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아빠 박지훈
박지훈의 충격적인 말을 들은지 어언 일주일정도 지났다. 박지훈은 내가 그 말을 하고 난 후, 줄곧 나를 따라다녔다. 예를 들어, 내가 강의시간이 겹쳐 뛰어가야되는 상황이었을때, 어디선가 자전거를 타고와 내가 빌려주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밥을 먹지 못한 것을 어떻게 알고, 집에서 도시락을 손수 싸온 것인지 꽤 그럴싸해보이는 도시락 그릇을 켜켜이 내렸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나와 박지훈이 사귄다는 소문. 워낙 학교 일에 관심이 없어 이런 소문이 도는 줄도 모르고 있었지만, 어제 쯤에 수정이가 대박사건이라며 이 소문을 들고와 알게되었다. 요즘에는 남자랑 여자랑 같이 있기만 하면 사귀는 줄 안다니까..?
" 보고싶어. "
" 안 돼. "
" 왜 안 되는데? "
" … 그냥 안 돼. "
며칠 전부터 박지훈이 정훈이를 보고싶다고 칭얼댔다.─박지훈은 몇 년 간 쌓아온 자신의 잘못을 잊은 것인지 금세 나를 편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내가 박지훈의 마음을 알았고, 정훈이를 보고 싶어 한다는 점도 잘 알겠는데,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요 며칠간 아직 어린 정훈이에게 꽤나 큰 충격을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미 정훈이도 박지훈이 저의 아빠라는 것을 알고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쩌면, 사실, 내가 부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훈이에게도 아빠가 필요하다고 몇 번 생각은 해봤지만, 박지훈이 정훈이의 아빠가 된다면, 우린… 지금 우린 어떤 관계가 되는 걸까. 부부? 라고 하기도 뭐하고. 연인 사이는 더더욱 아니고. 그렇다고 친구도 아니었다. 그 관계의 정의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아직은 아니었다.
" 이름아. "
" 어? "
" 많이 힘들었지? "
" … … 그걸 말이라고 해? "
" … 미안. "
오늘도 도시락을 싸왔다며 나를 붙잡는 박지훈에, 곧 강의가 있다고 끝나고 집가서 먹겠다고 했지만, 내 손을 잡고 놔주지를 않았다.─어느샌가 손목에서 손으로 발전했다─ 계속 대치하고 있을 바에는 그냥 얼른 먹고 강의를 들으러 가는게 낫다고 생각해 학교 안에 있는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꺼냈다. 남자가 만들었다고 하면 놀랄 정도로 깔끔했고, 맛있었다. 사실, 학창시절에도 박지훈이 내게 음식을 해준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는 진짜 맛없었는데. 언제, 어떻게 이렇게 실력을 키운건가 싶었다. 뭐, 학원이라도 다닌건가. 겉으로는 티내지 않으며, 맛있게 먹고있는데 박지훈이 내 이름을 불렀다. 이름아. 입에서 밥을 씹고 있었기 때문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어? 라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밥을 먹고 있는 나를 안으며 많이 힘들었지? 라고 물었다. 갑자기 안아오는 박지훈에 사레가 걸릴뻔했다. 그걸 말이라고 해? 장난스럽게 말했더니, 박지훈이 미소를 살풋 지으며 미안. 이라고 답했다. 어느새 우리는 이렇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사실, 박지훈이 나를 쫓아다닌 일주일 중 하루 이틀, 사흘 반까지는 내가 박지훈을 계속 무시했다. 뭔가, 괘씸하기도 했다. 자기는 그렇게 말만 하면 되나. 처음에는 내 6년은 아무렇지 않다는 뜻으로 받아드렸다. 무시했다고 한 건 좋은 표현이고, 사실,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째려보기도 하고, 박지훈이 기다리라고 해도 수정이와 먼저 가버리고. 그런데, 사람이라는게, 나란 여자라는게, 그래도 고등학교 때 함께 지내며 좋은 일이 있었다고 내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게, 박지훈이 나를 따라다닌지 사흘 반째였다.
" 정훈이 보고싶다 … "
" … 사진 보여줄까? "
" 어! "
도시락을 싸준게 고맙기도 했고, 나를 일주일동안씩이나 따라다닌게 장하기도 해서, 갤러리를 들어가 '내새끼'라고 적힌 폴더를 눌러 박지훈에게 보여주었다. 원래는 내가 핸드폰을 들어 한 두 장만 보여주려고 했던 거였는데, 박지훈이 아예 내 핸드폰을 통째로 들고가서 옆으로 쓱쓱 넘겨보았다. 어, 이거 예쁘다! 무슨 사진이길래 그렇게 해사하게 웃는가 싶어 들여다봤더니, 저 사진이 왜 이 폴더에 있지. 내 사진이었다. 수정이가 한 달 전 쯤인가.. 내가 강의를 들으러 걸어가고 있는데, 그때 딱 든 생각이 내 사진이 자기 핸드폰에 한 장도 없는 거 같다고 바로 카메라를 켜 찍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한테 보내줬는데 왜 이 사진이 여기 저장돼있지.. 조금 부끄럽기도 해서 박지훈에게 그만보라고 손에 들린 핸드폰을 뺏으려고 했지만, 역시 남자라 그런지 뺏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자. "
" 어, 뭐야. "
" 생각해보니까 너 번호도 없어서. "
" … 그럼 없는 채로 살면 되잖아. "
" 넌 애인 번호도 없는 커플 봤어? "
박지훈이 홈 키를 누르고 무언가를 하고는 내게 핸드폰을 건넸다. 저의 번호를 저장한 것이었다. 이름은 '남편' 이라고. 이렇게 똑똑할수가 있나. 남편이라고 하고, 애인이라고 하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마음이 간질거린다고 할까. 이건 내가 박우진을 좋아했을때 느꼈던 감정인거 같은데. 몇 년 전에 느낀 감정이었지만, 워낙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인심써서 내 번호도 박지훈한테 줄까 싶어, 박지훈에게 번호 찍어줄테니까 핸드폰을 줘보라고 했는데, 자기는 이미 저장했단다.
어떻게? 너, 바보지. 너 핸드폰으로 내 번호로 전화하면 나한테 뜨잖아.
생각보다 박지훈은 똑똑했다. 아니, 정말 박지훈 말대로 내가 바보인건가.
──
" 세상 얼굴 밝아보인다. "
" 누구? "
" 너. 성이름, 너요. "
박지훈과 헤어지고 강의를 들으러 강의실에 왔는데, 중간 자리 쯤에서 손을 흔드는 수정이가 보였다. ─안타깝게도 수정이와 같이 듣는 강의는 일주일에 한 번이다 누가 수강신청 광탈을 당하는 바람에─ 반가운 마음에 쪼르르 달려가 수정이 옆에 앉았더니, 수정이는 내 어깨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세상 얼굴 밝아보인다. 주어가 없어 누군지 모르겠기에 누구냐고 물어보자, 왜이렇게 눈치가 없냐는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너. 성이름, 너요. 나? 그래, 너. 몇 번 말해.
" 아니, 딱히… 막 그렇게 좋지는 않고. "
" 잘 돼가? "
" 뭐가? "
" 휴, 그래. 주어 빼고 물어 본 내 잘못이지. 아니, 박지훈이랑요! "
그래, 알아. 나도 내가 눈치 없는거 안다고. 그래서 우리 정훈이는 박지훈을 닮은 거 같아. 수정이가 박지훈과 잘 돼가냐는 말에 얼굴이 붉혀졌다. 헐, 뭐야. 진짜 잘 돼가는 거야? 내게서 이런 반응은 처음이라며 괜히 자기가 더 호들갑을 떨었다.
" 아니, 그게. 막 여기가 이상해. "
" 어떤데? "
" 몰라. 몽글몽글한 거 같기도 하고. 박지훈이 무슨 말 하면 간지럽기도 하고… "
" 너처럼 눈치없는 년은 이세상에 또 없을거야. "
아니, 무슨 자기 마음도 몰라? 너 박지훈 좋아하는 거잖아! 수정이는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치며 말했다. 내가? 좋아한다고? 박지훈을? 아니, 도대체 왜? …박우진에 대한 감정이랑 똑같이 느껴지던게 진짜였던걸까. 순간 멍을 때렸다. 내가 박지훈을 좋아한다라. 박지훈을…
강의 내용이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한 시간 반 내내 내가 진짜 박지훈을 좋아하는 걸까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1학년때 박지훈을 처음 만나고, 우린 무엇을 했는지 되새김질 해보았다.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웃었나보다. 옆에 있던 정수정은 고개를 양옆으로 휘저으며 내게 드디어 미쳤냐고 물었다. 어. 수정아. 나 미쳤나보다. 박지훈한테.
──
정훈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을 갔는데, 왠일인지 정훈이 말고도 아이스크림을 먹고있는 한 아이가 더 남아있었다. 정훈이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지, 그 아이가 먹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계속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정말 먹고싶었나보다 생각하고, 정훈이와 마트를 왔다. 어린이집 바로 앞에 편의점이 있었지만, 편의점은 비싸기도하고, 요새 내가 계속 도시락을 싸주는 박지훈에게 뭐라도 해주려고…
" 정훈아, 치즈를 넣을까, 말… "
" 안녕, 여보. "
" … 박지훈 … "
" 드디어 만났네, 내새끼. "
정훈이에게 먼저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박지훈에게 줄 샌드위치에 치즈를 넣을지, 말지 한참 고민했다. 얘가 치즈를 좋아했던가, 안 좋아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해 정훈이에게 물어보려 뒤를 돈 순간, 바로 앞에 정훈이를 안고 있는 박지훈이 보였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몸이 왜 이렇게 굳었는지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안녕, 여보. 박지훈이 웃으면서 여보라고 하는데, 지금 상황이 딱 장보러 온 부부같았다. 얼굴이 확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빨개지기도 했겠지. 여긴 어떻게 왔나 싶어 박지훈의 이름을 부르자, 박지훈은 안고 있는 정훈이의 볼을 만지며 말했다. 드디어 만났네, 내새끼.
+ 그래 지훈아 이제 합칠 일만 남았다
오늘 시험 끝났는데 세어보니까 삼주뒤에 기말고사더라구요 ㅎㅎㅎ
댓글 사랑해요 여러분 아, 물론 여러분도 사랑하구요.
(p.s. 댓글 진짜 잘 읽고있어요 댓글 읽을때마다 광대승천
여러분이 제가 사는 이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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