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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몸에 힘이 들어갔다.
얼른 고개를 돌려 옆을 봤지만 당연히 민윤기는 없었다.
몸을 일으켜 집안 온 곳을 뒤져봤지만 민윤기의 흔적이라곤 찾아 볼 수도 없었다.
이젠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사과도 못 하고 끝나는 건가 싶은 허탈감 만이 들었다.
난 현실성 없는 아주 작은 희망을 가지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널 보내더라도 미안하다는 말은 꼭 해주고 보낼 거야.
혹시나 집 밖에 있진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휴대폰과 지갑을 챙겨 신발을 신었다.
신발을 다 신고 고개를 드니 민윤기가 항상 누워있던 쇼파가 눈에 들어왔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민윤기가 돌아 올 수도 있으니
그가 올 거라고 믿으니 쪽지를 남겼다.
'가지마'
볼펜의 잉크가 눈물 때문에 번졌다.
운 거 티내면 안 되는데. 울지 말라고 했는데.
큼직 큼직하게 쓴 쪽지를 쇼파 위에 올려두고 집을 나왔다.
새벽공기는 꽤나 차가웠다.
솔직히 민윤기가 있을 거란 생각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몇십 분을 돌아다녔지만 기적은 나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정처없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민윤기의 말이 떠올랐다
'내 소원? 음, 소원은 아니고...
되면 한강 가보고 싶어.
서울 올라와서 한 번도 한강을 안 가봤거든.'
내 발걸음은 자연스레 한강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거리가 아주 먼데도 택시를 탈 생각도 하지 않았고
공기가 추워도 따뜻한 곳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한 가지 든 생각이 있다면
지금 흐르고 있는 눈물이 언제 쯤 마를까.
라는 생각.
한강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오전 9시가 다 돼갔다.
나는 쓰러지다 싶이 벤치에 앉았다.
멍한 정신을 깨니 내 꼴은 거지 같았다.
너무 오래 걸어서 떨리는 다리에
많이 울어서 퉁퉁 부은 눈,
추운 새벽 공기에 오래 노출 되어 새파래진 입술.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불쌍했다.
그제서야 눈에 흐르던 눈물을 닦고 눈에도 안정을 취했다.
지금 민윤기는 뭘 하고 있을까.
진짜 완전히 이 세상을 떠나 버렸을까.
내가 남긴 쪽지는 봤을까.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 날 흔드는 느낌이 든다.
"아가씨, 아가씨!"
낯선 목소리에 눈을 떴고 눈 앞에 보이는 건 처음보는 아저씨였다.
"아유, 여기서 자면 어떡해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얼른 집에 들어가. 응? 몸도 차가운 거 보니 꽤 오래 있었구만"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려고 목소리를 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난 감사하다는 말 대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다행히 아침이 되면서 온도가 올라간 탓에 몸은 새벽보다 더 따뜻했다.
아저씨가 가고 휴대폰을 보니 시간은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상태였고
전정국에게 부재중 10통이 넘게 와 있었다.
'왜 전화했어'
문자를 보내고 몇 초 지나지 않고 바로 답이 왔다.
'너 지금 어디야 집에도 없고'
'전화는 왜 안 받아'
'지금 태형 선배 너 찾고 난리났어'
'어제 둘이 싸웠어?'
'존나 화난 거 같은데'
'일단 빨리 태형 선배 병원으로 와'
연달아오는 전정국의 문자는 충분히 날 당황시켰다.
택시를 타기 위해 벤치에서 일어섰다.
허벅지에서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너무 오래 걸어서 근육통도 왔나 보다.
그냥 만신창이네 아주.
난 무거운 몸을 이끌고 근처 편의점에서 물을 사고 목을 축였다.
차가운 물을 마셔서 그런지 느낌이 썩 좋진 않았지만
목소리가 다시 나오기에 꾹 참고 한 병을 다 마셨다.
다행히 출근 시간이 아니라서 택시가 쉽게 잡혔고 가는 길도 빨랐다.
병원에서 한강이 그렇게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요금이 만원을 넘었을 때 그제서야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만원 뿐이라는 걸 떠올렸다.
난 전정국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들고 밑으로 내려 와 달라고 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기계는 2만원을 가르키고있었다.
전정국에게 돈을 받아 아저씨에게 돈을 건넸다.
"아가씨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울지마요.
얼굴도 예쁘게 생겼는데 울면 남자친구가 싫어합니다?"
아저씨는 전정국을 힐끗 보며 나에게 말했다.
"아.. 네.."
아저씨의 한 마디가 마음 깊이 다가왔다.
차에서 내리자 전정국은 내 꼴을 보고 버럭 화를 냈다.
"김탄소 너 뭐하다 왔길래 꼴이 이래!
너 미쳤어? 어디 있다가 온 건데!"
"나중에 말해줄게.."
"나중은 무슨 나중이야!
너랑 태형선배랑 오늘 왜 이렇냐.
진짜 둘이 싸웠어?
아니, 그렇다고 외박은 왜 하냐!"
"정국아 제발 좀.. 나 머리 울려... 나중에 다 말해준다고. 어?"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처음 짜증을 낸 거라 전정국은 많이 놀란 눈치였다.
동시에 화가 난 표정도 보였다.
그래, 화가 날 만도 하지. 놀라기도 할 거고.
전정국과 나는 태형 선배의 병실로 가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근육통이 와서 조금씩 비틀거리는 내 걸음을 눈치 챘는지
정국이는 내 팔을 잡아줬다.
그런 정국이에게도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병실 문 앞에 도착하니 작게 태형 선배의 언성이 들렸다.
"김탄소 왜 안 오냐고 씨발!!"
이 때 이 순간만큼은 다른 병원보다 방음이 잘 돼있는 병원의 문이 원망스러웠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태형 선배를 진정시키려는 한 명의 선배와 내 친구가 있었다.
"지금 오고 있다니까 조금만 기달려 보자"
"그래요 선배... 곧 있으면 올 거.. 어? 김탄소!"
내 이름을 들은 태형 선배는 고개를 확 돌려 날 봤다.
"씨발년아 솔직히 말해. 너 민윤기랑 짜고 쳤지?"
크게 울려오는 목소리가 골을 진동시켰다.
덕분에 살짝 어지러웠지만 몸에 힘을 꾹 주고 버텼다.
"민윤기 그 개새끼랑 짜고 치고 나한테 달라 붙은 거였냐?
순수한 척, 모르는 척하면서 웃을 때 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씨발 더러운년."
수없이 쏟아지는 쌍욕에 듣던 정국이가 입을 열려했다.
난 정국이를 저지하기 위해 팔을 꾹 잡고 고개를 살짝 저었다.
너무 화가나기도 했고 목이 아주 아팠지만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선배, 죄송한데요 민윤기라는 사람이 누구에요?
저 그 사람 몰라요."
태형 선배는 무슨 소리냐는 듯 분노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 순수한 척, 모르는 척이 무슨 뜻이에요?
저 지금 이 상황 되게 당황스럽거든요.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씨발년이 넌 끝까지 모르는 척 하네.
미친년 그냥 타고난 썅년이구나
그럼 왜 민윤기 입에서 네 이름이 나오는데?
왜 민윤기 그 좆같은 새끼가 널 쉴드치냐고!"
"진짜 모른다구요..."
갑자기 울컥 올라오는 감정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저가 아는 척 하시길 원하는 거에요?
그럼 설명 좀 해 주세요.. 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 해 주시면 아는 척이라도 할게요"
택시를 타고 오면서 충분히 예상한 상황이었다.
내가 역으로 모른다고 상황 설명을 해달라고 하면 말문이 막히겠지.
상황이 들통나는 건 태형 선배의 더러운 계획이 드러난다는 것과 같으니까.
예상대로 태형 선배는 말문이 막혔다.
"이제 할 말 없으시면 저 가보겠습니다.
저희,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병실을 나와 코너를 돌자말자 펑펑 울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지만 난 아랑꼿하지 않고
어린 아이 처럼 서럽게 울었다.
나를 따라나온 전정국이 내 모습을 보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김탄소.. 괜찮아?"
난 고개를 절레 절레 젓고 엘레베이터를 탔다.
당연히 정국이도 날 따라탔다.
"집 갈 거지? 데려다줄게."
정국이는 고맙게도 집에 가면서 나에게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전정국은 귀찮을 법도 한데 집 앞까지 날 데려다줬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죽이랑 약 사줬으니까 꼭 먹고.
오늘은 푹 쉬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뒤 정국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웃음을 보였다.
"괜찮은 척 하지마 띨띨아.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니까."
정국이는 간다며 손을 흔들곤 금세 사라져버렸다.
집엔 처량하게 혼자 놓여져있는 쪽지만이 날 반겼다.
쪽지를 옆으로 치우고 쇼파에 누웠다.
그제서야 피로가 파도 치듯이 몰려왔다.
이게 무슨 고생이야..
다 민윤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 말만 해놓고 가버리고.
내 말도 들어주면 어디가 덧나..?
민윤기야... 미안한 감정 들면 지금이라도 다시 와 줘.
또 하염없이 민윤기 생각을 하던 도중 608호 병실이 생각났다.
그 환자 민윤기가 맞다면, 그리고 그 환자가 아직 살아있다면
민윤기가 이 세상을 떠나지 않은게 아닐까.
난 급히 전정국에게 전활를 걸었다.
"왜, 무슨 일 있어?"
"그게 아니고.. 너 지금 병원 가?"
"어, 아까 김태형이 오라고 전화 와서"
"그러면 병실 도착하면 나한테 전화 좀 해줘."
"왜?"
"도착하면 알려줄게."
"어.. 뭐 알겠어."
전화를 끊고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민윤기의 행방을 찾을 수 있는 조금의 희망이 생긴 거니까.
그러고보니 아까 전정국이 김태형이라고 하지 않았나?
언제 태형이형에서 김태형으로 바뀌었데..
나는 애꿎은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며 전정국의 전화를 기다렸다.
10분 가량이 흐르고 전정국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도착했어"
"그러면 6층으로 가서 608호 병실 앞으로 가 봐.."
"왜?"
"확인 할 게 있어서"
이 때 부터 내 심장은 요동치듯이 쿵쾅댔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전정국의 목소리가 들렸다.
"608호 다 왔어."
"병실 앞에 이름표 보여?"
"어"
"이름표에 이물질 있지?"
"어. 성 가리고 있는 거?"
"응 그거 떼봐"
"어... 뗐어."
"뭐라고 적혀있어..?"
"민윤기"
정국이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다.
손으로 눈을 닦아내고 목소리를 다시 가다듬었다.
"확실해? 민윤기 맞아?"
"어. 근데 이 사람 아까 김태형이 말하던 사람 아니야?
이름 똑같은 거 같은데"
"나중에... 나중에 말해줄게... 정국아.."
"맨날 나중에 말해준대.
이제 됐어? 확인 다 한거야?"
"하나만 더 확인해줄래.."
"뭔데"
"병실 안에 보여...?"
정국이의 대답을 기다리는 1초가 1시간처럼 느껴졌다.
"아니, 안은 안 보여.
안에서 옷 같은 거 걸어 논 거 같은데."
정국이의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덕분에 내 울음소리가 정국이에게 전해졌다.
"또 왜 우냐...
물어보면 안 말해줄 거지?
지금 대답 안 들을테니까 너 괜찮아지면 말해.
그리고 그냥 울고싶을 땐 울어. 참지 말고."
난 정국이에게 간단하게 대답을 하곤 전화를 끊었다.
오늘도 여김없이 난 눈물을 쏟아내야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날은 어두워져있었다.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민윤기'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지금은 병실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병원에 갈 생각부터 했다.
콜택시를 부른 뒤 아픈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정국이가 사다 준 죽을 2~3번 떠먹고 약을 먹었다.
오랜시간 동안 자서 그런지 몸이 가벼운 듯 무거웠다.
오늘만, 딱 오늘만 더 아프고 내일부턴 아프지 말자.
하늘에게 기도를 했다.
제발 민윤기가 살아있게 해달라고.
내 앞에 안 나타나도 좋으니
민윤기의 몸은 살아있게 해달라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마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코너를 돌자 608호라고 적힌 병실이 보였다.
병실의 불이 꺼져있었다.
왜지? 이 시간대엔 항상 불이 켜져있었는데.
난 불안한 마음을 감싸쥐고 더 가까이 갔다.
병실 앞에 붙여진 이름표엔 아무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다.
그리고 병실 안은 사람의 흔적 따윈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뭐지? 왜 병실이 비어있지?
비어있을 리가 없는데..
분명 아주머니와 민윤기가 보여야 하는데...
침대에 누워있는 민윤기가 보여야 하는데...
손이 덜덜 떨려왔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것은 아니겠지.
그래 설마. 기도도 했잖아.
가빠오는 호흡을 가다듬고 지나가던 간호사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말씀 좀 물을게요.."
"네?"
"여기 608호 병실... 왜 비어있나요...."
"608호 병실요? 잠시만요, 제 담당이 아니라서.."
간호사는 608호 병실의 담당이었던 사람으로 보이는 간호사와
대화를 하더니 좋지 않은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608호 민윤기 환자 물어보는 거 맞으시죠?"
"네.. 민윤기요...."
"그 환자 오후에 갑자기 증상이 악화돼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는데요"
"...네?"
간호사의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갑자기 증상이 악화됐다니.. 이건 또 무슨 말이야...
"그..그럼... 지금 중환자실 가면.. 민윤기 볼 수 있어요...?"
"그게 중환자실은 외부인 출입이 통제 돼 있어서
정해진 시간 아니면 못 들어가요.
그리고 주치의사님한테 허락도 받으셔야하구요.
감기 같은 질병 앓고 있으면 절대 못 들어가요."
간호사의 말을 들었을 땐 진짜 딱 죽고싶었다.
죽고싶을만큼 슬펐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느님, 하느님이 정말 계신다면 저 좀 도와주세요.
더도 덜도 안 바랄게요.
제발 민윤기 한 번만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볼 수 없다면 민윤기가 죽게 놔두지만 말아주세요.
민윤기 많이 아팠잖아요.
많이 힘들었잖아요.
이젠 제가 대신 아플테니.. 민윤기 좀 살려주세요...
그냥 민윤기 안 볼게요.
그러니까 제발... 제발 민윤기 살려만주세요....
이번 한 번만 제 기도 좀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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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악토버 - time to time
어휴...4화 째 어두운 분위기네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완결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완결 후에 즐겁고 상큼하고 달달한 분위기로
특별편을 만드려구요ㅎㅎㅎ
혹시 보고싶은 에피소드 (짧게)
있으시면 댓글달아 주세요!
최대한 우리 사랑하는 독자님들 의견을 반영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웃어여.
독자님들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참 한 편으론 글을 잘 쓴 거 같아 뿌듯하지만
또 한 편으론 맴찢이더라구여
같이 웃자구여.
슬플수록 웃는 거에여.
윤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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