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바라기
‘ 내 연락, 기다렸어? ’
아니야. 속으로 같은 단어만을 계속해서 되뇌다시피 하던 별빛은 재환의 손에 들려있는 제 핸드폰을 잽싸게 빼앗아 들었다. 재환의 물음에 대한 답은 들려줄 수 없다는 듯이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어 보인 별빛은 제 손 안에 쥐어져있는 핸드폰을 다시는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겠다는듯이 손 안 가득 힘주어 쥔 채로 핸드폰 액정만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섣부른 오기였을까. 액정에 비친 제 얼굴이 괜히 못나 보여 별빛은 그대로 고개를 수그렸다. 이 감정을 뭐라 해야 할까.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발 끝이 걸려 끝도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끌려들어간 기분이 드는 별빛이었다. 언니, 그리고 재환을 생각할 때마다 매일 수천 번을. 그래서 지금 제 자신이 더 못나보였다.
별빛의 단호한 고갯짓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된 모양인지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슬며시 끌어올려 남모르게 웃고 있던 재환은 별빛이 고개를 숙이자마자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새빨간 유리컵을 들어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눈으로는 액정에 비친 못난 자신을 담고 있던 별빛은 소리에 이끌리다시피 한 상태로 재환의 행동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다가 발소리가 점차 멀리서 들려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세상이 떠나갈 법한 한숨을 내쉬었다.
고양이 앞의 쥐가 따로 없으리라.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는 고양이였고, 별빛은 쥐였다. 그것도 빠져나갈 길이 없는 궁지에 내몰린 쥐. 재환은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저 단순하게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궁지에 몰린 그녀가 두려움에 떨다가 결국에는 제 스스로를 못 이겨내고 끝내 발악하는 것을 보기 위해. 그래서 재환은 어떠한 일이 있다 해도 별빛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 즐거움을 끝까지 지켜보고, 저 혼자 만끽하기 위해서.
*
재환이 건네준 꿀물을 마시고 난 뒤에도 별빛이 듣기로는 헛소리임이 분명한 말만을 계속 하던 그녀의 언니는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나서야 재환의 품에 안기다시피 한 채로 제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서 두 사람만의 시간을 보낼까 싶어 제 욕심임을 알면서도 뒤따라가 방문을 살짝 열어둔 별빛은 재환이 침대 위에 언니를 눕힌 뒤에 이불을 덮어주고는 한참을 옆에 가만히 서있기만 하는 것을 얼핏 보고는 방문 옆으로 비스듬히 비껴 섰다.
저런 건 보면 안 돼, 괜히 마음만 아파. 아무도 듣지 못할 정도로 조그맣게 중얼거리던 별빛은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벌써부터 방 안의 상황이 궁금해져 다시 들여다보려다가 이내 제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자위하고는 언니 방 맞은 편에 자리한 제 방 앞으로 걸음을 옮겨 섰다. 그러자 원치 않았음에도 언니의 방 안, 모든 일들이 별빛의 시야에 한가득 들어왔다. 조금 전 별빛이 들여다봤던 때와 다를 바 없이 여전히 침대 옆에 서서 언니를 내려다보고 있던 재환은 혹여나 제 발소리에 언니가 깰까 발걸음 소리마저도 죽여가며 조심스럽게 걸어나와 방 문마저 큰 소리가 나지 않게끔 손잡이를 최대한 옆으로 돌려 소리를 죽인 뒤에 닫았다.
그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 방문 앞에 서서 저도 모르게 팔짱을 낀 채로 지켜보던 별빛은 언니를 소중히 대하려 애쓰는 재환의 행동 하나하나가 죄다 마음에 들지 않아 인상을 썼다. 언니를 향한 재환의 조심스러운 행동들은 별빛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고, 그건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 집에 안 가요? ”
피곤한 모양인지 한 손을 들어 뒷목을 주무르다시피 하고 있던 재환은 별빛의 퉁명스러운 물음에 그제서야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눈에 봐도 심술이 나도 단단히 난 듯한 별빛의 표정에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걸 참아낸 재환은 거실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소파를 턱짓으로 가리켰고, 재환의 턱짓을 따라 시선을 옮겨가던 별빛은 그 끝에 자리한 소파를 보고나서야 재환의 의중을 깨닫고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 설마, 아니죠? ”
“ 맞다면? ”
“ …미쳤어요? ”
“ 진작에 미쳤었지. ”
재환의 대답에 대꾸할만한 말이 없어 입을 다물고 있던 별빛은 그래도 안되겠다는 생각에 뭐라도 말하려 입술을 떼었다가 다시금 굳세게 다물었다. 여자 둘만 살고 있는 집 안에서 자고 가겠다니. 별빛의 입장에서는 전혀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고, 그런 상황이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 많이 늦었잖아. ”
“ 택시 타고 가면 되잖아요. ”
“ 나도 그러고 싶긴 한데 네 언니가 마신 술 값으로 돈이 다 나가서 말이야. ”
미친 년. 방 안에서 자고 있을 언니를 향해 들리지 않을 욕을 하던 별빛은 이런 분노를 안겨준게 재환인지, 언니인지 이제는 짐작도 가지 않아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 시간만 때우다 갈게. ”
“ …마음대로 해요. ”
한숨 섞인 말과 함께 제 어깨를 으쓱해보인 뒤에서야 별빛은 어느 새 무거워진 눈꺼풀을 위해 느릿하게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온 몸을 긴장감 하나로 무장하다시피 하다가 안심을 하고나니 모든 것이 피곤하게만 느껴졌다. 오늘 하루 재환과 함께한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동안 아껴뒀던 체력을 모두 다 써버린 모양인지 몸이 나른하기까지 했다.
자야지, 자자. 마치 큰 상이라도 내리듯이 그렇게 말한 별빛은 제 방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재환에게서 뒤돌아 섰다.
“ 역시, 넌 너무 어려. ”
부엌에서와 같은 상황의 연속이라도 되는걸까. 팔을 뻗어 별빛의 허리에 팔을 감아 제게로 끌어당긴 재환은 별빛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다시피 했다. 문 손잡이에 손을 갖다 대지도 못한 채로 갑작스레 당하고 만 상황에 놀란 별빛이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자, 재환은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낮은 웃음 소리를 여지없이 그녀의 귀 가까이에서 들려주었다.
이 상황이 재미있기라도 한 건가. 별빛이 그런 의문을 가진 채로 제 허리를 속박하고 있는 팔을 풀어내려 하자 그것마저도 흥미로운지 재환은 거칠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를 내다가, 이내 별빛의 귓볼을 이로 아프지 않게끔 잘근잘근 물어오기 시작했다. 당황한 별빛이 몸을 틀어가며 제 품에서 벗어나려 애쓰자 재환은 그녀의 허리를 감싼 팔을 더 깊숙히 제 품으로 들어오게끔 가까이 끌어당기며, 여유로운 다른 한 손으로 별빛의 방으로 들어가는 손잡이를 어렵지 않게 잡고는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돌려 문을 열기에 이르렀다.
“ 분명히 마음대로 하라고 했어. 그치, 별빛아? ”
똥손망손. 따로 독학으로라도 공부를 해야겠어요 ...나아질 생각은 안하고 계속 그 자리를 맴도는 걸 잘 아니까 더 슬프네요 ㅠㅠ
오늘은 글이 조금 많이 짧아요. 끝맺음도 애매하고. 뭔가 비슷한 분위기고, 비슷한 맥락이고 ...울고 싶다.
그나저나 이거 불맠 되면 안되는데. 불맠 글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멈추지. 아. 과거의 나는 뭐하느라 아니어리ㅏㄴ어라ㅣㅓㅈ다ㅣ러ㅣㅏㄴㅇㄹ
그리고 지적이나 충고, 사소한 말씀, 응원 그 외 모든 것 하나하나 늘 감사해요. 부족한 글 항상 읽어주셔서 한 번 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