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다. 어젯밤 팀장님의 전화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반쯤 눈을 뜨고 비몽사몽 버스에서 내려 회사 입구로 걸어가는데 익숙한 차 한 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온다. 저 차가 누구 차였드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차를 주시하니 그 차에서 내린건 다름아닌 팀장님이다. 숙취 때문에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는 팀장님은 아침햇살에 인상을 잔뜩 구기며 눈을 비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그만 풉 하고 웃어버렸다. 어제는 그리도 보기 싫은 팀장님이었는데 금세 또다시 팀장님이 좋아져 버린다. 놀래켜 주고 싶은 마음에 뒤에서 살금살금 다가가 팀장님! 하고 부르니 놀랐는지 눈이 커져서 휙 돌아본다.
"놀랐잖아." "흐흐흐..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반가워서 그만." "올라가자. 후, 머리아파"
내게 올라가자며 먼저 걸음을 뗀 팀장님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른다. 아마 어제 마신 술 때문일거다. 어제 생각을 하니 내게 전화해 말한건 무슨 뜻일까. 정말 나 때문에 선을 파토낸거면 날 좋아하는건가. 궁금해졌다.
"저... 팀장님" "응 왜." "어제 말이예요..." "어제?" "네. 저한테 전화하셨잖아요!" "그랬던가, 기억이 잘 안나네." "...네!!?? 그럼 어제 저한테 했던 말도 기억 안나요?" "음.. 응. 머리 울리니까 그만 좀 말해." "진짜 안나요? 진짜, 정말??"
이게 뭐야. 기억이 안난다고? 그럼 어제 나한테 했던 말은 뭐가 되는걸까. 그저 술에 취해 말한게 되는걸까? 기억이 안난다는데 물어볼수도 없다. 날 좋아하는게 아니냐고 물어보고 싶은 말이 그저 입안에서 맴돈다.
곁에서 정신없이 왔다갔다 계속 물어보니 팀장님이 '까분다'라며 내 이마에 딱 밤을 놓았다. 너무 아파 이마를 감싸 쥐고 끙끙대고 있는데 어느새 엘리베이터에 탄 팀장님이 '안타?' 라며 웃고 있다. 씩씩대며 엘리베이터에 타자 팀장님이 '봐봐'하며 내 이마를 들여다본다.
"엄살은" "엄살 아니거든요! 진짜 아파요!" "많이 아프냐?" "... 완전요!"
내가 아프다며 칭얼거리니 팀장님이 엄지손으로 내 이마를 쓰다듬어준다.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팀장님 냄새가 진하게 났다. 시원하면서도 은은하달까. 딱 팀장님 냄새같다. 팀장님의 손길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런 나를 보고는 팀장님은 '맞아도 좋댄다.'라며 어이없어한다. 그래도 좋은걸 어떡해. 팀장님이 너무너무 좋다.
"막내 이리 와봐" "네" "이 자료, 자료실에 더 있나 조금 찾아봐 줄래?" "아, 네. 다녀오겠습니다."
하루가 금새 흘러갔다. 벌써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는 오후. 부 팀장님 심부름으로 자료실에 내려갔다. 자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람이 많이 없는 듯 조용하다. 이 자료가 또 어디있지. 느릿하게 천천히 자료들을 훑어보며 찾는데 아뿔싸, 찾는 자료가 내 손에 닿지 않는 너무 높은 곳에 있다. 이걸 어쩐담. 난감해진 내가 몇 번 뛰어봤지만 도무지 손에 닿지 않아 부 팀장님을 부르려 뒤를 돈 순간 내 시야가 캄캄해졌다. 원래대로라면 책장이 내 눈앞에 보여야하지만 내 눈앞에 있는건 가슴팍이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그 가슴팍의 주인공은 팀장님. 깜짝놀라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자 내가 찾는 서류를 꺼내주던 팀장님이 시선을 내리깔아 나와 눈을 마주친다.
"자." "아, 감사합니다."
팀장님은 서류를 내게 건네주고 나서도 내 가까이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나를 빤히 쳐다보는 팀장님. 당황스러워 조심스레 팀장님? 하고 불렀다.
"붕어" "ㄴ, 네?" "어제" "...." "전화한 거" "...." "기억나" "....네?" "다 기억난다고. 술 취해서 헛튼 소리 한거 아니라고."
팀장님은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자료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내 생각이 맞았다. 팀장님은 날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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