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틀요괴 18
"동동 아가야, 주네까지 쫓아낸 걸 보니
아마도 아가는 인간세계가 많이 재미진 모양이구나?"
요괴할매는 평소 자상하지만 말에 뼈가 있습니다.
웃느라 휘어진 눈매 안에는 차가운 회색빛 눈동자가 있지요.
나는 대답을 않고 조용히 눈을 아래로 깔았습니다.
요괴할매와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내 속마음을 읽힐까봐서요.
"네 보틀을 아무렇게나 버려뒀더구나."
"그건...제가 미처 찾아내질 못해서...."
"간수를 못 했단 거로군."
"......."
요괴할매의 말에 나는 벌벌 떨며 시선을 밑으로 깔았습니다.
평소 많이 따르는 분이지만, 저 단호한 말에 대응할 엄두가 나지 않아요.
겨울의 찬바람이 지붕 위 상공을 휘돌았습니다.
찬바람 소리가 마치 할매의 으름장의 메아리 같기도 합니다.
한복 치마의 펄럭임이 할매의 위엄을 더해주는 것 같습니다.
"네가 인간과 정으로 얽혀 눌러 앉아있다고,
주네가 내게 그리 보고하더구나."
"......."
"쓸데없이 인간에게 정을 나눈게야?"
그제서야 주네와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주네를 그대로 쫓아버린 걸 후회했어요.
주네에 대한 원망이 커지자, 죽여버릴걸,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제가 주네를 해코지할 능력도 되지 않는다마는.
"아가는 더이상 할 말이 없겠...."
"인간을 사랑해요."
"무어야?"
"제가 인간을 사랑한다고요!!"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저 말이 뭐라고 눈물이 날 것 같은지,
나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어 눈물을 참았습니다.
할매는 한치도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로 날 노려봤습니다.
나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머릿속에 집주인을 떠올렸습니다.
식기세척기 사건날 절 위해 울어주기까지 하고
비가 철철 내리는 밤에 저를 찾아다닌 집주인을요.
시크한 척은 있는 대로 하는 집주인이지만 저는 다 알아요.
집주인도 저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한다는 사실이요.
"제가 그 사람을 좋아해요."
"......."
"사랑한단 말이에요. 그러니 돌아가기 싫어요.
아니, 그 사람을 두고 갈 수도 없어요."
사랑한다고요. 사랑한단 말이에요.
맘속으로 외다보면 텔레파시처럼 집주인에게 전해지지 않을까,
내가 그녀를 사랑하노라, 속으로 주문을 외우듯 곱씹었습니다.
훌쩍거리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저를 할매가 노려봤습니다.
요괴할매는 흠- 하며 얼마간 생각하는 듯 하더니
한결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말투로 내게 말했습니다.
"네 보틀은 이 할미가 주워서 요괴세계로 보내뒀다."
"고맙습니다...."
"허나, 아가!! 이 말이 곧 무슨 뜻인지 아느냐?
네가 당장 요괴세계로 돌아와야 한다는 말이다!!
영물 없이 인간세계에 오래 있으면 결국 소멸돼버린다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아...."
요괴할매의 말은 마치 최후의 통첩과도 같았습니다.
제가 위의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인간세계로 오기 전에 모두 숙지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동안 현실 도피를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집주인만 바라보면서 다 잊으려 했던 제 잘못이에요.
"오늘 밤에 이 할미가 네 인간의 집 앞에 요괴문을 열어놓으마.
넌 오늘 밤 그 문을 통해서 돌아오도록 하여라.
오늘 밤을 놓치면 넌 존재의 소멸만을 기다려야 해."
요괴할매는 그 말을 끝으로 연기가 되어 사라졌습니다.
할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저는 지붕 위에 떨어졌습니다.
위이잉- 하는 바람소리가 마치 할매의 메아리 같아요.
저를 옭아맵니다.
제가 출구를 찾는 방법은 바보같게도 지극히 일방적이에요.
나는 이대로 집주인에게 돌아갈 자격이 있는지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어떤 선택도 내리지 못할 것 같은 내 무능력에 진저리가 납니다.
집주인에게 가는 것도, 요괴 문으로 가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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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 예체능은 세륜이지라......☆★
늦은데다가 분량도 똥인거 죄송해서 구독료는 0.
암호닉 받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