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은 한꺼번에 듣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한빈이 처소에 들었고, 김내관은 화원이와 방 문 밖에서 책을 찾아 나올 그를 기다렸다. 진환은 옆에서 자기와 같이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었다. 한번도, 본 적이 없던 얼굴이였다. 다시 고개를 돌려 한빈이 부르기만을 기다리던 때에, 조심스레 진환이 그녀에게 물었다.
"처음보는 나인인데, 언제 입궐한 것이냐."
"... 어제, 입궐하였사옵니다."
"이름이,"
'김내관 들거라.'
답을 듣기도 전에, 안에서 자신을 부르는 한빈에 대화는 끝나고 말았다. 여기 있거라. 진환이 화원을 두고 먼저 방에 들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한빈은 진환을 한번 보다 문 쪽을 바라보았다.
"아니 왜 너만 들어오는 것이냐. 그 나인은."
"제가 책을 받아 전해주도록 하려하옵니다."
"... 그러게, 그럼."
고개를 끄덕이며 서랍 안에서 서책을 꺼낸 한빈은 진환에게 그것을 건네었다. 진환이 다시 물러나려 하자, 잠시 멈추라며 진환을 두게했다.
"예, 저하. 또 무엇이..."
"그 나인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 어찌.."
"내 물을 것이 있어 그런 것이니, 얼른 들게하거라."
"... 예, 저하."
아무래도 세자빈과 관련해서 묻고 싶은 게 있었던 듯, 한빈의 명에 진환은 알겠다며 방을 나섰다. 한빈은 손톱끝으로 상을 몇 번 두드리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다시 손을 내리었다. 방 안으로 들어온 나인은 고개를 한껏 숙인 채로 한빈의 앞에 섰다. 한껏 숙인 고개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앉거라."
".. 예, 저하."
예를 갖춰 자신의 앞에 앉은 그녀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엎드려 손을 가지런히 한 모양새만 보일 뿐. 그런 그녀를 보며 한빈은 하나씩 묻기 시작했다.
"빈궁 옆에 있은지는 얼마나 되었느냐."
"... 어제, 입궐하여 마마를 많이 뵈옵진 못했사옵니다."
"어.. 어제 입궐한 것이냐. 그러면 빈궁에 대해 잘은 모르겠구나."
"세자빈마마에 대해 소신 잘 아는 것은 없사오나, 마음이 따뜻하신 분 만은 분명하였사옵니다."
마음이 따뜻하다. 그 말에 한빈은 꽤나 흡족한다는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고개를 끄덕이다 한빈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 화원, 이라 합니다."
화원이라는 말에 잠시 표정이 굳어지던 한빈은 금방 떨려오는 손을 꾹 쥐고 되물었다. ... 다시, 다시 말해보겠느냐.
"... 화원, 이라 하옵니다 저하."
침착하자, 침착해야한다.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일 수도 있는 것 아니더냐. 그 생각으로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 고개를, ... 들어보거라."
한빈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이던 화원은 눈은 아래로 향한 채, 한빈을 마주했다. 차마 자기 신분에 세자의 얼굴을 감히 볼 수는 없었다 느꼈는지 눈은 여전히 아래로 향해있었다. 들어보인 화원의 얼굴은 한빈의 떨리던 손까지 멈추게했다. 그녀, 한 때 정말로 사랑했고 지키고 싶던 그녀가. ... 지금 한빈 앞에서 나인 신분으로 마주하고야 말았다. 그대로 툭, 한빈의 곤룡포 위로 눈물 한방울이 떨어졌다. 화원, 화원아.
"... 화원, 화..화원아."
"..... 저, 저하."
"....... 화원이가 아니느냐. 화원아, 화원아."
상을 돌아 화원 앞으로 다가간 한빈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화원은 놀란 듯 손을 피하려하자, 더욱 세게 끌어잡아 자기와 눈을 맞추게 했다. 눈, 그녀의 눈이 맞다. 언제나 맑았던 그 눈이, 화원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화원은 잡힌 손을 어떻게든 놓으려는 듯 손을 움직였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세게,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 저하, 이러시면 아니되옵.."
"...... 내가, 내가 기억나지 않는 것이냐."
"저하, 소신 오늘 처음 저하를 뵈옵니다."
자신을 처음본다는 말에 한빈은 온 몸의 힘이 풀리는 듯 했다. 나를, 나를 처음 본다니. 우리가 얼마나, .. 얼마나. 한빈은 다시 그녀에게 천천히 기억을 되살릴만한 추억들을 꺼내었다. 정말,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걸까.
".......... 정말, 나를 본 적이 없는 것이냐. 내가 너에게 주었던 반지는 기억하느냐, 너가 좋아하는 분홍빛의 ... 나와 갔던 저자에서 보았던 인형극은 기억하느냐. 같이 갔던 큰 화원은. 정말, 정말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것이냔 말이다."
".. 저하, 송구하오나 저는 저하를 처음 뵈옵니다. 저하께서 말씀하시는 그 모든 것들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결국 기억하지 못했다.
5년 전의 추억들은, 이미 그녀의 기억 속에서 없어진 지 오래인 듯 했다.
"...... 사실 소신 5년 전의 기억이 없사옵니다. 기억하고싶어도, 그러지 못하옵니다."
"또한, ..... 미천한 제가.. 어찌 저하와 그런 추억을 나눌 수 있단 말입니까."
5년 전의 기억이 없다, ... 미천한 내가 어찌 그런 추억을 가질 수 있겠느냐. ... 잠시 실소를 터뜨리던 한빈은 결국엔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놓고야 말았다. 그토록 바라던 화원의 모습은 한빈의 정신을 쏙 빼놓아버렸다.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왜 기억을 잃은건지. 궁금한 것은 너무 많았으나 자신이 지금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차보였다. 한빈은 힘이 다 풀린 채로 이마를 짚었다. 한껏 갈라져버린 목소리로 다시 말문을 열었다. 하나씩, 하나씩 정리해나가야 했다.
"..... 이만.. 나가보거라."
"... 예, 저하..."
"........ 혹,"
"....."
"기억이 나거든, ... 곧바로 내게 오거라. ... 알겠느냐."
"..... 예, 저하."
화원이 방을 나섰고, 곧이어 진환이 들어와 한빈에게 다가갔다. 상에 기대어 이마를 짚은 한빈의 모습은 한없이 지쳐보였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이 그는 위태로워보였다.
"... 저하, 괜찮으신 것입니까."
"........ 잠깐 나가있게. 나중에 부를 터이니."
"... 예, 저하."
걱정된 나머지 뜸들이며 그를 지켜보던 진환은 그의 명에 어쩔 수 없이 방을 나섰다. 진환까지 완전히 나가고나니 한빈은 또 다시 눈물을 보였다. 흐느끼지 않았다. 소리없이, 고요하게. 그렇게 눈물은 한빈의 볼을 타고 턱 끝에서 툭, 툭. 떨어졌다.
'화원아, 나는 말이다. 사람 많은 저자 한 가운데에서도 난 너를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너도, ... 그러하느냐?'
나는 아직도 이렇게, 너가 생생한데. 어찌하여 너는 나를...
'저 또한, 다음 생에 무엇으로 태어나더라도 저하를 곧바로 알아볼 것입니다.
그러니, 저하께서는 만물에 항상 감사드려야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제가 있을지 모르는 것이 아닙니까.'
"... 잊을 수 있단 말이냐."
조선에 별빛이 내린다
"화원이가 늦는 듯 하옵니다."
"곧 오겠지."
늦는 것 같다는 조상궁의 말에 곧 오겠지, 하며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조상궁이 내온 차를 한모금 마셨다. 곧이어 화원이가 들었고, 그녀에게 다시 그 서책을 건네받았다. 서책을 받았음에도 나가지 않고 서있는 것에 왜그러느냐 물으니 화원이는 손을 어찌할 줄을 몰라하며 불안해했다.
"왜, 왜 그러는 것이냐. 저하께서 너에게 호통이라도 치신 것이냐."
"... 그, 그것이 아니오라."
"그러면?"
화원이는 옆에 있던 조상궁 눈치를 보더니 내게 조심스레 부탁했다.
"... 마마께, 마마께만 말씀드리고 싶사옵니다."
그 말에, 조상궁에 고개를 끄덕이니 알겠다며 곧바로 조상궁이 방을 나갔다. 이제 방 안에는 화원과, 나 단 둘 뿐. 다시 차를 한모금 마시고선 불안해 하는 화원이에게 되물었다.
"무슨 일로 그러는 것이냐."
"... 저하께서.."
"저를, 전에 본 적이 있다하셨습니다. 자기가 기억이 안나나며, 눈물까지 보이셨습니다."
"... ... 저하께서... 말이냐."
화원이의 말은 찻잔을 잡은 손을 떨리게 만들었다. 곧 잔을 놓곤 주먹을 꼭 쥐었다. 화원, 그 화원이 정말로... 너였던 것이냐.
"... 화원아."
"예, 마마."
"네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 무엇을 ..."
"너의 5년 전의 기억에 한 사내와 큰 화원에 있었다고 하지 않았더냐."
"... 혹, 그 사내의 모습이."
"... ... 세자저하 같아 보이지 않았느냐."
"어, 어찌 제가 감히 저하와...!"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는 화원의 말에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화원의 얼굴을 아는 자는, 한빈 하나 뿐이다. 그런 그가 화원이를 알아보았고, 또 화원이의 기억 속엔 왕가만 출입할 수 있는 큰화원의 기억이 있는데. ... 이대로라면 분명 그녀는, 이전에 간택되었던 세자빈. 화원이 맞을 것이다.
"... ... 너를 위해 묻는 것이다. 또, 너를 위해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이다."
"... ... 저하를 위해, 또 나를 위해. 이 종묘와 사직을 위해 내가 네게 말하는 것이다."
손은 떨려왔다. 무서웠다. 한빈이 그녀를 알아보았고 또 그녀또한 기억을 되찾는다면, 한빈이 나를 폐출 시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물론 그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두려워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아버지가 그 사건에 휘말리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그녀를 대신해 이 자리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그 화원은 아무나 들 수 없는 곳이다. 오직 왕실의 사람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야."
"......"
"그런 화원에 너가 있었다는 것은, 너도 곧 이 왕실의 사람들이였다는 것 아니더냐."
말해야만 했다. 그녀가 그녀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어야한다 생각했다. 막상 하나씩 말하고나니 내가 폐출이되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저지른 일은 아니더라도 우리 가문이 저지른 일이기에 그 댓가는 내가 받아야한다 생각했다. 화원이는 답하지 못했다. 그저, 그저 혼란스러워했다. 눈가에 가득 고인 눈물을 단 채로 날 보며 고개를 깊게 숙이던 화원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내게 고했다.
"마마, 말씀을 더는 거두어주시옵소서. 제가, 제가 괴롭습니다. 지금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가는 것들이... 너무, 너무 괴롭습니다."
그 울음에 나 또한 터지고 말았다. 화원이 앞으로 다가가 그 아이를 꼭 안았다. 내가 너무 미안해서,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는 것에, 또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미안하다, ... 내가 미안하구나 화원아."
미안해지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갈 수록 점점 머리는 아파왔다. 앞으로가 어떻게 될 지는 두고봐야 아는 일이였다.
화원이가 온전히 기억을 되찾고 나면, 이 아이를 데리고 전하를 뵈러 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5년 전의 사건에 대해 진상을 밝혀야겠다 생각했다. 아무도 못할거라면, 차라리 내가 내 목숨을 내놓고 저지르는게 나을거라 판단했다.
화원이를 꼭 안은채로 우리 둘은 그렇게 눈물을 흘렸다. 화원이는 내게 기대 그저 목놓아 울었다. 그런 화원이를 나는 그저 묵묵히 눈물을 흘리며 등을 토닥이는 것이 전부였다. 그게 내가 지금 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였으니까.
얼마 안있어 화원이가 방을 나가고, 혼자 방 안에 남아 눈을 감았다. 머리가 아프다 못해 아려왔다. 그러다가도 언젠가 중전이 내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녀 생각만으로도 독한 백단향이 풍기는 듯 했다.
'... 사내는 매우 단순하여, 짐승과도 같다 하지요.'
'눈 앞에 미끼가 보이면, ... 다른 것이 보일 리가 있을까요.'
'빈궁은, 그 미끼를.. 그의 눈 앞에 두게 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 미끼를 잡는 순간, 그 짐승은 곧 사냥꾼의 먹이가 될테니까요.'
그 말을 떠올리고 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쩜 그리 잔인할까. 어쩜 그리 독할 수 있을까.
"... 미끼, ... 사냥꾼이라."
조선에 별빛이 내린다
"그 말이 사실이더냐."
"예, 마마. 지금 동궁전에서 나인이 와 고하였사옵니다."
"허, 생각보다 시기가 이르구나. 나는 이렇게 빠른 전개를 원한 것이 아니였거늘."
세자가 화원을 만났다는 소식에 중전은 기뻐 어쩔 줄 몰라했다. 한빈과 빈궁 사이가 점점 가까워지다보니 생각보다 일찍이 화원과 한빈이 마주했던 것이다. 중전은 여전히 붉은 그 입술로 다시 자신의 상궁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서, 세자는 어떠하였느냐."
"그 나인 말로는, 매우 놀라 어쩔 줄 몰라하셨다하옵니다."
"이런 이런, 우리 세자가 많이 놀랐겠구나."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던 중전은 곧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한껏 놀랐을 한빈의 얼굴을 상상하니 꽤나 우스웠다.
'끝까지, ... 어마마마라고 부르지 않는 연유는 무엇입니까.'
'..... 내가 왜 당신을 그리 불러야하는 것 입니까.'
'.......'
'제 어머니는 한 분입니다. 당신이 아니라.'
"... 곧 부르기 싫어도, 부르게 될 것입니다 세자."
'니 년이 정녕 이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이더냐.'
'허, 중전마마. 벌써 그 자리를 내놓을 생각을 하시는 것입니까. 저는 아직, ... 말도 꺼내지 않았는걸요.'
'니가 정녕 내 아들에게 어머니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생각 하는 것이냔 말이다!!!'
'… … 내가 당신한테 곧, 중전 소리를 듣게 되듯이.'
'니 아들놈도 내게,'
'곧, 나를 어머니라 부르겠지.'
당신 어머니도, 그러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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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52 입니다! 요 며칠 잠을 제대로 못잤더니 그동안 너무 피곤했나봐요 ㅠㅠ 어제 낮에 머리만 뉘고 있는데 그대로 곯아떨어졌지 뭐에요 ...ㅋㅋ 16편 올리는 것도 깜빡하고 쿨쿨 잘만 잤습니다 (이마짚) 그러다 눈 퉁퉁 부어서는 늦게나마 이렇게 슉슉 올리게 됐어요ㅠㅠ 여러분! 잠은 푹 주무세요. 저처럼 판다눈 되지 마시구요. (흙) 더불어, 초록글 또한 너무 감사드립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 이 감동만 주시는 독자님들께 제가 해드릴 수 있는거라곤 아마 열심히 연재하는 것 말곤 없겠죠?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감사드립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제 사랑 몽땅 가지세요!♡ 암호닉! (암호닉은 항상 받고 있어요! 댓글로 남겨주시면 됩니다) 초록프글 님 ♡ 뀰지난 님 ♡ 달빛 님 ♡ 몰랑이 님 ♡ 별 님 ♡ 초코 님 ♡ 김밥빈 님 ♡ 부릉부릉 님 ♡ 설렘 님 ♡ 으앜 님 ♡ 022 님 ♡ 0618 님 ♡ 설렁 님 ♡ 자몽에이드 님 ♡ 구사이다 님 ♡ beeeye 님 ♡ 올라프 님 ♡ 마그마 님 ♡ 한빈이이겨라 님 ♡ 괴물 님 ♡ 꾸주네 님 ♡ 뿌요를 개로피자 님 ♡ 핫초코 님 ♡ 5959 님 ♡ 징징이 님 ♡ 박하사탕 님 ♡ 뽀로로 님 ♡ 부끄럼 님 ♡ 들레 님 ♡ 까까 님 ♡ 룰레룰레룰 님 ♡ 구치명 님 ♡ YG의공주 님 ♡ 파랑짹잭이 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