는 수정이에게 이제 괜찮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 너 오늘 마지막 교양이지? 너 시간 맞춰서 그쪽으로 갈게. 나 지금 강의있어서. 끝나면 기다려! "
정말 정훈이와 놀아줄 생각이었나보다. 아니, 어쩌면 집을 합치자는 말도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수정이는 평소에도 혼자 살기 외롭다, 친구랑 동거해보고싶다, 너랑 살면 재미있을거같다 등등 별 얘기 다했으니까. 수정이는 강의 시간에 늦은건지 빨리 뛰어갔다. 쟤 웬만하면 안 뛰는데. 이미지 구긴다나 뭐라나… 나는 다음 강의까지 텀이 한 시간 정도 있어서 오랜만에 도서관을 가볼까 싶어 고개를 들었는데, 다섯 발 자국 앞에 박지훈이 서있었다.
" … … "
" 지금 시간 돼? "
" … 아니. "
" 부탁이야. 피하지마. "
처음에 눈을 마주쳤을 때는, 둘 다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또 여기서 피해야하는건가 싶어 잠시동안 머리를 굴리는 중에 어느샌가 박지훈이 내 앞으로 와서 물었다. 지금 시간 돼? 널리고 널린게 시간이었지만, 박지훈과 별로 말을 하고싶지 않아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고 뒤로 돌으려고 할 때, 저번처럼 박지훈은 내 손목을 잡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저번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절대 풀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손을 빼내려고 낑낑대봤지만, 역시나 내 예상대로 박지훈은 풀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
" … 난 할 말도 많고, 묻고 싶은 것도 많은데, 넌 … "
" 난 없어. "
" 그럼 그냥 들어줘. 중간에 생각 바뀌면 너도 말해줬으면 좋겠다. "
박지훈과 단 둘이 있는 건 생각만해도 어색할 것 같고 지난 날의 고생이 떠올라 미치겠기에 오고싶지 않았다. 박지훈은 잠깐이면 된다며, 자기 얘기를 들어주라고 했고, 그래서 결국엔 정수정과 같이 만났던 어제의 그 카페로 왔다. 여기가 문제지, 여기가. 물어볼게 많은데… 대답해주기 싫으면 대답 안 해줘도 돼. 근데, … 해주면 좋겠어.
" 미안해. "
" … … "
" 진짜. 내가 다 미안해. 솔직히, 처음에는 몰랐어. 너가 왜 연락두절이 된 줄 몰랐어. 난 술마시면 그 날 일은 기억 안 나는게 다반사였거든. 근데 그게 남에게 상처를 준 일이라서 그런지 일 주일 뒤 쯤에 생각나더라. 그때 골때린다는 말이 무슨 느낌인지 알겠더라고. 찾고, 또 찾아보고 너희 집에도 매일 찾아갔었는데, 아무 반응이 없어서 이사간 줄 알았어. 정말 이건 못된 말이지만, 난 너가 아이… 지울…줄 알았어. 아무래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직 미성년자니까… 근데 며칠 전부터 학교에서 너랑 닮은 사람이 보이더라? 난 정말 닮은 사람인 줄 알았지. 어떻게 너일거라고 생각하겠어. "
" … … "
" 널 학교에서 몇 번 봤는데, 그때쯤에 과 모임에서 수정이가 너 이름을 알려주더라고. 성이름이라고. 그때 알았지. 아, 맞구나. 그때부터 언제 사과해야하나 기회만 노리고 있었어. 내가 무조건 잘못했으니까. 너가 교양 수업때 내 옆자리에 앉았을때, 솔직히 처음엔 너인줄 몰랐는데, 펜 떨어뜨렸을때 내가 주워줬잖아. 그때 너한테 주면서 손이 닿았는데, 그때 알았지. 아, 이 손은 이름이다. "
" … … "
" 그리고 그때 다 말해주고 싶었는데, 너가 자꾸 나를 피하는게 보였어.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었겠지. 너한테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나쁜놈이니까. 물론 너만큼 힘들진 않았겠지만, 나도 나름 힘들었어. 고등학교때 처음 만났을때부터, 널 좋아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누굴 좋아해봤는데, 갑자기 없어지니까.. 카페 들어갈때도 사실, 정수정 보러 간게 아니라 밖에서 너가 보여서 들어간거였어. 그냥 이끌리는대로 갔는데, 어느새 내가 거기있더라. 그러면서 정수정이 정훈이보고 사촌동생이라고 하는데 그때까지만해도 정말 사촌동생인줄알았어. 난 지웠다고 생각했으니까. "
박지훈이 하는 말을 듣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너무 힘들었다. 외로웠다. 괴로웠다. 무서웠다. 불안했다. 죽고싶었다. 말해봤자 돌아오는 말은 '미안해'라는 말밖에 없을 것 같았다. 다 변명같았다. 부질없는 변명같았다. 내가 정훈이를 지우긴 왜 지워. 내 핏줄인데. 누가 뭐라해도 내 핏줄인데. 넌 아무리 생각이라고 하지만, 그 생각이 그렇게 쉬운가봐? 라고 말했더니, 내 첫마디가 따지는 듯한 말투라서 그런지 박지훈은 하던 말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 쉽냐고. 물었잖아. 난 6년 동안 너가 생각 못 할 정도로 힘들게 살았는데. 넌, 뭐? 여자친구도 있고 아주 행복해 보이더라? 군대도 갔다오셨어, 아주. 그냥 쌩 까. 학교에서 이상한 소문 돌면 안되니까 이미지 메이킹 하려고 나한테 이제와서 미안하다고 하려나본데, 난 소문낼 마음도 없고,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정훈이 혼자 잘 키울수 있으니까 그냥 쌩 까라고. "
" … … "
" … 말, 해.. 아니라고.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해줘… "
속에서 울분이 터져 나도 모르게 별 말이 다 튀어나왔지만, 부정을 하지 않는 박지훈을 보고 괜히 눈물이 나왔다. 처음에는 그냥 눈가만 촉촉하게 차오르나 싶더니, 이내 볼을 타고 주르륵 흐르는 느낌에 서러워 끅끅 소리를 내며 울었다. … 말, 해.. 아니라고.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해줘… 이게, 참. 방금까지만해도 화내던 애가 아니라고 말해주라고 부탁하는걸 보는 박지훈은 어떤 생각을 하고있을까.
" 여자친구… 너야. "
" … … "
" 우리 헤어지자고 한 적 없어. 그냥 잠시 떨어져있었던거 뿐이야. "
" … … "
" 군대도 너때문에 갔다왔어. 혹시 나중에라도 너 볼까봐. 그럼 그거때문에 너한테 다가가는데 걸림돌이 될수도 있으니까. "
" … … "
" 미안해. 진짜, 미안해. 그리고, … "
" … … "
" 아직도 많이 … 좋아해. "
+ 하,,, 오늘 시험 당일,,, 그래도 댓글 반응이 너무 좋아서 이렇게 들고 왔습니다!
근데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쥬........ 나름 구상 많이하고 쓴건데... 헤헤....
궁금하신 점은 댓글로 부탁드리구 암호닉 신청두 댓글로 부탁드려요!
항상 댓글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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