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과 조련남 박지민
: Do you know What time it is? - It must be party time!
야, 씨발. 누가 세스코 좀 불러라.
그냥 동아리에서 퇴출시키는 게 빠르지 않을까요, 선배?
오, 전정국 나이스.
윤기 선배의 호통에도 아랑곳 않고 내 팔을 쥐고 살살 흔들며 나를 바라보는 지민이의 눈을 애써 피했다. … 아, 제발 하느님.
그러니까, 오늘도 그냥 평소처럼 지민이의 손을 잡고 룰루랄라 사이 좋게 등교를 하고 있었단 말이다. 덥다고, 덥다고 밤새 투정을 하더니 어제 결국 밤을 새서 그런지 버스에서도 내 어깨에 고개를 묻고 꾸벅꾸벅 조는 지민이를 위해 초코 프라페라도 사줄까 싶어 비몽사몽인 지민이를 벤치에 앉혀두고는 잠시 카페에 들렸다 나왔다. 그런데 눈을 게슴츠레 뜨고 지금 자는 건가, 깨 있는 건가 싶던 지민이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는 제 옆에 앉아있는 어떤 남자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뭐야, 누구지? 평소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이라 주춤주춤 벤치 쪽으로 다가가는데 그런 나를 발견한 이방인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OO야, 김석진이라구 우리 과 조교 형!
아아, 안녕하세요오….
생긴 것과는 다르게 낯을 가리는 나는 달달 떨리는 입꼬리를 올리고는 덩달아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색하다, 어색해. 그냥 어색하다. 제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치고는 다시 그 조교와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지민이에 결국 초코 프라페에 꽂힌 빨대 두개를 한꺼번에 입에 넣고는 쪽쪽 빨아들이며 자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그래서요, 형 날짜는 언젠데요? 네에!? 초코 프라페를 독점하고 있는 나는 신경도 안 쓰이는지 몸까지 홱 돌린 지민이가 그 조교 형님에게 물었다.
음, 아마 이번주 주말? 윤기하고 남준이도 다음주부터 고시 준비때문에 바쁠 거야, 교수님들이 쪼거든.
조교 형님의 말에 고개를 몇 번을 끄덕인 지민이가 헤에 하고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웃어보였다. … 그, 그래 니가 웃으니까 나도 웃기는 한다만. 얼떨떨하게 나도 덩달아 지민이를 마주하며 웃어보였다. 그럼 형, 두 자리 비워두세요 알겠죠?! 보채는듯한 지민이의 말에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조교 형님이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 교수님이 부르셔서 먼저 가볼게. 잊지 않고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한 조교 형님은 급했는지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아싸!
… 뭐가 아싸야? 게다가 날짠가 자린가 뭔가 그건 또 뭐구.
아아, 그거? 그러니까아 그게.
워터파크! 지민이가 환하게 웃으며 발랄하게 외쳤다. 웬일인지 이번 여름에 휴가 없이 지나간다 했어. 물고 있던 빨대 중 하나를 지민이의 입에 물려주고선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 요즘 날 많이 더우니까 다녀와. 원체 노는 거를 좋아하는 지민이는 여름이 되면 항상 빠짐없이 계곡이든 바다든 휴가를 즐겨 가곤 했다. 물론 물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나는 그럴 때마다 집에서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 빈둥대는 게 진정한 휴가라며 집에 콕 박혀있지만. 내가 물려준 빨대를 물고 초코 프라페를 맛나게 마시던 지민이가 어깨를 움찔하고서는 물고 있던 빨대를 잘근잘근 씹더니 입을 열었다.
아니이, 그런게 아니구. 같이 가자고, 나랑.
… nope. 급하게 얼굴을 굳혔다. 아니요, 절대요. 내 얼굴을 힐끔 살피던 지민이가 단호한 내 말에 울상을 지었다. 아, 앙대. 애교를 부려도 안 돼 이건. 내 팔을 슬금슬금 쥐는 지민이를 피해 벌떡 벤치에서 일어났다. 가, 강의 늦겠다. 여유롭게 가자며 30분 일찍 집을 나선 터라 강의 시간까지는 20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씨부랄. 변명거리를 해도 참나 같이 한다, 염병.
**
야, 미친. 가야지 당연히. 얼마만의 워터파크냐.
… 야, 으즈은.
재밌겠다. 언제 갈 건데? 이번주 시간 비는데 나.
금트흥, 득츠르.
즌느 드음 은 드는 스끄들. 그러니까, 존나 도움 안 되는 새끼들. 지민이의 꼬임에 넘어가서는, 아니 꼬이지도 않았다 아직. 말을 다 듣기 전부터 들뜬 김태형과 이지은은 박지민을 향해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쟤네 엉덩이에 꼬리가 달렸다면 아마 모터 달린듯 뱅뱅 돌아가고 있을 거다. 아니, 저것들은 친구가 물 무서워하는 거 존나 처 잘 알고있으면서 어? 배려따위는 눈 뜨고 찾아볼 수도 없는 새끼들.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은 개뿔이요. 고시 공부에 지쳐있던 윤기 선배와 남준 선배는 오래 전부터 오케이 했던 계획이고, 나를 데려가기 위해 수라는 수는 다 쓰던 박지민은 호석 선배와 김태형, 그리고 이지은까지 포섭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과 사람들까지 간다하면 내가 갈 줄 알고?
OO야, 이거 봐. 다들 간다잖아아.
이번주에 간다는 소리를 들은 이지은은 급하게 비키니 쇼핑을 해야한다며 먹고 있던 식판을 내버려 치우고는 정보실로 김태형을 끌고 사라졌다. 뭐지, 저 개같은 쿨함은. 우리 보고 치우라는 거지? 덕분에 김태형과 이지은의 식판과 함께 덜렁 남은 나는 혼자서 지민이의 애교를 감당해야 했다. 며칠동안 지민이에게 시달린 나는 이미 수척해질대로 수척해져 있었고, 입을 헤 벌린 채로 살기 위해 앞에 있던 소시지 볶음을 입에 구겨 넣었다. 아니, 처 구겨 넣었다.
아니, 나느은.
….
너 물 무서워하는 거 고쳐주려구 그러지.
박지민, 눈 동그랗게 뜨고 거짓말 하는 거 아니야.
합. 내 말에 입을 앙 다물고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눈을 접어가며 씨익 웃은 지민이가 내 입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갈 거죠, OO 어린이?
**
지랄하지 마라. 난 분명히 바둑이 옷 사러 온 거라고 들었다.
아니, 뭐. 바둑이 옷 사는 겸사 겸사.
… 절교하자는 걸 돌려서 말하는 건가?
존나 매정한 년. 나를 쏘아보던 이지은이 내 팔에 팔짱을 꼈다. 비키니 하나 사자고 강아지 팔아먹은 네 년은요? 그런 내 입을 턱하니 막은 이지은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쌩하니 백화점으로 날 끌고 갔다. 오, 존나 쉬원한뒈? 입을 이지은에게 막힌 채로 끙끙대며 불평불만을 하는 것도 잠시 찔 듯한 더위인 밖과는 달리 백화점 안은 빵빵한 에어컨 덕에 시원한 공기가 가득했다. 내가 잠시 헤벌레 하고 있는 틈새에 달달한 아이스티를 어디선가 조공해온 이지은이 헤실헤실 웃으며 엘레베이터 안으로 나를 밀었다. 요번 조공 정도면 쇼핑은 뭐. 선심을 써 가벼운 발걸음으로 엘레베이터에 올라탔다. 아이스티 안에 있던 얼음 한 조각을 머금고는 신나서 돌아다니는 이지은을 졸졸 따라다니는데, 여름 시즌이라 그런지 아님 이지은이 그런 데만 골라가는지는 몰라도 언제 어디서나, 애니웨얼 헐벗은 마네킹이 나를 반겼다.
야, 이거 어때.
음, 그냥 천 하나만 나한테 사다 줘라. 그런 가리개쯤은 나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인자하게 웃으며 말한 나의 얼굴에 수영복을 던지다 싶이 건넨 이지은이 입을 씰룩였다. 아니, 염병. 내가 못할말 했어요? 맞는 말인데 왜 그러시지?! 나를 아래 위로 훑은 이지은에 발끈해 소리를 지르는데도 아랑곳 않은 이지은은 옷걸이에 걸린 수많은 가리개들을 뒤적거렸다. 땡땡이에, 꽃무니에, 줄무니에. 가리개들의 무늬는 다양했다. 뭐, 좀 신기하기도 하고. 도당체 물놀이를 가지 않는 나에게 수영복이란 약간 조선시대 한복 같은 존재였다. 괜한 흥미가 생겨 은근슬쩍 나도 가리개들을 뒤적거리다 나풀거리는 천이 달린 가리개를 발견했다. 오, 이건 가리개에서 좀 업그레이드된 것 같기도 하고.
왜, 그거 예쁘냐?
뭐, 뭔 소리야. 뭐. 다 골랐으면 빨리 가자. 냉면 사준다며.
좋네. 야, 그걸로 사라. 오랜만에 언니가 선물로 사 준다.
막무가내로 내 손에 걸려있던 가리개를 들고가 계산을 한 이지은이 금방 가리개를 담은 쇼핑백을 들고와서는 내 손가락에 고이 넘겼다. … 뭐 하는 짓이지, 이게? 온 얼굴을 구기고 이지은을 바라보자 저 혼자 쿨하게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손가락으로 이 가리개, 저 가리개를 가리키며 설명 아닌 설명을 했다. 저거는 가슴 작아 보여. 저거는 다리 짧아 보이고. 네가 고른 게 제일 예쁜 거라니까. 쇼핑백을 힐끔 보고는 흐뭇한 웃음을 지은 이지은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존나 얼마 있지도 않은 어깨 소멸시켜 버린다, 너. 급하게 걷던 걸 멈추고 방향을 틀었다. 환불해, 이거.
… 야, 솔직히 너 진짜 거기서 티에다 바지 입으면 초딩으로 오해 받아요. 어?
이지은이 씩씩거리며 곧 쇼핑백을 내팽겨칠 기세로 가는 나를 질질 끌어당기며 찡찡댔다. 좋네, 초딩. 젊게 살자 우리. 한 쪽 입꼬리를 올려 애써 웃으며 말한 나를 보던 이지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게 이지은을 떨쳐낸 채로 기세 좋게 아까 매장에 도착하자마자 계산대로 직행했다. 저기, 이거 아까 산 건데 환불….
네? 옷에 문제가 있었나요? 환불 하시려구요?
… 아, 아이라인이 시급하다. '환불' 메이크업이 시급하다고.
**
선배들 왜 이렇게 안 나와요?
야, 원래 여자는 준비 시간이 긴 법이야.
빨리 타고 싶은데, 저거.
평소에는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서는 제 말에 반응도 않던 정국이 아까 워터 슬라이드를 본 뒤로 신이 나서 윤기를 보채고 있는 걸 본 지민이 씩 웃었다. 짜식, 귀엽기는. 쪼끄만 자기가 더 귀여운 줄은 하나도, 정말 1도 모르고. 그런 정국와 윤기 옆에서 선글라스를 코에 걸치듯 쓴 호석은 벌써부터 더위에 기겁하고 벤치에 눕듯 앉아있는 남준의 어깨에 팔을 턱하니 걸치고서는 탈의실에서 나오는 여자들을 스캔하기에 바빴다. 아, 혀엉. 아저씨 티 내지 마요 지짜. 그런 호석의 선글라스를 더 꾹 눌러서 씌운 지민이 입을 삐죽였다. 저 형 괜히 이상한 일 만드는 거 아닌가 몰라.
애들 나왔네. 가자.
호석과 지민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여자 탈의실 출구 쪽으로 고갯짓을 한 남준이 몸을 일으켰고, 지민의 시선이 급하게 그곳을 향했다.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OO를 발견하지 못한 지민이 인상을 쓰고는 남준을 돌아봤다. 뭐예요, 선배. 아직 안 나왔잖아요. 툴툴대는 지민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본 남준이 다시 한 번 고갯짓을 했다. 저기 있잖아. 넌 니 여자친구도 못 알아보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지은과 OO를 발견했는지 몸을 일으켜 앞장 선 남준을 따라 걸음을 뗐다.
아니 어디 있는, 아….
야, 근데 원래 OO 저렇게 하얬었냐? 민윤기 뺨 치네.
선배, 저거부터 타러 가요. 네?
멀리서 지은의 뒤에 숨어서 종종걸음으로 걸어오는 OO를 드디어 발견한 지민의 얼굴이 굳었다. 선글라스를 살짝 내려 지은과 OO를 확인한 호석이 스치듯 지나가며 한 말이 지민의 심기를 더더욱 콕 건드렸다. 지민의 눈치를 본 윤기가 호석의 옆구리를 찔렀고, 지민이건 뭐건 신경쓸 새도 없이 신이 난 정국은 남준을 잡고 늘어지기 바빴다. 아, 생각을 못했다. 수영복. OO와 지은이 가까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지민은 눈을 질끈 감았다. 나 멍충인가 봐, 진짜아.
얜 왜이래. 야, 같이 가.
그런 지민을 본 지은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지민을 제치고선 앞서 간 태형의 뒤를 쫓았고, 지은을 가림막 삼아 걸어나오던 OO이 지민의 굳은 얼굴을 확인하고는 팔을 부여잡았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지민아? 응? 눈까지 감은 지민이 걱정된 OO는 지민의 얼굴을 살피며 급하게 물었고, 눈을 꾹 감고있던 지민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마, 마음이 아파아…. 애써 말을 하지 못하고 속으로 삼킨 지민이 눈을 빼꼼 떴다. 그러자 허연 OO의 배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근데 귀, 귀엽긴 귀여워. 어떡해애.
뭐야, 아픈 줄 알았잖아.
….
지, 지미나? 어딜 그렇게….
… 배.
이글거리는 지민의 시선을 따라간 OO가 급하게 제 배를 팔로 가렸고, 꼭 어른을 따라하는 아이처럼 세상 짊어진 것 같은 한숨을 폭 내쉰 지민이 고개를 들고 북적이는 사람을 틈에서 남자의 어깨에 닿일 뻔한 OO의 손목을 단단히 잡고선 얼른 끌어당겼다.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던 남자는 의도치 않게 지민의 시선을 느껴야 했고, 당황한 OO는 어색하게 웃으며 지민의 어깨를 잡고 몸을 돌렸다. 얼른 가자, 우리도. 지민의 어깨를 밀며 걸음을 떼려는데 그 자리에서 발이 박힌듯 요지부동 서 있던 지민이 다시금 OO에게로 몸을 돌렸다. 이거어, 두르구 일단은. 제 팔에 걸쳐있던 커다란 비치타올을 OO의 어깨 위로 둘러준 지민이 턱을 괴고선 심각하게 OO를 쳐다 봤다.
맘 같아선 다 가리구 싶은데에….
그런 지민의 시선에 뻘쭘한 듯 힐끔거리던 OO가 괜히 몸을 둘러싼 비치타올을 꽁꽁 감싸매고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였다. 웃지마, 하나도 안 예뻐 오늘은. 그런 OO를 보고 오히려 입술을 툭 내민 지민이 툴툴거렸고, 비치타올로 싸맨 OO의 손목을 끌어 제 뒤에 세웠다. 내가 못살아아. 왜 하필 비키니야, 비키니는. 여자들한테 막 해녀복 그런 건 유행 안 하나? 제 앞을 휙휙 지나다니는 여자들을 한 번 힐끔 본 지민이 OO를 질질 끌어당기며 발걸음을 뗐다.
나, 나 이러고 다녀 지미나?
응, 이러고 다녀.
아니, 내가 애도 아니구….
쓰읍. 지민의 단호함에 한 풀 꺾인 OO가 풀이 죽어 쥐고 있는 지민의 손을 부여잡고 질질 끌려갔다. 이제부터 수영장 싫어할 거야. 워터파크는 무슨. 여름엔 집에서 에어컨 키고 빈둥거리는 게 짱이지. 그 짧은 시간에 앞으로 휴가는 절대 가지 않겠다며 열댓번 지민은 다짐하며 구명조끼를 빌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소리치며 다가갔다.
아저씨, 여기 제일 큰 걸로 하나 주쉐여!
**
넌 왜 안 들어가냐.
… 설마 방금 그거 선배가 물어본 거 아니죠?
맞는데.
여태껏 내 옆에 누워서 이어폰을 꼽고 음악이나 듣고 있던 남준 선배가 물 만난 고기처럼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다가 대뜸 고개를 돌리더니 나에게 물었다. 아니, 뭐 전정국이나 김태형이 물어본 거면 모르겠는데. 태연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는 선배에 당황해 우물쭈물하니 뒤에서 썬배드에 누워 눈을 감고 있던 윤기 선배까지 나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아, 물을 좀 무서워해서요…. 괜히 쪽팔리는 마음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니 아아 하며 예의상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남준 선배과 윤기 선배는 다시금 썬배드에 몸을 뉘였다. 뭐하러 물어본 거야, 이 아저씨들.
OO야, 이거 봐!
자유풀에 도착하자마자 물에 뛰어들어 꼭 젖은 생쥐 꼴을 한 지민이가 급한듯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티를 벗어 던지고 호석 선배의 타올로 몸을 두른 지민이가 머리를 꺾어가며 춤을 춰보였다. 저게, 나는 꽁꽁 가리더니 자기는…. 살짝씩 보이는 지민이의 배에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옆에서 나를 따라 춤을 추는 세 사람을 보고 있던 남준 선배가 쯧쯧하고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흉해, 너무 흉해. 아예 옆으로 돌아눕기까지 한다. … 늙은이.
손을 뻗어 아까 줄을 서서 사온 콜라가 담긴 컵을 들어 빨대를 입에 무는데, 무언가를 작당하는지 속닥거리며 어깨를 들썩이면서까지 웃는 정국이를 보자니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진짜 애는 애구나. 맨날 표정 없이 다녀서 잘 몰랐는데. 오랜만에 지민이가 아닌 사람에게 엄마 미소를 짓고 있는데, 아까 춤을 추던 세 사람과 자유풀에서 놀던 이지은과 정국이, 석진 선배까지 우르르 소리 없이 다가왔다. 저렇게 오면 모를 거라고 생각하나 봐, 멍충이들이. 미간을 찌푸리고 살금살금 다가오는 아이들의 행동을 유심히 보는데, 윤기 선배를 타겟으로 정한 건지 죽은듯이 썬배드에 누워있는 윤기 선배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미친. 저리 안 가, 이것들아?
결국 힘없이 줄줄 끌려간 윤기 선배는 정국이와 석진 선배에 의해 물에 퐁당 담겼고, 소란스러운 아이들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그런 아이들을 보며 실실 웃고 있는데, 석진 선배의 귀에다 입을 대고 다시 한 번 속닥거리며 나를 힐끔거리는 정국이와 눈이 마주쳤다. 염병, 설마. 급하게 고개를 돌리자 언제 도망갔는지 모를 남준 선배의 썬배드는 텅하니 비어있었고,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멀찌감치 떨어져 바지에 묻은 물을 털어내는 남준 선배가 보였다.
정국아 자, 잠깐만.
선배 잠깐만이 어디있어요.
아, 아니이. 그게 아니고….
급하게 썬배드에서 몸을 일으키며 지민이를 찾는데, 방금 물에 들어간 윤기 선배와의 물놀이에 빠진 지민이는 이 쪽을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살려주세요, 제발. 울상을 지으며 뒷걸음질을 치는데 입꼬리를 올려 씨익 웃은 정국이와 석진 선배가 어느샌가 내 바로 앞에 다가왔다. 팔을 버둥대며 소리를 지르는데, 아랑곳 않은 정국이가 번쩍 나를 들었다. 어윽, 씨부랄. 힘이 빠져 정국이의 어깨에 걸쳐져 덜렁거리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유풀에 가까워졌다. 넘실거리는 물을 보자니 속이 별로 안 좋았다. 나, 죽어요 엄마. 곧 물에 처박기라도 할듯 정국이의 눈은 장난끼가 가득했다.
… 설마. 야, 야아. 전정국 안 돼! 전정국 OO 내려놔!
뒤늦게 나를 발견한듯한 지민이가 소리를 질렀고, 그런 지민이를 확인할 새도 없이 나는 그대로 물 속에 빠졌다. 진짜 두려움이 훅 몰려와서 힘이 쭉 빠지는데, 깊게도 데려왔는지 발까지 바닥에 닿지 않았다. 덕분에 코인지, 입으로인지 모르게 들어간 물을 꿀꺽 삼켰다. 있는 힘껏 파닥거리며 팔을 허우적거리는데, 누군가가 내 양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넣어 껴안듯 나를 일으켰다. 괜찮아? 응? 얼굴 가까이에서 지민이의 소리가 들렸다. 울먹거리며 지민이를 바라보는데, 입 안에 있던 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 내가 생각해도 나 너무 더럽다.
야, 괜찮냐? 너 물 무서워 하잖아.
야 쟤 눈 빨개졌다. 밖으로 데리고 나가, 빨리.
으어….
나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놀던 걸 멈춘 이지은과 김태형이 나를 안고 있던 지민이를 재촉했고, 고개를 끄덕인 지민이도 나를 껴안다 싶이 끌고 자유풀 밖으로 나왔다. 진짜 지옥을 한 번 경험한 듯한 느낌에 입을 헤 벌리고 정신을 못차리는 나를 보며 정국이와 석진 선배가 미안한 표정을 하고선 뒤를 따라왔고, 나는 금방 썬배드에 앉혀졌다. 내 앞에 쪼그려 앉은 지민이가 내 양 볼을 두 손으로 감싸 쥐더니 얼굴을 가까이해 나를 살폈다.
괜찮아? 물 많이 먹었어?
미역같이 늘어진 머리를 주체 못하고 눈을 한 번 꿈뻑이는 나를 본 지민이가 앞으로 축 늘어진 내 앞머리를 뒤로 쓸어넘겨주고는 내 눈을 바라봤다. 괘, 괜찮. 말을 하다가 쿨럭대자 입에 있던 물이 한 번 더 주르륵 흘러나왔다. … 아, 그만 좀 뱉지 제발. 말을 들을리가 없는 내 속에다 대고 한탄을 하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지민이와 시선을 마주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 조금 먹은 게 끝이야. 진짜 괜찮으니까 걱정 마. 갑자기 찬 물에 들어가서 그런지 입술이 발발 떨리는 걸 힘을 주어 앙 다물자 엄지 손가라으로 한 번 내 입술을 쓰다듬듯 쓴 지민이가 몸을 일으켰다. 나 어디 다녀올게,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누나, 괜찮아요?
OO야 미안해. 니가 물 무서워하는 지는 생각도 못했다, 내가.
아, 괜찮아요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요. 물만 조금 먹었지, 뭐.
죽을상을 하고 내 앞에서 공손히 손을 모아서 사과를 하는 정국이와 석진 선배를 보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아니, 뭐 죽을 죄를 지으셨대? 저기 이지은이랑 김태형은 잘만 노는데.
야, OOO 이거 봐. 이거 수경 존나 웃기다.
어, 저렇게. 아, 진짜 강냉이 루팡하고 싶다, 염병할. 걱정도 잠시 이지은과 낄낄거리며 노는 김태형을 슬쩍 보고는 연거푸 사과를 하는 정국이와 석진 선배를 돌려보냈다. 워후, 수명 줄어드는 기분이야 지금. 몸을 젖혀 썬배드에 살짝 눕는데, 어깨위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급하게 고개를 돌리니 아까 들고 갔던 호석 선배의 타올을 내 어깨에 둘러준 지민이가 내 다리 위에 올려져 있는 젖은 타올을 옆으로 치웠다. 따뜻한 물에 담궜다가 온 건지 어깨 위에 올려진 타올은 뜨끈뜨끈했다.
말했어야 했는데, 너 물 무서워한다구….
뭐 어때. 물도 먹어보고 그런 거지, 뭐. 오랜만에 물에도 들어가보고, 좋네.
… 진짜?
아니, 전혀. 걱정이 가득 담긴 지민이의 물음에 속마음은 숨긴채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물 좀 마신 거 가지고 죽기야 하겠어. 배는 좀 부르지만. 괜히 빵빵한 배를 한 번 문지른 내가 타올을 좀 더 당겨 두르자 아까 남준 선배가 누워있던 썬배드에 걸치듯 앉은 지민이가 내 옆 머리를 쓸어넘겼다. 나 아까 진짜 깜짝 놀랬어. 진짜 놀랐는지 손을 가슴에 얹고 눈을 동그랗게 뜬 모습이 귀여웠다. 아, 씨, 씹덕사...!
안 되겠다. 진짜로 물이랑 친해지게 해야지, 너. 나 없을 때는 어떡해 진짜.
진심으로 걱정됐는지 눈썹을 아래로 축 늘어트리고서는 내 손을 꼭 부여잡으며 말하는 지민이에 홀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마동석병에 버금가는 공포다, 진짜. 김태형과 이지은이 놀고 있는 자유풀을 힐끔 보자 한숨이 나왔다.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본 지민이가 내 어깨를 쥐고 썬배드 뒤로 조심히 나를 눕혔다. 일단은 조금만 쉬고. 너 아까 많이 놀랐잖아. 뒤로 벌러덩 누워서 눈만 깜빡이며 지민이를 보자 갑자기 큼큼 거리며 헛기침을 한 지민이가 눈동자를 굴렸다.
아니이, 그게 그러니까.
응? 뭐라고 지민아?
그, 그거 입고 그렇게 쳐다보니까아….
누울 때 타올이 내려갔는지 훤히 보이는 상체를 쭈뼛거리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지민이에 의해 나도 괜히 얼굴이 빨개져 얼른 타올을 끌어 올리고 괜히 손장난을 쳤다. 귀가 빨개져서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지민이와 얼굴이 빨개진채로 고개를 숙여 손장난을 치고 있던 나를 본 윤기 선배가 얼굴을 찌푸렸다. 쟤네 뭐하냐, 지금.
으, 으아니 지민아. 잠깐만 응?
괜찮아, 괜찮아. 나 어디 안 가. 여기 있잖아.
그, 그래도….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하는 나의 팔을 단단히 잡은 지민이가 떠내려간 튜브를 잡아왔다. 그냥 앉아있기만 해. 내가 잡아줄게. 동공지진이 일어난 내 눈과 간신히 마주한 지민이가 두 팔로 나를 들어올려 튜브 위에 천천히 앉혔다. 오오, 미친. 튜브가 한 번 꿀렁대더니 그 사이로 물이 넘실넘실 흘러 들어왔다. 급하게 고개를 들어올리고 지민이를 찾자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웃으며 튜브를 잡은 지민이가 제 쪽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아, 귀여워서 어떡해 진짜아….
평소 같았으면 심쿵 당해서 가슴을 부여잡고 있어야 할 난데, 지금은 심쿵이고 뭐고 물이 너무 무서워 바들바들 떨며 지민이의 손을 잡을 뿐이었다. 살아야 돼, 살아남아야 된다고. 그런 내 손을 다시 한 번 단단하게 잡아준 지민이가 천천히 더 깊은 곳으로 튜브를 끌었다. 지, 지미나 나 죽으러 가는 것 같아. 혼이 나갈 정도로 입을 헤 벌리고 있자 그걸 보고는 웃음을 터뜨린 지민이가 어느 정도에서 멈춰서서는 튜브에 팔을 얹어 기대고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신혼여행은 물이 많은 데로 가야될까봐. 그지?
응? 무슨 소리야, 그게.
안쓰럽긴 한데, 너무 귀엽잖아. 지금 너 진짜 어린이 같아, 애기.
헤 하고 웃은 지민이가 내 볼에 입을 맞췄다. 오른쪽 볼에 한 번, 왼쪽 볼에 한 번, 이마에 한 번, 입술에 한 번. 한동안 쪽쪽대던 지민이가 마지막으로 입술에 입을 맞추고서야 몸을 뗐다. 벙찐 내가 멍하니 지민이를 보고 있자, 씩 웃으며 내 튜브를 슬쩍 밀어보인 지민이가 양 손을 살짝 들어올려 보였다. 이거 봐, 나 손 뗐다? 꼭 누가 뒤에서 잡아주던 자전거를 드디어 혼자서 타게 된 어린이 느낌이 들어 엄지를 척 들어올리자 지민이가 못말리겠다는 듯이 덩달아 나를 향해 엄지를 들어올렸다.
야, 워터파크엔 세스코 같은 거 못 부르냐.
아마 그럴걸요.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지 못하네.
수영장 한 가운데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던 정국이와 태형이가 투덜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튜브를 나 혼자 타고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 지민이와 내가 대꾸도 않자 금새 흥미가 떨어진듯한 정국이와 태형이는 자기들끼리 물에 빠트리니 마니 하며 장난을 쳤다. 발로 살짝 물장구를 치고 있다가 힐끔 지민이를 보자 정국이와 태형이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지민이가 나와 시선을 마주하고선 씩 웃고는 수영장 한가운데로 조용히 걸어갔다.
아, 지민 선배!
물에 빠트릴 생각이었는지 태형이를 들어올린 정국이 뒤에서 눈치를 보던 지민이가 정국이를 밀어버렸다. 결국 덩달아 같이 물에 빠진 정국이와 태형이가 머리를 털며 지민이에게로 걸어왔다. 어우, 시작이겠다. 정국이와 지민이가 몸싸움을 하는 사이 튀는 물을 피하려고 둥실둥실 떠다니기만 하는 튜브에서 조심스럽게 손으로 물을 젓는데, 누군가가 와서는 내 손목을 덥썩 잡았다. 씨벌, 내 물놀이를 방해한 당신은 누구세여.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드는데, 낯선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아까 저기서 봤는데요.
… 그래서요.
마음에 들어서 그런데, 나가서 번호 좀 주실 수 있으세요?
남자의 친구들인지 저 뒤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남자들은 내 앞의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응을 해댔고, 나는 꾸물대며 애써 남자에게 잡힌 손목을 빼내려고 애썼다. 남자친구 있는데요. 영혼이 빠져나간듯한 내 말투에도 전혀 신경이 거슬리지 않았는지 얼굴에 미소를 띄운 남자가 갑자기 내 손목을 확 끌어당겼다. 덕분에 튜브가 꿀렁댔고, 떨어질뻔한 내가 휘청거렸다. 이 미친놈이? 아까보다 더 날을 세운 눈빛으로 남자를 쳐다보자 장난스럽게 웃은 남자가 태연히 입을 열었다.
아까 보니까 물 무서워하시는 것 같던데, 안 주시면 빠트릴 건데, 저.
한 번 더 손목을 쥐고 흔든 그 남자 때문에 내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아, 염병. 어떻게 남자를 떨어트려야될 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뒤에서 물이 찍 날라와 남자의 얼굴에 뿌려졌다. 아, 씨발 뭐야. 급하게 손을 들어 얼굴을 닦은 남자가 욕을 내뱉었고, 고개를 돌리자 당황스러운듯 지민이에게 건네받은 물총을 쥐고 어쩔 줄 몰라하는 태형이와 함께 얼굴을 굳히고 이 쪽으로 다가오는 지민이가 보였다. 시선이 제게 몰리자 김태형이 격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내가 한 거 아닌데요!?
남자친구 있는데요.
아니, 근….
있다고, 남자친구.
물 무서워하는 애한테 뭐하는 거예요, 지금. 남자의 손에서 내 손목을 빼내 단단히 쥔 지민이가 남자를 쏘아보며 낮게 말했다. 지민이의 낮은 목소리는 오랜만에 듣는 거라 괜히 내가 움찔해 멍하니 지민이를 바라보는데, 제 화를 주체 못하고 씩씩대던 지민이가 튜브를 끌어 나를 제 뒤로 끌어당겼다.
물 무서워하는 애를 데리고 이딴 장난 치면 돼요, 안 돼요!?
결국 열이 바짝 오른 지민이가 이성을 잃고 5살난 아이를 가르치는 듯한 말투로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 저 염병할 유교과 새끼 과 사랑 존나 넘치네. 뒤에서 우리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던 지은이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자리를 떴고, 그런 지민이가 부끄러웠는지 같은 '유교과' 인 정국이도 태형이와 함께 조용히 물 밖으로 나갔다. 미, 미안한데 지미나 나도 나가고 싶다…. 그런 지민이를 이상한 사람 보듯 힐끗 본 남자는 뭐야 라며 자리를 떴고, 한숨을 쉰 지민이가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 OO야, 나 전과해야 될까 봐.
아, 아니야! 멋있었어 지민아!
내 말에 힘없이 고개를 내저은 지민이가 팔을 끌어당겨서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창피해, 진짜아. 나는 그런 지민이의 등을 토닥였고, 얼굴을 부비던 지민이가 간신히 귀에 오른 열을 식히고 고개를 들었다. 너 진짜 이제부터 노출 금지야. … 아니 식힌 게 아니었는지 씩씩댄 지민이가 내 어깨에 걸쳐져 있던 비치타올로 내 몸을 다시 꽁꽁 싸맸다. 어디 내놓지를 못하게써, OOO. 입술을 깨물어 발음이 뭉개진 지민이가 내 옆머리를 귀 뒤에 꽂았다. 불퉁한 지민이의 표정이 내 심장을 오랜만에 저격했다.
※ 저격수 등장. 주의 요망.
**
나왔냐. 빨리 가자, 이제 날 쌀쌀해진다.
넵. 지민이는요?
박지민? 저기 앉아 있을 걸.
편의점 앞에서 쭈쭈바를 쪽쪽 빨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남자들이 추웠는지 팔을 쓱쓱 쓸며 앞장 섰고, 물이 젖은 짐이 들어가 무거워진 백팩을 끙끙대며 다시 끌어올린 나는 편의점 앞 간이 테이블에 앉아 열심히 무언갈 하고 있는 지민이를 발견하고 걸음을 뗐다.
내가 온 지도 모르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지민이 앞에다 대고 박수를 치자 그제서야 내가 온 걸 알고서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지금 뭐 해? 애들 다 갔어. 우리도 얼른 가야 돼. 내 말에도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정신없이 연필을 쥐고 글씨를 써나가던 지민이가 몇 분 뒤에 몸을 일으켰다.
이제 다 됐다. 가자.
뭐 했길래 나 온 지도 몰랐어?
으응? 아니 그으냥. 우리도 얼른 가자.
어느새 내 가방을 가져가 제 어깨에 걸친 지민이가 내 손을 잡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음을 뗐다. 뭐 좋은 일 있나….
야, 너 등에 그거 언제부터 붙이고 있었냐.
어? 등? 등이 왜. 뭐 묻었어?
… 나 참. 커퀴짓도 존나 다양하게 하신다 진짜.
골아떨어진채로 버스에 실려 와서는 다들 비몽사몽한 상태로 터미널에 도착했다. 윤기 선배는 과 일로 할 얘기가 있다며 지민이와 남준 선배를 끌고 갔고, 다들 뿔뿔이 흩어진 채로 집을 가는데, 나와 집 방향이 얼추 비슷해 같이 걸어가던 지은이가 내 등을 콕콕 찔렀고, 그 말에 등을 더듬거리던 나를 대신해 등에서 무언가를 떼어준 지은이가 몸을 부르르 떨며 앞장섰다. 진심 소름 돋는다, 너네.
'-A 대학교 유아교육과 박지민반 OOO 어린이- (박지민 거)'
삐뚤거리는 글씨체로 써져있는 분홍색 포스트잇을 손에 쥔 채로 한참을 웃었다. 아, 잔망쟁이…. 포스트잇 한 구석에는 포토 스티커 한 개가 붙여져서는 영롱히 빛나고 있었다.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워터파크. 앞으로 워터파크가 좀 좋아질 것 같았다. 나는 포도 스티커의 노예니까.
암호닉 샘봄 / 방탄분홍머리걔 / 곱창 / 침침워(먼)더 / 포도센세짐니 / 슬요미 / 집순이 / 얏호 / 귀여운주사/ 마름달 / 똘똘이스머프 / 지민이네달빛 / 침침쓰/ 슬요미 / 1600 / 태태뿡뿡 / 커몽 / 망구 / 흑슙흑슙 / 소금 / 블라썸 / 공중전화 / 꿀떡맛탕 / 얌냠 / 호이호이 / 심쿵남 / 포도모으는토끼 / 슈몽 /슙슙 / 또이또이 / 젤리 / 시레 / 또또 / 작까님내꺼하자 / 삼천판다 / 향균물티슈 / 메리츠 / 미스터침침 / 토끼머리띠 / 수박빙수 / 충전기 / 토끼야놀자 / 무민이 / 골드빈 / 94 95 / 들국화 / 다홍 /슙슙 / 치졸이 / 짐그래 / 헤롱헤롱 / 순정 / 뷔글뷔글 / 짐니 / 알매슙 / 불알 / 디즈니 / 꿀벌침침/ 해바라기 / 망망이 / 김데일리 / 아넬로 / 뿌뿌 /착한생각 / 윤기모찌 / 샤파 / 망고빙수 / 쀼쀼 /♥짐니♥ / 뀨뀨 / 요를레히 / 맹고 / 꺄룰 / 우리사이고멘나사이 / 침침맘 / 주지스님 / 엽떡 / 초딩입맛 / 고망맨 / 그대못생겼어요 / 호식이두마리 / 플랑크톤 / 홉이 / 다굠 / 방지민 / 명탐정코코 / 슬아 / 리잰 / 들레 / 윤기선배 / 용서노노해 / 은박지 / 민슈팅 / 슈가! / 과동기침침 / 채영 / 정희망 / 세젤귀세젤예 / 플덕 / 윤기찡 / 밍뿌 / 침침해 / 민슈가 / 민설탕 / 펜잘규 / 민트곰 / 보나 / 외로운쿠키 / ㅇㅅㅇ / 호석이두마리치킨 / 뿌뺘삐뾰 / 섬섬옥수 / 꾹무룩 / 포도알 / 짱구 / 봄봄 / 짱짱맨뿡뿡 / 태태한 침침이 / 알라 / 꼬이 / 미소 / 아말카 / 뀨또 / 호빗 / 치킨 / 치민이 / 감자 / 어썸 / 석류드링크 / 가가멜♥ / 지민아 / 김치볶음밥 / 딘시 / 꽃밭 / 짐그래 / 아카시아 / 달걀 / 박지민워더 / 썸월 / ★작은별★ / 바나나 / 박조련 / 페브 / 태말이 / 921 / 쭐래 / 박뿡 / 맑공 / 지니 / 계피 / 쪼꼬에몽 / 꾹이 / 비바 / 룰난 / 지민쓰 / 찌민 / 민슙 / 연이 / 바닐라슈 / 햇살 / 플랑크톤회장 / 너를애정해 / 8ㅅ8 / 윤민기 / 빠밤 / 감자깡 / 지민엄마 / 유자 / 한탄 / 줍줍 / 요푸 / 까르겟겟 / 망고버블티 / 박지민 / 얌냠 / 콜라 / 윤기융기 / 청바지 / 포도스티커 / 민트 / 수치플 / 솜 / 사과 / 윤민기 / 까만색 / 찹쌀떡 / 자몽주 / 퐁퐁 / 호걸빵 / 소녀 / 후엥 / 눈이침침행 / 슬애기 / 비솔 / 버건디 / 김안녕 / 뿌링클 / 빵빠레 / 마끼 / 심슨 / 요맘때 / 짐짐 / 짐박 / boice1004 / 복동 / 형아 / 두유 / 천상여자 / ☆☆ / 부재중 / 오름 / 잉여 / 모모 / 숨 / 비트윈 / 유교짐니 / 딸키맛 / 자몽 / 우지수박 / 땡글이 / 꾸꾸까까 / 수수 / 냥냥이 / 뉴트로지나 / 핑슙 / 포세이돈 / 슈차 / 하늘하늘해 / 포도맛사탕 / 연모♡ / 감귤 / 미니 / 디보 / 연애학개론 / 잼잼 / ♥포도장미♥ / 아기 / 꿀비 / 딸기 / 어레스트 / 레드 / 반딥 / ♧몽몽♧ / 콩나물제육볶음 / 요덮아놀쟈 / 쿠야 / 짜끄리 / 덕쿠힁 / 꾸꾹이 / 비타민 / 포포 / 인사이드 아웃 / 꾸꾸기 / 흐로로로로로 / 미니미니 / 박뿡 / 두둠칫 / 미니슈 / 김치만두 / 숲 / 누나 / 아침햇살 / 옝니 / 태퉤퉤 / 융기맘 / 홉퍼파워 / 칭찬의박수짝짝꿍 / 포도 / 샤축구 / 말랑이 / 연꽃 / 민빠답없 / 타미 /준회 / 쁘띠젤 / 침침아 / 핑퐁 / 심쿵쓰 / 모찌 / 산들코랄 / 오곡 / 불닭볶음면짱 / 나에케서미아카되지마 / 눈부신 / 힘슈 / 지민이와함께라면 / 빙수 / 별별별 / 짱구 / ☆별☆ / 김뷔 / 포도스 / 뭉치슈가 / 발닦개 / 1230 / 발꼬락 / 슝슝 / 치즈치킨 / 포도스티커판 / 도롱뇽 / 토끼 / 꽃놀이 / 딥크 / 끼부림 / 니나노 / 쀼뀨쀼뀨 / 누텔라 / 둥당 / 슈민트 / 지민어린이 / 낄룩 / 단지 / 플레어 / 육아는일국 / 디기 / 하겐다즈 / 바카0609 / 정국아뭐해 / 여우비 / 너를 위해 / 슈팅가드 / 마니꽃 / 탄콩 / 태꿍태꿍 / 은류 / 젊음 / 미융 / 춐 / 슈카슈카쿠키몽 / 소라 / 규짐 / 설레미 / 1191 / 침을태태 / 진리 / 이사 / 융기융털 / 땡스투박지민 / 이롤슈가 / 유교과의 꽃 / 뀨륵뀨륵 / 라온이솔 / 안개꽃 / 파인애플 / 당긴윤기 / 민슈가는 슈가슈가해 / 작가님하트 / 비비빅 / 늘지민이편 / 홈매트 / 곰씨 / 지민이포도스티커판 / 숲들 / 헤이호옹 / 루비 / 침침아겨론하자 / 갈매빛 / 치즈케익 / 벚꽃나무 / 사랑하껴오 / 쟉하 / 숲속 / 막꾹수 / 사이다 / 민트향초콜릿 / 오레오 / 공구공삼 / 밍 / 은하수 / 웬디 / 미뉸기 / 치즈 / 토끼 / 자몽에이드 / 두콩이 / 끼부림 / 밍글밍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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