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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민] 나의 열여덟이 그리울 땐 [02] | 인스티즈

 

[루민]

 

 

햇볕이 진짜 약을 빨았는지 너무나 더운 날씨다.
그 강렬한 태양에 저절로 기운이 빠지고, 되려 심하게 목마르기까지 하다.

게토레이 한잔 거하게 들이키고 싶다.

내 절실함을 하느님이, 부처님이, 알라신이 들어주셨는지
김종인이 차가운 콜라캔을 얼굴에 부벼댄다.

괜히 멋쩍어서,

- 새끼야, 사올거면 게토레이 사오지 그랬냐
- 내놔 개년아, 기껏 사오니까 지랄이야
- 아아, 존나 고맙다.

- 사실 정수정쨈 주려던건데 가보니까 박찬열이 스타벅스 대령하더라?
- 에휴, 그지새끼. 박찬열만도 못한..
- 그니까, 아 존나 서러워ㅠ 그냥 이거 너라도 처먹어라.
- 사연 있는 콜라네.

보란듯이 원샷을 해보였다. 그나저나 박찬열, 이거 곽새별이 알면 또 오래 삐져대겠다.
수정쌤 인기 쩌는구나, 난 나은쌤이 더 좋더라.

- 아아아악 이대로 불타버릴 것 같아
- 김종인, 매점 좀 가자
- 너도 정수정한테 조공하게?

아니, 김민석.
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응?

응?

김민석이 정수정이야? 나 더위 제대로 먹엇나봐, 무슨 김민석은 얼어죽을 김민석…

- 아니, 손나은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있다.

- 쌍쌍바도 같이 계산해 새끼야
- 왜

- 내 콜라값^^

우리 종인이는 이럴때만 칼같단 말이야 시발..
왠지 김민석… 아니, 손나은쌤이 좋아할 것 같은 딸기우유를 고르고선,
교무실로 향했다.

가장 구석에 마련된 교생쌤들 자리가 어렴풋이 보인다.
정수정 정수정 거리던 종인이는 수정쌤에게 쪼르르 달려가버리고.

아직 얼얼하게 차가운 딸기우유를 들고는 나은쌤을 찾아보았다.

아, 저기있네- 라고 인식하기도 전에 김민석과 꺄르르 웃는 모습을 먼저 보았다.
뭔가 기분이 오묘해져서, 그냥 오히려 오기가 생겨서 성큼성큼 다가갔다.

- 나은쌤, 이거.

동시에 내쪽을 바라보는 손나은과 김민석. 김민석, 깜짝 놀랐나보다.

- 고마워. 너..너가.. 루한이?

기억하는척 하지마요. 내 이름표 본거 다알아.

- 쌤 딸기우유 좋아할거 같이 생겼어요

빵터진 나은쌤과, 나를 빤히 쳐다보는 김민석.

- 루한이 나은쌤보다 나랑 더 친한거 아니였어? 내껀 어딨어-

진짜 서운한 표정에, 그 뾰로통한 표정이 너무 미칠것 같이 이뻐서-
종인이의 쌍쌍바를 낚아채서는,

- 선생님껀 여기.
- 역시. 난 빼먹은 줄 알고 눈물 날뻔했어 짜샤-

와, 나 쌍쌍바 지인짜 좋아하는데- 라며 봉지를 뜯는 모습에, 괜히 뿌듯해진다
그러더니 반으로 똑 나눠서는,

- 종치기전에 우리 후딱 먹자.

나에게 반쪽 쌍쌍바를 건네는 김민석이었다.
김민석 쌤, 진짜 쌍쌍바 덕후인것 같아, 너무 잘먹는다.

그렇게 야자를 한참 하면서도, 오늘 김종인을 만난건 정말 잘한일이야. 이러면서
괜히 실실웃고, 공부도 머릿속에 하나도 안들어오는 것이었다. 진짜, 그게 뭐라고 이렇게 의미를 두는건지.
내가 김민석과 너무 친해지고 싶어한다는것, 그것만은 정말 분명해졌다.

야자 쉬는시간이 금새 왔고, 머리가 복잡해진 나머지 경수를 끌고 잠시 밖으로 나와 앉았다.
경수는 말없이 옆학교  애와 쉴새없이 카톡중이었다. 여자에 눈먼 새끼….

- 야, 도경수
- ...
- 그렇게 톡해봤자 뭐 사귀기라도 하겠냐. 야!
- 아 왜, 새끼야.

- 내 친구 얘긴데, 내 친구가 어떤 대학생 형한테 그냥 좋은거 이상의 감정이 느껴질랑 말랑
한대는데, 이런거 그냥 사춘기 시절에 자연스레 겪을 수 있는, 그런 과정..뭐 그런걸로 칠수도 있는거지? 엉?

순전히 지금 내 얘기.
잠시 미간을 살짝 찌푸리던 경수가 한마디 했다.

- 난 그런적 없는데, 그 뭐지. 학교2013 보면. 그 드라마알지?
- 알아.
- 남순이도 흥수한테 조금은, 아주 조금. 뭐 그런 멜랑꼴리한거. 있잖냐. 감독이 10대때 자연스레
은근히 갖게되는 감정이라면서 동성애 코드 약간 넣었대잖아. 그런 말들 보면 마냥 이상한 건 아닌것 같아.

- 그치? 거봐, 얼마나 보편적이면 드라마에도 녹아들었겠어. 맞아맞아…

- 왜이리 좋아해? 야, 그래도 몰라. 그 친구 너무 가까이하지마. 게이일수도 있잖아!!
- 걔 절-대 게이아니야.

 

- 그럼 됐고. 근데 나는.


- 응


- 친구가 게이든 뭐든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뜬금없이 얘가 왜이러지. 갑자기 진지해져 버린다. 괜히 가슴이 뜨끔한다.

뭐라 더 말하려던 경수는, 갑작스레 울린 종에 야, 들어가자. 라며 바지를 털었다.
나도 벙쪄서 그냥 말없이 야자실로 들어갔다.

2차시때도 계속, 그럴수 있는거야… 그럴수있어… 라며 내 자신을 다독여보았다.
알수 없는 마음. 그리고 그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교생쌤 때문에 손에 뭐든 안잡혔다.

 

다음날 아침.

나는 화학시간에 절대 졸지 않았다. 그냥, 그게 편했다. 내가 또 엎드리면 또 다가올 것 같아서.

그냥 거리를 두려고 했다. 최대한 안 생각하려고. 차차 잊혀질 감정으로 만들려고.

이제는 말도 잘 나누고, 많이 친해진 사이였지만. 그래도 그냥 한달 후면 떠날 교생선생으로서,
그렇게 대해보려 했다. 정작 선생님은 내가 안중에도 없을거고, 나만 혼자 설치는 것일지라도.

 

 


< 민석 시점 >

교생으로 이 학교에 오게되면서, 한가지 다짐한 것이 있었다.

절대로 아직 어리디 어린 고등학생 애들에게 그 어떤 미묘한 감정마저 느끼면 안된다고.
내가 선생의 길을 택하면서, 내면적으로 힘들었던 것이 바로 그거였다.

그 누구도, 내가 동성애자라는거. 아는 사람 없으니까.
이 세상에서 어쩌면 가장 불쌍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나 역시 그 일원이고.

내가 게이라는걸 알게된건, 그 헤어나올 수 없는 깊은 숲에 빠져버려 한없이 우울하게 살게된 그 시점은,
8년전으로 거슬러간 고등학교 2학년.

정말 혼란스러워서…
아무튼 나는 부디 남녀분반인 이 학교에서 남자반만은 맡지 않길 바랬지만, 교생 중 거의 유일하다 싶은
남자 교생이었기에. 그 반 담임의 부탁이라고 얼핏 들었지만, 5반에 오게 되었다.

그러나 저주스럽게도, 너무나 죄책감이 들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한 학생이 있었다.

나의 고등학교 2학년, 그 즈음에 나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준 그 친구랑 참 많이 닮았었다.
목소리도 얼핏 비슷한 것 같고. 그 추억과, 설렘이 너무나 강렬해서.

루한이를 보면서,
한동안 잊자. 잊자. 나의 둘도없는 친구를 사랑해선 안되. 라며 억눌렀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뜬금없이 루한이를 길가에서 보면서, 밥 한번 먹는거. 그건 괜찮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 아아, 그렇구나. 근데 선생님-

- 응?

- 아까 경수 질문 답안했잖아요. 여자친구 있어요?

루한이는 다시한번 이렇게 되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많이 사궈보았다고, 지금 없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한번도, 단 한번도 여자든 남자든 사귀어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나는 내 열여덟, 내친구를 그리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외로움보단 괴로움이 더 컸던 나날들이었으니까.

루한이는 그리 크지않은 키지만 어느정도 다부진 녀석이었다. 마르긴 했지만, 그건 맵시있게 슬림하다- 그게 더 어울
릴것 같았다. 그시절의 그녀석처럼….

그냥 나의 교사라는 본분에 충실해보자. 그리고, 여자를 사귀어 보자.

마치 왼손잡이에게 오른손잡이기를 강요하는것. 익숙함을 억지로 떼어내야 하는것.
누군가를 마음껏 사랑할 수 없다는것. 꼭꼭 숨긴채 살아가야하는, 더럽다는 시선이 싫었기에
무덤까지 안고 가야할 나의 가장 큰 치부.

루한아, 나는 이 한달이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어. 널 보면 그녀석이 떠올라서, 그리고 너도 머릿속에
계속 맴돌아서. 그럴수록 씁쓸해져서.

.
.
.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난 여전히 주위의 많은 친구들과 두루두루 어울리며 행복한 대학생 코스프레를
해 오곤 했다. 그리고 나은이라는 둘도 없는 나의 친구를 만났다.

유난히 친하게 지내던 나은이와 나. 둔한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군대가기 전날이었던 것 같다. 술한잔 하자며 나은이가 나를 불렀다.

- 야, 김민석. 무슨 군대야…. 아 진짜 그러는게 어딨어 만두새끼야
- 일찍 갈려고. 늦게가서 좋을 거 없잖아.
- 파릇파릇한 만두자식이- 너의 청춘의 리즈를 꼭 거기서 썩혀야 겠나구, 나빴어.

- 그만 마셔라. 군대 너가 가냐. 나도 겁나 착잡하다고, 하아.

술이 쎈건지, 손나은은 그 초롱초롱한 눈으로.

- 야, 김민석.
- 응

- ...민석아
- 방금 소름 돋았어, 아으-

- 김민석, 너는. 남녀 사이에 친구가 존재한다고 생각해?

- 응. 여기 그 예가 있잖냐.

에휴- 병신. 안하던 욕짓거리를 내뱉더니, 한잔 따라봐 만두야- 라며 술잔을 들이민다.
안어울리게 얘가 왜이러지. 누구보다 구김살 없고, 착하고, 순수하고 예쁜 애가.
나같은 애 군대간다고 슬퍼해주는거에 꽤나 감동받던 그 순간에-

 

- 아니. 애초부터 그럴수가 없단 말야. 친구는 무슨.


- 응?

 

- 단도직입적으로.

 

정적이 흘렀다.

 

- 친구 그만하자. 김민석, 나 너 좋아해. 그것도 꽤 오랫동안이었고.

 

 

고백.
여자가, 그것도 이렇게나 예쁜 손나은이 나에게 고백을한다….

- 많이 취했네.

애써 넘겨보려 했다.

- 김민석….
- 미안해. 정말 미안한데, 너 나 좋아하지마.

차갑고, 날카롭게 대해버렸다.

일부로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사실 너무 놀랐지만, 곱씹어보면 괜한 것도 아니었다.
크나큰 상처를 줘버렸다. 둘도없는 나의 '친구'에게.


군대로 갑작스레 가는것도 미안했고, 거절해서 미안했다.
정말 미안했다. 죄책감도 여전히 들었다. 누구라도 부러워할, 그런 여자를. 나는 사랑할 수가 없다.

기어코 나은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다. 그러나 더이상 울진 않았다.

- ...
- ...못 들었다고 칠게.

어색해져서, 숨을 쉬는 것 조차 버거운 그 슬픔에 얼룩진 공기.

- ...
- 시간 늦었다. 그만 일어나자.

여전히 말이 없는 나은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러니까 나 좋아하지 말란 말이야. 왜 하필 나를 좋아했어. 왜 하필….
너에게 아무 감정도 가질 수 없는 나를 좋아하는건데.


너에게 친구 이상이 되어 줄 순 없지만.
포장마차를 나와 마주선 우리 둘은. 아마 이년 좀 넘게 못보게 되겠지.
그래도 너같은 친구를 잃고 싶지가 않아 손나은. 정말 편했단 말이야.

그래서, 우리가 어디까지나 허울없는 친구라는걸 잠시라도 부정하고 싶어서,

나은이를 꽉 끌어 안았다.

나 스스로도 놀란 내 행동이었고, 꽤나 멈칫하는 손나은이었다.
여자를 안는건 너가 처음이고, 마지막일거야.

.
.
.

 

군대 생활이 끝나고 나서, 드디어 공기 탁 트인 '세상' 에 발을 딛고나서,
제일 먼저 만난건 손나은이었다.

그리고 다 털어놓았다. 손나은이면 이해해 줄 것이란 확신이 있었으니까.

- 나, 남자 좋아해.

무표정하게 나의 눈만 직시하는 손나은이었다. 그럴줄 알았다는 눈인 것 같았다.

- 그래서 좋아하지 말라고 한거지, 그치.

이제는 조금씩 웃으며 그 고백을 회상하는 여유마저 생겨버린 손나은.
고개를 끄덕이자 내 어깨를 툭툭 쳐주면서,

- 김민석. 우리, 여전히 친구고. 더 각별한 친구가 되자. 나 너 백번 이해해.
- 손가락질해도 좋고, 더러우면 나 멀리해도 되.

- 그런소리하지마. 그게 왜 더러운데? 그리고, 나도 이제 게이 하나도 안좋아해-

넉살을 떠는 나은이가 너무 고마워서, 가슴한쪽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 남녀 사이에 친구, 안될거라 말했던 이년전의 나를 용서해. 너 되게 놀랐지. 그것도 미안.
- 이제는 되는거야?

- 응. 너가 게이든 뭐든. 이거 나만 아는거지?
- 당연하지.

나는 너를 믿으니까. 고맙다.

.
.
.
.
.

하지만, 사회에 다시 나와 복학을 하면서. 정말 혼란스럽고, 죽고 싶을때도 많았다.

운좋게도 나은이와 같이 교생 실습을 나오게 되었고, 많은 의지가 되고 힘이 되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이제는 남은 시간동안 최대한 루한이에게 들키지 않으려 한다.
내 자리를 지키고, 내 본분에 충실하고 싶다.
그냥 잠시 열병을 앓았다 치고, 어리디 어린 그애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오버랩되는건 어쩔 수 없다.

게이, 동생애자라는 그 사슬이 나를 죄어온다.
숙명일지라도,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참으로 가혹하고, 가슴 저린 벌인것 같아.

 

 

 

 

 

 

 안녕하세요. 처음쓰는 글 두번째 편이네요ㅠㅠ

댓글달아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리구.. 그냥 글쓰는게 참 좋네요ㅎㅎ

정말 전개느리죠. 이제부터 팍팍나갈까요-?

ㅎㅎ부족한 글이지만, 봐주시는 분들 정말 너무너무 감사드리구ㅠㅠ

댓글 달아주시면 정말 힘나구, 학교 갈때 졸음도 가시는거 같더라구요!!

그럼 이만 글 줄일게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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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ㅠㅠ 휴 ......신알신하고싶은데 오류가 났나 왜없ㅈ!!!!!!!!!!!!!! 민석아 힘내 !!!!!!!!!!!!!!!!
10년 전
독자2
전개 느려도 좋아요 ㅠㅠ그만큼 더 오래 많이 볼 수 있으니까!!!!
10년 전
독자3
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짱이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독자4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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