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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그 시간, 우리.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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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어지자. '
감은 눈을 떴다. 시야는 여전히 캄캄했다. 몸에 닿는 기온이 찼다. 팔을 괸 체 몸을 더욱 웅크렸다.
나를 괴롭히는 잔인한 몽마.
그에게선 흑연 냄새가 난다.
계절은 여전히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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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야!!! 000! "
쿵쿵 울리는 현관문 너머로 수정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 너, 안에 있지? 맞지! 제발, 나와, 응? 아니, 대답이라도 좀 해, 제발! "
" 너 이대로 영영 나 안볼거야? 사람들 안만날거야? 오세훈 그깟 새끼가 뭐가 그렇게 대단한 새끼라고 네가 이래. 00아. 제발...언제까지 마냥 집 안에서 그러고만 있을거야. "
바닥에 잔뜩 흐트러진 머리칼이 마치, 나를 잠식하는 마귀같다. 캄캄한 어둠속으로, 숨도 쉴 수 없게끔, 거침없이.
잠시,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문 너머로, 수정이 길게 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 그래, 나도 이젠 진짜 모르겠다. 네 마음대로해! ...진짜, 나쁜년. "
복도 멀리, 구두소리가 멀어져갔다. 다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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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앉아봐. '
' 여기? '
' 응, 거기. '
이젤 너머로 흑색 연필을 든 세훈이, 어정쩡하게 의자에 앉아 있는 00을 보며 옅게 미소지었다. 실습실 창 밖에서 봄 내음을 가득 담은 바람이 잔잔하게 불어왔다.
약하게 흩날리는 앞머리,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00을 한동한 응시하던 세훈이 자세를 고쳐잡고, 이젤 위로 손을 옮겼다. 사각사각. 정적이 흘렀다. 집중하는 듯, 잔뜩 찌푸려진
세훈의 미간을 바라보며, 00는 꾸욱 눌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고개를 든 세훈과 눈이 마주쳤다. 허공에 맞닿은 시선, 실습실은 여전히 조용했다.
세훈이, 쥐고 있던 연필을 내려놓았다. 의자가 끌리는 소리와 함께 세훈이 몸을 일으켰다. 이젤을 지나쳐, 앉아있는 00에게로 다가온 세훈이 무릎을 접어 00와 시선을 마주
했다.
' 000. '
' ...왜? '
' 입 맞춰도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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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 눈을 떴다. 공허함. 00는 몸을 잔뜩 웅크렸다. 이내,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한다.
텅 빈 집안, 서러운 울음소리만 가득 울렸다.
3년의 연애와 끝. 너와의 기억은 지독하리만치 잔인한 추억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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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들려 있는 쓰레기 봉투를 고쳐 잡았다. 탁한 회색의 가디건은 한 겨울의 추위를 막아내기엔 턱 없이 모자르다. 대낮은 너무 밝아서, 집안에 커튼을 쳤다. 날이 밝으면
기분은 더욱 서러워진다. 소각장 옆의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패트병과 스티로폼. 하나 하나 분리수거를 하던 00의 손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갈 길 잃은
유리병이 방황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손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 커다란 손이 00의 손에 들려있던 유리병을 조심스레 빼어냈다. 흠칫 놀란 00이 고개를 돌렸다.
" 유리병은 여기. "
남자를 쳐다보던 00이 작게 ' 감사합니다. ' 라고 말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 분리수거 까지 끝내고, 00은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등 뒤로, 남자의 시선이 자신을 좇는
것이 느껴졌다. 이내, 이어진 다급한 발자국 소리.
" 저기, "
00의 어깨가 돌려졌다. 남자는 자신이 마주한 여자의 얼굴을 응시했다. 무표정한 얼굴. 그녀는, 마치 그녀가 입은 가디건 만큼이나 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 이 날씨에, 그렇게만 입고 다니면 감기걸려요. "
남자가, 재빠르게 자기가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냈다. 벗어낸 외투를 00에게 두르려던 찰나, 00가 남자를 약하게 밀쳐내고는 몸을 뺐다.
" 아...놀랬죠. 미안해요. "
" ....... "
" 그냥, 그렇게 입고 다니면, 감기 걸린다고.. "
" ...무슨 상관이예요. "
" ...놀랬다면, 정말 미안해요. 그런데, 직업병이라. "
" ....... "
" 의사거든요. 그래서 누가 아프거나 아프게 되는건 싫어요. "
" ........ "
" 그리고 그 쪽은 더 싫을 것 같아요. "
" ......... "
" 매번 이 시간에 분리수거 하죠? "
" ......어떻게... "
" 난 자주 봤는데, 그쪽. "
" ........... "
" 섭섭하다. 나 맨날 그쪽이랑 같이 분리수거 했는데. "
" ........... "
" 이주 전에, 옆집에 새로 이사온 김민석이예요. "
" ........... "
" 그 쪽은, 00씨. 맞죠? 하도 많이 친구분께서 불러대서 알게 된 거니까, 오해하지는 말구요. "
00이 시선을 올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하이얀 얼굴, 치켜 올라간 눈꼬리. 입을 열 때마다 자동으로 지어지는 개구진 미소. 그리고, 자신에 대해 알고있는 남자.
00가 입술을 약하게 물었다. 이내, 등을 돌렸다. 어설프게 00의 어깨에 걸쳐져 있던 민석의 외투가 볼품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민석은 자신의 외투를 한번, 멀어져가는
00의 뒷모습을 한번 쳐다보았다. 허리를 굽혀 외투를 줍는 찰나, 00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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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베이터에서 내린 00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담배냄새.
걸음을 반대로 옮긴 00이 엘레베이터 옆 비상계단의 문을 열어젖혔다. 위층으로 이어진 계단이 눈 앞에 보이고, 머리 위로
주홍빛 비상등이 켜졌다. 그리고 계단에 앉아 있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 손에 타들어가는 담배를 쥔 남자가 눈꺼풀을 내리 깔아, 00를 응시했다.
" 복도에, 담배냄새 나요. "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몇 번이고, 담배를 입가로 갖다대고는 탁한 연기를 뿜어냈다.
" 복도에 담배냄새 난다구요. "
후우. 길게 한번 연기를 뱉어낸 남자가, 손에 들려있던 개비를 계단에 지져 뭉그러뜨렸다. 몸을 일으킨 남자가 자신의 바지를 툭툭 털어내고는 00를 쳐다보았다.
" 그래서? "
" 아파트 안에서는 금연인거 몰라요? 담배 피실거면 밖에 나가서 펴요. 냄새나니까. "
싫은데. 남자가 고개를 기울였다.
" 11층 살아? "
" .......... "
" 난 12층. "
" 그럼 12층 계단에서 피세요. 다른 층에 냄새 풍기지 마시구요. "
" 싫은데. "
남자가 짖궂게 웃었다.
" 우리층에 냄새나잖아. "
" .......... "
" 나도 담배냄새는 싫거든. "
이상한 남자다. 검은 머리, 검은 셔츠, 검은 바지를 입은 이상한 남자. 00는 등을 돌려 비상구 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닫히는 문 사이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또 봐. 앞으로 여기서 담배 자주 필거니까. "
코 끝에 쌉싸름한 담배향이 머물렀다.
남자는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짐승 같았다.
00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두통이 찾아온 듯 머리가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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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진짜 진짜 정말루 오랜만에 찾아온 리버입니다.
개인적 사정으로 오랜 시간 인티를 못했었는데, 간만에 찾아온 글이 진득하리만치 음울한 글이라..ㅎㅎ 데둉해요.
제가 없는 동안에도 여러 독자님들께서 헤시우를 잊지 않고 읽어주시고, 글 남겨주시고 하셨더라구요. 정말 감동했어요.
완결도 못내고 말도 없이 사라지게 된 터라, 마음에 걸리고 죄송한 마음이 정말 컸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죠. 그래서, 사실은 저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헤시우의 연재에 대해서도요.
독자님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전..정말 모르겠네요. 답답하기도 하고, 그냥, 한이를 생각하다보면 마음이 정말 아파요.
헤시우에서 그려졌던 한이도, 현실의 한이처럼 많이 괴롭고, 지치고, 힘들고. 그렇게 그려졌던 터라, 더욱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일단은, 음, 무책임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와서 이런 무책임한 말들만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당분간은 ' 그 겨울' 로 글을 이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독하게 우울한 여자주인공을 써보고 싶었는데.. 여주의 감정선을 이어가기에는 제 필력이 너무 딸리는 것 같아서
글쓰는 내내 답답하구, 오랜만에 글쓰는터라 또 몇시간을 붙들고 있었던건지 ㅠㅠ ... 독자님들께서 지루하게 느끼시면 어떡하지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연재해보겠습니다.
여러분 오랜만이예요 ㅠㅠ 보고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