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백도] Some Day 05 (부제: 경수의 과거시절은)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c/8/e/c8eca2c5aad44f65200bd8580f80fd2f.jpg)
Some Day:: 05
변백현/도경수
05
'이모. 제 엄마는 어디 계세요?'
경수가 유치원 졸업식 날 집에 가는 길, 이모에게 처음으로 물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엄마가 있는데, 저만 없어요.
이모는 그저 아무 말 없이 경수의 손을 잡고 묵묵히 걷기만 했다.
어린 경수는 이모의 굳은 표정을 보고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궁금했지만 물어봐서는 안되는거라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정적이던 가정이 순식간에 기울었다.
IMF의 여파로 이모부가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을때부터였다.
다시 직장을 구하지 못해 1년이 넘도록 수입이 없었다.
그 흔한 막노동 일자리조차 찾아보기 힘든 시기였다.
그 와중에 쌍둥이 사촌동생까지 태어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만 갔다.
늦은 밤, 거실에서 들려오는 말다툼 소리에 9살의 경수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귀를 막고 이불을 뒤집어써도 잠들수가 없어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한참을 문고리를 붙잡고 고민을 하다가 결국 열지 못하고 문에 기대 주저앉았다.
'쟤 학교 계속 다니게 해야겠어? 정작 우리 애들 분유값도 없어서 이러고 있는데.'
'...여보.'
'그러게 내가 애초에 고아원으로 보내자고 했잖아!'
'또 그소리. 그래도 당신 동생 아들이야. 내가 싫다 해도 당신이 끌어안아야 할 아이라고.'
'누가 내 동생이야! 책임지지도 못할 아이 함부로 싸질러놓는 그딴 되바라진 동생 둔 적 없어.'
방문을 넘어 흘러들어오는 이모의 날 선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어린 경수가 이해하기엔 버거운 이야기였다.
최근들어 이모는 경수에게 눈에띄게 쌀쌀맞아졌다.
언제부터인가 이모는 뒤에서 경수를 돈 잡아먹는 귀신이라고 불렀다.
없는 살림에 아이 하나를 더 뒷바라지 하는게 물론 쉬운일은 아니었지만
이모는 지나치다 싶을만큼 많은 것을 경수 탓으로 돌렸다.
문에 등을 기댄 채 한참이나 이모의 신세 한탄을 듣고 있던 경수가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경수를 싸고도는 남편과 말다툼을 하다가 감정이 북받친 이모가 경수 방으로 들이닥친 것이였다.
'너 전에 니 엄마는 어디있냐고 물었지?'
무서운 표정으로 경수를 내려다보며 묻는 이모의 표정이, 마치 마녀같다고 경수는 생각했다.
겁에 질린 경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니 엄마는 죽었어.'
'여보!'
'니 엄마가 죽어서 우리 가족이 이렇게 됐어.'
놀란 이모부가 황급히 이모를 말렸다.
고개를 숙인 경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경수야, 문 닫고 어서 자라.'
이모부가 경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토닥거렸다.
동시에 경수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죄송해요...'
'경수야.'
'내 엄마가 죽어서 죄송합니다...'
***
열 일곱의 젊은 엄마였다.
그리고 엄마와 경수가 함께 지낸 시간은 뱃속에서의 열 달에 불과했다.
나이가 어려 골반이 다 자라지 않은 상태라 제왕절개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는데
미혼모인 그녀는 큰 병원에 갈만한 경제적 사정이 되지를 못했다.
결국 작은 병원에서 전문의가 아닌 의사에게 수술을 맡겼고
그녀는 그렇게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의사의 과실이었다. 양수가 상처를 통해 폐동맥으로 흘러들어 호흡곤란이 왔다.
경수만이라도 살아난 게 불행중 다행이었다.
그렇게 경수는 눈을 뜨기도 전에 엄마를 잃고 이모 내외의 손에서 키워지게 됐다.
그리고 그 안에서 경수는 나름대로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았다.
이모에게서 엄마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그 날 이후, 경수는 죽도록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때부터 코피를 쏟아가며 공부에 매달렸고 그 결실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눈에 띄게 나타났다.
장학금이란 장학금은 모두 휩쓸었다.
이모부가 다시 직장을 찾아 경제사정이 회복된데다가
경수가 하루가 멀다하고 장학금을 타다 바치는 날이 계속되자
언제부턴가 시작됐던 이모의 구박도 차차 줄어들었다.
이모는 따뜻하진 않았지만 더 이상 차갑지도 않았다.
경수는 그냥 그 정도로 만족했다.
이렇게 살다보면 언젠가는 더 좋은 날이 오겠지 하며 기계처럼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렇게 나름대로 평화롭던 경수의 생활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사람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어느 날, 이모네 가족끼리만 여행을 떠나 경수만 혼자 집에 남아있던 때였다.
경수는 시계 초침 소리만 감도는 적막한 집이 싫었다.
무작정 집을 나와 한강 공원을 찾았다.
강물이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 멍하니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외로웠다. 혼자이기가 싫었다.
공부만 하느라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그리고, 울고있는 경수에게 한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저기요.'
'...'
'왜 울고있어요.'
그게 첫 만남이었다.
경수에게 난생 처음으로 사랑이 찾아왔다.
명문대에서 의학을 전공하는 스물 넷 대학생이었던 그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소중한 애인으로 경수의 곁을 지켰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남자와 남자의 연애는 그야말로 가시방석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때문에 떳떳한 데이트 한번 못해보고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항상 전전긍긍.
그 남자는 그 현실이 경수한테 참 많이 미안했다.
항상 쫓기듯 하는 연애에도 괜찮다고 웃는 경수를 보는게 마음이 아팠다.
얼마 후, 그는 고민 끝에 큰맘먹고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을 감행하게 되고 경수는 그런 그를 끝까지 말렸다.
결과가 눈에 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심을 굽히지 않았고 결과는 예상한대로였다.
커밍아웃을 한 그 날로부터 사회에서 철저히 도태되어지는 그 모습,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는 도를 넘는 손가락질.
그 모든 것을 경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 지옥같은 상황에서 경수를 끝까지 지켰다.
자신의 애인인 경수의 신분을 누구에게도 노출하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그가 모든 불행을 혼자 떠안게 됐다.
결국엔 이별이었다.
둘이 만난지 2년이 채 되지 않아서였다.
그는 쫓기듯 미국 유학을 결정하고 경수는 다시 혼자가 됐다.
원치 않는 갑작스러운 헤어짐에 그는 떠나기 전날 밤 경수를 안고 그렇게 많이 울었었다.
경수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성소수자가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곧 죽음과 마찬가지라는걸.
아픈 기억만 잔뜩 남은 한국을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다.
혹시라도 미국으로 가면 그 남자를 다시 만날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나이에 혼자 미국으로 가는건 마음만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경수에게는 정작 가장 필요한 돈이 없었고 그렇다고 이모에게 손을 벌리는건 더더욱 있을수가 없는 일이었다.
대책 없는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세상은 경수가 힘들어 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3학년 1학기가 시작되면서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새로 만난 담임교사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것이 화근이었다.
그 동안 누군가에게 하소연 하거나 조언을 구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던 경수에게 담임 선생님은 참 반가운 존재였다.
그저 마음을 기댈만한 사람이 필요했던 경수는 고민 끝에 선생님에게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았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처음엔 경수를 이해하며 보듬어 주는 듯 하던 그가 돌변한건 순식간이었다.
간 크게도 경수를 비어있는 교사 휴게실로 끌고가 억지로 강간을 시도했다.
다행히 경수가 완강히 저항을 한 덕에 삽입 전 미수에서 그쳤지만 경수는 또 다시 지울수 없는 상처를 입게됐다.
그 후 도망치듯 전학온 낯선 학교에서 하필 또 변백현같은 놈한테 걸릴줄 상상이나 했을까.
겉으로는 무시하고 신경 쓰지 않는 척 했지만 경수는 분명 많이 힘들고 아팠다.
경수는 억지로 견뎌냈다.
이러다 말겠지, 또 이러다 말겠지.
몹쓸말, 몹쓸짓 다 참아내고 무시하면 나에게 그만 흥미를 잃겠지.
그렇게 한참을 견뎌내다가 깨달았다.
백현에게서 벗어나는게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는걸.
한달 두달 지나며 백현을 몸소 겪어보고 나서야 든 생각이었다.
무시할수록 더 미쳐 날뛰는 백현을 보며 경수는 마음을 바꿔먹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반응을 원하는 백현에게 그 원하는 것을 주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백현에겐 일종의 목표 달성이 된 셈이니 이제 그만 흥미를 잃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다.
일단 그렇게 백현을 상대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경수는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한꺼번에 북받쳐 올랐다.
하필 또 그런 상태에서 백현이 모욕적인 말을 던지니 경수도 자기 자신이 제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 넌 니 애비 보고도 꼴리냐?'
그 말 듣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냅다 뺨 날리고 사실은 본인도 조금 놀랐었다.
후폭풍은 예상한 만큼이었다.
분명 죽도록 맞겠지 생각했는데 정말로 죽도록 맞았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서 경수는 진심으로 바랬다.
이제 그만 나를 내버려둬 주기를.
그만, 제발 그만해주기를.
***
경수도 정말 다사다난한 유년시절을 보냈어요.... 부쨩한 경수...
아 그리고 이건 참고로!
혹시 헷갈리시는 분들 있을까봐 말해드립니당
경수랑 백현이는 현재 고3 열 아홉살의 9월에 있습니다.
경수가 전학을 온건 고3 초반 3월이에요!
지난편 댓글에 예전에 제가 풀던 썰 기억해주시는 분들 반가워요ㅠㅠㅠ
그때도 이 필명으로 연재했던거 맞아요 헝헝
♥사랑해요암호닉♥
쌀이
경꼴이
귀때기짱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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